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한정수는 결혼하지 않은 미혼입니다. 한정수가 왜 아직 결혼하지 못했는지, 그의 생각과 더불어 주변의 증언을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네요.
사실 한정수 나이가 43살이기에, 결혼 적령기를 넘은 감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은 한정수가 과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던 인생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네요.
한정수와 절친인 오지호에 대한 포스팅
(스폰서 링크)
# 목차
* 어린 시절에 한정수 아버지는
* 한정수 음악을 하게된 이유
* 한정수 연기란 길을 찾고
* 한정수 무명 생활의 고통으로
* 한정수 추노 덕분에
* 한정수가 빛을 보게 된 이유는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영화배우 겸 탤런트 한정수는 1973년 11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 올해 43살이죠(한정수 나이).
(한정수 키 몸무게 혈액형) 185cm, 79kg, B형
(한정수 학력 학벌) 한영고등학교 졸업, 경원대학교 경제학과 서울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졸업
(특이사항) 한정수 아버지 한창화는 국가대표 축구선수였습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당시 대표팀 선수로 참가했고, 이후 1966년 제5회 방콕아시안게임에는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1972년 실업축구연맹 사무국장을 역임한 축구계 인사입니다(2006년 사망).
(한정수 프로필 및 경력) 1996년 그룹 데믹스로 데뷔
연기자로는 2003년 영화 튜브로 데뷔합니다.
이후 드라마 마왕, 바람의 화원, 추노, 검사 프린세스, 근초고왕, 아랑 사또전, 아이언맨 등과 영화 해바라기, 밤의 여왕 등에 출연합니다.
한정수 복근 사진
* 어린 시절에 한정수 아버지는
한정수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축구를 했다가 미대에 진학했다가, 경제학도가 되었다가 음악을 했다가, 다시 연기를 하게 되었죠.
과연 그의 인생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한정수(이하 한):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5년 내내 반장을 도맡았고, 공부도 반에서 1등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대단했다. 초등학교 때까지 어머니와 학교 등교를 같이 했을 정도니까. 어머니가 학교 육성회장도 맡아 하셨는데, 이런 걸 ‘치맛바람’이라고 하지 않나. 하하하."
한: "초등학교때 아버지의 영향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3년간 축구를 했는데, 그 당시엔 운동하는 게 너무 싫었다. 나중에는 축구를 (취미로) 즐겁게 하게 되었지만... 아버지도 내가 축구에 소질이 없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
한정수 사진
(참고로 한정수 가족관계 - 어머니와 여동생)
한: "아버지는 항상 보수적이고 엄하셨다. 평상시에 거의 말씀도 없으셨고. 나에게는 언제나 위엄이 있고 무서운 존재였다. 과거에는 가까이 하기에 힘든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 역시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를 닮아가더라. 이제 곁에 계시지 않으니, 마음이 더 아프다."
한: "그러다가 대입으로 체대 시험을 봤는데 떨어지고 1년간 재수를 했다. 그때 어머니가 넌 소질이 있으니 미술을 하라’고 하신 말이 떠올라 미대를 3개월간 준비해서 합격했다(시각디자인과)."
한: "하지만 내 성격이 섬세하지가 않아서 미대를 다니는 동안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시험을 다시 쳐서 경제학과에 들어갔다. 경원대 경제학과에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미쳐 지낼 정도로 푹 빠졌다."
* 한정수 음악을 하게된 이유
한: "그러다가 우연히 밴드에 들어가 베이스 기타를 치게 됐고, 모 음반사와 계약을 했는데, 데뷔할때는 댄스가수로 하게 되더라((1996년 잠깐 활동했던 데믹스)."
한: "하지만 앨범이 망하고 방황했다. 그때 과거에 드럼 치던 친구에게 연락을 받고 극단에 가게 되었다. 당시 27살이었는데, 극단에서 이런저런 잡일을 하게 되었다. 포스터를 붙이다가 경찰서에도 끌려가보고, 고생을 좀 했다."
한: "한 1년 정도 극단생활을 하니까, 매일 보는 공연의 대사를 외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연기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세계가 있었나'라는 충격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이 당시 읽었던 스타니슬라프스키의 ‘배우수업’역시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한정수의 이십대는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네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길었던 것 같습니다.
한: "사실 내가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라 그렇게 산 것 같다. 하지만 연기는 싫증이 나지 않더라."
* 한정수 연기란 길을 찾고
결국 한정수는 28살의 늦은 나이에 다시 서울예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게 됩니다.
동시에 너무 늦은 출발에 대한 조바심으로 혼자 절치부심하게 됩니다.
한: "영화잡지 마지막 장에 한국영화 제작상황과 연락처가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캐스팅 중’으로 표기된 곳은 모두 돌아다니며 오디션을 봤다. 그러다가 2003년 영화
튜브'에 출연하게 되었다."
한: "사실 2003년 내 나이가 31살 때 데뷔하게 되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그 이전이다. '튜브'는 촬영이 끝난뒤 2년이 넘게 개봉이 미뤄졌다. 그게 좀 더 일찍 개봉 됐더라면 연기 일을 더 많이 했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
확실히 경력이 전혀 없는 배우보다는 영화에 출연한 이력이 있는 배우가 다음 작품에 출연하기가 더 쉽죠.
게다가 한정수의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은 더 컸을 것 같습니다.
* 한정수 무명 생활의 고통으로
이후 한정수는 여러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되지만, 오랫동안 무명배우로 지내게 됩니다.
한: "시골가서 농사지을 생각도 했어요. 영농후계자나 정부의 저리 대출 등을 알아보기도 했고요. 그때쯤 친한 동생이 서산에 살았는데, 그 동생을 도와 반나절 동안 감자를 캤어요. 허리가 부러지겠더라고요. 결국 안되겠다 싶어 귀농은 접었죠(웃음)."
한: "그 후에 친한 형님이 ‘다 정리하고 배 한 척 살 건데 같이하자’고 해서 어부가 될까 고민도 해봤고, 호주에 사는 지인들이 이민을 오라는 충고를 받기도 했어요. "너 한국에 있느니 이제 그만 포기하고 호주로 와라. 여기서 열심히 하면 한국보다 의식주 해결이 훨씬 편하다." 라고 말이죠."
한: "그래도 전 한번 정도는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어요. 사실 제가 운이 좋은 편이 아니에요. 하지만 남들이 일생에 기회가 3번 온다면, 저는 최소한 1번은 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버텼죠."
한정수가 밝고 경쾌하게 고백하는데, 무명 시절의 어려움은 그리 작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 한정수 추노 덕분에
그러다가 결국 한정수는 추노로 얼굴을 크게 알리게 됩니다.
한: "드라마 추노가 나에게 온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곽정한 감독님 역시 나에게 “(추노는 너에게) 마지막 기회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씀하셨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작품에 임할 때 부담이 컸다."
한: "당시에 내 인지도가 워낙 없었기에, 그 배역을 내가 하는 것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다. 마지막 총 리딩에서 최종결정 여부가 판가름이 났는데, 그때 정말 죽을힘을 다했다. 총 리딩이 끝나고 감독님께서 “너무 잘했다”며 흡족해 하시더라."
한: "최종 오디션에서 '상의를 살짝 벗어보세요'라는 제작진의 요구에 복근을 보여줬는데, 감독님과 관계자들이 무척 흡족해하시더라(웃음)."
* 한정수가 빛을 보게 된 이유는
한: "사실 10년간 무명생활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운동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을 했다. 운동이라도 안하면 내 존재감 자체가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에 운동에 더욱더 매달렸다. 그 당시(무명시절)에 뭔가 열심히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게 필요했고, 그 대상은 운동이었다."
확실히 한정수가 대단하네요.
10년간의 무명생활, 게다가 남들보다 뒤늦은 출발이었기에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시달렸을 텐데, 운동에 전념해서 스스로 몸을 만듭니다.
아마 한정수가 술 마시고 담배피고,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을 소모했다면, 추노라는 '기회'가 와도 결코 배역을 따지는 못했을 것 같네요.
사실 노력한다고 누구나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노력을 하지 못하면, 그 성공에 대한 '기회'조차도 찾아오지 못하죠.
한: "내가 한때 개그맨 시험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내가 사람들 웃기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개그를 가르쳤는데, 개그는 1차원적 개그부터 3차원적인 개그까지 (다양하게) 있다."
이처럼, 돌이켜보면 한정수의 재능은 다양했던 것 같습니다.
축구를 비롯한 운동부터, 음악, 개그, 그림, 경제학, 연기까지...
한정수 아버지 한창화가 아들에게 축구 소질이 없다고 평가했는데, 아마 3년만에 축구를 포기한 아들에 대한 실망감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소질도 소질이지만, 무슨 일이든 끈기와 근성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니까요.
한정수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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