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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연예인

다니엘 린데만 결혼과 수지 사건- 다니엘 린데만 직업 회사


다니엘 린데만의 결혼 유무가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 다니엘 린데만의 수지 사건 역시 무척 흥미롭네요.


사실 다니엘 린데만은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뒀는데, 그 이유가 좀 특별하네요.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다니엘 린데만은 1985년 10월 16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랑엔펠트에서 태어납니다(다니엘 고향 레버쿠젠 근처). 올해 31살이죠(다니엘 린데만 나이, 한국식으로).

(다니엘 린데만 국적) 독일

(다니엘 린데만 키) 181cm로 추정

(다니엘 학력 학벌) 독일 본대학교 동아시아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석사

(다니엘 프로필 및 경력) 2012년 현장 21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처음 방송에 데뷔

이후 분데스리가 쇼, 비정상회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등을 통하여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정상회담 독일 대표 다니엘 린데만)


# 목차

* 어린 시절 특이한 출생

* 다니엘의 안타까운 실수

* 광화문 오피스걸에게 반한 나머지

* 의미있는 2가지 경험담으로

* 다니엘 린데만 독일 신문 인터뷰


다니엘 린데만 사진


* 어린 시절 특이한 출생


다니엘 어머니는 독일인이고, 아버지는 이스라엘 군인이었으므로, 다니엘은 혼혈 출신입니다.


다니엘 린데만(이하 다): "아버지가 이스라엘 군인이었는데, 나중에 본국으로 돌아간 뒤에 연락이 끊어져서 어머니 혼자 나를 양육했다."


다: "아버지와 연락이 끊겼다가 작년(2013년)에 구글에 아버지 이름을 쳤더니 (아버지) 프로필이 나와서 스카이프로 연락해 봤다. 결국 아버지의 얼굴을 27년 만에 처음으로 스카이프를 통해 보게 됐다."


다: "당시 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담담했다. 그냥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얘기를 나누었는데, 마치 아버지가 동네 아저씨 같았다."



다니엘 아버지란 사람이 무책임하기 짝이 없네요.

27년만이라는 것은 아들이 2 ~ 3살때 이스라엘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뻔히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동안 연락조차 하지 않았네요.


다니엘을 혼자 키웠던 어머니의 고생이 심했을 것 같습니다.


다니엘 린데만 이상형 수지


* 다니엘의 안타까운 실수


다: "외할아버지가 퀼른 성강의 오가니스트였기에, 우리 가족들은 모두 악기를 하나씩은 연주할 수 있다. 나는 피아노를 좀 친다."(다니엘 린데만 피아노)


다: "그리고 독일 대학교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먼저 배웠다.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에 호기심이 강했다."


실제로 다니엘은 독일의 본 대학교의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학을 전공합니다.


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먼저 배우고 한국어를 배웠기 때문에, 말을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다: "한글은 세계의 수많은 언어 중 '아주 유일한 발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글 만큼 철학과 과학이 들어있는 글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모음은 하늘과 땅, 인간의 형상을 보면서 만들어졌고, 자음은 사람의 혀나 입모양을 따라 만들어졌다."


다: "한국인들은 한글에 대해 자랑스러워 해도 될 것 같다. 심지어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 족은 한글을 본인들의 공식 언어로 채택해 글로 쓰고 있을 정도다. 이를 보면 한글의 우수성을 잘 알 수 있다."


다니엘이 외국인이지만 한글의 창제 원리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네요.

다만 한글이라는 문자와 한국어라는 언어를 혼동하는 것이 안타깝네요.



* 광화문 오피스걸에게 반한 나머지


이후 다니엘은 2008년 한국으로 오게 됩니다.


다: "2008년 고려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었었어요. 한국에 오기 전에는 만화 '쿵푸팬더'에 나오는 그림을 상상했어요. 산이 많고, 절이 있는 무술이 있는 나라요."


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니 역동적인 곳이었어요. 맨 처음 광화문에 왔을 때 인왕산을 배경으로 고층빌딩과 경복궁이 섞여있는 모습을 보고 과거와 현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다: "한국에 도착한 날 처음으로 광화문에 구경하러 갔어요. 그런데 거기 있는 오피스레이디들이 옷을 잘 입고 아주 예쁘더군요. 그래서 '여기서(한국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다니엘은 이때 경희대학교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합니다. 아마 언어에 대한 재능이 좋았고, 또 본인의 노력 역시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2009년 독일로 돌아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2011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 국제관계학 석사 과정으로 입학해서 2013년 졸업하게 됩니다.

이후 독일계 컨설팅 회사 마케팅 매니저로도 잠깐 일을 하다가 퇴사하게 됩니다.

(다니엘 린데만 회사 이름 P&E Consulting)(다니엘 린데만 직업)(독다니엘 직업)


다: "요즘 바빠지고 다른 일도 하고 싶어서 (회사를) 나오게 됐다. 아직 퇴직금은 받지 못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다니엘 린데만 과거 사진


* 의미있는 2가지 경험담으로


다니엘은 앞으로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을 공공연히 피력하는데, 그의 경험중에는 2가지 의미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 "교환학생 시절 (한국인) 여자친구와 청계천을 걷는데,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제 여자친구에게 ‘너 왜 백인이랑 사귀느냐’면서 계속 쫓아오더라고요."

(다니엘 린데만 여자친구)


다: "그 아저씨가 한참을 따라오길래 카페로 피하듯 들어갔는데, 그곳까지 따라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있을까 말까 한 일 을 겪은 것도 같지만, 당시에는 제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상처가 컸어요."


다니엘의 경험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과장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있었던 일이라면, 한국인의 배타적인 민족성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또다른 경험을 겪기도 합니다.


다: "한국은 외국사람들이 살기에 굉장히 좋은 나라다. 한국인들은 정이 많고, 특히 백인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외국인중에는 한국을 막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어 마음이 아프다."


확실히 한국인에게는 어느 정도 백인에 대한 동경심이 있고,

백인중에는 그것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다니엘 린데만 독일 신문 인터뷰


다니엘 린데만의 독일 신문 인터뷰를 보면, 다니엘의 생각을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독일 언론에서도 한국에서의 비정상회담과 다니엘 린데만의 높은 인기에 놀라서 인터뷰를 할 정도였죠.


다: "과거의 이런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택시를 탔는데 독일에서 왔다고 하자, 운전 기사가‘히틀러는 영웅이다. 나치 군복이 멋졌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두세번 정도 있었다. 그래서 방송에서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독일에서 그(히틀러)는 악마에 가까운 인물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다: "결국 방송에서의 내 발언이 크게 화제가 되었다. 독일인이 독일의 과거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 대하여 한국사람들은 크게 감명을 받은 것 같다."


다: "더욱이 독일과 같은 2차대전 전범국이었던 일본은 여전히 제대로된 사과를 한국에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한국인들은 독일인들에게 더 우호적인 것 같다."


확실히 이래서 역사 교육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독일은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 철저하게 과거사를 정리했고 또 이를 교육에도 반영시켰기에,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다니엘 린데만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독일에도 네오나치처럼 이상한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사에 대하여 제대로 된 사과는 물론이고 역사 교육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는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죠.


아마 일본이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하지 않는 이상은,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합니다.


(다니엘 린데만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다니엘 린데만 부인될 다니엘 린데만 여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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