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인생에서 선택이란 참 묘한 존재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같은 존재같지만, 사실 '어제의 선택'으로 '오늘의 나'는 변하게 되는 존재이죠.
농구선수 현주엽이 아주 좋은 사례입니다.
그는 과거의 선택으로 훗날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데, 그의 경우를 봐도 '인생에서의 선택'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현주엽 서장훈 사진
농구선수 현주엽은 1975년 7월 27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현주엽 고향). 올해 41살이죠(현주엽 나이).
(현주엽 키 몸무게) 195cm, 98kg(후에 120kg)
(현주엽 학력 학벌) 서울 도성초등학교, 휘문중학교, 휘문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학사
(현주엽 프로필 및 경력) 1998년 청주 SK 나이츠로 프로 데뷔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후에 팀명이 코리아텐더, 부산 KTF 매직윙스로 변경), 창원 LG 세이커스
# 목차
* 어린 시절 현주엽 서장훈의 인연
* 현주엽 고대(현주엽 고려대) 선택 이유
* 선택으로 변한 인생
* 현주엽 감독과의 알력과 깨달음
현주엽 사진
* 어린 시절 현주엽 서장훈의 인연
현주엽은 휘문중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한 다음 농구부에 가입합니다.
그런데 당시 농구실력이 부족했던 현주엽은 1년 선배인 서장훈과 함께 늘 벤치를 지키는 신세였죠.
서장훈: "늘 벤치신세였다. 당시 1년 후배인 현주엽과 함께 수영장에 놀러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참 묘한 일이네요.
한시대를 풍미했던 센터 2명이 같은 중학교 벤치에서 후보 신세로 지냈으니까요.
이후 현주엽과 서장훈은 휘문고 시절 기량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고교 농구의 '무적 휘문고'를 만듭니다.
이 당시에 현주엽과 서장훈은 친한 선후배지간이었지만, 또한 서로간에 라이벌 의식 역시 대단했습니다(당시 일각에서는 '현주엽 서장훈 싸움'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을 정도였죠).
고교 졸업 이후 서장훈은 연세대로 진학했고, 1년 뒤 현주엽은 고려대로 진학하게 됩니다.
당시 휘문고 졸업생들은 대부분 연세대로 가는 관례에 비춰보면, 현주엽의 선택이 무척이나 이례적이었죠.
현주엽(이하 현): "고려대가 1993년 3월 대학연맹전에서 8강 진출에 실패하는 것을 보고 고려대 진학을 결정했다. 당시 연세대는 이미 대학 최강이었기에 그런 연대에 들어가기보다는, 연대와의 대결에서 늘 열세에 있는 고대에 들어가서 나의 가치를 입증해 보이고 싶었다."(현주엽 고려대)(현주엽 고대)
또한, 일각에서는 당시 연대에 서장훈이 있었기에, 현주엽이 고대를 선택했다는 말들도 많았습니다.
분명히 친한 선후배이기는 하지만, 농구에 있어서만큼은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라이벌이었기 때문이죠.
(참고로 서장훈에 대한 포스팅)
2013/08/16 - 무릎팍도사 서장훈, 오정연과의 이혼심경고백 그리고 재산분할
과거에는 라이벌이었지만, 현재는 해설도 같이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현주엽 서장훈 해설)
* 현주엽 고대(현주엽 고려대) 선택 이유
고대에 들어간 현주엽은 늘 연대와의 승부에서 서장훈과 부딪히게 됩니다.
당시 서장훈은 국내 최고의 센터로 손꼽혔고, 고대에는 서장훈을 대적할 만한 센터가 없었기 때문이죠.
결국 현주엽은 플레이스타일을 바꿔서 '빅맨'이 되어서 센터가 됩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 이후 현주엽과 서장훈은 동시에 청주 SK 나이츠에 입단하게 됩니다(당시 서장훈이 미국 유학으로 1년 늦게 졸업했음).
당시 SK 감독은 안준호 감독은 '현주엽과 서장훈'의 영입으로, 곧바로 프로리그 '우승'을 꿈꾸며 환호작약했지만, 이런 바램은 곧 실패로 드러납니다.
바로 현주엽의 포지션이 서장훈과 완전히 중복되었기 때문이죠.
현주엽 슈퍼파워 별명을 얻은 무한도전
현주엽 무한도전의 한 장면
사실 둘이 같이 활동하던 휘문고 시절에는 서장훈이 센터, 현주엽이 포워드 역할을 주로 맡았지만, 대학 시절 서장훈을 상대하던 현주엽이 '몸집'을 늘리면서 '빅맨'이 되었던 것이죠.
결국 안준호 감독은 경질되고, 뒤를 이은 최인선 감독은 현주엽을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시킵니다.
이후 현주엽은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등에서 플레이를 하는데, 대학시절의 빅맨보다는 '포인트 포워드'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줍니다.
하지만 잦은 무릎 부상으로 결국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여한'을 남긴 채로 2009년 은퇴를 하게 되었죠.
당시 1년 선배인 서장훈은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서장훈: "주엽이의 은퇴가 상당히 아쉽다. 같은 팀에서 시작했으니, 마지막도 같은 팀에서 마무리하자고 약속했는데..."
현: "(당시 심각한 무릎부상으로 은퇴 기자회견장에 목발을 짚고 나타남) 장훈이 형한테도 미안하고... 저도 아쉬움이 남아요. 예전의 기량을 발휘할 수 없는 몸상태이기 때문에, 지금 물러나는 것이 옳다는 판단 때문에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현주엽 농구골대 - 현주엽 덩크로 백보드 박살낸 사진)
현주엽은 과거 대학 시절 초기만해도 가벼운 몸에 덩크까지 자유자재로 할 정도의 엄청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주엽 백보드 박살) 그런데 몸집이 커진 다음에는 이런 운동량을 잃게 되었죠.
'현주엽 기록'이 불멸의 것으로 남게 되겠지만, 여전히 아쉬운 선택의 한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 선택으로 변한 인생
인생의 선택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본인의 '선택'에 의하여, 결과적으로 '본인'이 변하게 되는 것이죠.
만약 현주엽이 대학을 연세대로 선택했다면 어땠을까요?
서장훈이라는 센타가 있는 연대에서, 현주엽은 굳이 '빅맨'이 될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무리하게 몸무게를 늘릴 필요도 없었고, 후일 프로 리그에서도 잦은 무릎 부상에 시달릴 필요가 없었을테죠.
일반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직업을 은행원, 엔지니어 혹은 만화가를 선택한다면, 본인 역시도 그 직업의 영향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변해갑니다.
은행원이라면 숫자와 회계에 더 밝게 변할 것이고,
엔지니어라면 기능 개선과 문제 해결에 집착할 것이며,
만화가라면 상상력을 위하여 본인의 머리를 쥐어짤 것입니다.
생계수단으로 선택한 직업이지만, 하루의 대부분 각자의 직업적인 일로 신경을 쓰고, 결국 20~30년 후에는 본인의 품성의 상당 부분을 형성하게 되죠.
이는 배우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으며,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배우자와 협력으로 해결하든 혹은 혼자 해결하든,
알게 모르게 배우자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죠.
결국 '현재 나의 선택'이 모여서 '미래의 나'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 현주엽 감독과의 알력과 깨달음
현주엽은 은퇴하기 전인 2007년 결혼식을 합니다.
(현주엽 아내 박상현에 대해서는 밑에서 설명).
그런데 이 전후로 현주엽은 팀내에서 조금 묘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현: "원래 감독님(신성우)은 (선수들과) 개인적인 대화가 별로 없는 스타일이잖아요. 그런데 5월인가 갑자기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뭐 (앞으로) 열심히 해보자는 내용이었죠."
현: "당시에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한 20일 정도 지난 후 전자랜드의 선수 몇 명과 나를 맞트레이드한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냥 웃고 말았죠."
현: "뭐 트레이드는 프로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죠. 게다가 당시 감독님과의 불화설까지도 퍼졌어요. 전 개인적으로 감독님의 지시를 어긴 일이 없거든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장가까지 갔는데, 정말이지 팀 성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에요."
현주엽 과거 사진
은퇴 이후 현주엽은 본인의 농구 인생에서 아쉬운 부분을 털어놓습니다.
현: "농구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팀을 옮기며 여러 감독님들을 만났다. 덕분에 감독님들의 성향을 잘 파악하게 되었다. 감독님들은 팀을 맡으면 대부분 다루기 힘든 선수나 나이 많은 선수를 내보내려 한다."
현: "원래 고참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이 후배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팀 감독에게는 어떤 도움을 줘야 하는지 설명해 나가야 하는데, 일부 감독님들의 경우는 본인이 쓰고 싶은 선수, 데려오고 싶은 코치들을 뽑기 위해 고참 선수들에게 거리를 둔다."
현: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나이 먹은 선수들은 트레이드나 은퇴를 해야 하고, 은퇴 후 할 일은 없게 되고…. (나이 많은 선수들도) 스스로 은퇴를 준비하고 결정해야 하지만, 대부분 떠밀리듯이 갑작스럽게 은퇴를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참고로 이런 일은 농구계에서 비일비재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연세대 감독이었던 최희암의 경우였습니다.
연대 농구부로 전성기를 열었던 최희암은 2002년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현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감독으로 인명되면서, 기존의 주축 선수들이었던 중앙대 출신의 고참 선수들을 모두 정리하고 자신의 제자들인 어린 연대 출신들로 팀을 채워버립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실패로 끝났고, 최희암은 2003~2004 시즌 초반, 성적 부진으로 경질됩니다.
이렇게 농구계에는 현주엽의 말처럼 이렇게 감독에 의한 '고참 선수 정리'가 종종 일어납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농구뿐만 아니라 우리네 인생살이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새로운 팀장은 나이 많거나 경력이 많은 팀원들이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죠.
결국 팀장과 고참 팀원간에 벽이 생기고, 이런 문제로 팀웍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면, 결국은 모두의 손해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현주엽은 팀장(감독)의 자세만 지적했는데,
사실 이런 경우네는 고참 팀원 역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현주엽이 조금 더 인생을 살거나, 나중에 농구 감독을 맡게 되면, 그 반대의 경우도 깨닫게 되지 않을까 하네요(현주엽 감독).
(현주엽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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