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은 공과 사가 뚜렷한 인물입니다.
그의 어린 시절의 여러가지 고난들과 함께 '임권택 이상아 노출 장면'의 당시 상황을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네요.
사실 임권택이 여중생에게 노출 연기를 강요(?)하면서 비판을 받는데, 사실 임권택의 이상아와 아내 채령에 대한 행동이 이중적이기는 합니다임권택 쓰레기 비판 이유).
(임권택 장진)
장진 감독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스폰서 링크)
# 목차
* 임권택 아버지의 과거로
* 임권택 가출 이유
* 임권택 영화 감독이 된 계기
* 임권택 첫번째 작품 에피소드
* 임권택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 임권택 이상아 노출 연기 강요(협박) 사건
* 이상아 길소뜸 노출 장면 사진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영화감독 임권택(본명)은 1937년 5월 2일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납니다(임권택 감독 고향 전남 장성, 임권택 실제 생년월일은 1936년 음력 11월 2일). 올해 79살이죠(임권택 감독 나이).
(임권택 키 몸무게 혈액형) 166cm, 62kg, B형
(임권택 학력 학벌) 전라남도 장성중학교 졸업, 광주 숭일고등학교 중퇴
후에 가톨릭대학교 문학 명예박사,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최고위 언론과정 수료 등
(임권택 프로필 및 경력) 1962년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감독 데뷔
이후 총 102편의 영화를 연출하면서, 한국영화의 산증인으로 불립니다.
대표작으로 잡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만다라, 씨받이, 장군의 아들, 서편제, 태백산맥, 춘향뎐, 취화선, 하류인생 등이 있습니다.
임권택 이상아 노출 장면 사진
* 임권택 아버지의 과거로
임권택 감독의 어린 시절은 부유하면서도 당시 좌익이었던 아버지로 인하여 불행했던 이중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임권택: "할아버지가 경성에서 미두상을 하시다가 아버님이 제2고보(지금의 경복고) 3학년이 되던 해에 고향인 장성으로 낙향하셨다. 당시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나빴다. 매일 금광한다고 밖으로 떠돌던 아버지를 언젠가는 할아버지께서 만주까지 사람을 보내 찾아오기도 하고, 한번은 배우가 되겠다고 집을 나간 양반을 부산까지 형사를 보내 찾아오기도 하셨다."
그러다가 임권택 아버지는 지리산에 빨치산으로 들어갔다가, 병을 얻어서 산을 내려와서 자수하게 됩니다(몇년 뒤 병사함).
이 때문에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속에서 임권택은 '빨갱이의 아들'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살게 되죠.(그때는 연좌제란 것이 존재하던 시절이었음)
결국 무거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한 임권택은 집을 가출해서 부산으로 가게 됩니다.
한국 전쟁 중 부산은 임시 수도가 될만큼 남한 사회의 중심지였고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임권택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가 있었죠.
임권택 감독 사진
* 임권택 가출 이유
임권택: "좌익이셨던 아버지 때문에 집안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18살 때 집에서 기차삯만 훔쳐서 가출했다. 더 있었으면 더 훔쳤겠지만, 집안에 돈될 말한 것이 별로 없었다."
임권택: "부산에 도착해서 사흘을 굶었다. 가판대에서 그냥 자고 노동판 지게 지는 일을 하면서 지냈다. 당시에 술을 많이 마셔서 수전등도 생겼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군화 장사를 시작했다."
임권택: "2년 정도 군화 장사를 했다. 당시 내 주변에서 군화 파는 사람들이 서울로 영화 제작일을 하러 가면서, 나에게 군화 몇 켤레와 노점을 줬다. 그런데 내가 장사에 소질이 없었는지 얼마 안 가서 다 거덜 나버렸다. 아마 부산에서 군화 장사가 잘 됐으면 영화감독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임권택: "(군화 장사가 거덜이 난 다음에) 서울에 올라갔던 군화 장사치들의 연락을 받고 서울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잡부'나 '심부름꾼'에 가깝던 연출부 막내로 일했다."
* 임권택 영화 감독이 된 계기
임권택: "영화 촬영장에서 일이 있으면 잠을 안 잘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 덕분인지) 당시 정창화 감독님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결국 임권택은 당시 정창화 감독의 두터운 신임속에서 영화 연출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임권택은 1962년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감독 데뷔를 하게 되는데, 그전까지는 조감독으로 활동했죠.
그런데 당시 인상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4.19 혁명이었죠.
임권택: "오랫동안 (아버지가 좌익이었기에) 정신적으로 참으로 긴 시간 주눅 들어지냈다."
임권택: "4.19시절 서울에서 조감독을 하고 있었는데, 저기 휩쓸렸다가 내 신원이 밝혀지면, 나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쩌면 임권택은 '일이 있을 때는 잠을 안 잘 정도로 열심히 했다'는 것이,
이런 압박감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렇게 열심히 일한 덕분에 임권택은 1962년 2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 임권택 첫번째 작품 에피소드
임권택: "전쟁영화 '두만강아 잘 있어거라'가 내 데뷔작이었어요. 당시 당시 박노식, 황해, 문정숙, 엄앵란 등 당대 최고 톱스타들이 출연했죠. 내가
조감독 일을 할 때는 전부 다 친하게 지내던 배우들이었는데, 막상 내가 감독이 되니까 영 말을 안 듣는 거에요. (촬영장에) 빨리 오지도 않았고요."
임권택: "원래 감독이 현장을 잘 통제해야 해요. 당시 촬영 중에 추운 겨울 날 꽁꽁 언 강을 건너는 장면이 있었는데, 배우들이 강을 건너지를 않는 거에요. 결국 답답한 나머지 내가 먼저 얼음물로 들어 갔어요. 감독이 그렇게 들어가니까, 다들 따라서 들어오더라구요."
현재까지 임권택은 102편의 영화를 촬영한 거장이라는 소리를 듣는데, 거의 절반은 60년대에 찍은 영화들입니다.
임권택: "60년대는 흥행을 위해 영화를 찍어내던 시절이었어요. 할리우드 영화 베끼기에 골몰했었죠. 사실 격투 장면도 할리우드 것을 교묘하게 베껴서 찍었고요."(임권택 표절 고백)
임권택: "60년대 제가 만든 영화 필름들은 불 타서 싹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다가 저만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 시초가 바로 '잡초(1973년 작품)'이었어요."
* 임권택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이후 잘 알려진 것처럼 임권택은 수많은 국제 영화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감독, 세계적인 거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1986년 영화 씨받이로 강수연이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
1987년 영화 아다다로 신혜수가 몬트리올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1989년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강수연의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2002년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2005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명예황금곰상 수상
그런데 임권택이 강수연과 신혜수 등을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좋은 연출력'을 가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임권택의 흑역사가 펼쳐졌죠(임권택이 쓰레기라고 비판받는 이유중의 하나)(임권택 여중생 이상아 노출).
임권택 영화 길소뜸에서 이상아 노출 사진
* 임권택 이상아 노출 연기 강요(협박) 사건
이상아: "영화 길소뜸(1985년 작품)에 출연할 때 어린 나이에 노출을 해야 했다. 원래 영화계에서 캐스팅할 때 먼저 대본을 주는데, 나에게는 대본이 안 나왔다고 하더라. (캐스팅된) 이후에 대본을 받았는데 대사는 없고 지문만 많았다. 그런데 어린 아이가 이해하기에 지문도 어려웠다(야한 행동들이 많았다)."
당시 이상아는 14살의 미성년자였죠(1972년생인데, 길소뜸의 촬영은 1984년도에 진행됨)(이상아 임권택 15세 노출이라는 소문은 잘못된 것임).
이상아: "대본을 보니까 내 대사가 괄호밖에 없더라. 말이 없고 괄호 안에 뭐뭐뭐뭐하고 하고 괄호 닫고(성인 연기를 뜻함). 많이 야했다. 딱 뽀뽀하는 장면에서 스톱하는 게 있었고, 그 뒤에 는 (상대 남자 배우의) 손이 제 엉덩이로 올라와서... 막 시작이 되는 씬이었다."
이상아: "그때 엄마도 너무 놀라셔서, 전화해서 못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임권택) 감독님께서 저희 엄마에게, "나도 일찍 결혼했으면 상아만한 딸이 있을텐데 그런 걸 내가 시키겠어요? 믿고 따라오세요."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거 믿고 따라 갔다(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이상아: "(영화 촬영중에) 처음에는 약간 뽀뽀 정도? 나도 할 수 있을 만큼의 진행을 다 하다가 결국 마지막 촬영 떄, (스태프들이 노래하듯이) '상아는~옷벗어야 된다~ 벗어야된다~ 벗어야 된다' 라고 노래를 막 부르시더라."
이상아: "나 안한다고, 내가 왜하냐고, 감독님이 그거 안 시킨다고 했는데, 왜 그러시냐고 (스태프들에게) 말했다. 결국 안하겠다고 막 울고 짐싸서 가겠다고 움직이고 있는데, 스태프들이 감독님을 모시고 오셨다."
이상아: "감독님이 냉정하게 한마디 하셨다. "너 돈 많아? 너 돈 많으면, 이 때까지 찍었던 필름 값 니가 다 물고 가도 돼!" 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너무 속상해서 울었다.(결국 영화에서 노출 연기를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
* 이상아 길소뜸 노출 장면 사진
참고로 영화 길소뜸에서 이상아의 노출 연기 내용은 전라로 뒷모습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양오빠에게 곳간같은 곳에서 약간 반강제적으로 하는 러브씬이 나오고, 두번째는 풀속에서 남녀가 같이 누워서 키스하고 어루만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14살짜리가 할 장면은 결코 아니죠.
당시 이상아는 14살에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빠른 72년생이어서 1년 일찍 학교를 들어간 것임)
어린 아이에게 너무나 가혹한 촬영이 아니었나 합니다.
오늘날 거장이라고 칭송받고 있는 임권택 감독의 어두운 그림자중의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임권택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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