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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스타 결혼 생활

추신수 하원미 성공 이유 3가지 첫만남과 러브스토리

추신수 하원미 러브스토리

추신수의 야구 인생이 성공으로 이끈 것은 세가지 요소가 가장 큽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중 두가지가 그의 아내 하원미와의 사랑과도 연관이 되네요.

아마도 추신수에게 인복이 있는 모양입니다.

 

첫번째 요소는 뭐니뭐니해도 추신수의 아버지와 외삼촌입니다. 아버지 추소민은 아머추어 복싱 선수와 수영선수를 했고, 외삼촌인 박정태는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는데, 어린 추신수가 야구 선수로 잘 성장하도록 아낌없는 격려와 후원을 했죠.

특히 아버지 추소민은 아직 어린 추신수를 팔굽혀펴기를 시키고 갯수를 채우지 못하면 잠을 재우지 않을 정도록 호된 지옥 훈련을 시킵니다.

추신수가 가진 강한 멘탈과 성실성은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거 같네요.

 

 

(저자권자 유라준)

두번째는 추신수의 은사인 고 조성옥과 그의 아들 조찬희입니다.

조성옥은 원래 롯데 자이언츠 선수와 코치로 활동하다가 부산고등학교에서 야구부 감독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 야구부 부원이었던 추신수를 특히 엄하게 다루기로 유명했죠.

 

추신수가 조성옥의 지옥훈련을 끝까지 완수해도 호통을 칠 정도였습니다.

조성옥: "너 혼자 잘해서는 안 된다. 리더로서 친구들도 이 훈련을 이겨내도록 해야 한다."

 

추신수는 분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보통의 십대 남자아이라면 이런 경우에 반항심이 생길만도 한데, 추신수는 감독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친구들과 후배들을 잘 이끌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추신수는 리더십을 기르게 되었죠.

(추신수 학력 부산 수영초등학교, 부산중학교, 부산고등학교)

 

 

(조성옥 사진, 부산고등학교를 거쳐 동의대학교 야구 감독도 역임함)

 

참고로 추신수가 미국의 텍사스와 장기 계약을 하는데, 추신수의 리더십 역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비록 뉴욕 양키스의 데릭 지터나 보스턴 레드삭스의 제이슨 베리텍 같은 클럽하우스형 캡틴은 아니지만, 추신수 역시 동료 선수들과 상당한 친화력을 자랑하죠.

 

타석에서 상당한 끈질김으로 상대 투수를 물고 늘어지기에 신인들이 보고 배울 점이 많고, 또한 추신수는 타석에서 자신이 느끼고 깨달은 점을 다른 타자들에게 공유하기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아마 개인의 실력뿐만 아니라 팀원으로써의 가치를 어릴 적부터 주입시킨 조성옥의 가르침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추신수 눈물로 애도하는 은사의 죽음

(남자의 눈물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추신수 또한 조성옥을 제 2의 아버지라고 불렀고, 2010년 그가 간암으로 별세한 다음에는 매년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무덤을 찾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조성옥의 아들 조찬희와 친형제처럼 지내게 되는데, 결국 그가 현재의 아내 하원미를 소개시켜준 장본인이 되었네요.

추신수는 1982년생으로 올해 33살이고, 조찬희는 1985년생으로 친동생처럼 지내게 되죠. 그러다가 2002년 조찬휘가 두 사람을 소개팅을 시켜줍니다.

 

당시 추신수는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을 때에 한국에 쉬기 위해서 잠깐 들어왔고, 조찬희는 고등학교 야구 선수로 뛰고 있을 때였죠.

 

이 부분은 밑에서 더 이야기를 하고, 아무튼 추신수는 은사에 대한 고마움과, 형제같고 또 아내까지 소개해준 조찬희에 대한 고마움으로 현재 사업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 추신수의 국내 매니지먼트 사업을 조찬희에게 맡긴 것이죠.

(조찬희 역시 야구 선수로 노력은 했지만 대성하지 못하고, 나중에 일본에서 스포츠 에이전트 공부를 하게 됩니다.)

 

 

조성옥 조찬휘 부자는 추신수와 2대째 좋은 인연을 맺었고, 또 아들 조찬휘는 추신수와 하원미의 중매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네요. 좋은 집안 인연입니다.

   

세번째로 추신수 야구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부인 하원미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둘은 추신수가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을 때 만났습니다. 당시 하원미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였고(직업, 하원미 학력), 둘다 21살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추신수 1982년생, 2002년에 첫만남. 반면에 하원미는 1983년 2월 2일생으로 빠른 83년생입니다. 추신수와 거의 동갑 친구처럼 지내죠. 당시 하원미는 부산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다니던 학생이었습니다. 나중에 추신수를 따라서 미국으로 가면서 경성대 연영과는 자연스럽게 중퇴하게 됨)

 

그리고 조찬휘의 소개로 하원미를 본 추신수는 첫눈에 반해 버립니다.

추신수: "와이프를 봤는데 잠이 확 깨는 거다. 이 여자다 싶었다

처음 만난 다음날, 너무 좋으니까 사귀자고 고백했다. 그후 매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데이트로 만난지 1주일 만에 아내는 과로로 쓰러져 입원을 했다."

정말 이십대 초반다운 열정적인 사랑이네요.

 

 

사실 추신수가 하원미같은 평범한 여대생에게 반했던 이유는 하원미의 학력이나 학벌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죠. 아마 성격과 미모에 반했을 겁니다.

 

 

사실 스포츠 스타에게 여자란 어려운 존재입니다. 유혹이 많을 뿐만 아니라, 남자가 아닌 남자가 이룬 성공을 원하는 여자들이 많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추신수의 이십대 초반은 아무 것도 없었던 시절이었죠. 비록 한국에서 유망주로 불렸지만, 미국으로 건너간 다음에는 끝도없는 마이너리그의 경쟁 체제 속에 편입된 상태였으니까요.

(실제로 박찬호의 성공 이후에 수많은 한국인 유망주들이 미국으로 바로 직행을 했지만 추신수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은 실패하고 말죠.)

 

추신수: "원미는 내가 아무것도 없을 때 나 하나만 믿고 좋아한 사람이다. 어릴 때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난 지금도 결혼하지 못했을 거다."

확실히 박찬호나 박지성 같은 선수들은 결혼을 좀 늦게 했거나, 지금 하려고 하네요.

 

반면에 추신수는 일찍 결혼해서(사실상 아직 결혼식은 올리지 못한 동거인 부부 사이죠), 부인의 내조를 받습니다. 이런 점에서 추신수의 성공에 하원미의 내조 역시 절대적인 요소였던 거 같네요.

 

 

위에서 언급했던 추신수의 리더십에 하원미 역시 도움을 줍니다.

추신수가 마이너리그에서 뛸 때 방 두개에 화장실이 하나 딸린 작은 아파트에서 동료 선수들과 동거 생활을 합니다.

그때 하원미가 한달 일정으로 미국에 와서 같이 동거 생활에 들어갑니다.

 

하원미는 아침 일찍 훈련에 나가는 추신수를 위하여 더 일찍 일어나서 김밥이나 샌드위치 도시락을 만들어서 챙겨줬는데, 추신수 뿐만 아니라 동료들 몫까지 넉넉하게 챙겨주었습니다. 사실 개인주의적인 미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광경이죠.

 

그렇게 하원미가 만들어주는 음식들은 마이너리거 동료들 사이에서 큰 인기였고, 덕분인지 추신수는 인종차별 같은 말을 한번도 듣지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추신수의 개인적인 리더십(상대 투수에 대한 정보를 다른 타자들과 공유 및 팀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과 더불어 추신수에게 큰 힘이 된 거 같네요.

 

추신수 동료 선수들의 증언; ", 정말 네 여자친구 같은 부인을 얻고 싶어."

 

그 외에도 하원미의 내조는 정말 엄청납니다.

추신수를 위해 한국에서 스포츠마사지를 배워서 남편에게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마사지를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집에서 간단한 농작물을 직접 키워 남편과 아이들에게 먹이기도 합니다.

 

평범한 여대생이 억척같은 아내이자 엄마로 변해갔네요.

2009년에 둘째 아들 추건우가 태어났을 때, 하원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죠. 혼자 병원에 차를 몰고 간 하원미는 "집에 다섯 살 아이가 혼자 있다. 내가 돌봐야 한다."고 의사에게 우겨 출산 24시간만에 퇴원을 합니다. 그리고 갓난아이를 안고 다시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온 일도 있을 정도죠.

 

추신수 하원미 과거 사진(연애할 때 사진)

 

추신수 하원미 자녀들, 3남매 사진

 

물론 제일 중요한 것은 추신수 본인의 노력과 성실성이지만, 그의 뼈대와 근본을 만들어준 아버지와 외삼촌, 책임감과 리더십을 기르게 한 은사, 헌신적인 내조를 한 아내가 없었다면, 현재의 추신수는 없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추신수 본인이 그 점은 제일 잘 알고 항상 고마워 하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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