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타 - 자녀 잃은 슬픔

박원숙 남편 서범구(아들) 두 남자와 세번의 이혼

박원숙 러브스토리와 풀 인생 스토리

탤런트 박원숙의 인생은 정말 기구합니다.

한 남자와 두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을 뿐만 아니라, 세번째 결혼(두번째 남편)마저도 고소로 끝나고 말았고, 하나 뿐인 아들 역시 비명에 가고 말았습니다. 눈물없이는 들을 수도 없네요.

 

박원숙은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언제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탤런트 겸 영화배우 박원숙은 1949119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고향, 아버지가 유명 만화가 박광현). 올해 나이가 66살이죠.

(박원숙 학력)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중퇴)

(박원숙 프로필) 1970MBC 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박원숙 종교) 여호와의 증인

1970년부터 드라마 화려한 계절, 수사반장 등에서 단역으로 출연했고, 조선왕조 오백년(풍란), 남자의 계절 등에서 인지도를 쌓았으며, 한지붕 세가족(순돌이 엄마 역), 토지 등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한지붕 세가족의 사진 당시 국민 아침 드라마

 

미모의 여주인공 보다는 엄마 역이나 억척 아줌마의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에게 크게 호감을 얻었던 인물이죠.(특히 순돌이 아빠 역의 임현식과 더불어 부부 연기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었죠.)

또한 영화 O양의 아파트2, 어둠의 자식들, 엄마의 방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더 많이 출연하는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배우중의 한명입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드라마 겨울새와 백년의 유산 등에서 연기의 완숙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못된 시어머니 역으로 나왔기에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만큼 박원숙의 연기력이 훌륭했다는 뜻이기도 하죠.

 

정말 악역 연기 표정에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몇 안되는 연기자중의 한명이죠.

 

이렇게 화려한 연기 인생을 보낸 박원숙이지만,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가 않습니다.

1998년 박원숙이 쓴 책(수필집, 자전적 에세이, 제목: 열흘 운년이 보름은 못 울어?)에도 잘 나왔듯이, 박원숙은 한 남자와 두번의 결혼과 이혼, 세번째 남편과도 결국 이혼으로 끝나게 됩니다.

 

먼저 첫남편 서모씨는 박원숙이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첫 남자였습니다. 당시 중앙대학교에 다니던 박원숙은 남편과 대학 살롱 드라마 모임체인 YMCA ''에서 처음 만나게 됩니다.

당시 전남편은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재학중이었고, 이 동아리에서 연출을 공부하는 중이었으며, 나이는 박원숙보다 2살 연상이었습니다.

 

박원숙 젊었을때 과거사진(리즈 시절)

 

그러데 첫만남 이후에 두세달쯤 우연히 통행금지에 걸려서 박원숙은 신랑될 사람과 함께 여관에 묵게 되는데, 여기서 첫관계를 하고 이것이 임신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임신을 한 박원순은 대학을 중퇴해야만 했죠.

 

박원숙: "사회 분위기가 요새는 미혼모도 있는데 그땐 임신을 하고 그랬으니 죽으려고 했다. 처녀가 임신을 했으니까... 그래서 산으로 가서 살자는 생각도 했다. 할머니가 나랑 뛰어내려 죽자고 하셨다."

 

확실히 1960년대 말이었으면, 사회가 많이 보수적이었죠.

결국 박원숙은 첫남자였던 그 서 모 선배와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첫만남부터 결혼식까지 불과 7개월만이었죠(속도위반, 혼전임신).

 

박원숙 비키니 수영복, 광고의 한 장면

 

하지만 대학을 중퇴한 뒤에도 박원숙은 연기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임신 7개월의 만삭의 몸으로 MBC 탤런트 공채 1기 시험에 응시하게 됩니다.

 

박원숙: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데 연극하고 동아리 활동하다가 결혼하게 됐다. MBC 공채 탤런트 공고를 봤는데 20세 이상이라는 것만 있지 혼인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열의를 가지고 시험 보러 갔다."

 

하지만 만삭의 박원숙에게 심사위원은 이런 핀잔만 줍니다.

"집에 가서 애나 낳으라."

 

결국 박원숙은 출산을 하게 되는데, 박원숙의 유일한 아들인 서범구(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박원숙은 다시 MBC 공채 탤런트에 응시했고, 당당하게 합격하게 됩니다.

 

 

박원숙: "그때 내 별명이 3천대1이었다(당시의 경쟁률이 3천대 1이었음). 또 배우 임현식이 MBC 공채 탤런트 1기 선배다."

 

그래도 당시에 미혼모(정확하게는 결혼 한 유부녀)도 탤런트 시험을 보고 합격할 수 있는 분위기였네요. 혹은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뚫고 합격할 정도로 박원숙의 연기력이 대단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박원숙은 연기 생활을 시작했고, 남편은 공군 장교로 군대를 제대한 후에 개인 사업을 시작합니다(박원숙 남편 직업).

그런데 액세서리, 운동복 제조, 실내장식 용품 등 하는 사업마다 실패를 하면서 박원숙이 버는 돈을 탕진하고 맙니다. 결국 말리다가 지친 박원숙은 남편과 함께 1981년 합의 이혼을 하게 됩니다.

(첫번째 이혼이유; 배우자의 사업 실패, 이혼사유)

 

 

그렇게 3년동안 박원숙은 솔로 생활을 하는데, 동료 탤런트 L씨가 혼자 사는 박원숙을 쉽게 보고 일방적으로 대시합니다. 결국 고민하던 박원숙은 전남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결국 3년만에 다시 재결합(재혼)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이때 남편에게는 이미 다른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건 좀 애매하네요. 박원숙과 결혼 생활을 하다가 바람이 난 것이 아니라, 이혼 당시에 생겼던 여자니까요.

어쨌든 또다른 여자가 있으면서 재혼을 합의한 전남편에게 아주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죠.

 

 

결국 또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박원숙은 재혼 불과 6개월만에 다시 이혼을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들 서범구 역시 자신의 손으로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계모 밑에서는 키울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아들과 함께 살던 박원숙은 1989년 아르헨티나 교포 사업가 김모씨와 세번째 결혼식을 올립니다(남편으로는 두번째 남편이죠).

(이때 남편과 전처 사이에 딸이 있었음. 따라서 이때의 박원숙 가정은 11녀였음)

 

그런데 이번 남편 역시 사업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결국 1995년 세번째 이혼을 하게 되는데, 이혼 후에도 남편의 사기때문에 큰 괴로움을 겪습니다.

 

 

박원숙이 1999년에 접수한 고소장

- 1995년 이혼한 전남편 김씨가 내 명의로 당좌수표를 발행하고 부도를 낸 뒤 이민을 떠나 심각한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다.

 

박원숙: "199312월 당시 남편 김씨의 사업체가 부도를 내 20여년 동안 연예활동을 하면서 모은 나의 전재산을 날렸고 지금까지 드라마 출연료를 압류당하고 있다."

 

결국 박원숙은 전남편의 빚을 대신 물어주기 위하여 큰 빚을 지고 말았죠. 하지만 박원숙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첫남편과 얻었던 박원숙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서범구가 2003113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당시 서범구의 직업은 TV 외주제작사 `Mcity 프로덕션'의 피디(PD)로 일해왔는데, 점심 시간에 식사를 하러 회사 밖으로 나왔다가 운전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경사길에서 미끄러진 화물차에 치여 목숨을 잃게 됩니다(박원숙 아들 사망 원인).

정말 어처구니 없는 사고네요.

   

박원숙: "사람들은 내가 아들 사망 원인을 아는 줄 알지만 사실 모른다. 일부러 듣지 않았다. 아들의 사망 당시 의사가 다친 부위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귀를 막았다. 지금까지 아들의 사고 이유를 모른다."

 

박원숙이 얼마나 아들의 사망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네요. 세번의 결혼 실패 이후에 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박원숙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들은 이미 결혼을 했고, 아내(박원숙 며느리)와 딸을 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가 재혼을 하게 되면서 박원숙과 손녀와의 관계는 끊어지고 말게 됩니다.

 

박원숙: "아직도 손녀에게 연락이 올까봐 8년 전 전화번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며느리가 재혼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가정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손녀와 이별했다.

손녀가 마음이 편해지고 조금 더 커서 할머니한테 전화 해볼까라는 생각이 된다."

 

 

며느리의 새 가정을 지켜주고자 하는 박원숙의 마음 씀씀이가 엿보이네요. 어린 손녀 역시 새아빠를 친아빠로 알고 자라는 것이 좋죠.

 

박원숙은 자신의 재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 상처를 많이 받아서 결혼 생활에 넌더리가 난다. 그래서 재혼이라는 게 싫었다."

박원숙의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재혼 프로그램 님과함께의 한 컷(임현식 박원숙 부부)

 

박원숙의 전남편들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사업가였고, 자신의 사업을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박원숙이 임현식과 같은 탤런트와 만나서 결혼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동종업계 사람이라면 좀 더 박원숙을 잘 이해했을 거 같네요.

 

아무튼 이제 박원숙에게는 죽기 전에 손녀를 만나보고 싶은 것외에는 아무런 소원도 없습니다. 부디 손녀가 어서 빨리 자라서 할머니에게 연락을 했으면 하네요. 그 소원이 이루어지져서 손녀와 재회하길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