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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 김영애 사진을 비롯하여, 공식적으로 신성일이 불륜을 저질렀던 사건을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성일 바람(외도)), '신성일 노망'이라고 사람들이 비난을 하는데,

정작 당사자인 신성일은 무척 떳떳해 하죠.

그가 왜 그러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네요.


신성일 엄앵란에 대한 이야기가 2편에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엄앵란 젊은시절, 집안 죽고 싶을 정도로


(스폰서 링크)


# 목차

* 신성일 김영애 러브스토리

* 신성일 불륜(외도)를 먼저 고백하면서

* 신성일 애인 공개 발언

* 신성일의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 신성일 김영애 러브스토리


또한, 결혼 전부터 여러 여자들과 사귀었던 신성일은 결혼 후에도 공식적(?)으로 바람을 피기도 합니다.

(신성일 바람 외도(불륜))



신성일: "'결혼 후 첫사랑'이 바로 초창기 여성 조종사 김경오 여사의 여동생 김영애씨다. 1970년 동아방송 아나운서였던 김영애와 국내와 해외를 여행하면서 함께 사랑을 나누었다."


'결혼 후 첫사랑'이라...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단어를 신성일이 만들었네요.



신성일: "내가 34살, 김영애가 26살이었을 때였다. 당시 김영애는 미국 USC(남가주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는데, 여름방학 동안 서울에 잠시 왔을 때 나와 볼링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신성일: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김영애였다. 내가 언니(김경오)와 친하다는 것을 알고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영화배우 신성일 김영애 사진(고 김영애 아나운서)


* 신성일 불륜(외도)를 먼저 고백하면서


신성일: "당시 영애는 나를 '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미국에서 국제전화가 걸려왔는데, 영애가 임신을 했다고 하더라. 순간 멍해졌다. 그때 영화사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당시만해도 국제전화는 감이 멀어서 고함을 질러야 겨우 저쪽에서 들을 수 있었다."


신성일: "그 사무실에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대답을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러자 영애가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전화를 끊었다. 1년 뒤에 독일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하게 되었을 때, 영애가 독일로 찾아왔다. 당시 영애가 삭발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내가 얼마나 남자답지 못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약 2달 동안 유럽을 여행하면서 마지막 이별여행을 합니다.

그리고  신성일은 1985년 김영애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됩니다(김영애 사망원인)(김영애 아나운서 사망 이유).


신성일 김영애 아나운서 사진


신성일: "영애가 "(교통사고로) 그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걸"이라고 나도 모르게 말했는데, 그 말을 들은 엄앵란이 화를 내며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신성일: "하지만 엄앵란이 나중에 영애의 천도제를 지내주었다. 우연히 지인 작가가 역술인을 만났는데, 점쟁이 말이 우리 집에 구천을 맴도는 안타까운 영혼이 있다고 하더라. 그 말을 전해 들은 아내(엄앵란)가 (영애의) 영혼을 달래주자며 천도제를 지내자고 제안하더라."


신성일은 엄앵란에게도, 또한 고 김영애 아나운서에게도 참 못할 짓을 했던 것 같네요.



* 신성일 애인 공개 발언


그리고 신성일은 일흔이 된 나이일때도 50대 애인이 있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합니다.



신성일: "아내와 애인은 별개의 문제이다."


신성일: "요즘도 연인이 있다. 내가 윤동주의 서시를 가장 좋아하는데, '죽는 날까지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구절을 특히 좋아한다. 내 나이 77살이기에(2013년 인터뷰), 열정적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앞으로 한 5년 남았다고 보면, 그때까지 열정적으로 살고 그 후에는 아름답게 지어놓은 영천 집에서 파묻혀 살아야지."



신성일이 서시의 의미를 조금 이상하게 해석하네요.

아무튼 노년의 마지막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것을 젊은 애인, 그것도 본부인을 놔둔 불륜 관계를 꼭 강조해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 신성일의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


신성일: "영애는 내 생애 최고로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사실 자기 아내가 있으면서 다른 여자를 사랑했다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하지만 그 여인은 죽었다. 교통사로고 오래 전에... 그러니 나처럼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신성일: "눈 뜨고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면 남자로서 비겁한 짓이다. 하지만 나는 비겁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영애가 85년에 고인이 됐으니, 이제 20년도 훨씬 넘었다.(2011년 신성일 인터뷰에서)"


신성일: "나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이 있지만, 나는 마누라도 사랑했고 김영애도 사랑했다. 사람의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사실 지금도 애인이 있다. 마누라에 대한 사랑은 또 다른 이야기다."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조심하는 것 이상으로

고인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네요.


죽은 사람은 후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아무튼 신성일은 이렇게 공식(?)적으로 불륜을 저질렀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엄앵란은 신성일과 이혼하지 않습니다.

과연 엄앵란이 신성일과 이혼하지 않고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먼저 엄앵란은 신성일의 거짓말을 의심합니다.


(신성일과 엄앵란에 대한 추가 포스팅

4편 '신성일 엄앵란 이혼안한 이유,엄앵란 거짓말 의심으로'

5편 '엄앵란 딸 강수화 이혼,신성일 엄앵란 아들 며느리'

는 1월 2일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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