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학토론배틀4

대학토론배틀4 3회- 김조광수와 동성결혼 토론

 

 

대학토론배틀 시즌4 3회(12강전)가 진행되었습니다. 심사위원에는 이철희(저번 주와 동일), 오미영(가천대학교 언론 영상광고학과 교수), 정희준(동아대학교 교수, 시사토크 어퍼컷의 MC)이 나왔고, 대학생들과 토론할 스페셜게스트로는 김조광수 영화감독, 고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염건령 범죄학자가 나왔습니다.

 

 

이번에 도입된 새로운 제도는 집단토론이었습니다. 대학생 네 개 팀에서 각 한명씩 나와서 스페셜게스트와 토론을 벌여야 했는데, 때로는 협동을 때로는 자기만의 장점을 보여야 하는 어려운 테스트였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동성 결혼 법적 허용이고,

여기에 참가할 네 개 팀은 연세대학교의 토끼들(정민수), 충남대의 메두사(양현석), 서강대 발칙한 젊음(고운정), 숭실대 토로너스 하이(정상익)였습니다.

   

대학토론배틀

첫 번째 토론은 노련한 고수 김조광수가 아직 어린 학생들을 어르고 달래서 혼을 쏙 빼놓았고, 학생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줄도 모르고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들더군요. 아마 이 주제에 대하여 수많은 토론을 벌였던 김조광수의 노련미를 학생들이 제대로 당해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학생들은 홍석천을 섭외해서 나름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좋아 보입니다. 다만,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의 시간은 되었을지라도 토론에는 별다른 도움이 못 된 것처럼 보입니다.)

 

 

먼저 토론의 중요한 맥만을 짚어보겠습니다.

토론의 아주 초반에 김조광수는 이런 말을 합니다.

"여기 자료에 의하면 동성애자의 자녀들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통계자료가 있다."

"입소스 & 로이터 통신 조사에 의하면 16개국 동성결혼 합법화 찬성 설문조사 결과 평균이 73%이고 한국은 57%가 나왔다."

"사회적인 여론 때문에 아직은 동성결혼이 시기상조라고 말했는데, 사회적 여론을 근거로 동성애자들이 가진 개인적인 행복추구권의 침해가 과연 타당한가?"

양현석(메두사): "동성애자들의 행복추구권도 있지만, 그들이 입양하는 아이들의 행복추구권도 분명히 있다."

 

김조광수: "동성애자 부모의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전제가 잘못되었다."

 

대학토론배틀4

여기서 이미 승부는 결정 났습니다. 김조광수가 자신의 최대 약점을 가리고 논제 전환을 자유롭게 하는 순간, 학생들의 무기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일단, 양쪽이 비등하다는 전제하에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학생들쪽(특히, 충남대의 양현석)이 동성애자 부모를 아이들은 불행하다라는 논지를 전개하는데, 그에 대한 근거 제시가 없었습니다.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었다면, 김조광수가 처음에 꺼냈던 '동성애자의 자녀들이 훨씬 더 행복하다'라는 근거 역시 깨부숴야 했습니다.

상대가 굳건한 성위에 올라가 있는데, 밑에서 아무리 고함춰봐야 별무소용이지요.

(충남대의 양현석)

 

 

여기서 진흙탕 싸움도 좋습니다. 사실 김조광수가 처음에 대학생들의 통계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렸을 때부터 진흙탕 싸움을 할 각오도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대학생들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 진흙탕을 무릅쓰고 싸우거나 의표를 찌르지 못하고 혼자만 똥물을 뒤집어 쓰고 말았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동성애 결혼에 대한 이슈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부정적이면서 아무런 논의를 하지 않는 상태보다, 부정적이지만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상태가 더 나으니까요.)

 

대학토론배틀4

 

김조광수가 날렵하게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논제를 전환했다면, 학생들은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한 채로 '시기상조론'에서 '결혼제도'로 넘어갑니다.

(서강대의 고운정)

 

김조광수가 "옛날에는 중혼과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었듯이 시대에 따라 결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바뀌고 있다."라고 말했을 때, 학생들은 "그렇다면 동성결혼 역시 사회적 인식이 바뀔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동성동본 결혼이나 사촌간의 결혼을 끌고 올 필요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진흙탕 싸움이지요.)

 

그리고 연세대의 정민수는 너무 자주 실수를 하네요.

본인도 인정했듯이 처음에 한 "동성 결혼에 찬성한다."는 말은 '먼 훗날'이라는 말이 빠진 상태였고, 두 번째는 "동성애자를 위해서 동성결혼을 반대한다."라고 김조광수에게 말려들고 맙니다.

너무나 큰 실수입니다.

 

대학토론배틀4

 

김조광수는 "부모가 동성애자란 사실이 밝혀졌을 때 자녀가 받을 고통"에 대하여 이렇게 역공을 취합니다.

"그렇다면 정상성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이 땅에서 교육을 받으면 안될까요? 그렇지 않잖아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차별을 받는다고 그들이 결혼하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잖아요."

 

사실 김조광수의 말 속에 이미 모순이 내포되어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짚어내지 못합니다. 오히려 김조광수의 말에 긍정하는 것 같은 사람도 보이더군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태어난 존재이지만, 동성애자 가정에 입양되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결정에 의하여 선택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둘을 동등하게 놓고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달리 생각한다면 김조광수의 토론 솜씨가 그만큼 훌륭하다는 뜻이죠.)

 

정상익(숭실대)이 벨기에 커플을 이야기하지만, 이성애자의 관점을 부각시키는 것 외에는 뚜렷한 인상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의 말은 결혼은 이성애자의 관점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동성애자는 그들만을 위한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는 대안을 제시하는데,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아쉽습니다.(그의 새로운 제도가 설득력이 있다면, 학생들과 김조광수가 더 이상 토론을 할 필요가 없겠죠.)

 

대학토론배틀4

 

고운정은 결혼제도에 대하여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재생산성을 언급하자 김조강수는 불임부부를 근거로 내세워 날카로운 반격을 가합니다. 이에 대해 고운정은 불임부부를 극소수라는 논리를 내세워 보호합니다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리 극소수라도 그들은 받아들였는데, 동성애자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모순이니까요.

 

그래도 다른 남학생들보다는 낫습니다, 그런 식으로라도 반박을 하는 것이. 다만 불임부부는 자신들이 바랐지만 신체의 결함때문에 재생산을 할 수 없고, 동성애 커플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불임이 된 것이다라는 논지를 전개했으면 더 나을 뻔했겠죠.

(그랬다면 김조광수 역시 (외부의 도움을 받아) 생산이 가능한 레즈비언 커플을 꺼내지는 못했을 겁니다.)

 

대학토론배틀4

 

제가 위에서 진흙탕 싸움을 꺼낸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이 주제는 수십 년이 넘게 논쟁이 되어 왔고 상대는 그런 토론의 고수입니다.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면, 어떻게라도 비등한 싸움으로 끌고 가야한다는 빠른 판단이 필요했는데, 그저 멍하니 당하기만 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도 토론이 필요한데,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사회에서 토론이 의외로 많습니다. 연봉 협상, 계약 체결 등 주로 돈과 관련된 것들이지요. 그때 빠른 판단이 필요합니다. 확실히 우아하게 협상할 수 있는 승부와 진흙탕 싸움을 해야 하는 승부 등으로요.)

 

 

사실 여기까지의 말은 전부 쓸데없는 말들입니다.

동성애자의 결혼제도 문제에서 제일 핵심은 자녀 문제이고, 학생들이 이 부분을 포기한 순간부터 일방적인 수세만 약속되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아이 문제를 결정적인 한방으로 사용했어야 했습니다.

"이성애자 양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다 자란 후에 그들의 진짜 부모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아이의 미성숙함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성애자를 양부모로 둔 아이는 다섯 살이건, 열 살이건 자신의 부모가 양부모란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된다. 그때 받는 아이의 충격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는 결국 동성애자 부모의 책임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통계문제를 언급하겠습니다.

(학생들의 통계에 대한 인식이 아주 부정확하더군요. 이번 회차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통계가 절대 진리인양 받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숫자로만 파악하고 그 이면의 현상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첫 번째, 동성애자 부모를 둔 아이들의 행복/불행 여부가 반드시 통계적으로 정확하게 측정될 수 있는 문제인가?

, 불행에 대한 계량적인 측정이 정확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보통 아이들은 시험 문제, 이성 문제 등으로 고민하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부모가 동성애자다.', '내 부모는 양부모다', '나의 성 정체성은 무엇일까'등의 차원이 다른 문제로 고민하는 아이들에 대한 불행이 다른 평범한 아이들에 대한 불행 정도와 비교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입니다.

 

두 번째, 위의 문제와 같은 말이면서 다른 말입니다.

, 다른 평범한 아이들이 성적 문제, 이성 문제로 고통 받는 동안 동성애자를 부모로 둔 아이들은 거기에 더해서 '부모가 동성애자다.', '내 부모는 양부모다', '나의 성 정체성은 무엇일까' 등의 문제를 '더' 고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두 문제의 차이점을 하시겠죠?)

 

이번 토론에서 1등은 연세대의 토끼들, 2등은 숭실대의 토로너스 하이가 차지하고 6강전에 진출합니다. 

나머지 토론은 나중에 올리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