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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에 대한 연재글 8개입니다.

이인제의 경선 불복 이유와 이회창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 목차

* 이인제 경선 불복 이유

* 이인제 학습 효과란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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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제 경선 불복 이유


이에 대한 이인제의 해명은 다음과 같죠.


"(1997년)당시 경선에 참여해 완주 했다. 경선 룰에 대해 시비를 걸어 본 일이 없다. 경선 전 국민 지지에 있어서 경쟁자 (이회창)를 더블스코어 앞서 있었다."


(당시 이회창은 당대표직을 사퇴하지 않고 경선에 출마하면서 불공정 시비가 일었고, 신한국당 내의 여러 부조리들이 다른 후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음)


이인제: "그리고 경선 이후 병역문제로 당 공식 후보 (이인제)에게 등을 돌린 민심이 이인제의 출마를 원했다."


현재야 이인제가 '경선 불복의 아이콘'으로 등극을 했지만, 당시만 해도 이인제는 비겁자로 찍히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500만명이나 되는 유권자들이 이인제를 지지할리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인제의 대선 출마 및 대선 완주는 우리나라 정치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바로 '이인제 학습 효과'가 탄생한 것이죠.

이인제 이회창 사진

* 이인제 학습 효과란


참고로, 이 선거에서 이인제는 무려 500만표나 얻으면서, '이회창 낙선의 일등 공신'으로 평가를 받는데, 사실 이회창의 낙선 이유는 '본인'에게 있었다는 점을 이미 이전 글에서 지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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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대선이 끝난 다음에 영남권에서는 '이인제가 죽일 놈'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인제때문에 이회창이 낙선하고, 김대중이 당선되었다는 생각이 퍼졌기 때문이죠.


사실 이인제의 500만표 득표는 대선 역사상 굉장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제까지 중도 개혁 성향의 후보가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된 것이, 바로 이인제 학습효과 때문이 아닌가 하네요.


(3김 시대가 끝난 다음에, 이인제를 제외한 제 3후보가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것은 2012년의 이회창인데, 당시 약 356만표 (15.1%)를 얻었고, 그외에 제 3후보들은 대개 1~4% 정도의 미미한 표만 얻게 됨)


또한, 이인제 부인 김은숙 역시 이인제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드리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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