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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이경규 딸 이예림- 사람들의 비난과 이경규 부인(아내)강경희

이경규 강경희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이경규는 험난하다는 코미디계, 예능계에서 30년 이상을 살아 남았습니다.

대중의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에서,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이경규의 과거와 현재, 개인적인 생각 등이 무척 흥미롭네요.


이경규 아내 사진

코미디언 이경규는 1960년 8월 1일 부산에서 태어납니다(이경규 고향). 올해 56살이죠(이경규 나이).

(이경규 키 몸무게 혈액형) 167cm, 60kg, A형

(이경규 학력 학벌) 초량초등학교, 성지중학교, 부산 동성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이경규 프로필 및 경력) 1981년 제1회 MBC 개그콘테스트로 데뷔


이후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와 이경규가 간다(양심 냉장고 등) 등으로 주목을 받았고, 남자의 자격, 힐링캠프 등을 진행합니다.


# 목차

* 무명 시절

* 이경규 아내 직업

* 일본 유학

* 이경규 자기 관리

* 이경규 공황장애

* 이경규 영화

* 이경규 딸 이예림



* 무명 시절


이경규의 시작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가, 코미디언들도 연기력을 우선시했기에, 토크와 아이디어 위주인 이경규에게 맞지 않았고, 더우기 이경규의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코미디 연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경규는 중국인 분장이나 눈알 굴리기, 쿵푸 등의 분장과 슬랩스틱 코미디로 살아남아야 했죠.


한때 이경규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주말 공개 방송에 출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방송 중에 "저, 다음 주에도 나옵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편집을 못하게 했고, 결국 제작진이 어쩔 수 없이 이경규를 출연시키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인지도를 높이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던 이경규는 주병진과 함께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진행하면서 확실히 얼굴을 알리게 됩니다.


(이때 이경규가 주병진에게 꼼짝 못했다는 이영자의 증언.

참고로 주병진은 이경규보다 1살 연상이자 선배)


(이영자, 주병진이 이경규 머리를 대본으로 때리는 장면을 재현)


그러다가 주병진이 사업이나 개인적인 문제로 하차한 뒤, 이경규가 자연스럽게 메인을 맡았고, 김영희 피디와 더불어 '몰래 카메라' 대박을 터뜨립니다.

이 몰래카메라는 1991년, 1992년 MBC 방송대상 코미디부문 대상을 연달아 수상할 정도로 빅히트를 치게 됩니다.

(참고로 1992년은 이경규가 영화 복수혈전을 찍으며(감독, 주연), 바쁜 한해를 보낼 때였죠. 밑의 영화 이야기에 보충 설명)



이 당시 이경규는 몰래카메라 연기를 위하여 동원된 사람들이 악역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며 '버럭' 호통을 치기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당시에는 재미에 묻혔지만, 훗날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기도 하죠.


또한 이경규는 1995년 '일밤 양심냉장고', 1997년 '일밤 이경규가 간다' 등의 공익 프로그램으로 다시  MBC 코미디대상의 대상 수상하는 등, 199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1998년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되었죠.


* 이경규 아내 직업


다시 1992년으로 돌아가서, 이경규는 부인 강경희(이름)와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이경규 배우자 와이프 강경희)



원래 강경희는 이경규의 대학 후배(동국대 컴퓨터 공학 전공)였는데, 이경규가 선배로부터 소개를 받고 89년 이후 약 4년간 사귀게 됩니다. 

(나이는 이경규보다 6살 연하)



몰래카메라의 빅히트와 더불어, 이경규는 한창 인기 있을 때 갑자기 결혼을 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죠.


둘 사이에는 (이경규 딸) 이예림이 있습니다.

(이경규 자녀 자식)(이경규 가족 관계)


이경규 부인 사진


이경규 젊은 시절 사진


그런데 밖에서는 '버럭'하는 이경규이지만, 집안에서는 꼼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고명환 폭로: "예전에 이경규 씨가 ‘일주일에 딱 하루 쉬는 날 골프를 치러 가는데, 그마저도 아내 눈치를 봐야하는 게 화가 난다’고 한탄한 적이 있었다."


고명환: "형님에게 "돈을 많이 벌어다주니 당당하게 쉬겠다고 하세요"라고 조언했지만, 형님은 "아내에게 그러면 큰일 난다"며 약한 모습을 보여 놀랐다."


이경규: "어느 날은 새벽에 골프를 치러 가는데 돈이 없었다. 그래서 아내가 자고 있을 때 아내 지갑에서 돈을 몰래 훔쳤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게 내 돈인데, 왜 눈치를 봐야하나 싶더라."


박경림 폭로: "이경규 씨는 아내가 외출 후 돌아와 집 앞에 차를 대는 소리까지 알아듣는다."


이경규가 공처가의 면모가 있는 것 같네요.


이경규 집공개


* 일본 유학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이경규는 1998년 11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이경규: "처음에 96년 가을 일본의 교통문화를 알아보기 위하여 일본에 갔어요. 90%가 넘게 정지선 정지를 지키는 걸 보고 새삼 일본과 일본인에 대하여 감탄했죠."


이경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본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방송도 일본걸 많이 베낀다는데 실상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고요. 대중문화 개방,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등 늦은 감이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일본을 제대로 알고 배우고 체험하고 돌아와 우리 방송 코미디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경규는 이때 조금 특별한 소감을 말하는데, 이제까지의 그의 인생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었죠(밑에서 설명).


이경규 사진


일본 유학 후 이경규는 '돌아온 몰래 카메라', '상상원정대' 등을 진행하다가 '2002년 한일 월드컵 특집'으로 다시 한번 도약하게 됩니다.

당시 한국의 월드컵 열기와 맞물려, 축구와 예능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소재가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았죠.

(사실 이경규가 간다- 월드컵 편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특집이 시작이었음)



* 이경규 자기 관리


이후 꾸준히 부침을 겪지만, 남자의 자격, 힐링캠프 등으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합니다.


이경규는 데뷔이래 35년동안 연예계 생활을 했지만, 큰 논란없이 꾸준히 방송하는 몇 안 되는 연예인중의 한명입니다.


한때 송해가 30년간 진행해온 '전국노래자랑'의 가상 후임 MC를 뽑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후보들이 유재석, 강호동, 김제동, 이상벽, 허참, 유희열, 신동엽, 이경규 등 대한민국의 내놓으라고 하는 MC들이었죠.



송해: "(막판에 유재석, 김제동, 이경규를 놓고) 큰일이다. 정말 못 고르겠다."


송해: "(끝내 이경규를 선택하며)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했다. 30년 동안 방송가에서 일한 경력을 무시할 수 없다."


유재석이나 김제동 역시 자기 관리에 있어서 흠 잡을데가 없습니다.

그래도 30년 이상 방송을 하면서 아무런 논란을 일으키지 않았던 이경규보다는 안정감이 덜 한 모양이네요.

송해의 신중함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김성주: "(베이징 올림픽 당시) 베이징의 첫날밤이었다. 이경규가 국가적인 행사로 (외국에) 왔을 때는 더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숙소 내에서 술을 마시게 됐다."


이경규의 조심성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김성주: "이경규가 술을 먹고는 감독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더라. 난 침대에 앉자고 있었다. 그날 준비했고, 그때가 이미 새벽 3시가 넘어서 엄청 졸렸다."


김성주: "내가 잠깐 졸았는데, 이경규가 날 보고 '이거 다 네가 들어야할 얘기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빈 맥주캔을 집어 던졌다."


이경규: "맞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 김성주가 졸고 있는데 화가 치밀었다."


이렇게 이경규는 철저한 자기 관리를 넘어서, 주변에게 종종 약간 과격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해를 품은 달 등의 드라마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전미선 역시 이경규와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전미선: "신인 때 이경규 씨랑 M본부 예능이었던 ‘전파견문록’을 같이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제가 좀 그런 센스가 없는 편이라 너무 얼어버려서 좀 힘들었다."


전미선: "그랬더니 이경규 씨가 저를 싫어하시더라.(웃음) 그런 느낌을 받은 뒤부터는 (예능에) 안 나갔다. 사람한테 민폐 끼치는 건 하지 말아야지 싶었다."


박소현: "하긴 이경규 씨가 그런 걸 확실하게 티내시는 편이죠."


전미선: "다음에 이경규 씨를 뵈면 꼭 그 얘기를 해야지 싶었는데, 아직 못 했다."


이경규의 자기 관리외에도 성공에 대한 갈망이 오늘날의 그를 만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경규는 1998년 11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특별한 소감을 남깁니다.


이경규: "미래 사회는 환경이 지배하는데, (이경규가 간다에서) 환경문제를 다루지 못한 점이 아쉬워요. 어려운 점이 있어도 미래를 보고 투자해야 하는데, 모든 걸 당면한 경제논리로 보는 인식이 안타까워요. 이번 유학기간 동안 환경문제에 대한 코미디 프로그램 개발도 연구해볼 참이에요."



* 이경규 공황장애


극심한 경쟁속에 사는 이경규는 공황장애에 걸리기도 합니다.

이경규: "(2012년 고백)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약을 먹은 지 4개월 됐다. 지난해부터 원인 모를 가슴 통증에 시달렸고, 초조함과 불안 때문에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처음에는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지만, 몇 가지 검사를 통해 결국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경규: "사람들은 내가 많은 걸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M본부에서 잘리고 KBS로 왔을 때, 맨땅에서 지금의 것을 이뤄내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과거 내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다."



이경규: "돈과 인기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결국은 인간관계의 문제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이경규는 경쟁 사회에서의 스트레스와 인간관계 때문에 공황장애에 걸렸다고 고백을 한 것이죠.


이경규: "다행히 상태가 많이 호전돼 일주일에 한 번 받던 정신과 치료를 최근에는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였다."



공황장애는 중상류층에서 주로 나타나는 특이한 질병으로, 특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항상 절제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나타납니다.

특히 연예인들의 경우, 다른 사람의 시선에 항상 노출됨과 동시에 인기에 대한 불안감때문에 공황장애에 걸리기가 더 쉽죠.



이경규의 삶이 겉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화려하고 행복한 삶만은 아닌 것 같네요.



* 이경규 영화


그럼에도 이경규 본인은 행복한 것 같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니까 말이죠.


위에서 언급한 1992년 영화 복수혈전은 이경규가 감독, 주연을 맡았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에는 복면달호를, 2012년에는 전국노래자랑을 만듭니다.


두 영화 모두 이경규가 감독이나 주연을 맡지 않았고, 다만 제작자로 나서며 영화만드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경규: "'전국노래자랑'이 흥행에 대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실망은 하지 않으려 한다. 배우들이 최고로 잘 해줬고 나도 충분히 만족한다."


이경규: "주변에서 영화가 좋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다. 영화는 정해진 스코어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그걸 바꾸려고 해도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는 없다. 마치 포커판에서 포커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경규가 운명론자적인 면도가 있네요.

다만 그것이 염세적인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태도인 것 같습니다.


두편의 영화에서 영화 제작자로 만족했지만, 이경규는 여전히 감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경규: "나중에는 다시 (감독을) 할 의향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바쁘고 이미지가 고착돼있어서 좀 그렇다. 한번 정도 이미지가 바뀌고 시나리오가 완전히 내 것이 됐을 때 하고 싶다."


이경규: "앞으로 5년 정도 지나면 정말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일련의 작업을 위해 하나하나의 경험을 쌓을 거다. 조만간 '쿵푸 허슬' 같은 영화나 강아지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



딸이 이예림은 본인의 아버지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합니다.

"아빠 나이에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영화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 언젠가 빛을 볼 거야. 사랑합니다."


확실히 이경규의 나이에 꿈을 향해 계속 달려나가는 것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한계를 알고, 포지션까지 변경하면서 '배운다는 자세'는 쉽지 않은 일이죠.



이경규: "방송은 흘러가면 끝이지만 영화는 자기 것으로 남기 때문이다."


'자기 것'을 남기려는 이경규의 태도에서, 그가 돈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성격 같네요.

이경규 딸 사진


* 이경규 딸 이예림


최근 이경규 딸 이예림이 방송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아빠를 부탁해에 이경규와 더불어 같이 출연하고 있죠.


이에 대하여 이경규는 냉철하게 평가합니다.


이경규: "(딸 이예림이 동국대 연영과, 즉 본인의 대학 후배가 되었을 때) 연기를 하고 싶어하는 게 아니고 그쪽 분야 공부를 좀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고 싶으면 하라 그랬다. 힘들면 본인이 알아서 관두겠지."




이경규: "(딸이 방송을 하겠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프리미엄이다’ ‘도와준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 판단은 대중이 하는 거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기회는 있겠지. 하지만 대중이 좋아하냐 싫어하냐는 그들 스스로 판단을 하는 거다. 누가 뒤에서 밀어준다고 그게 될 것 같나? 솔직히 그럼 다 되지."


이경규: "역으로 ‘누구의 딸’이라는 게 핸디캡이 될 수도 있다. 실패했을 때 타격도 더 크고. 신경 안 쓴다. 자기 운명이다. 앉혀놓고 “야, 연예계는 이런 거고, 동국대학교면 어쩌고 저쩌고” 이런 말 한마디도 한 적 없다. 앞으로도 안 할 거다. 정말정말 나 그런 거 안 한다. 100% 진짜다."


이경규가 정말 냉철하게 보네요.

기회가 더 갈수는 있지만, 확실히 최종 판단은 대중만이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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