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 신애라 러브스토리 및 인생이야기
사람은 점점 변하게 됩니다.
몇년, 몇십년동안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죠.
그 변화의 과정에서 좋은 쪽으로 변하는 사람이 있고, 나쁜 쪽으로 변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기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바로 같이 사는 가족 혹은 부부가 아닌가 합니다.
차인표 신애라 부부 역시 결혼 후에 많이 변했네요.
차인표 신애라 부부 사진
탤런트 겸 영화배우 차인표는 1967년 10월 14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차인표 고향). 올해 48살이죠(차인표 나이).
(차인표 종교) 개신교
(차인표 학력 학벌) 충암초등학교, 연서중학교, 충암고등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경제학과(중퇴), 뉴저지주립대학교(럿거스 대학교) 경제학과
(차인표 프로필 및 경력) 1993년 MBC 22기 공채로 데뷔
1993년 MBC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데뷔작), 이후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엄청난 인기를 끌다가 '아들의 여자'에서 군 입대로 하차하게 됩니다. 제대 이후 별은 내 가슴에, 그대 그리고 나, 왕초, 황금시대, 대물, 선녀가 필요해, 끝없는 사랑 등의 드라마와 목포는 항구다, 한반도, 크로싱, 타워, 감기 등의 영화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차인표 아버지가 바로 (주)우성해운의 전 회장(창업주)이었던 차수웅(이름)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차인표가 한때 재벌 2세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죠.
차인표 가족 사진(아버지와 큰형, 막내 동생)
차인표: "아버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수성가 하신 분이다. 아버지가 작은 사업을 해서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중학생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 감사한 점은 아버지가 우리 3형제 한테는 계속 연락을 했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주셨다는 것이다."
차인표: "이후 어머니는 여자 혼자 몸으로 자식을 키우지 쉽지 않았던 1980년대 한국 사회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나도 함께 갔다."
대학을 졸업한 차인표는 한진해운 미국지사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이때 차인표는 첫번째 결혼을 하게 되었죠(1993년 1월). 당시 한국계 여성과 결혼했는데, 둘은 성격차이로 곧 이혼하게 됩니다(차인표 전처, 차인표 전부인)(차인표 이혼사유, 이혼이유).
차인표의 첫번째 결혼 생활이 짧게 끝났기에, 전처와의 사이에는 자식이 없습니다(차인표 미국 아들 등은 전부 루머일 뿐이죠)(차인표 이혼남).
이후 차인표는 점차 돈에 집착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차인표 어머니: "네가 몇 시간 동안 얘기한 화제의 대부분이 돈이구나."
차인표 어머니 사진(차인표와 형제들)
차인표: "인생의 목표를 다시 떠올린 뒤 회사에 사표를 내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취직을 하고 싶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어머니와 한국에서 살고 있는데 직장도 없었다. 그런 시기가 1년 정도됐다. 26살인데 주머니에 300원 밖에 없었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자니 고아가 된 느낌이었다."
차인표: "당시 이력서를 200군데 보냈지만 딱 한군데서 연락이 왔을 정도로 취직이 어려웠고, 전화번호부 책을 들고 '어디 가서 직장을 구할까'만 고민했다. 영어학원 강사 자리도 군대 문제 때문에 할 수 없었고 한국 땅에 살려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겠다 생각했다."
당시 아버지 차수웅이 한국에 있었지만, 차인표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합니다. 홀로 버텨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죠.
차인표: "아버지에게 손을 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희망이 없는 청춘이었다. 26살에 직장도 없고 군대도 안 다녀왔고 경제적 능력도 없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잘 살고 있다."
아마 자존심과 기타 복잡한 가족 상황때문에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던 것 같네요. 어쨌든 별 희망이 없었던 이십대를 잘 헤쳐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차인표는 KBS와 SBS 공채에 탈락한 뒤 MBC 공채가 되어서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되다가, 신애라는 만나게 됩니다.
탤런트 겸 영화배우 신애라는 1969년 3월 7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신애라 고향). 올해 46살이죠(신애라 나이).
(신애라 종교) 개신교
(신애라 학력 학벌) 언북초등학교, 정신여자중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신애라 프로필 및 경력) 1989년 MBC 특채 탤런트로 데뷔
사랑이 꽃피는 나무, 야망의 세월, 모래위의 욕망, 연인 등의 드라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다가,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차인표를 만나 연인이 됩니다.
이후 가문의 영광, 불량주부, 불굴의 며느리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긴 연기 생활에 비해 작품수가 많지는 않습니다. 아마 육아와 집안 살림때문에 스스로 출연을 자제하는 것 같네요.
(신애라 학창시절 피비 케이츠를 닮아서 '숙명여고 피비 케이츠'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미모였음)(신애라 과거 사진)
사실 결혼 전에 신애라는 나이트 클럽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다가 차인표와 연애를 하게 되면서 이를 자제하게 되었죠.
여담으로 차인표는 작가로도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그의 소설로 '잘가요 언덕'과 '오늘예보'가 있는데, 보통 첫번째, 두번째 작품은 작가 스스로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형상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작품 '오늘예보'의 주인공 나고단의 직업은 전직 웨이터였고, 아내는 나이트 죽순이였습니다.
차인표: "어떻게 보면 나고단은 제 얘기죠. 만약, 20년 전의 제 하루를 수박 자르듯 잘라서 보잖아요? 그러면 전 정말 희망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살고, 살아냈더니 탤런트도 됐고 결혼도 하고 이제 가난한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요. 제가 해낸 게 뭐냐. 하루하루를 살아낸 거예요. 그건 기적이 아니에요. 분명히 일어날 수 있는 거죠, 누구에게나. 힘들다고 포기하면 끝내 못 보는 거고."
차인표의 희망없는 청년 시절 이야기가 잘 형상화된 작품인데, 흥미있는 분들은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문학성이 크게 뛰어나지는 않지만 괜찮은 수준이라는 문단의 평가를 받음).
위에서 언급한대로 차인표와 신애라는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차인표는 신애라의 이상형이 아니었죠.
신애라: "(차인표는) 강한 인상으로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탭들에게 예의바르게 대하는 모습이나 인기가 높아져도 한결 같은 겸손한 모습에 마음을 열게 됐다."
확실히 차인표의 당시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전국이 차인표 신드롬으로 들끓을 때였죠. 그런 상황에서도 더욱더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니, 차인표는 처음과 끝이 똑같은 사람같네요.
결국 마음을 연 신애라가 차인표에게 먼저 대시하게 됩니다.
신애라: "나에 대한 남편(차인표)의 관심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성격은 과묵했다. 결국 내가 적극적으로 대시하기로 결심했다. 둘이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난 한 손으로 운전할 수도 있는데...”라고 남편의 마음을 떠봤다."
신애라: "그러자 남편이 차를 세워보라고 했다. 자신이 손을 잡으면 우리는 결혼하는 거라고 말해, 당황했다. 결국은 한 번 지켜보자는 뉘앙스로 손을 잡았다."
이 때만 해도 신애라는 차인표와 결혼에 대해서 진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애를 하면서 차인표의 진정성에 더욱더 끌리게 되죠.
그러다가 신애라의 친구 때문에 둘의 열애설이 터집니다.
신애라: "친한 친구가 기자였는데 '미안하다'고 하더니 열애설을 터뜨렸다. 지금은 고맙게 생각한다. 그 때 터지지 않고 비밀리에 연애했으면 헤어졌을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아마 신애라 친구가 특종이 급했나 봅니다.
그래도 결국 이렇게 해피엔딩이 되어서 다행이네요.
둘의 결혼 전에 차인표는 군대에 입대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 영주권자(시민권자는 아니었음)였기에, 군대를 회피할 방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차인표는 당당하게 현역 입대를 했고, 이후 연예인들과 사회 지도층들의 입대 문제에 대하여 일대 혁신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사실 나라는 누구나 지켜야 할 존재입니다. 돈없고 힘없는 사람만이 군대를 가게 되면, 절대 나라가 오래 지속될 수 없죠. 돈이 많건, 재벌이나 정치인이건, 연예인이건 국방의 의무는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지만, 차인표 전까지는 군대에 대한 부조리가 너무나 만연해 있었죠.
지금도 여러 미비점들이 있긴 하지만, 1995년에 비해서는 많이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인표 신애라 결혼식 사진
차인표가 1995년 11월 이등병의 신분으로 신애라와 결혼식을 올리는데, 사실 둘은 부부싸움도 많이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둘의 성격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죠(차인표 배우자 신애라, 차인표 와이프)(차인표 재혼이었고, 신애라는 초혼이었음).
신애라: "결혼 초 매일같이 ‘집에 빨리 들어오라’는 남편 잔소리가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내가 “밖에서 친구라도 좀 만나지 …” 라고 하면, 남편은 “결혼한 사람이 왜 매일 뽈뽈거리며 밖으로만 도냐”며 서로를 이해 못했다."(차인표 아내)(차인표 부인 신애라)
차인표: "운전도 아내가 하고 나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다. 나는 가구처럼 집에 조용히 있는 게 좋다. 게다가 여행도 좋아하지 않아 간혹, 가족과 동네를 산책하고 집에서 상추쌈 먹는 게 아주 행복하다."
신애라: "나는 멀리 휴양지로 여행 가는 것도 행복하다. 영화 한 편도 나는 극장에서 보는 게 좋지만, 남편은 집에서 즐기는 걸 좋아한다."
차인표: "비디오로 빌려서 캔맥주 사서 내 집 소파에서 보면 그게 더 행복하다. 이미 본 영화를 또 봐도 아내와 함께라면 좋다."
신애라와 차인표의 성격은 정말 극과 극이네요.
이렇게 결혼 초에 둘은 사사건건 부딪치게 되지만, 차츰 서로의 성격을 이해하게 됩니다.
신애라: "우리 부부는 기질이 정말 다르다. 나는 밖에서 사람 만나는 게 너무 즐겁지만, 남편은 지칠 뿐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서로 다른 곳만 보다가, 그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방향을 보면서 어제보다 오늘이 점점 더 좋다."
신애라 차인표 부부는 서로 조금씩 닮아가면서 화목한 가정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실 좀 더 정확한 말은, 신애라가 출산과 입양을 하면서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고, 점차 차인표에게 동화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일 것입니다.
이후 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아들 차정민을 낳게 되고, 이후 딸 두명을 입양하게 됩니다(차인표 신애라 자녀 자식)(차인표 신애라 가족 관계)(신애라 딸 이름은 차예은, 차예진).
그리고 신애라는 딸들의 입양 사실을 공개합니다.
차인표 신애라 아들 차정민
신애라: "입양 사실을 쉬쉬하면서 몰랐다가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입양 얘기를 듣고 입양이 나쁜 건가라는 인식을 갖게 될까봐 걱정됐다."(신애라 입양공개 이유)
신애라: "딸이 '오빠는 엄마가 낳았어? 나도 엄마 뱃속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말도 했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미어지고 사실대로 얘기해서 미안하기도 했다."
신애라: "입양한 딸들에게 아기 때부터 낳은 오빠는 평범한 관계고 너희들과는 특별한 관계라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딸들이 입양에 대해 밝게 받아들이고 편하게 얘기한다. 그런 모습이 정말 감사하다."
신애라: "큰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반 아이들에 가서 강의를 했다. 반 아이들이 놀라자 큰 딸이 고개를 숙이며 얼굴이 빨개지더라.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을까 싶어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한 번은 아픔일 수 있지만 공개하면 그걸로 끝인 것 같다."
확실히 한국 사회에서는 입양 같은 중차대한 일이 영원한 비밀로 남기 힘듭니다. 만약 딸들이 그 사실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게 된다면, 충격이 상상 이상이었을 것 같네요. 신애라가 딸의 초등학교에 가서 강의까지 했다니, 여러 모로 신경을 썼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차인표 신애라 가족 사진
차인표 신애라 두 딸들 사진
그리고 신애라는 2011년 자궁적출 수술을 받게 됩니다(원인: 자궁근종).
이때 차인표가 크게 화를 냅니다.
차인표: "아내가 자궁적출 수술을 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다. 수술을 마친 아내의 병간호 하고 있을 때 '신애라 자궁 적출'이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봤다. 그 때 인터넷 검색어도 1위였다."
차인표: "내가 그 기사를 보고 너무 화가 나서 고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근데 아내가 '그 사람들 직업이니까 그냥 용서해줘'라고 말해 참았다. 그때 아내가 나한테 '내 자궁이야 나둬'라고 말해서 할 말이 없었다."
신애라: "세상 모든 일이 내가 참고 손해보면 다 해결되더라."
자궁적출과 같은 수술은 여자로서 감추고 싶었을 겁니다. 남편 차인표의 분노 역시 이해가 되네요. 그런데도 신애라는 정말 대인배처럼 모든 것을 용서하네요.
이것은 신애라 성격을 나타내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겠지만, 아마 결혼 생활내내 신애라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가족의 화합을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남편은 물론 친자식인 아들과 입양한 딸들까지...
이런 신애라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는 또다른 사건이 있습니다.
원래 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기부와 봉사 등의 선행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 부부입니다.
남북한 어린이돕기 기금으로 굿네이버스에 1억원을 기부한 적도 있죠.
차인표: "솔직히 5천만원만 기부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1억원을 하자고 했다. 평소엔 작은 것도 아끼는 사람이라 조금 놀랐다."
신애라가 평소에는 알뜰하게 살다가, 이런 기부에는 통큰 기질을 발휘하네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애라가 차인표의 영향으로 가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면, 차인표 역시 신애라의 이런 대범하면서도 대인배적인 성격에 좋은 영향을 받은 것 같네요.
사실 좋은 부부란 남편이나 아내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둘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아야 만들어질 수 있는거죠.
자신이 미래에 더 좋은 사람으로 변하고 싶다면, 배우자의 선정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단순히 돈이 많거나 잘생겼다(예쁘다)는 사실만으로 선택하면, 더 나은 자신이 될 수가 없죠.
또한 결혼 후에는 본인이 배우자의 영향으로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본인 역시 배우자를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을 해야겠죠.
물론 차인표와 신애라의 부부관계가 현재도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차인표: "나는 당신이 (나보고) 밥 혼자 먹으라는 말이 싫다."
신애라: "듣기 싫은 말은 아니지만, 가끔 당신은 내가 하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둘은 이렇게 서로에게 서운한 점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것을 서로 개선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
차인표와 신애라는 오랜 연예계 생활로 적지 않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이들의 재산 활용법도 참고할 만하네요.
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2006년 9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 빌딩과 토지를 72억원에 매입합니다(토지 면적은 774㎡이며, 건물은 연면적 2925.58㎡에 지하 2층~지상 6층 규모로 영동대로 이면에 있고 지하철 7호선 청담역과 가까움).
차인표 신애라 빌딩 사진
둘의 지분은 각각 50%씩이고, 차인표 신애라는 2008년에 약 35억원으로 건물을 신축해서 교육연구 시설로 사용합니다.
사회 공헌의 일환으로 어린이 관련 회사만 입주할 수 있게 했고, 주변보다 임대료가 50% 저렴하게 받고 있죠.
(현재 건물과 토지 감정 가치는 약 180억원으로 평가되고 있기에 투자수익률은 약 68%에 달함)
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이렇게 자신들의 재산을 사회 공헌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외에도 무수히 많은 기부와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직접 두 딸을 입양해서 우리 사회의 입양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데도 큰 공헌을 했고요.
진정한 기독교인이란 아마 이들 부부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요즘 입으로만 떠들고 뒤로는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기독교인들이 많은데, 차인표 신애라처럼만 한다면, 누가 그들을 욕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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