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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래 타이거JK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윤미래와 타이거JK에 대해서는 좀 잘못 알려진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어린 시절과 가수 데뷔 초창기 시절에 흥미로운 사건들이 많았죠.


또한, 윤미래와 타이거JK가 어떻게 연인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소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윤미래 타이거JK 사진


가수 윤미래(본명 겸 미국 이름은 나타샤 샨타 리드(Natasha Shanta Reid))는 1981년 5워 31일 미국 텍사스 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납니다(윤미래 고향). 올해 35살이죠(윤미래 나이).

(윤미래 종교) 기독교

(윤미래 국적) 미국

(윤미래 키 몸무게 혈액형) 162cm, 46kg AB형

(윤미래 학력 학벌) 2005년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패스함

(윤미래 프로필 및 경력) 1997년에 Uptown 1집 앨범 [다시 만나줘]를 통해 데뷔(윤미래 예명 Tasha)


2001년  T aka 윤미래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했고, 이후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랩퍼로 성장하게 됩니다.


# 목차

* 윤미래 혼혈과 어린 시절

* 윤미래 이혼 가정에서

* 윤미래 데뷔 일화

* 윤미래 타이거JK의 인연

* 윤미래 남편 타이거JK

* 타이거JK 노래 시작 이유

* 타이거JK 윤미래에게 청혼

* 타이거JK 척수염

* 타이거JK 군대

* 타이거JK 윤미래 노래 무단 사용 사건



* 윤미래 혼혈과 어린 시절


윤미래 아버지  J. 리드(Thomas.J.Reid)(이름)는 주한미국 부사관 출신입니다.

한국인이었던 윤미래 어머니와 한국에서 만나서, 미국 텍사스로 건너가서 윤미래를 낳게 되었죠.


그리고 윤미래는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미국과 독일, 한국 등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윤미래: "(취미 생활로) DJ 활동을 하셨던 아버지는 월급만 타면 LP를 사들고 오셨어요. 서너 살 때부터 70년대 음악이 자장가였죠. 저는 좋아하는 LP를 가리키며 틀어달라고 아버지를 쫓아다녔어요. 집안에 LP가 3만 장에 육박하자 어머니는 '우린 어디서 자냐, LP를 머리에 이고 살라'며 투정부리셨죠."


윤미래: "아버지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런 환경 때문인지 저는 어릴 때부터 음악과 친해질 수 있었고, 노래만 나오면 흥얼거리고 춤을 췄죠. 음악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저 역시 음악을 사랑하게 된 겁니다."


윤미래가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았네요.



윤미래: "외동딸로 자랐지만 어렸을 때는 어머니와 그리 친하지 않았어요.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 어머니와는 거의 대화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한국에 온 후 어머니는 저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었어요.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는 일이 많았는데 어머니만은 변함없이 저를 지켜주었죠."


윤미래: "저는 텍사스에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자랐어요.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유럽 등을 돌아다니다 열 살 때 처음 한국에 왔는데, 한국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얼굴 까만 아이에게 이곳은 너무 낯설었어요."


윤미래: "나중에 외국인 학교에 진학했지만, 그곳에서도 혼혈인 저는 이방인인 것은 마찬가지였어요. 너는 미국인이냐 한국인이냐, 아니면 흑인이냐 동양인이냐 하고 묻는 사람들이 싫었어요. 저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그저 평범한 아이일 뿐인데 집 밖에만 나가면 이상한 사람이 돼 있었죠. 저한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건, 아이에게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얼른 대답해봐’라고 묻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거예요."


윤미래가 혼혈로 놀림을 많이 받으며 성장한 것 같네요.



* 윤미래 이혼 가정에서


그러다가 윤미래 부모님은 2002년 경 서로 이혼하게 됩니다.

(타이거JK 아내 윤미래 이혼 가정에서...)


이후 윤미래 아버지는 대구 미군부대에서 군무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윤미래의 3집 앨범에 직접 나레이션으로 참여하기도 하죠.


3집 후속곡 검은 행복 일부 가사

- 유난히 검었었던 어릴 적 내 살색/사람들은 손가락질 해 Mommy한테/내 Poppy는 흑인 미군/(중략)난 내 얼굴을 씻어내/하얀 비누를 내 눈물에 녹여내/까만 피부를 난 속으로 원망해/(중략)열세 살은 열아홉 난 거짓말을 해야 해/내 얼굴엔 하얀 화장 가면을 써달래/엄마 핏줄은 OK 하지만 아빠는 안돼~.


윤미래 어머니는 윤미래가 결혼 후에도 함께 사는데,

부모가 이혼한 뒤에도 윤미래와의 관계는 계속 이어지는 것 같네요.


* 윤미래 데뷔 일화


윤미래는 어린 나이에 우연히 가수 데뷔를 하게 됩니다.


윤미래: "열세 살 때 아는 오빠가 오디션을 본다기에 따라갔다가 우연히 가수가 됐어요. 카페에서 기획사 담당자와 오빠가 얘기를 나누는 걸 지켜보는 게 지루해 마침 흘러나오고 있던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불렀는데, 기획사 사람이 ‘목소리가 좋다’며 ‘가수할 생각 없느냐’고 하더라고요. 아마 토니 브랙스턴의 음악이었던 것 같은데, 그게 제 오디션 곡이 된 거예요."


어린 나이에도 윤미래의 목소리가 좋았던 것 같네요.

마치 유명 탤런트들이 친구따라 오디션장에 놀러왔다가 데뷔했다는 일화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윤미래: "그 기획사 담당자 분이 ‘당장 하자는 건 아니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같이 하자는 것’이라고 하기에 별 생각 없이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어요. 그 당시 아빠는 ‘학교라도 졸업한 뒤 하라’고 말리셨지만, 내가 ‘어차피 음악을 할 거라면 지금 하고 싶다’고 우겼죠."



하지만 당시 윤미래가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문제가 됩니다.


윤미래: "결국 프로필 나이는 열아홉이 됐고, 아버지가 흑인이라는 사실도 숨겼어요. 이런‘거짓말’이 저에게 큰 상처가 되었죠."(윤미래 데뷔 초기 시절에 대한 고백)


(참고로 윤미래가 1997년 앨범을 내고 정식 데뷔했지만, 13살때부터 활동을 시작함)


윤미래: "그때 이후로 전 6년 동안 열아홉 살로 살았어요. 이번에(2007년) 앨범을 내면서 제 나이를 스물 여섯이라고 밝혔더니, 누군가 ‘저 아줌마가 스물여섯 살이래. 나이를 속이네’ 하는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그냥 웃음만 났죠. 시작을 그렇게 했기 때문에 저 자신을 솔직히 드러낼 수 없다는 게 늘 힘들었어요."


확실히 정직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처음 잘못 꼬인 실타래는 나중에도 제대로 풀기 힘들기 때문이죠.



* 윤미래 타이거JK의 인연


그러다가 윤미래는 소속사와 분쟁을 겪고, 약 4년 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됩니다.


윤미래: "소속사 문제 등으로) 4년여 공백기를 보내며 음악을 포기하려 했어요. 사람과의 믿음에 실망했고 제가 인생에서 뭘 원하는지 깨달았죠. 처음엔 스타를 꿈꿨는데 그냥 편해지고 싶었어요. 평범하게 공부해 다른 일을 찾으려 했죠. 그런데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결국 또 음악이었어요."


그리고 윤미래는 이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되어준 타이거 JK와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윤미래: "JK 오빠는 가족이기 전에 가장 친한 친구고, 가장 가까운 동료예요."


결국 윤미래와 타이거JK는 2007년 6월 7년의 연애끝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윤미래 남편 배우자 타이거JK)


이후 타이거JK와 윤미래는 아들 서조단을 낳게 됩니다.

(타이거JK 윤미래 자녀 자식)(타이거JK 윤미래 가족관계)


타이거JK 윤미래 아들 사진


* 윤미래 남편 타이거JK


타이거JK(본명 서정권)는 1974년 6월 11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타이거JK 고향).

올해 42살이죠(타이거JK 나이).

(타이거JK 국적) 미국

(타이거JK 키 몸무게) 180cm, 65kg

(타이거JK 종교) 불교

(타이거JK 학력 학벌) 베버리힐스 고등학교 졸업, UCLA 창작문예학과

(타이거JK 프로필 및 경력) 1999년 드렁큰 타이거 1집 앨범 [Year of The Tiger]으로 데뷔


이후 Year of the Tiger, 위대한 탄생, 뿌리, Feel gHood Muzik 등의 앨범을 내면서 활동하게 됩니다.


참고로 타이거JK의 아버지 서병후는 한국의 연예부 기자 출신이고, 미국 음악 잡지 「빌보드」의 한국 특파원을 지내기도 합니다. 한국 최초의 팝 칼럼니스트라는 명칭도 얻었죠.


타이거JK: "아버지가 팝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어머니는 그룹 들고양이의 리더로 활동하셨다."


타이거JK의 어미니가 바로 김성애(이름)죠.

뮤지션 가족이네요.


타이거JK 과거 사진


하지만 타이거JK 아버지는 나중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금강승불교에 귀의해서 역경과 설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타이거JK는 초등학교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타이거JK: "집안에 남자가 나 혼자였기에, 내가 여자처럼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아버지는 나를 삼촌이 있는 마이애미로 보내셨다."


당시 타이거JK 삼촌은 마이애미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타이거JK는 태권도를 좋아하게 됩니다.


또한 안젤리나 졸리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타이거JK: "미국의 안젤리나 졸리와 고교 동문이다. 당시 안젤리나 졸리를 남자들이 많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늘 혼자 조용한 사차원 여학생이었다."


타이거JK: "고교시절 친구들의 관심을 사기 위해 잘 나가는 여학생을 사귀어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사랑은 아니었다."



* 타이거JK 노래 시작 이유


1992년에는 LA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흑인들이 백인에 의한 인종차별때문에 일어난 폭동이었지만,

평소에 감정이 좋지 않았던 한국인들 역시 많은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런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흑인 아이스큐브(ICE CUBE)는 'Black Korea'란 노래로 한국을 비하하기도 합니다.


타이거JK: "고등학교 2학년 때 아이스큐브가 ‘Black Korea’라는 노래로 한국인을 비하했는데, 너무 분했죠. 그래서 역사시간에 논문을 발표해야 했는데, 대신 음악을 틀고 그 노래 가사를 반박하는 랩을 했어요. 의미가 있었는지, 학교에서 상을 받았어요."


타이거JK: "이후에 LA에서 흑인폭동이 터졌는데, 힙합 페스티벌에 초대된 거예요. 당시 한국인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안 좋았어요. 사람들이 거기에 가면 다친다고 다들 말렸죠. 저를 초대한 것도 ‘한번 당해봐라’였던 것 같아요. 거기에서 ‘Call Me Tiger’라는 노래로 즉흥 랩 부문 상을 받았어요."


이게 계기가 되어서 타이거JK는 드렁큰타이거 멤버 DJ샤인을 만나 그룹을 결성하고, 한국으로 진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첫번째 진출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죠.



타이거JK: "미국에서 당했던 인종차별을 제가 한국에서 목격하고 너무 놀랐어요. 저보고 ‘한국말도 못하는 놈이 뭘 한다고’ ‘너는 눈이 찢어져서 안 된다’ ‘안무가 없어서 안 된다’ ‘소음이다’ 등등 별의별 욕을 다 들어봤어요. 방송국의 어떤 PD는 ‘힙합은 이런 거’라면서 룰라의 노래를 틀어줄 정도로 힙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어요.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울면서 떠났죠."


타이거JK 역시 기본적으로 한국어가 서툴렀기 때문에 이런 대우를 받은 것 같습니다. 아마 이런 부분이 후에 부인 윤미래를 만났을 때 서로 동병상련의 느낌을 준 것 같네요.


이후 타이거JK는 UCLA 대학을 다니다가, 다시 한국에 초대를 받아서 오게 됩니다.


타이거JK: "1997년에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초청에 응해 다시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고등학생 시절과는 다른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 길거리에서 공연도 하고, 미사리 카페나 양로원을 찾아가서 힙합 공연을 하기도 했죠. 사람들의 ‘황당한’ 반응 자체가 즐거웠어요."


이후 타이거JK는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합니다.



* 타이거JK 윤미래에게 청혼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속사 분쟁을 겪던 윤미래와 가까워져 결혼하게 됩니다.


타이거JK: "당시 반지를 살 만한 돈이 없었다. 그래서 프러포즈 당시 저녁을 만들어주고나서 무릎을 꿇고 윤미래의 손가락에 노란 고무줄을 감아주면서 '내가 이 고무줄을 네가 원하는 반지로 바꿔줄테니 나랑 평생 함께 살자'고 말했다."


타이거JK: "그러자 윤미래가 펑펑 눈물을 쏟으면서 승낙해줬다. 그래서 재래시장에 같이 가서 2만 5천원짜리 반지를 나눠끼고 결혼식을 올렸다."


윤미래: "타이거JK가 결혼 당시 반지를 해줄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지금은 반지보다 집을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윤미래의 말은 농담입니다.

집같은 물질적인 것을 원하는 여성이라면, 노란 고무줄 청혼을 받아들일리가 만무하니까요.


사실 타이거JK와 윤미래가 결혼하기 전에 마약사건에 연루되어서 큰 곤욕을 겪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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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거JK 척수염


또한 타이거JK는 척수염을 앓기도 합니다.


타이거JK: "언젠가부터 걷는 것도 힘들고 몸이 이상해서 병원에 갔더니 디스크래요. 1년 동안 병원에서 디스크 치료를 받았는데, 효과가 별로 없었죠. 그런데 어느 날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고 일어나지도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큰 병원에 갔더니 척수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죠. 희귀한 병으로 전문의도 몇 분 안 계신데요."


참고로 척수염이란 바이러스 감염으로 척수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입니다.

뇌에 신호를 보내는 척수 이상으로, 뇌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죠.


타이거JK: "제 컨디션에 따라 몸의 상태도 달라져요. 어떤 때는 내가 언제 아팠는지 모를 정도로 몸이 가뿐하지만, 컨디션이 나빠지면 소변도 나오질 않고 다리에 마비도 와요. 갑자기 쓰러질 때도 있어서 요즘은 지팡이를 짚고 다녀요. 후유증으로 다리 감각이 이상해져서 온도를 반대로 느끼죠. 찬물은 뜨거운 물로 느끼고, 뜨거운 물은 찬물로 느끼고 있어요."


찬물을 뜨거운 물로 느끼고, 뜨거운 물을 찬물로 느낀다라...

척수염은 무척 희귀한 질환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런 희귀병을 앓았지만, 이제는 거의 완치가 되었습니다.


타이거JK 측근: "지금은(2006년) 거의 완치 단계다. 그래서 어제 공연에서도 무대를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 타이거JK 군대


참고로 타이거JK는 군대를 가지 않습니다.

국적이 미국이기 때문이죠.


아마 아들 서조단 역시 병역은 상관이 없을 것 같네요.

부모들의 국적이 모두 미국이기 때문이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타이거JK 아버지 서병후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활동을 합니다.

사회적으로 이런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받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 많아질까 우려스럽네요.



윤미래: "아들 조단이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다. 남의 시선 신경 안 쓰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한다. 엄마, 아빠와 같은 뮤지션의 길은 아무래도 너무 힘들기 때문에 굳이 시키고 싶진 않다. 그래도 만약 음악을 선택한다면 타이거JK는 매니저로, 저는 스타일리스트로 조단을 그림자처럼 붙어다닐 거다. 그 전에는 그저 음악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직업으로는 조금 위험(?)하다."


아들에 대한 윤미래의 사랑이 각별히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 타이거JK 윤미래 노래 무단 사용 사건


참고로 2014년 영화 '디 인터뷰'에서 윤미래의 노래를 무단 삽입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필굿뮤직(윤미래 소속사): "당초 '페이 데이'를 영화에 삽입하는 것에 대한 최초의 협의는 있었으나, 어느 순간 협의가 중단돼 당사는 이를 없었던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 개봉 후, 영화 내 음원 사용을 위한 정당한 절차나 계약 없이 무단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4년 12월 26일 입장 발표)


필굿뮤직: "당사는 영화 제작사인 소니 픽처스와 음원 사용 관련 협의를 진행해온 에이전트인 DFSB사를 상대로 법적인 절차를 진행할 것이다."


이 소식을 외신들도 전합니다.

NBC, CBS, BBC, 워싱턴포스트, 시드니 모닝 헤럴드 등 해외 주요 매체가 일제히 필굿뮤직의 소송 계획을 보도했고, MTV, 할리우드리포터, 뮤직타임스 등 음악·방송매체들도 이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룹니다.


스타일라이트(온라인 문화잡지): "소니픽처스는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노래 제목이 '페이데이(지급일)'인 만큼, 소송에 딱 맞는 트랙이다."

(2014년 12월 31일 보도)



이에 대하여 소니뮤직측은 최고위층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모 법조계 관계자: "미국 소니 픽쳐스의 최고위 관계자가 직접 '무단 사용' 사건을 챙기고 있다. 첫 보도(12월 26일 일간스포츠 단독 보도) 이후 자체적으로는 상황 파악을 끝냈다. 타이거 JK 측 변호인과 만나서, 협상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

(2015년 1월 8일 보도)



소니뮤직이 무단 사용한 것이 명백한 만큼,

소니측에서는 재판까지 가지 않고 조용히 합의해서 사건을 끝내려고 할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윤미래는 한국 최고의 래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음색에 흑인 특유의 필이 있고, 본인이 오랫동안 부단한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죠.


윤미래: "반(半) 흑인인 난 정말 복받은 사람이다."


비록 윤미래가 어렸을 때는 흑인 혼혈이라고 놀림을 받았지만,

이제는 인생에서 가장 큰 자산이 된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을 생김새나 피부 색깔, 혼혈 등으로 놀리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고,

또 그것으로 본인이 상처를 받을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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