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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수(40대)결혼생활

조규찬 아내(부인)해이/조규찬 해이가 고쳐야 할점

조규찬 해이 러브스토리 및 조규찬 인생 이야기

조규찬은 음악 집안에서 태어나 인생을 무척 화려하게 살았을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또한 조규찬이 방송가에서 싸가지라는 루머가 돌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본인의 책임 역시 일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외 조규찬 아내 해이와의 러브스토리가 흥미롭네요.


조규찬 아내 사진


가수 조규찬은 1971년 1월 13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조규찬 고향). 올해 44살이죠(조규찬 나이).

(조규찬 종교) 개신교(기독교)

(조규찬 학력 학벌) 강동초등학교, 신암중학교, 선화예술고등학교 미술과, 동국대학교 서양학과 학사, 일리노이대학교 어버너 샘페인교대학원(석사과정)


(조규찬 집안) 아버지 나화랑(본명 조광환)은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이고, 어머니 유성희는 가수, 첫째형 조규천은 음악가, 둘째형 조규만은 가수 겸 작곡가(대표곡 '다 줄꺼야')입니다. 조규천, 조규만, 조규찬 삼형제가 조트리오를 구성해서 활동하기도 했죠. 그외에도 조규찬 부인 해이(본명 김혜원)은 가수 겸 뮤지컬배우이고 처제 소이 역시 가수 겸 뮤지컬 배우입니다.


(조규찬 프로필 및 경력) 1989년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무지개〉란 곡으로 금상을 수상하면서 데뷔(조규찬 유재하 인연)


1990년 프로젝트 그룹 ‘새 바람이 오는 그늘’의 일원으로 첫 음반을 내었고, 솔로 1집 '따뜻했던 커피조차도'를 1993년, 2집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깨물었다'는 1995년에 발표합니다. 


이후에도 꾸준히 음반을 발표하고 콘서트를 열었으며, 미국 유학 후인 2012년부터는 우송정보대학 실용음악과 전임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능 라디오스타 조규찬 김광민, 장기호, 박원 출연)(조규찬 라스)


# 목차

* 조규찬 어린 시절 도둑으로 몰려

* 조규찬 청원 경찰 마찰 사건

* 조규찬 이훈 폭행당한 사건

* 조규찬에 대한 유희열의 돌직구

* 조규찬 부인 해이와의 첫만남

* 해이 소이 자매의 어린 시절과 해이 가수 데뷔

* 조규찬과 해이의 결혼 생활

* 배려하는 부부

* 조규찬이 해야할 노력


조규찬 과거 조트리오 활동 당시 사진


* 조규찬 어린 시절 도둑으로 몰려


조규찬: "중1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경제적 환경이 극단적으로 좋지 않았다. 고등학교 당시 나는 미술 전공을 하고 있었던 터라 실기비가 필요했는데 당시 돈으로 12만원이었다. 상당히 큰 돈이었다."(조규찬 과거 도둑 누명 사건)


조규찬: "당연히 실기비를 못내는 상황이 발생했다. 돈 없는게 죄는 아닌데 죄인처럼 학교에 갔다. 잘못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조규찬: "어느 날 반에서 실기비 도난 사건이 일어나고 그 상황에서 내가 누명을 썼다. 당시 선생님께 '절 못믿으시겠어요?'라고 하자 선생님은 내게 '그래. 난 널 못 믿겠다'고 대답하더라. 마음의 큰 상처였다. 누명을 쓴 날 밤 차가운 방바닥에 웅크리고 누워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규찬: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된 수학여행에서 난 첫 술을 마셨다. 그리고 수학여행 내내 기절했고, 며칠 뒤에 (오른쪽 얼굴에) 안면마비가 찾아왔다.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었다."



이후 조규찬은 오른쪽 얼굴 근육을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조규찬: "처음에 안면마비 때문에 왼쪽 얼굴만 웃으니까 건방져보였다. 두 쪽 입꼬리를 올리는 연습을 했더니 오른쪽 얼굴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표정을 안 짓게 되더라. 밝은 표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점 표정이 굳어지더라."


조규찬: "그러니까 내가 기뻐서 기쁨을 표현해도 상대방은 내 표정만 보고 냉정하게 반응하더라. 지금도 완벽히 낫지는 않았다."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면, 대부분 '비웃음'으로 오해하게 마련입니다.

조규찬이 어린 나이에 큰 상처를 받았네요.


조규찬 어머니 유성희는 1960년대에 활동하던 가수였습니다.

결혼 이후에는 별다른 활동이 없었는데, 홀로 아들 삼형제를 힘들게 키운 모양이네요.



* 조규찬 청원 경찰 마찰 사건


이후 조규찬은 미술을 하다가 형들의 권유로 음악도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89년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무지개로 금상을 수상하는데, 이후에도 싱어송라이터로 자신만의 길을 걷게 됩니다.



조규찬: "나는 1989년 데뷔 이후 오랜 기간 무명이었다. 그래서 방송국에 출입할 때도 출입증을 써서 들어가야 했고 그것이 일상이었다."


조규찬: "어느 날, 평소처럼 출입증을 받으려고 하는데 여직원이 날 알아보더라. 그 여직원은 ‘출입증을 왜 쓰세요. 그냥 들어가세요’라고 말했다. 석연치 않았지만 로비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청원경찰이 날 붙잡았다."


조규찬: "청원경찰에게 내가 가수라는 사실과 내 노래 제목을 알려줬지만 몰랐다. 다시 출입증을 받는 곳으로 갔지만 그 여직원은 굳이 출입증을 주지 않았다. 나는 재차 돌아설 수밖에 없었고 결국 청원경찰에게 멱살까지 잡혔다."


조규찬: "서러웠다. 그런 기분으로 방송을 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방송을 할 수가 없다. 일단 집에 가고 나중에 담당PD에게 이야기하겠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방송가에서는 조규찬과 청원경찰 실랑이가 오래 회자되기도 했다."(조규찬 방송국 로비 난동 사건)


이 여직원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이와 별개로 사실 조규찬은 방송가에서 싸가지 없다는 루머가 많이 돌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평가하기 전에, 몇가지 일화를 더 언급할 필요가 있네요.


조규찬 사진


* 조규찬 이훈 폭행당한 사건


그리고 1994년 조규찬은 싱어송라이터로 이름을 날렸고, 당시 어느 정도 천재 이미지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훈 역시 명문대 재학생이었기에, 둘은 M-TV <그래픽 100>의 공동 진행자를 맡게 됩니다(1994년).


그러다가 회식때 이훈이 조규찬을 폭행하게 됩니다.


(기사 발췌)------------------------


이훈은 지난 24일 새벽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그래픽 100> 제작팀 단합대회에 뒤늦게 나타나 회식비문제로 조규찬과 실랑이를 벌이다 조의 안면과 머리를 주먹등으로 구타, 조를 병원에 입원케하고 인근경찰서에서 진술서까지 썼다.


이훈은 그러나 25일 피해자인 조규찬의 가족에게 사과하고 피해보상비로 1천만원을 지급하겠다는 합의각서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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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당시 명문대생이었던 이훈의 이미지가 많이 깎이게 됩니다.

어쟀든 조규찬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피해자였는데, 아무리 폭행이 나쁜 것이라고 하더라도, 조규찬이 빌미를 제공했는지가 중요합니다.



* 조규찬에 대한 유희열의 돌직구


조규찬의 또 다른 일화입니다.

조규찬이 미국 유학중이던 2010년 7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는데, 영어를 마구 남발합니다. 보다 못한 유희열이 돌직구를 날리죠.

(실제로 유희열과 조규찬은 막연한 사이기에, 이런 흉허물없는 질문을 할 수 있었음)


유희열: "(조규찬이) 미국 교수님 같으세요. 꼭 영어를 그렇게 하셔야 되나요?"


조규찬: "저도 사실 지금 멘트하면서 후회를 했어요. 굉장히 욕먹을, 사대주의적인 어떤 발상이라고 욕먹을 그런 여지가 있잖아죠. 그렇게 바라보지 말았으면 좋겠는 게 우리 매일 햄버거도 먹잖아요. 그렇다고 사대주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언어도 단어들도 가끔은 뭐, 그네들의 단어도 쓴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우러러본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뭐, 조규찬의 '사대주의가 아니다'라는 주장과 별개로, 그에게는 좀 젠체 하는 태도, 유식한 척하는 태도가 있는 것 같네요.

아무래도 이런 부분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껄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분명 조규찬의 '안면마비'는 그의 잘못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나쁜 선생때문에 우연히 발생한 장애죠.


다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반인들보다 좀 더 겸허한 자세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네요.



* 조규찬 부인 해이와의 첫만남


이렇게 싱어송라이터로 이름을 날리던 조규찬은 우연히 운명적인 상대 해이를 만나게 됩니다.


조규찬: "라디오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하면서 (해이를) 처음 만났어요. 남자들은 보통 어머니를 닮은 사람에게 끌린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해이의 첫 미소가 제가 기억하고 있던 어머니의 미소를 떠올리게 하더라고요. 처음 보자마자 ‘운명’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마치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맞은 느낌."



가수 해이(본명 김혜원)은 1978년 10월 27일 태어납니다. 올해 37살이죠(해이 나이)(조규찬 해이 나이차이 7살).

(해이 학력 학벌) 쿼리베이 초등학교(홍콩), 타이베이 미국 중학교(대만), 팔로스버디스 파이낸슐러 고등학교(미국)에서 숙명여자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졸업, 연세대학교 불문학과 영문학과 학사,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성악과 학사.


(해이 프로필 및 경력) 2001년 1집 앨범 [Hey]로 데뷔


2003년 2집 《Piece of My Wish》발표

2006년부터 뮤지컬 주연 배우로 활동


(해이 집안) 위에 학력난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아버지가 외교관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성장하게 됩니다(해이 아버지 직업 공무원).

특이사항으로 여동생이 바로 가수 소이(본명 김소연)입니다(티티마 전 멤버).


해이 과거 젊은 시절 사진



* 해이 소이 자매의 어린 시절과 해이 가수 데뷔


해이 친동생 소이: "세 살 때는 홍콩에서 살았어요.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한국어보다 영어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죠. 그후 대만, 미국에서도 잠시 살았는데 그때 언어와 문화적으로 많은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소이: "지금도 대만, 미국 친구들과 메신저로 이야기하는데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깝게 느껴져요. 홍콩에 있을 때는 한국말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한국 학교를 다녔고, 미국에 있을 때는 중국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중국 학교를 다녔어요."


소이: "제가 먼저 가수 데뷔해서 부모님께 허락을 받았기에 언니가 가수를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어요. 아버지가 공무원이시라 보수적인 면도 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이해해주시더라고요."


소이: "언니 이름은 문세 아버지(가수 이문세)께서 너는 ‘해를 몰고 오는 아이’가 되라는 의미로 ‘해이’라고 지어주셨어요."


소이: "언니가 ‘별밤 뽐내기’ 우승할 때 DJ가 문세 아버지셨거든요. 언니 앨범 내주신 것도  문세 아버지. 언니가 아버지, 아버지 하니까 저도 아버지라고 불러요."


사실 원래 해이의 직업은 통역사였습니다(조규찬 아내 직업).

그러다가 KBS 2TV 음악 프로그램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영어 통역을 하던 중 우연히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인어 공주》의 주제곡 "Part of Your World"를 불렀고, 이를 본 이문세가 해이의 1집 음반을 제작하게 됩니다.


조규찬 부인 사진


가수 활동중 우연히 조규찬을 만나게 되는데, 조규찬이 첫눈에 반한 것처럼, 해이 역시 남편에게 반하게 됩니다.


해이: "(조)규찬 오빠는 음악적으로 모든 면에서 존경스러운 선배이다."

(해이 남편 조규찬)



2001년 여름에 처음 만나 조규찬 해이는 불과 2달만에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약 3년간 연애를 거친 2004년 7월 결혼식을 올립니다.

(조규찬 배우자 와이프 해이)



둘은 2005년 5월 아들 조은구(이름)를 얻게 됩니다.

(해이 조규찬 자녀 자식)(해이 조규찬 가족관계)


조규찬 해이 결혼식 사진


조규찬 가족사진


* 조규찬과 해이의 결혼 생활


조규찬: "아내와 음악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한다. 물론 구체적인 표현은 하지 않는다.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려 한다. 예전에 아내가 뮤지컬에 도전하면서 밝히는 어려운 점을 감상자로서 의견을 전달한다. 내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조규찬 해이 부부는 같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인데, 서로 영역을 지켜주기 위하여 노력을 하네요.


조규찬을 보면 참 가정적인 것 같습니다.

조규찬이 2010년 미국으로 유학을 갈때 이런 점이 잘 나타나죠.


조규찬: "(미국의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 샴페인으로 학교를 정한 이유도 아이 때문이죠. 가끔 호남 지방으로 낚시를 다니다 보면 시야를 전혀 방해하지 않는 하늘과 지평선이라는 걸 볼 수 있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자연과 가까이 살았으니 많이 봤죠."


조규찬: "흙이라는 정서가 항상 옆에 있었어요. 흙으로 그릇을 만들고 벽돌을 빻아서 고춧가루를 만들고 풀을 뽑아 반찬 만들며 소꿉놀이를 하던 유년시절이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동네 놀이터의 모래밭 정도? 너른 들녘이나 하늘을 보면서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조규찬: "아들이 지금(2010년) 여섯 살인데, 감수성에 있어서 중요한 때라고 생각해요. 그 아이가 적어도 3년 정도는 그런 자연, 너른 들판과 하늘을 보며 자라게 하고 싶어요. 특히 그곳에는 70여 개에 달하는 호수가 있다고 하니, 호수를 보며 함께 거닐고 2년 쯤 뒤에는 아이와 낚시도 하면서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규찬 처제, 아내, 아들


이렇게 조규찬은 아이의 교육을 위하여 미국 대학교를 선택했네요.

물론 미국의 일리노이대 학교 어버너 샘페인도 명문대중의 하나인데, 그래도 선택의 폭이 더 넓었던 조규찬이 굳이 여기를 선택했네요.

또한 아이를 위하여 유학 기간을 3년을 잡습니다. 보통 석사과정은 2년이면 마치는데, 아이에게 귀중한 경험을 주고 싶어서 1년을 더 머문 것이죠.


미국에서 조규찬은 재즈학 석사를, 해이는 공연역사 석사 과정을 졸업합니다.


조규찬: "하루 서너 시간 자고 학교와 도서관을 오가며 제가 하고 싶은 걸 충실히 했어요. 나머지 시간은 아내, 아들과 공원 등지를 다니며 셋이 서로만을 바라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특이사항으로 조규찬은 유학 도중인 2011년 학교를 한학기 휴학하고 '나는 가수다(나가수)'에 출전합니다. 하지만 청중평가단으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1라운드만에 탈락하게 됩니다.

(이 일로 나는 가수다가 너무 고음 위주의 가수에게 친화적이라는 비판도 나왔음)


* 배려하는 부부


조규찬 해이 부부는 사이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조규찬: "아마 대부분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은 한 번쯤 경험하실지도 몰라요. 가끔 늦게 집에 들어가서 보면, 아내가 아이와 함께 잠이 들어 있잖아요. 그럼 물끄러미 한참 바라보고 있어요. 이 사람이 정말 내 아내인가, 나와 함께 인생을 같이하는 사람인가 싶어서요. 그녀였기 때문에, 또 저였기 때문에 서로 이끌렸던 것 같아요."


조규찬: "(결혼은) 누구에게나 있는 너무나 일상적인 변화이지만 결혼으로 인한 편안한 쉼이 음악에 투영되는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해이: "조규찬은 컴맹이다. 바이러스가 걸리면 버려야 한다. 하지만 남편은 애교가 많고, 성대모사도 잘 해준다."

(해이 남편 조규찬)



소이: "형부 조규찬과 언니 해이가 너무 이상적인 커플이라서 제가 눈이 높아진 것 같다."

(소이 형부 조규찬)


조규찬: "(놀러와 출연당시 아내 해이와 전화 연결이 되자) 다른 사람에게 혼나고 있는데 엄마가 나타나 울컥한 기분이다."


조규찬은 이날 방송이어서 긴장을 많이 했는데, 아내 해이를 엄마에게 비유하면서 그 심정을 말합니다. 확실히 방송용 코멘트가 아니었던 것 같네요.


조규찬의 무표정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선입견을 많이 받기 때문일까요?

확실히 부부간의 애정이 강하네요.

이런 부부에게 부부싸움이나 이혼은 남의 나라 이야기겠죠.



조규찬 아내와 처제 사진


* 조규찬이 해야할 노력


다만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조규찬은 무표정에 의한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풀기 위하여 스스로 더 노력해야 합니다.

안면마비는 분명 조규찬의 잘못이 아닙니다.

어린 나이에 나쁜 선생때문에 생긴 불의의 일이니까요.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의 사연을 알 수는 없습니다.

조규찬이 먼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죠.

그가 아내 해이에게 성대모사를 자주 하면서 웃기게 하는 정도의 노력은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조규찬의 문제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해당됩니다.

각자의 문제를 주변 사람들이 저절로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죠.



다행히 조규찬은 예전에 예능 프로그램 놀러와에서 이를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향해 조규찬이 내민 손이었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조규찬이 왜 무표정한지, 왜 잘 웃지 않는지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더 자주 자신의 결점(?)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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