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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에 대한 연재글 9개입니다.

이회창이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를 짚어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인제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 목차

* 노무현 정권의 실수

* 이회창 지지율이 높았던 이유

* 이회창 대선출마 실패 이유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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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정권의 실수


'이회창이 억울하게 당했다'라고 믿는 일부 보수층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두고 아쉬워합니다.



또한, 보수층에서는 이회창이 '조작된 병풍 사건'외에 설훈 국회의원의 '허위 사실 유포'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제 16대 대선에서 설훈 의원은 "이회창이 최규선으로부터 20만달러를, 그리고 기양건설로부터 10억원을 수수했다."등의 설을 제시하면서, 이회창의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을 가하게 됩니다.


이는 나중인 2005년에 모두 허위사실로 밝혀지고 설훈은 실형을 선고받게 되었죠.


이에 대하여 노무현이 2007년 취임 4주년 특별사면 명단에 설훈의 이름을 넣어서 설훈은 복권이 되었고, 현재도 설훈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한나라당 (후에 새누리당)은 정치 공작의 결과라고 주장하였고, 훗날 보수파들이 노무현 정권의 도덕성을 비판하는 근거의 하나가 됩니다.


사실 '허위사실'로 대선에 큰 영향을 미쳤던 설훈에 대한 사면 복권은, 노무현 정권의 크나큰 실수가 아닌가 합니다.

만약 노무현과 그 측근인사들이 '설훈의 허위주장'에 대하여 전혀 관계가 없었다면, 설훈에 대하여 사면 복권을 절대 행하지 말고, 오히려 그를 모든 공직에서 추방시켰어야 하지 않았나 하네요.

이회창 총풍 사건, 이회창 북풍 사건

* 이회창 지지율이 높았던 이유


아무튼 일부 보수층에서는 이회창에 대하여 많이 안타까워합니다.

아들 병역 의혹이었던 병풍 사건, 그리고 설훈의 허위사실 유포 등이 없었다면, 그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참고로 이외에도 이회창의 약점들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총풍 사건(북한으로부터 총격 시위를 해달라는 요청), 세풍 사건(국세청을 동원한 대선 자금 모집), 초호화 빌라 공짜 거주 논란, 아들의 원정 출산 논란 등 한가지만 제대로 밝혀져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약점들이 너무나 많았죠. (이회창 총풍사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7년, 2002년 이회창의 지지율이 굉장히 높았던 이유는, 그가 수십년동안 지속된 '보수 정당의 후보자'라는 점과, 판사와 중앙선거위원장, 총리 시절 보여준 '대쪽' 이미지 덕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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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회창 대선출마 실패 이유


사실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회창 본인에게 있었습니다.


우선, 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갑자기 "전두환 노태우 사면론'을 들고 나옵니다.


국민대통합이라는 명분으로, 보수 지지자들을 공략하기 위한 '정치 공학적인 행동'인데, 국민 정서를 감안하면, 김대중이 '사면론'을 주장하는 것을 부당한 행동이었습니다.


김대중 역시 군사 정권의 피해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다른 피해자들을 대표하여, '사면'을 내릴 권한은 없었으니까요.


훗날, 김대중이 '대통령병'에 걸렸다는 주장의 주요 근거로 작용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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