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로즈데이 드라마- 정웅인의 멜로와 소희의 연기시작
KBS의 드라마 스페셜 단막극, Happy! 로즈데이가 번개처럼 왔다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네요.
처음에는 한 부부의 막장 불륜을 그린 드라마인가 했습니다.
소유진(가영 역)이 직장 상사이자 옛 애인과 정분이 나는 것 분위기였거든요.
아무 것도 모르는 남편 정웅인이 그저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무려 6년이나 사귀었던 도훈(김도현 분)은 소유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달걀 노른자를 안 먹는 것을 알기에 대신 먹어주고, 막걸리도 흔들지 않고 맑은 상태로 같이 즐기고요.
정말이지 속속들이 자신을 잘 아는 편한 애인이네요.
하지만 김도현은 이미 4년 전에 소유진을 버리고 떠난 남자입니다.
그 당시에 결혼을 원하는 소유진과 아직은 혼자 즐기고 싶은 김도현이 이별의 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김도현은 이제 그때의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합니다.
"너(소유진)는 알지 못하겠지.
4년의 시간차를 두고서야 우린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걸..."
유부녀인 소유진은 많이 흔들립니다. 남편인 정웅인은 자신에게 무신경하기만 하고, 옛애인인 김도현은 자신에게 너무나 잘 맞춰 줍니다.
게다가 직장 상사이기에 사무실에서 늘 마주쳐야 하고,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그에게 감정이 계속 흔들립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마음을 다잡네요.
"갖지 못한 장난감, 가지 못한 길, 갖지 못한 사랑은 늘 더 특별해 보인다.
그래, 그것 뿐이다."
마지막으로 3일간만 남자와 함께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런데 우린 서로를 기억하기 위해 함께 있는 걸까? 잊기 위해 함께 있는 걸까?"
그런데 아무 것도 몰라서 불쌍해 보이던 남편 정웅인(찬우 역) 역시 한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가게 근처의 발랄하고 청순한 꽃집아가씨 아름(소희 분)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정웅인은 소희 어머니가 자신과 동갑인 것을 알고 딸같은 소희에 대한 감정으로 괴로워하지만, 소희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운 것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집안 수리도 하지 않는 정웅인이 꽃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소희를 잘 보살펴 주려고 합니다. 어린 아가씨에게 홀린 듯한 중년 남자의 연기를 멋들어지게 소화해 냅니다.
정웅인의 소희앓이처럼 소희 역시 아빠없이 자랐기에 듬직한 남자의 손길, 기댈 수 있는 남자가 너무 필요합니다.
자신을 잘 도와주는 정웅인이 너무 고마운 나머지 포장마차에서 술을 사기도 하고, 자신과 정웅인을 원조교제로 오해하는 남자들에게 시비를 걸기도 합니다.
결국 소희의 부추김에 정웅인은 취객들과 주먹다짐을 하게 됩니다.
(솔직희 소희의 만취연기나 느닷없이 튀어나온 팔색조같은 요염한 봉춤은 시나리오상의 옥의티같더군요. 만약 꼭 필요했다면, 시나리오를 좀 더 보강할 필요가 있었다고 봅니다.)
게다가 소희는 하나뿐인 가족인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장례식때 정웅인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이때 소희의 눈물연기, 오열연기가 압권이더군요.
하지만 소희는 마침내 마음을 정리합니다.
그녀의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죠.
종반부가 가까워지면서, 드라마는 점차 하나의 접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옴니버스식 구성)
김도현이 소유진에게 프러포즈를 할 꽃을 장만하기 위하여 꽃집에 들립니다. 하지만 안소희는 가게를 정리중이었고 더 이상 팔 꽃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정웅인에게 줄 꽃상자 두개만 남겨둔 상태였죠.
그런데 갑자기 안소희는 원래 자신에게 줄 꽃상자 하나를 김도현에게 선물로 줍니다.
"원래 이 쌍둥이 꽃상자들의 작품명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거든요. 손님이 불쌍한 사람들의 운명을 좀 바꿔 주세요."
소희가 네명중에서 마음을 제일 먼저 정리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에서는 여전히 그것이 바뀌기를 바라고 있네요.
하지만 이런 소희의 바람과는 달리 프러포즈에 너무 조급한 김도현은 막 고백하려는 정웅인의 이별통보를 막는 추돌사고를 벌이고 맙니다.
당시 사건 현장에서의 세 사람.
정웅인과 소유진, 김도현은 각각 너무나도 복잡한 감정선들이 교차하지요.
마지막으로 소희는 원래 정웅인에게 주려고 했던 꽃상자를 그에게 주고 떠나갑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의미를 가진 한 글자가 뭔지 아세요? 꽃이에요. 축하, 감사, 용서, 그리움... 꽃이 가진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사랑을 가득 담아 보내드립니다.
따뜻한 어깨 오래동안 잊지 않을께요.
아저씨, 안녕."
하지만 이 마지막 꽃상자는 정웅인에 의해 우연히 소유진에게 향합니다. 둘은 서로 자기 자신에게 '나쁜 년', '죽일 놈'이라고 자책하면서 잠시나마 흔들렸던 자신의 마음을 후회합니다.
"그저 꿈이야. 다 지나갈 거야."
시나리오도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시나리오는 위에서 언급한 소희의 만취연기나 봉춤같은 것들이 약간 거슬렸을 뿐입니다. 만약 소희의 매력을 뽐내지 않고 좀더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드라마의 완성도는 더 향상되었을 겁니다.
먼저 배우들의 연기를 살펴보면, 김도현의 연기도 좋고, 소유진의 기본기 탄탄한 연기도 좋았지만, 더 눈여겨 본 것이 바로 정웅인과 소희였습니다.
정웅인은 이제까지 세친구같은 시트콤에서 밝고 명랑한 역이나, 얼마전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너목들)에서의 민준국 같은 악역이 아니라 멜로드라마에도 자신이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소희의 경우에는 첫 연기 도전임에도 평균 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안정된 연기력이고 할 수 없는 것이, 상황에 맞지 않게 너무 과한 표정과 대사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조금 더 경험이 쌓이면, 이런 완급 조절까지 할 수 있겠지요.
두 사람 다 악역과 아이들 이미지를 훌륭하게 벗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희는 5년만의 연기 재도전이기에, 이번이 연기 데뷔라고 할 정도의 공백기를 가졌습니다. 게다가 이번이 드라마 첫 주연 도전이라는 게 믿지기 않을 정도의 연기력을 선보였네요. 그리고 단역인 진호 역에 나온 도윤 역시 너무 과하지 않은 연기가 괜찮았습니다.)
'좋은 대사들과 배우들의 열연, 호연이 특히 기억에 남는 '해피 로즈데이', 오랜 만에 보는 명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원더걸스는 선예의 임신과 출산으로 거의 개점휴업인 상태인 모양인데, 이렇게 소희가 연기로 빛을 밝혔다는 점이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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