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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윤도현 비하인드 스토리 5가지/윤도현 신해철의 인연

윤도현 인생 이야기

윤도현은 우리나라 대표 로커중의 한명입니다.

그런데 비하인드 스토리는 잘 알려지지 않았죠.


윤도현과 뮤지컬의 관계, YB 해체 당시 유병열(탈퇴한 기타리스트)의 입장, 그리고 윤도현과 신해철의 인연 등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네요.



윤도현 사진


가수 윤도현은 1972년 2월 3일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납니다(윤도현 고향). 올해 43살이죠(윤도현 나이).

(윤도현 종교) 개신교(기독교)

(윤도현 학력 학벌) 문산초등학교, 문산고등학교, 인천전문대학 토목공학,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윤도현 프로필 및 경력) 1994년 1집 앨범 [가을 우체국 앞에서로 데뷔


처음에는 솔로로 데뷔했는데, 1996년 2집부터는 1집 녹음에 세션맨으로 참여했던 김진원, 유병열, 박태희 등과 윤도현 밴드(후에 YB)로 활동하게 됩니다. YB는 한때 해체한 적도 있지만, 유병열 탈퇴, 허준 영입으로 재결성되었고,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외에 윤도현은 '윤도현의 러브레터', 라디오 '두시의 데이트', 여러 뮤지컬에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글의 법칙 처음부터 내레이션을 맡았는데(4년), 이번에 정글의 법칙에 최초로 출연하네요(윤도현 정글의 법칙). 윤도현의 허당 매력이 기대됩니다(출연진 - 윤도현, 김병만, 정두홍, 권오중, 류담, 박정철, 김규리, 김태우, 다나, 이재윤, 이기광, 타오).


# 목차

* 윤도현에게 뮤지컬이란?

* YB 해체의 속사정 - 윤도현의 입장

* YB 해체의 속사정 - 유병열의 입장

* 월드컵 가수라고 불리는 윤도현의 심정

* 윤도현 YB 수입 배분 문제의 흑막

* 윤도현 신해철의 인연


윤도현 과거 사진



* 윤도현에게 뮤지컬이란?


윤도현은 뮤지컬과 인연이 깊습니다.

데뷔 이듬해인 1995년 학전 록뮤지컬 개똥이에 '개똥이 역'으로 출연했고, 이때 현재의 아내 이미옥을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윤도현 아내 이미옥).


(윤도현 부인 이미옥과의 러브스토리 관련 글) 

2013/12/11 - 윤도현 아내(부인)이미옥 짝사랑이 맺어준 결혼



이후에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하드록 카페, 헤드윅, 광화문 연가, 원스 등에 계속 출연합니다.


특히 광화문연가는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음악으로 만들어진 뮤지컬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본격적인 주크박스 뮤지컬이기도 합니다.



윤도현: "선생님(이영훈)께서 몸 상태가 나빠지면서 정말 힘든 상황일 때도 끝까지 작품을 쓰고 계셨어요. 나중에 작품이 완성되면 저더러 꼭 출연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실제로 뮤지컬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무척 기뻤고, 꼭 해야만 한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재공연 무대에서도 선생님을 떠올리며 노래하고 있어요."


윤도현: "(광화문연가에서) 춤추는 데서 좀 애를 먹고 있죠(웃음). 하지만 음악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어요. 노래와 드라마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죠. 그냥 노래만 들을 때보다는 드라마를 통해 음악이 전달되면 더욱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잖아요. 저도 평소 곡을 쓸 때 슬픔, 기쁨 등의 감정을 담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는 편인데 이 작품을 통해서도 비슷한 마음을 느끼고 있어요.



윤도현은 이제까지 드라마나 영화에는 출연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데뷔 초기 영화 정글 스토리와 다큐멘터리 영화 '온 더 로두, 투'와 '나는 나비!' 등은 제외)


수많은 가수들이 까메오나 조연 등으로 출연하는데, 뮤지컬 배우로 활동해온 윤도현은 그러지 않네요.

사실 윤도현의 연기력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음악 뮤지컬 위주로 출연하죠.



윤도현: "(뮤지컬 <원스> 제작발표회에서) 그동안 기타를 많이 쳤다. 그런데 '윈스'에서 기타를 (새로) 배워야 한다고 해서 첫 날 배워보고 무조건 배워야겠다고 했다."


윤도현은 무려 20년 이상 경력의 기타리스트입니다.

뮤지컬에 대한 그의 열정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 YB 해체의 속사정 - 윤도현의 입장


다음은 YB 해체의 속사정입니다.

(YB 현재 멤버 -스캇 할로웰(기타), 윤도현(보컬), 박태희(베이스), 김진원(드럼), 허준(기타))

먼저 윤도현의 이야기를 듣고, 그 상대편인 유병열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윤도현: "2000년 4집 발표 후 YB는 해체를 했었다. 그때 있던 멤버(유병열)가 탈퇴를 했는데, 탈퇴는 곧 해체라는 생각에 밴드 활동을 접고 헤어졌다."


멤버들에 대한 윤도현의 애정이 어떤지를 잘 알 수는 대목입니다.



윤도현: "그런데 해체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아무도 우리가 해체 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래의 항목 '* 월드컵 가수라고 불리는 윤도현의 심정'에 서술된 것처럼, 윤도현과 YB는 2002년 이후 대중적인 주목을 받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꾸준하게 음악 활동을 했지만, 마이너한 리그였죠.

그런데 2000년경에 해체할 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는 윤도현의 고백이 지금에서는 좀 재미있네요. 아마 오늘날처럼 성공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윤도현: "멤버들 모두 각자의 길을 준비했다. 평소 개를 좋아했던 나는 본격적으로 애견 사육에 뛰어 들었다. 분양 하려고 10마리를 혼자 키웠는데 개똥치우고 밥 주면 24시간이 끝난다. 그렇게 한 3개월 개를 키웠는데, 활동을 접었던 4집 수록곡 ‘너를 보내고’가 갑자기 차트에 올라오더라. 사장님도 계속 활동하길 바랐는데 내 사전에 멤버 교체는 없었다."



윤도현: "그런데 어느 날 개 사료를 옮기다 TV를 봤는데 ‘너를 보내고’가 ‘인기가요’ 26위더라. 기분이 이상했다. 또 며칠 후 사장님이 ‘멤버 교체하고 음악 계속 하자’고 해서 기타리스트 허준을 영입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윤도현: "개 농장을 하면 아무데도 못 간다. 24시간 늘 개 옆에 있어야 한다. 한번은 개 한 마리가 도망을 가서 이웃집 모내기한 논을 다 망쳐놔 200만원을 물어준 적이 있다. 개들한테 정이 정말 많이 들었다. 1000만원 단위의 개도 있었다. 그런데 돈 주고 팔기 그래서 친구들에게 분양해줬다. 다들 잘 자라고 있다."


하마트면 오늘날의 뮤지션 윤도현 대신에 강아지 분양 사업가 윤도현이 있을 뻔했네요. 강아지 분양 업계에서는 큰 손실(?)이겠지만, 윤도현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YB 해체의 속사정 - 유병열의 입장


사실 YB 초창기 시절 보컬은 윤도현이었고 유병열은 기타리스트였지만, 유병열이 밴드의 활동 방향을 잡습니다(밴드의 리더였음). 유병열은 락을 사랑한 진정한 라커였고, 또한 리더쉽이 있었죠.


그러다가 서로간에 음악적인 활동 방향에 대한 마찰로 결국 탈퇴와 해체까지 가게 됩니다.


유병열: "노래 '담뱃가게 아가씨'를 끝낸 2000년 YB와 헤어지게 됐죠. 그때 가장 황당했던 건 '유병열이 윤도현과 싸워서 헤어졌다'는 소문이었어요. 이제 와서야 털어놓는 건데요. 저와 도현이는 절대 싸우지 않았어요."


유병열: "물론 오랜 기간 함께 있었고, 팀을 이끌어 갔어야 했기에 성격 차이가 있긴 했죠. 그렇지만 누구나 겪는 사소한 다툼으로 팀을 나간 건 아니에요. 단지 활동에 대한 의견이 달랐죠."



유병열: "제가 YB에 있었을 당시 크게 히트한 노래도 없었고 먹고 살기 힘들었던 때였는데요. 현실에 대한 돌파구로 (윤도현이) 강렬한 로커의 색깔 살짝 버리고 방송에 나가 대중과 친해지는 방법을 모색했거든요."



유병열: "근데 전 록 밴드가 연예인이 되는 게 정말 싫었어요. 로커는 로커다워야 한다는 주장이 정말 강했어요. 그래서 결국 제가 팀을 나가게 됐습니다. 그때는 혈기가 왕성했을 때라 절대 고집을 꺾지 않았어요. '로커는 이래야 한다'는 방정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정말 답답하게 굴었죠."



유병열: "요즘 (김)태원이 형이 예능에서 주가가 상당히 높잖아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 흐뭇하기만 한데 그때는 왜 그렇게 생각이 좁았는지 모르겠어요. 돌이켜보면 YB와 도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지금 최정상의 록 밴드로 서 있어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유병열과 윤도현은 개인적인 다툼이 아니라, 다만 음악적인 지향점이 달라서 서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후 서로 불편해 하던 두 사람은 13년만인 2011년 유병열의 기타 연주 미니앨범에 윤도현이 참여하고, 또 윤도현의 나는 가수다에 유병열이 참여함으로써 음악적인 화해를 하게 됩니다.


사실 이상은 숭고하고 깨끗하지만, 그것만으로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이상을 버리고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처음의 목적은 사라지고 현실과의 타협으로 점점 기울어집니다.


중도를 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사람인 이상 쉽지 않은 문제죠.



* 월드컵 가수라고 불리는 윤도현의 심정


사실 윤도현과 YB는 갑작스럽게 뜬 뮤지션과 그룹입니다.

2002년 월드컵 이전에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죠.

그러다가 2002년 SK텔레콤의 '오 필승 코리아'가 히트를 치면서 갑자기 부각됩니다.



윤도현: "사실 ‘오! 필승 코리아’는 YB 앨범에 있는 곡이 아니다. ‘오 필승 코리아’는 어느 광고 CM송(SK텔레콤)이다. 나는 아르바이트 비만 받고 가창만 했다. 무심코 불렀다가 갑자기 응원가로 뜨면서 얼떨결에 스타가 됐다."


윤도현: "게다가 나는 한일월드컵 열기가 고조될 당시 신혼여행을 떠났다(2002년 6월 15일 경).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자 급반전된 분위기에 크게 당황했다."



윤도현: "우리가 그 노래로 얻게 된 가장 큰 이득은 윤도현 밴드라는 이름을 전 국민에게 알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수십만 명 앞에서 ‘오 필승 코리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다른 노래도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윤도현은 '오! 필승 코리아'로 상처도 받습니다.


윤도현: "월드컵 이후 안티팬도 늘어났다. 원래 우리가 사회비판적인 노래를 많이 하는 밴드였는데, 월드컵이 끝나고 난 뒤, ‘국가적, 사회적 이슈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노래하는 밴드’라는 비판이 날아왔다.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화살을 맞으면서 상처도 많이 입고 지쳤다."


또한 애국가를 마케팅에 이용한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윤도현: "사람들 비판의 요지는 두 가지였어요. 우선 경건한 애국가를 응원가로 썼다는 것. 그런데 이런 식의 비판은 너무 고리타분한 것 같아요. 애국가는 나라 사랑하자는 노래인데, 애국하는 마음으로 부르면 되는 것 아닌가요? 또 하나는 애국가를 왜 상업적 광고에 썼느냐 하는 점인데, 그건 SK텔레콤에 물어봐야죠."



윤도현: "솔직히 월드컵이 끝난 직후 진지한 록을 하던 우리 본 모습은 사라지고 ‘월드컵 가수’로만 기억돼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그 이미지를 억지로 바꿀 수도 없어 그런 인식을 받아들이기로 했죠."


이후 윤도현과 YB는 좀 더 대중친화적인 밴드로 거듭납니다.



* 윤도현 YB 수입 배분 문제의 흑막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YB는 유병열이 음악적인 지향점이 달라서 탈퇴를 했을 뿐, 계속 기존 멤버 그대로 유지가 됩니다. 20년 이상 별다른 잡음없이 유지가 되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 '돈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윤도현: "팀 활동을 하다 보면 수입배분 문제로 잡음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애당초 그런 잡음이 싫어서 처음부터 똑같이 수입배분을 하고 있다. 따라서 혼자 방송 출연하는 것에 대해 멤버들이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에게 '고맙다. 네가 고생이 많다'고 한다."


윤도현: "다만 광고 출연은 내가 갖는데, 그런 개인활동으로 생긴 수익도 장비를 사는 방법 등으로 밴드를 위해 다시 투자하기 때문에 멤버들도 큰 불만이 없다."



김진원(드러머): "회사가 지탱을 해야 하니깐 그런 것이다."


박태희(베이스): "도현이가 CF가 들어오면 '밴드로 할 수 없느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몇개 같이 찍은 적이 있다."


사실 밴드가 잘 나가더라도 보컬이 뛰쳐나와 솔로로 데뷔하거나, 혹은 수입 배분 문제 때문에 불화를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YB는 윤도현의 욕심없는 결정 때문에 애초부터 불화의 싹을 잘라냈네요.


그런데 윤도현이 일방적으로 베푸는 관계일까요?



윤도현: "공연이 많다 보면 좀 소홀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무대에서 내려오면 멤버들이 서로 가차없이 독설을 내뱉는다. 그런 대화를 끊임없이 하다 보니까 자극제가 된다."


윤도현: "가장 독설을 많이 들은 멤버는 바로 나다. 내가 개인활동을 하면서 연예인의 삶에 빠지지 않도록 멤버들이 견제를 해준다. 조금이라도 음악에 소홀하게 되는 순간 내가 변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들을 때는 기분이 나빠도 돌이켜보면 변한 게 맞다."


즉, 윤도현 역시 멤버들 덕분에 적절한 음악적인 지향점을 잃지 않고 유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YB는 서로가 윈-윈하는 사람들같네요.


덧붙여, 독설을 퍼붓는 멤버들이나, 그걸 또 받아들이는 윤도현이나 대단한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YB 전체가 변한 적도 있습니다.


윤도현: "월드컵 당시에 멤버 전체가 변했다. 누가 누구한테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었다. 갑자기 큰 인기를 얻자 정신을 못 차리고 바보처럼 다녔다. 정말 끔찍했다."


하지만 윤도현과 YB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아마 서로에게 내뱉던 독설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모두가 정신을 차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윤도현 신해철의 인연


윤도현은 고 신해철과 특별한 친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해철이 불의의 사망을 했고, 그 죽음에 대한 의혹으로 논란이 되었을 때, 윤도현은 다른 음악 동료들과 함께 부검을 주장합니다.


윤도현: "싸이, 이승철 등 동료 가수들과 함께 유가족을 설득한 끝에 고 신해철의 시신을 부검하기로 결정했다. 가족 분들이 의료 사고에 대한 의혹은 있었지만 부검에 대해선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윤도현: "저를 포함한 동료들이 (부검을) 제안 했고 (유가족이) 받아들이셨다. 동료로서 그대로 보내드릴 수 없다는게 저희 입장이었다. 고인을 한 점 의혹 없이 보내드리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사실 신해철과 윤도현의 인연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윤도현이 데뷔할 당시 윤도현은 영화 정글스토리에 주연으로 출연했고, 신해철은 당시 음악을 담당합니다.


(정글스토리 내용은 한 락커가 TV에 데뷰하기 까지의 과정을 과장 없이 무덤덤하게 그림. 감독은 김홍준)


당시 윤도현은 정말 무명이었는데, 신해철은 앨범 속지에 이런 말을 적습니다.

- (앞으로) 크게 될 도현이



그만큼 신해철이 후배 윤도현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던 것이죠.

아마 선배의 이런 후원이 윤도현이 무명시절을 잘 버티게 한 힘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선배를 떠나보낸 윤도현의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네요.


비록 고인은 갔지만 남은 유가족을 위해서라도, 윤도현을 비롯한 음악계 동료들이 힘을 합쳐 진실을 밝혀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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