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숙은 한국 여자 농구의 살아있는 신화라고 불립니다. 그 정도로 엄청난 역사를 썼던 선수인고, 결혼 생활도 비교적 무난하고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풍파는 비교적 적었지만, 그래도 사람에게 건강이 제일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하게 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행복한 결혼생활과 달리 결혼하는 과정은 약간 재미있네요.
박찬수 딸 서효명 사진
박찬숙은 1959년 6월 3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고향). 올해 나이가 56살이죠.
(박찬숙 학력) 숭의여자중학교(숭의여중), 숭의여자고등학교(숭의여고)
(박찬숙 프로필)
1975년 숭의여고 1학년 재학중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이 됩니다. 그리고 197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여자농구 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1984년 LA(로스앤젤레스) 올림픽때 준결승전에서 만난 중공(중국)을 꺾고 우리나라가 은메달을 획득하는데 큰 공을 세웁니다. (당시 구기 종목 최초의 메달 획득)
원래 박찬숙의 포지션은 센터입니다. 박찬숙이 뛰던 1970년 후반과 8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 여자 농구가 세계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것은 센터 박찬숙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위에서 괜히 '살아있는 신화'라는 말은 쓴 것이 아님)
1960년대의 박신자 선수와 더불어, 한국 여자 농구의 대들보같은 인물이었죠.
박찬숙 과거 현역시절 사진
그리고 박찬숙은 1985년 결혼을 한 후에, 1988년 대만 리그에 진출해서 대만 최고의 선수로 꼽혔고, 1992년에는 국내리그에 복귀해서 코치 겸 선수로도 뜁니다. 이때 이미 출산을 한 뒤였기에 주부 선수 혹은 엄마 선수라고 불렸는데, 현역과 비교해서 결코 뒤지지 않는 좋은 활약을 펼칩니다. 은퇴와 출산 후에 이런 활약을 했다는 것으로 보아, 박찬숙의 엄청난 자기 관리 능력과 절제력을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박찬숙은 남편 서재석과 좀 재미있는 사연으로 만나서 사귀게 됩니다.
박찬숙: "제가 스물한 살 때 아이 아빠를 만났어요. 선수들이 다치면 고정적으로 가던 병원 원장 동생이 미팅을 주선했죠. 제비뽑기로 정해진 파트너였는데 몇 번 데이트하다 보니 정이 들어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첫만남)"
1984년 LA올림픽 당시의 여자 농구팀 주장 박찬숙과 당시 감독 조승연 사진
(귀국 비행기 안에서)
단체 미팅에서 제비뽑기를 했는데, 그 상대가 인연이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신랑이 될 서재석의 나이는 박찬숙보다 6살 연상이었고, 나중에 직업은 사업가가 됩니다(정확하게는 오퍼상).
그런데 박찬숙이 21살때부터 6~7년 연애를 하게 되는데 데이트는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박찬숙: "해외 원정경기를 갈 때가 많았고 합숙훈련도 길었던 탓에 전화나 편지를 통해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국제전화 요금이 비싸 외국 풍경과 훈련생활을 적은 편지를 보내고 남편에게서 한국 생활이 담긴 편지를 받는 정도로 연애를 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아날로그 방식의 연애였네요. 그런데 이렇게도 서로의 사랑과 진심을 확인할 수 있죠.
그러다가 박찬숙은 1984년 LA올림픽에서 주장으로 팀을 이끌면서 은메달을 따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 바로 은퇴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1986년에는 딸 서효명을 낳습니다.
박찬숙 남편 서재석 사진 (제일 위의 흑백 사진이 결혼식 사진인데, 인물이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네요. 두번째 사진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박찬숙의 활약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인지, 주변에서는 여전히 그녀의 현역 복귀를 강력하게 바랬습니다. 수많은 구단 관계자와 팬들이 그녀의 복귀를 바랬던 것이죠.
결국 박찬숙은 은퇴를 번복하고 대만 리그로 진출을 결심합니다.
박찬숙: "아침이면 효명이(딸 이름)를 데리고 (대만) 훈련장에 갔어요. 제가 연습하는 동안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를 봐줬고 연습 끝나면 집에 가서 앞치마부터 두르고 집안일하는 생활을 4년 동안 했죠. 운동하면서 아이를 잘 키웠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뿌듯해요."
딸 서효명 사진
당시 남편 서재석은 서울에서 근무를 했고, 박찬숙만이 딸과 함께 대만에서 생활을 했죠. 중정배 대회때는 세살짜리 딸 서효명이 '마마 짜요(엄마 파이팅)'을 외치며 유창한 중국어로 엄마를 응원하기도 했고, 귀여운 외모로 팀의 마스코트가 될 정도였죠.
당시 박찬숙은 대만 유일의 엄마 선수였기에(뭐,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대단히 이색적이었고 화제를 몰고 다녔습니다. 이에 서효명 역시 자연스럽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고 귀여운 외모로 인기를 독차지하게 됩니다. 서효명은 나중에 치어리더로 활약하다가 영화배우 겸 방송연예인이 되는데, 2010년 EBS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로 데뷔했고, 불멸의 국가대표, 드림하이2 등에 출연하게 됩니다.
서효명의 키가 170cm인데, 여자치고는 적지 않은 키인데 아마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거 같습니다. (엄마 박찬숙의 키는 190cm, 아빠 서재석의 키는 178cm인데, 아빠 역시 그 시대 평균 남성 키보다는 크네요.)
그리고 서효명의 얼굴은 굉장히 예쁘장한 미인인데, 아마 아빠의 생김새를 많이 닮은 거 같습니다. 서재석이 한때 장동건 닮은꼴로 알려질 정도로 주변 사람들이 인정하는 미남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박찬숙은 1991년 한국으로 복귀해서 태평양화학의 코치 겸 선수가 됩니다.
후에 염광여중 코치, 2005년 마카오 동아시아대회 국가대표 여자 농구팀 감독, 2006년 대만 월리엄 존스컵 대회에 코치로 출전하는 등, 여전히 후배를 양성하기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1996년 딸 효명보다 10살 어린 늦둥이 아들 서수원을 낳습니다(박찬숙 서재석 부부 자녀 1남 1녀). 서수원 역시 누나처럼 굉장한 미남인데, 아빠의 외모를 많이 물려받은 거 같네요. 원래 축구 선수로 활동하가다 얼마 전부터 모델로 전향을 했습니다. 흡사 귀공자 같은 생김새네요.
박찬숙 아들 서수원 사진
어쨌든 박찬숙의 대만 리그 진출로 기러기 가족이 되기는 했지만, 박찬숙 서재석 부부는 매우 행복한 부부 생활을 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박찬숙의 평가는 이렇죠.
"온순하고 아주 편한 사람이다."
이혼이나 불륜 등 유명 선수들의 경우는 뒤끝이 안 좋은 경우가 많은데, 박찬숙은 좋은 남편을 만나서 별 걱정없이 잘 살았네요.
하지만 그런 박찬숙에게도 불행이 찾아오고 맙니다.
박찬숙: "남편의 병이 ‘암’이라고 말하는 순간, 멍해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남편 몰래 밖에서 많이 울었다. 부모님 돌아가신지 2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남편과도 사별해 견디기 힘들었고 방황도 많이했다.(사별 이유)"
박찬숙의 배우자 서재석은 2009년 직장암으로 수술도 받았지만, 결국 저세상으로 떠나고 맙니다(박찬숙 사별 원인).
눈물을 흘리며 방황하던 박찬숙은 아이들의 말에 정신을 차립니다.
"엄마가 흔들리면 우리도 살지 못한다."
박찬숙: "(남편이) 먼저 가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니 야속했다. 지금은 예쁜 딸과 아들을 보면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찬숙 이영하 결혼 사진(가상 웨딩)
최근 박찬숙은 가상 재혼 프로그램 님과함께에 출연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이영하 씨는 바람둥이 이미지가 있어 재혼 상대로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항상 가정에 충실한 남편을 가졌던 박찬숙이기에, 더더욱 이영하의 그런 이미지를 싫어했을 거 같네요.
사실 남편이나 아내가 문제는 조금 일으키더라도 건강한 것이 최고인 거 같습니다. 옆에서 지지고 복고 싸우더라도 함께 늙어가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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