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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양현석 서태지 최고의 흑역사/서태지에 대한 이문세의 막말

(양현석 비하인드 스토리)

서태지와 아이들은 과거 최고의 아이돌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인지 항상 수많은 루머에 시달렸고,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많죠.


양현석과 서태지의 진짜 관계, 이주노 왕따 사건의 진실, 그리고 이에 대한 이문세의 막말까지 살펴봅니다.


양현석 사진


# 목차

* 양현석 어린 시절

* 양현석의 흑역사 첫번째

* 양현석의 흑역사 두번째

* 양현석 흑역사 세번째

* 양현석의 서태지와 이주노에 대한 태도 차이

* 양현석이 이주노에게 섭섭함을 느낄까?

* 이주노 왕따 사건의 진실

* 양현석과 이주노 안무 주도권은 누구에게?

* ceo 양현석 명언 어록

* 서태지에 대한 양현석의 잘못된 충고

* 서태지에 대한 이문세의 막말



* 양현석 어린 시절


양현석은 어릴 적 남들과 좀 달랐습니다.

양현석: "제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태몽으로 집채만한 하얀 돼지가 배추밭에 덩그러니 누워 있었던 꿈을 꿨대요. 그래선지 저를 어려서부터 '돼지야'로 불렀어요."


양현석: "중학교 때 학교수업 땡땡이 치고 놀다 들어가서 죽도록 맞았어요. 부모님이 아닌 형한테서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랬는지 몰라도 부모님보다도 형한테 더 많이 혼나면서 자랐죠."


양현석: "고교시절 내방이 온통 새장(30여개)으로 꽉 차도록 새 기르는데 미쳐 있 

었죠. 호금조 십자매 소문조 카나리아 잉꼬 등을 기르다가 아버지가 온 집안에 새똥 냄새로 진동한다며 철거했어요. 그래서 그 다음엔 개 네마리를 나 혼자서 키웠죠."(양현석 고백)



또한 양현석은 어릴 때 춤에 푹 빠져 살게 됩니다.


양현석: "그 당시만 해도 남자 춤 추는 것을 이해 못하는 시대였다. 춤이 너무 배우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하도 답답해 114에 전화해서 상담원에게 물었다. '내가 이런 상황인데 전문적으로 (춤을 가르치는)하는 사람 있나. 번호를 알고 싶다'라고."


114 상담원도 좀 황당했겠네요.

사실 114가 이런 불명확한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는 곳은 아니죠.

하지만 당시 담당자가 무척 친절했는지, 대한무도협회 볼륨댄스하는 곳을 가르쳐 줍니다.


양현석: "대한무도협회가 내가 원하는 브레이크 댄스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었지만, 그곳 회장님이 친절하게 다른 곳을 안내해줘 춤을 배울 수 있었다."


결국 114 안내원 덕분에 양현석이 제대로 된 춤꾼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양현석: "어릴 적부터 사서 고생을 많이 했다. 댄싱팀 '보이스'에서 활동할 때 1년동안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춤추며 하루 종일 먹는 거라곤 라면 하나뿐이었다. 너무 배가 고팠지만 당시 는 고생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던 것 같다."


확실히 양현석은 보통 아이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새나 개, 춤에 대해서 이렇게 열중할 수 있었기에, 한때 최고의 춤꾼이 되었고, 이제는 사업가로 성공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양현석의 흑역사 첫번째


양현석은 늘 발음 문제를 지적받곤 했습니다.

혀 짧은 소리여서, 수많은 놀림을 받기도 했고, 심지어 근래에는 빅뱅의 승리가 자기 회사 대표의 성대묘사를 할 정도입니다.


데뷔 당시에는 서태지가 양현석의 발음 문제를 놀리곤 했죠.

사실 서태지 역시 발음이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양현석은 정도가 좀 심했죠.

그런데 양현석 본인은 자신의 발음 논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양현석: "빨리 고쳐야 할텐데... 그게 잘 안돼요. 그리고 사실 그게 저의 trade mark가 된 상태라서, 그런데 제가 하는 말- 정말로 듣기가 불편할 정도인가요?"


결국 양현석도 고치려고 노력은 했지만, 나중에는 그냥 자포자기하고 만 것 같네요.

그래서 키우는 제자(?)인 승리가 자기 성대모사를 해도 그냥 허허 웃고 넘어가는 것이겠죠.



* 양현석의 흑역사 두번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양현석이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하기 전부터 활동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스파크와 '박남정과 친구들'에서 댄서 겸 안무가로 활동하기 전부터 광고계에서 활동을 했었죠.


양현석은 1989년 당시 젊은 남자 연예인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과자 광고에 다수 출연합니다. 카스타드, 점보브라보콘, 땅콩강정, 덴타임 등의 총 4편이었죠.


그런데 양현석 본인은 이 시절을 자신의 흑역사로 생각합니다.


양현석: "89년부터 안무가 외에 CF에 출연했어요. 제 얼굴이 잘 생겨서 아니라 춤을 잘 춰서 출연한거죠. 그런데 제가 등장한 상품은 모두 히트하지 못 했다니... 흐음."



* 양현석 흑역사 세번째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후 양현석은 힙합 그룹 킵식스를 프로듀싱하지만 실패하고, 1998년 솔로 가수로 데뷔합니다(데뷔곡 악마의 연기).


당시 앨범속의 8곡중에 하나가 서태지로부터 받은 곡(아무도 안 믿어)이었기에, 굉장한 주목을 받기도 했죠.

이 당시 양현석은 서태지를 적극 이용하여 홍보 활동을 합니다.


양현석: "서태지와 7개월전에 한번 전화통화를 했고, 앨범 작업에 들어가면서 미국에서 몇 번 통화를 한 것이 다에요. 이번 앨범에 수록된 태지의 곡 역시 메일이 담긴 디스켓을 통해 전달 받았어요."


양현석: "3번 트랙에 수록된 '아무도 안믿어'라는 곡이 태지로부터 받은 곡이에요. 힙합이지만 멜로디에는 모던 록 적인 요소가 있어요. 태지가 하고 싶은대로 만든곡이죠. 노래 중간 중간에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태지의 샘플링한 목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가사는 제가 썼구요."



양현석: "저 역시 해체 후 한번도 태지를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항상 옆에 있는 

것 같아요. 태지한테 갑자기 전화가 온다해도 반갑지 않아요. 항상 옆에 있는 것 같은데 별다를 반가움이란게 없는거죠. 이런 느낌은 10년,20년이 지나도 똑같을거 같아요."


'항상 옆에 있는 느낌이라...' 마치 평생 반려자나 교주에 대한 감상같습니다.

헤어진 연인이라면 '그리움'에 대하여 이야기했겠지만, 양현석의 감정은 그것을 초월할 정도죠.

혹시 팬과 대중들이 자신과 서태지를 동일시, 혹은 '서태지의 가장 가까운 존재가 나'라는 것을 알아봐주었으면 하는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어쨌든 이 솔로 앨범은 실패했고, 본인 역시 무대에 서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지, 이후 다시 가수로 무대에 서지는 않습니다.



* 양현석의 서태지와 이주노에 대한 태도 차이


그런데 양현석의 서태지와 이주노에 대한 태도는 무척 다릅니다.

서태지에 대해서는 흡사 '교주' 같은 태도를 취하지만, 이주노에게는 거리감을 느끼게 하죠.


(2009년 7월 인터뷰에서)

양현석: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이주노와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음악적 성향뿐 아니라 개인적 성향이 너무 달라 친하지 않았다. 서로 앞만 보고 가는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일이 잘됐으면 한다."


이에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하여 향수를 가지고 있는 팬들은 굉장히 실망하기도 합니다. 이 당시에 양현석은 YG라는 거대 기획사를 성공적으로 꾸리고 있었고, 이주노는 여러 차례 사업 실패 이후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양현석이 이주노를 돕지 않은 것에 대하여 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참고로 이주노는 자신들의 관계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합니다(2007년 인터뷰).

이주노: "서태지와 양현석이 먼저 그룹을 준비하고 있던 상태에서 내가 들어갔으며, 활동을 하면서도 두 사람이 더 친밀한 건 당연했다."


이주노: "활동 당시 지방공연을 가더라도 방이 두 개면 서태지와 양현석이 한방을 쓰고, 내가 매니저와 방을 썼다. 활동할 때부터 우리는 그렇게 지내왔다."



* 양현석이 이주노에게 섭섭함을 느낄까?


그런데 사실 이주노에 대한 양현석의 이런 '거리감 있는 태도'는 이전에도 종종 있었습니다.

바로 위의 양현석이 '악마의 연기'로 솔로 활동을 할 때였죠.


양현석: "저 역시 해체 후 한번도 태지를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항상 옆에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이주노 씨랑은 같은 하늘아래 있어도 만나기가 더 힘들어요. 개인적으로 무척 바쁘시니까요."


양현석: "이번 제 솔로 앨범 이전에 셋이 함께 이야기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이주노씨는 제 앨범이 나온다는 것도 몰랐을 거에요. 개인적으로 무척 바쁘니까요."


이주노 사진


당시 상황을 좀 알아야 합니다.

1998년은 이주노가 영턱스클럽을 성공적으로 론칭한 이후 한창 바쁠 때였습니다.

(1996년 정 못난이 컴플렉스, 1997년 질투, 타인, 하얀 전쟁, 1998년 아시나요 등)



반면에 양현석은 킵식스가 망한 후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솔로앨범을 들고 나온 상황이었죠.

단순한 기분 탓일까요, 이주노에 대한 양현석의 섭섭함이 느껴지는 것 같네요.


어쨌든 이주노가 1966년생이고, 양현석이 1970년생, 서태지가 1972년생이었으니, 누가 뭐래도 큰형은 이주노였죠(다만 양현석의 실제 생년월일은 1969년 12월 2일(음력)으로 서태지와 3살 차이가 남. 밑에서 언급).




참고로 양현석은 2012년 다른 기획사의 걸그룹 라니아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해줍니다. 1997년 YG를 설립한 이후에 15년 만에 최초로 다른 소속사 가수에 대한 프로듀싱을 했는데, 바로 예전에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양현석: "1996년 처음 제작한 그룹 킵식스의 흥행 실패로 파산 위기에 놓여있던 나에게 다른 기획사 사무실 한켠의 지하 단칸방을 내준 지인이 있었다."


바로 이 지인이 2012년 당시 라니아 소속사 대표였습니다.

당시 양현석의 어려움이 어땠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 양현석과 이주노 안무 주도권은 누구에게?


한때 팬들 사이에 서태지와 양현석이 이주노를 왕따 시킨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서태지와 은둔자같은 성향에 한번 음악 작업을 시작하면 두문불출하면서 식사까지 방앞에 놔두도록 한 일화는 굉장히 유명합니다.


양현석: "(서태지와 아이들 당시) 태지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저나 이주노씨의 경우에는 춤,안무에만 치중하면 되니까 개인 생활이 있었지만 태지는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활동을 접은 후에도 방안에서 나오지 않고 음악 작업에만 몰두했어요. 개인 생활이 전혀 없었죠."


또한 양현석과 이주노 역시 서로간의 일 때문에 항상 바빴고요.



사실 양식이 있는 성인이라면, 중고등학교의 그런 왕따(따돌림)같은 것을 서로에게 하지 않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왕따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이 잘못된 생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성장한 다음에는 자신의 그런 과거를 부끄럽게 여기죠.)



어쨌든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가 서로 많이 친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서로 일적인 관계(비즈니스적인 관계)였다고 보는 것이 옳겠죠.


다만 한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팀내에 국내 최정상급의 안무가가 2명이나 있었는데, 안무에 대한 이견이 발생할 경우, 그 조율을 어떻게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활동 당시의 잘 포장된 인터뷰는 제외).

사실 이 팀의 중심은 서태지이지만, 서태지가 안무에 대하여 조율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죠.


해체 이후에도 양현석과 이주노가 수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 같네요.

나중에라도 서로 한자리에 나와서 이 부분을 고백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물론 현재 서로의 위상이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다만 당시 상황에 대한 인터뷰만이라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ceo 양현석 명언 어록


이후 양현석은 세븐, 빅마마, 휘성, 빅뱅, 투애니원등을 성공시키며 기획 3사가 되는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세븐 데뷔 일화와 관련되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네요.


양현석: "예전에는 오디션을 보거나 연습생을 키우지 않았다. 대부분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미 실력이 입증된 친구들이 능력을 펼치도록 도울 뿐이다. 내 모토는 그들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찾아온다."


양현석: "그러나 나는 그들이 스스로 실력을 갖출 때까지는 눈길 한번 안 준다. 세븐은 중 3때부터 나를 찾아왔지만 4년여를 기다려야 했다. 같이 기다린 친구들이 7명이었지만 그만이 끝까지 남았고 결국 성공했다."


양현석의 기획자 겸 회사 CEO로서의 태도가 어떤지 잘 알 수 있는 말입니다.



참고로 양현석의 ceo로서의 어록들입니다.


양현석: "내 오너(owner)관은 이거다. '일이 잘될 때는 맨 뒤에 있고 위기가 닥치면 맨 앞에 나서야 한다'는 것. 소속 뮤지션들이 잘 끓인 곰탕이라면 난 맛의 포인트를 주는 소금이 되고 싶다."


양현석: "곰탕에 들어간 소금은 1000분의 1 정도밖에 안되는 아주 적은 양이지만 소금이 없으면 곰탕의 맛은 낼 수 없다."


양현석: "44년간 살며 배운 철학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바로 필요한 게 없는 사람이다. 비즈니스를 할 때도 이 철학에 맞게 '나를 필요하게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



양현석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는 말 같습니다.

이런 가치관을 갖는다고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양현석이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었기에 성공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네요.


실제로 YG 소속 가수들은 다양한 개성을 갖고 있습니다.


양현석: " YG소속 가수들은 창법이 모두 다른데, 내가 가르치면 획일화될 것 같다. 사실 태양은 나보다 노래를 잘하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말을 하겠나."


양현석: "춤도 마찬가지다. 나는 ‘악마의 연기’이후 춤을 접었고, 지금은 안무가가 만든 걸 마지막에 점검하는 역할만 한다."


양현석은 스스로의 한계를 정확하게 아는 것 같습니다.



* 서태지에 대한 양현석의 잘못된 충고


다만 양현석이 서태지에게 한 충고는 굉장히 아쉬운 것 같네요.


양현석: "나는 서태지에게 ‘잔소리꾼’이었다. 예전에 서태지가 후배 가수들을 양성하려고 할 때 내가 말렸었다. 서태지는 정말 훌륭한 뮤지션이지만 제작자나 기획자로서 뛰어나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서태지가 후배 가수들을 프로듀싱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굉장히 궁금하네요.

비록 실패를 할지라도 서태지의 생각과 음악의 미래에 대한 관념 등을 알 수 있었을테니까요.

양현석의 이런 충고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 서태지에 대한 이문세의 막말


어쨌든 양현석은 방송에서 서태지와의 친분을 굉장히 과시합니다.

YG가 성공한 이후에는 많이 줄었지만, 과거에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치 '교주'를 우러러보는 것 같을 정도였죠.


하지만 양현석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서태지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양현석이 '이문세의 오아시스'에 출연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양현석: "서태지가 나보다 나이가 3살이 어리다. 그런데도 존대말을 안 쓴다."


이문세: "(그런 서태지가) 싸가지 없다."


2005년 당시 양현석의 말보다 이문세의 돌출발언(막말)이 더 논란이 되었던 사건이었습니다. MC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이 문제가 된 것이죠.


3살 연상에 대하여 반말을 하는 것에 대하여 한국의 문화에서는 비판을 할 수 있지만, 이문세처럼 MC가 방송중에 '싸가지'같은 비속어를 쓰면 문제가 됩니다.


어쨌든 이런 이문세와는 별개로, 아마 나이와 반말에 대하여 양현석이 서태지에 대하여 어느 정도 못마땅함은 갖고 있었던 것 같네요.



사실 서태지 역시 처음부터 양현석에게 말을 놓지는 않았을 겁니다.

데뷔 이전에 서태지가 양현석에게 거금 450만원(3달치)을 주고 댄스를 배우기도 했던 관계니까요.


위의 양현석과 이주노의 안무 주도권 다툼과 더불어, 언제부터 서태지가 양현석에게 말을 놓게 되었는지도 함께 밝혀보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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