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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수 옥희 홍수환 스캔들 사건과 더불어, 옥희 홍수환이 폭행 사건으로 서로 결별했다가 다시 재결합하게 된 사연이 흥미롭네요.


사실 이 사건은 간통죄나 혼인빙자간음죄로 교도소에 들어가도 할말이 없는 상황이었죠.



그리고 홍수한이 카라스키야를 누르고 '국민적인 영웅'이 되면서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합니다.


홍수환 옥희에 대한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홍수환 전부인 이혼사유와 카라스키야 스토리


(스폰서 링크)


# 목차

* 홍수환 옥희 동거 사건

* 홍수환 옥희 폭행(폭력) 사건

* 나이가 같은 홍수환 딸과 아들

* 홍수환의 미국 생활

* 홍수환 옥희 재결합하면서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 홍수환 옥희 동거 사건


홍수환: "그때(1978년 1월)부터 제가 옥희와 본격적으로 동거를 했습니다. 워커힐 펄룸(Pearl Room)에였죠. 원래 제가 선경그룹 창업자 후손 중의 한명과 중앙고 동창이거든요. 그 친구의 도움으로 거기서 권투 훈련도 하고, 여자와 동거도 했죠."


그리고 홍수환은 1978년 2월 전처 이진희와 이혼(?) 발표를 합니다.


홍수환: "아내의 미국 이민 결심이 너무 굳어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의 사이가 극도로 나빠진 것은 아내의 미국 이민 주장을 둘러싸고 1년동안 계속된 의견 대립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홍수환: "미국 조지아주에는 아내가 7살때 헤어진 어머니가 살고 있는데, 아내가 친모를 잊지 못해 미국으로 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나는 한국이 낳은 세계챔피언이기 때문에 한국을 떠날 수가 없다."


가수 옥희 젊은시절 사진


이것이 바로 당시 공식적으로 발표한 홍수환의 이혼사유였죠.

물론 그 내막은 홍수환이 인기 여가수 옥희와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일어난 가정불화였고요.


당시 이진희가 홍수환과 옥희를 간통죄로 집어넣을 수도 있었는데, 말없이 미국으로 떠난 것을 보면, 정말 착한 성격의 소유자같습니다.



그런데 홍수환 이혼이유의 내막, 옥희와의 동거 등이 폭로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홍수환 옥희의 폭행 사건때문이었죠.


옥희 노래모음

옥희 나는 몰라요

   


옥희 이웃사촌 가요무대 20130826  


비둘기 집 홍수환 옥희 노래


* 홍수환 옥희 폭행(폭력) 사건


(기사 발췌)


홍수환(25)와 인기 가수 옥희(25)이 동거 12개월만에 주먹 다짐과 혼인빙자 간음으로 고소를 하는 등 파경을 맞았다.


이들은 지난(1978년 12월) 27일 하오 1시쯤 집에서 다투다 홍씨가 옥희양의 안면을 주먹으로 때려 옥희양의 코뼈와 앞니 2개를 부러뜨려 병원 치료를 받게 했다.


폭행 싸움의 발단은 홍씨의 전부인 이진희씨(25)가 하와이에서 아들을 낳아 귀국한뒤, 홍씨의 어머니 황농선씨의 집에 머물면서 홍씨와 다시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옥희양이 이들(홍수환과 전처)이 만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헤어지자고 나섰던 것.



(홍수환 옥희 폭행사건 - 옥희의 코뼈가 무너지고 앞니 2개가 날아가서, 당시 사회적인 이슈가 됨)



그런데 이때 옥희 역시 딸을 낳은 상황이었습니다.

(참고로 홍수환과 옥희는 나중에 늦둥이 아들을 한명 더 낳게 됨, 옥희 아들)

(홍수환 옥희 자녀(자식)(홍수환 옥희 가족 관계)


가수 옥희 과거사진


* 나이가 같은 홍수환 딸과 아들


즉, 홍수환 아들(이진희 소생)과 딸(옥희 소생)의 나이가 공교롭게도 똑같은 것이죠.


홍수환: "전처 소생의 아들 대호와 딸 윤정이(옥희 소생)가 서로 동갑내기에요. 아이들을 보면 늘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사실 제가 어느 쪽이고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했잖아요. 그래도 배다른 형제끼리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 대견해요."



결국 옥희가 홍수환을 혼인빙자 간음혐의로 고소를 했고, 검찰은 홍수환을 입건시킵니다.

홍수환이 옥희와 합의가 되지 않아서, 법원에 따로 위자료조로 5백만원을 공탁하기도 했죠.



아무튼 홍수환 옥희의 스캔들로 당시 사회가 떠들썩했고,

결국 권투협희에서 홍수환을 제명시킵니다.

또한, 옥희 역시 가수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옥희: "예전에 홍수환과 이혼했을 때 국가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당시에 내게 더 많은 질책이 쏟아졌고, 4전 5기 신화의 주인공이었던 홍수환은 살리고 차라리 옥희를 매장시키라는 뒷이야기가 있었다."



* 홍수환의 미국 생활


홍수환 역시 권투협회로부터 제명을 당한 뒤에 2년 후(1980년 12월)에야 마지막 은퇴 경기를 열 수 있었습니다.


홍수환: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이유로 권투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아 게임을 할 수도 없었어요. 실제로 1년이 훨씬 넘은 1980년에야 염동균하고 마지막 경기를 하고 은퇴를 했으니까요. 또한 옥희 하고는 78년 12월에 헤어졌고요."



이후 홍수환은 잠시 권투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80년대 초반에는 장정구(WBC 수퍼라이트급 챔피언)와 김철호(WBC 수퍼밴텀급 챔피언)의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개인 사업을 시작했고, 이 사업들이 실패하면서 미국 이민을 떠나게 되죠.


홍수환: "마침 미국 알래스카에 아는 분이 있어 그 분의 초청 형식으로 이민을 갔어요. 거기서 택시 운전사로 근근히 먹고 사는데, 갑자기 미국 육군인 '포트 리처드슨'에서 연락이 와서 정식 복싱 코치로 부임하게 되었어요. 제가 택시 운전사를 하는 동안에 '한국의 세계 챔피언'이 여기 있다는 소문이 난 거죠."



홍수환: "대우도 좋았습니다. 아주 편했고요. 그러다가 87년에 본격적인 복싱 마케팅을 해보자고 LA로 가서 돈 프레이저 밑에서 복싱 마케팅 수업을 받았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꿈을 펼쳐보고자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국했어요."


홍수환: "그런데 당시 한국은 제가 미국의 돈 프레이저로부터 배운 마케팅 기법을 활용할 만한 여건이 안되었어요. 국내 복싱 시장이 미국보다 30~40년은 뒤져 있다는 사실을 그때 절감했죠."


홍수환은 귀국 명분은 좀 터무니없어 보이는데,

사실 이 당시에 홍수환은 미국에서 마약 사건과 연루되어서 체포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거죠.


그리고 재결합을 했던 전처 이진희와 결국 1987년에 이혼을 감행한 상황이기도 했고요.



* 홍수환 옥희 재결합하면서


이후 국내에서 활동하던 홍수환은 1995년 1월 옥희와 재결합을 해서 늦둥이 아들을 낳게 됩니다.

당시 옥희 역시 가수로서 활동을 할 수가 없어서, 음식점 경영과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면서 지내고 있었죠.


(참고로 옥희 역시 홍수환과 헤어진 후에 2번의 결혼을 했지만, 2번 모두 실패하고 혼자 살고 있었음)



옥희: "밤무대와 미사리 라이브카페에서 활동했어요. 그곳밖에는 중견 가수를 받아주는 무대가 없었으니까요."


홍수환: "옥희와 재결합하는데는, 당시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딸 윤정이의 역할이 컸어요. 어려서는 저를 엄청나게 증오했는데, 결국 혼자 된 제 어머니와 나를 연결시켜주더군요."(홍수환 딸의 증오 이유)


홍수환: "저는 권투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그보다는 가수와 뜨거운 사랑을 했다는 것에 더 감사하고 있어요. 이 사람(옥희)과 저는 무엇보다도 서로 음악적인 취향이 맞거든요. 제 생각에 옥희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아닐까 해요."



사람들은 이를 두고 영화보다 더 흥미로운 스캔들이라고 하는데,

홍수환과 옥희야 간통의 당사자들이니, 세상의 비난과 상처를 감당해야겠지만,

이진희와 그녀의 자녀들, 그리고 옥희의 아이들은 아무런 죄도 없이 큰 고통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사랑을 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랑이 되어서는, 절대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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