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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총 2개의 글중 두번째 글


가수 장덕 사망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장덕 자살설이 도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장덕 장현에 대한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1/2)

장덕 장현 천재 남매,장덕 전남편과 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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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음악적인 활동을 재개한 장덕이지만 쉽사리 국내 무대에 적응하지는 못합니다. 

결국 장덕 오빠 장현이 여동생에게 '현이와 덕이' 재결성을 제안했고, 장덕은 이를 고마워하면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후 장현, 장덕 남매는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그대의 투정', '해바라기 사랑' 등 수많은 명곡들을 발표하며 다시 인기를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장덕은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1986년 ~ 1987년 제 2의 전성기를 보내게 됩니다.


가수 장덕 사진


또한 장현 역시 그동안의 밤무대 활동을 모두 청산하고 '코아기획'을 설립하여 여동생의 매니지먼트를 전문적으로 봐주게 됩니다(1989년).



그런데 오빠 장현이 설암(혓바닥 암)으로 갑자기 쓰러졌고(설암 3기), 앨범 작업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장덕은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오빠가 본인의 일을 신경쓰다가 이렇게 '암'에 걸렸다고, 장덕이 생각한 것이죠.



오빠의 시한부 판정 이후 장덕은 수면제 없이는 하루도 잠을 잘 수 없는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1990년 2월 4일 새벽에 발견된 장덕은,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 등 3가지 약을 일시에 복용한 상태였고,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에 쇼크로 사망하게 됩니다.



장덕 사망원인은 공식적으로 '약물 과다'였습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과로와 감기증세 때문에 과다복용한 약이 부작용을 일으켜 숨진 것'이었습니다.)(장덕 사망이유)



하지만 죽기 전까지 장덕이 오빠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던 점, 심한 우울증을 알았던 점, 과거에도 여러번 자살 시도를 했던 점 등으로 미루어, '장덕 자살 루머' 역시 같이 퍼지게 되었죠.


장덕 사진


1990년 6월에 장덕 추목 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발표되는데,

장덕과 인연이 있는 전영록, 이선희, 김범룡, 박혜성, 진미령, 양하영, 최성수, 임지훈 등이 대거 참여해 고인의 넋을 기리게 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장덕은 '현대적 의미의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였고,

당대의 가수들에게 좋은 곡을 만들어주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여자 싱어송라이터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에,

프로듀서의 역할까지 했던 것이죠.



다만 안타까운 죽음 이후에 재평가를 받은 유재하, 김현식, 김광석 등과 달리,

장덕에 대한 재평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좀 안타깝네요.



마지막으로 동생을 위하여 헌신하던 오빠 장현 역시 동생의 죽음 이후에

"동생의 죽음이 나를 대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든다"라며 괴로워했고,

동년(1990년) 8월 16일 '설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장현의 유족으로는 아들 장원과 미망인 등이 있음)

(장현 아들 장원)



아주 어린 나이때부터 '천재 남매'로 이름을 떨치던 젊은 음악인 남매의 연달은 죽음에, 당시 한국 사회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특히, 남매의 죽음이 비극적이어서, 더욱더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죠.


김광석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김광석 자살이유,김광석 사망원인과 타살의혹, 여자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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