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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에 대한 연재글 9개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이 노무현에게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 목차

* 이회창 노무현 대선 반추

* 이회창의 정치적 유연함은 나중에야

* 이회창에 대한 기자의 고백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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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회창 노무현 대선 반추


그렇다면, 이회창이 노무현과 겨루다가 패했던 2002년 대선은 어땠을까요?


원래 97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이회창은 2000년의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김대중은 각종 게이트 (아들 게이트를 비롯한 여러가지 부정부패 사건들)로 레임덕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원내 제1당을 계속 유지하게 됨)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사진

그런데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이회창의 진짜 고향은 충청도가 아니었기에, 충청도에서 큰 지지를 받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김종필이 충청도의 맹주는 여전히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내각제 개헌 문제로 김대중과 김종필의 관계가 결별로 끝나게 됩니다.


사실 김종필은 김대중과 안좋게 끝난 뒤였기에, 노무현을 지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회창으로서는 조금만 손을 내밀어도 김종필을 끌어들일 수가 있었을텐데, 오히려 김종필의 자민련에게 "아쉬우면 너희가 들어와라"라는 식으로 대합니다.

* 이회창의 정치적 유연함은 나중에야


결국 김종필은 이회창을 돕지 않고 대통령선거에서 끝내 중립을 지켰고, 노무현은 '수도 이전 공약'을 내놓고 충청도의 큰 지지를 얻게 되었죠.

(이회창과 노무현의 표차이는 불과 70만표였음)



훗날 2007년 대선에서 이회창은 박근혜에게 밤 깊은 시간 3차례나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아마 이때 김종필을 한번만이라도 이렇게 절실하게 찾아갔더라면, 2002년 대선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르네요.


게다가 2002년 대선에서는 김종필이 중립을 지킨 것외에도, 이회창은 여러가지 실책을 저지릅니다.

이기택 등의 구 민주당 세력은 노무현을 지지했고,

이한동 등도 결국 중립을 지키게 되었죠.


이처럼 이회창의 정치적 유연성은 2007년에야 겨우 나타났기 때문에, 그동안 스스로 '대통령 선거에서 패했다'라는 평가가 너무 박한 것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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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회창에 대한 기자의 고백


또한, 이회창은 엘리트주의로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고려대 나온 기자에게) 고려대 나오고도 기자할 수 있느냐?"라는 발언은 물론이고, 

'창자 막말 발언 사건' 등이 있었고,


그 외에도 이회창의 엘리트주의는 모 기자의 고백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이회창과) 인터뷰를 위해 집무실에 들어가서는, 먼저 멀찍이서 이 전 총재에게 고개 숙여 인사해야 했다."


"이회창 전 총재 측에 질문 내용을 서면으로 미리 다 줘야했다. 대면해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질문은 5개로만 제한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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