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ufc 김동현 인생 이야기

UFC 김동현 선수가 상승세였다가 최근 타이론 우클리에게 패했습니다.

1분 1초만의 TKO패를 당한 허무한 패배였죠.

일반 팬들은 물론이고 이종격투기 전문가들조차 김동현이 자신의 장점을 버리고 성급하게 승부를 보려다가 패했다는 평이 지배적인데, 사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김동현이 적극적인 타격에 나서면서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으면 안되는 사정이 있었죠.

그걸 모르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이 안타깝네요.


그 외 김동현의 어린 시절과 유명 UFC선수가 되기 전의 삶에 대하여 한번쯤 눈여겨 볼만하네요.

이종격투기 선수 이미지와는 거리게 멀게,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고생을 많이 했고, 또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김동현 사진


이종격투기 선수 김동현은 1981년 11월 17일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납니다(김동현 고향), 올해 34살이죠(김동현 나이).

(김동현 학력 학벌) 한밭초등학교, 삼천중학교, 충남고등학교, 용인대학교 유도학과, 용인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


(김동현 프로필 및 경력) 2004년 스피릿MC 3 (VS 노영암) 경기로 데뷔


이후 스피릿MC에서 한경기를 더 치른다음, 2004년 경제적인 문제로 은퇴를 선언

2006년 일본의 종합격투기 단체인 DEEP로 복귀해서 8번의 경기에서 7승 1무를 기록


이후 미국의 종합격투기 단체인 UFC로 이적하여 2008년  5월 24일에 열린 UFC 84 대회에서 잉글랜드의 제이슨 탄과 데뷔전을 가져 3라운드 팔꿈치 공격에 의한 TKO 승을 거둡니다.(한국인 최초 UFC 선수)


그리고 맷 브라운, TJ 그랜트, 아미르 사돌라, 네이트 디아즈까지 UFC5연승을 거두고, 카를로 콘딧에게 패하면서 연승행진이 좌절됩니다.


이후 데미안 마이아에게 패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상승 가도를 달리다고 2014년 8월 23일 UFC 웹터급 랭킹 4위의 강자 타이론 우들리에게 패배를 당하면서 기세가 꺽입니다.


(김동현 종합격투기 전적) 24전 19승 3패 1무 1무효

(김동현 전작 (UFC만)) 14전 10승 3패 1무효



참고로 슈퍼맨이 돌아왔다, 진짜 사나이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도 가끔씩 출연합니다.(진짜사나이 김동현, 유준상, 문희준, 임형준, 육성재 출연)


# 목차

* 김동현 어린 시절과 종합격투기 시작 계기

* 김동현 종합격투기 포기 이유

* 김동현 고시원와 PC방 전전

* 김동현 종합격투기 복귀

* 김동현 최대의 위기 - 에릭 실바전

* 김동현의 고백

* 김동현 대전료 1억 6백만원

* 김동현 여자친구(여친)

* 김동현의 새로운 스타일은 무에타이 장착?

* 김동현에게 아쉬운 전략적인 마인드



* 김동현 어린 시절과 종합격투기 시작 계기


김동현: "중학교 때 김동현으로 개명했다. 개명 전 이름은 김봉이었다."


김동현: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 또 아버지가 군대 가면 놀림을 받을까봐 염려도 하셨다. '이병 김봉!'이라고 하면 웃기지 않느냐."


확실히 이상한 이름은 아이들 사이에 쉽게 놀림감이 되기도 하고, 또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김동현 아버지의 선택이 현명했던 것 같네요.


김동현은 중학생 시절 유도를 시작했고, 고등학생때 일본선수의 격투기 경기를 보고 격투기 선수가 되기로 다짐합니다.


김동현: "고등학교 다닐 땐 유도와 합기도, 태권도를 배우려고 도장 세 곳을 모두 다녔다. 그러려면 스쿠터가 필요했기 때문에 원동기 면허를 딸 정도로 나에게 열정이 있었다."


이후 김동현은 종합격투기 선수에게 꼭 필요한 기술이 유도라고 생각하고, 용인대학교 유도학과에 들어갑니다.


2001년 해병대 894기로 입대해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칩니다.

(김동현 군대 병역)(김동현 해병대 수색대)


그리고 2004년 마침내 꿈에 그리던 종합격투기 선수가 되기도 하지만, 이내 꿈을 스스로 포기하고 맙니다.


김동현: "대학생 시절 친구들 중엔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사는 이들도 많았어요. 빈부격차를 느꼈죠. 운동을 계속하면서 이 친구들과도 어울리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어요."


김동현: "당시 국내 격투기 대회인 스피릿 MC에 출전해 노영암 선수와 김형광 선수를 이기기도 했어요. 하지만 시합을 뛰어도 파이트머니가 그렇게 크지 않았고, 일년에 경기도 몇 번 없었죠. "이렇게 해서 언제 성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시작했지만 돈을 벌어보고 싶은 욕구가 커서, 결국 격투기를 그만두고 뉴질랜드로 떠났습니다."


당시 대전료가 대개 50만원~100만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년에 많이 뛰어도 3~4 시합뿐이니, 절대 생활비가 될 수 없는 수준이었죠.



* 김동현 종합격투기 포기 이유


김동현: "당시 한국의 최저임금은 3천 원이었는데 도저히 돈을 모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돈을 잘 벌만한 학벌도 없었죠. 외국은 최저임금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가보니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최저임금을 받는다는 점이에요. 나는 영어 실력이 짧아 최저임금도 못 받았어요."


여기서 김동현이 잠깐 오해를 하네요.

영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의 최저 임금 제도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죠.

뭐,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당연히 영어를 잘 하겠지만요.


어쨌든 이때부터 김동현의 고생은 시작됩니다.


김동현: "당시 최저임금은 뉴질랜드화 10달러지만, 제가 실제로 받는 돈은 8달러 정도였어요. 거기서 하루 세 가지 일을 했어요. 새벽 여섯 시에 생선가게로 가서 4 시간 동안 청소하고 생선 배를 갈랐어요. 그리고 낮에는 노가다 판에 뛰어들었습니다. 아는 게 없어서 하루 종일 벽돌과 흙을 계속 나르는 일을 했어요. 그리고 저녁에는 한국인들과 아시아인들이 주로 드나드는 노래방 카운터에서 일을 했습니다. 작정하고 돈을 벌었지만 세 곳을 합쳐 벌어들이는 금액이 2백만 원이 좀 안 됐어요."


김동현: "그 생활을 4개월 정도하게 되니까, 지치기 시작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지?"라며 괴로워하곤 했죠."


김동현: "그러다가 인근에 유도 도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4개월 만에 처음으로 운동을 했어요. 오래 쉬었지만 기량은 녹슬지 않았죠. 삶에 찌들어 있던 와중 운동 한 시간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뿐인데, 행복했고 세상이 달라 보였어요. 그 때 깨달았죠. "돈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구나"하고요."


확실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고 돈 이상의 가치가 있죠.

김동현은 바로 한국으로 귀국하지만, 여전히 운동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 김동현 고시원와 PC방 전전


김동현: "부모님에게는 제가 망나니로 보였을 거에요. 직업도 없고 빈둥거렸으니까요. 결국 2005년 4월경, 운동 대신에 일을 계속해야 했어요."


김동현: "서울에 가서 건축 일을 해보자며 무가지 <교차로> 구직란을 펴보니 '건축설비기사 구함'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어요. 거기에 아침 일곱 시에 첫 출근을 했어요. 그런데 일이란 게 알고 보니 강남에 있는 주택과 식당을 돌아다니며 하수구 막힌 곳을 뚫는 일을 하고 있는 거였어요. 사람을 구할 수가 없어서 건축설비기사라고 거짓말을 한 거죠."


김동현: "퇴근 시간이 되어도 집에 보내주지 않는 날이 많았어요. 추가 수당 따윈 없었고요. 그 때 "세상이 이렇구나"하고 느꼈고 비정규직의 애환도 알게 됐어요."


결국 김동현은 한달만에 그만두고, 이번에는 남대문에서 가죽옷 장사를 하는 큰아버지의 소개로 시장에 취직하게 됩니다.



김동현: "아버지 말씀이 "시장에서 일을 오래 배우면 나중에 가게를 차릴 수 있다"고 하셨어요. 큰아버지 소개로 큰아버지 가게 옆 트레이닝복 가게에서 일하게 됐죠. 새벽 여섯 시에 출근하게 하려고, 가게 사장님이 가게에서 가까운 곳에 고시원방 하나를 잡아 주셨어요. 한 달에 13만 원 짜리 방이었는데, 창문도 하나 없는 골방에서 그렇게 한여름 밤을 지냈어요."


김동현: "새벽 여섯 시부터 저녁 여덟 시까지 매일 일했는데 월급은 달랑 70만원이었죠. 그리고 옷을 못 팔면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혼줄이 났어요. 시장 사람들이 드세다는 말을 실감했죠. "니가 똑바로 안 하니까 장사가 안 되잖아"라고 사장님이 막 화를 내셨죠."


김동현: "고시원엔 밥이 있으니 퇴근 할 땐 스팸을 한 통 사서 집에 들어갔어요. 아침엔 숟가락으로 조각 낸 스팸을 물에 말은 밥과 같이 비벼 먹었어요. 그렇게 아침 식사를 하다 보니 점심은 정말 꿀맛이었죠. 아직도 그 때 먹은 떡만두국이 기억에 남아요. 조미료에 개미가 들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개미가 국물 위에 엄청 떠있었어요.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 먹었죠. 아직도 눈에 선해요. 어떻게 먹었는지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결국 김동현은 이번에도 한달만에 그만두고, 이번에는 PC방에 취직하게 됩니다.


김동현: "마지막으로 간 곳은 PC방이었어요. 정말 쉬운 일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남들 다 한다는 거. 어차피 한 달에 칠십만 원 받는 거 뭘 하나 월세는 낼 수 있으니까. 운이 없게도 내가 간 PC방은 자리마다 벨이 있었어요. 5분마다 벨이 울리는데 컵라면과 재떨이 심부름, 컴퓨터 고장 등등. 다행히 거기는 그만 두는데 이틀 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 김동현 종합격투기 복귀


결국 김동현은 다시 격투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부모님을 설득합니다.

그리고 2006년 일본의 종합격투기 단체인 ‘DEEP’ 무대로 복귀하게 됩니다.


여기서 김동현은 8전 7승 1무를 기록하는데, 대부분 호쾌한 KO승으로 이기게 됩니다. 이런 김동현의 상품성에 눈독을 들인 프라이드(라이트급)와 계약을 맺는데, 프라이드가 UFC로 인수합병되면서 계약이 자동해지되고 맙니다.


그리고 UFC가 파격적인 조건으로 김동현과 계약을 새롭게 하게 되었죠.


김동현은 2008년 5월 24일 제이슨 탄과 UFC 데뷔전을 가지는데, 이때 김동현은 기본 대전료 2만달러에 승리수당 2만달러를 받습니다.

(김동현 총 대전료 4만 달러- 약 4천 4백만원)

(당시 상대 선수였던 제이슨 탄은 대전료로 겨우 3천달러를 받았죠)


왜 UFC가 김동현에게 이런 파격적인 돈을 주었을까요?

바로 일본에서 보여주었던 김동현의 호쾌한 경기 스타일과 당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최초의 코리안 UFC 선수라는 상품성때문이었습니다(원래 김동현 별명이 스턴건이었음, 김동현에게 맞은 상대 선수가 전기 충격기에 맞은 것처럼 픽 쓰런진다고 붙여진 것임).

하지만 이것이 후에 김동현의 발목을 잡게 되었죠.




* 김동현 최대의 위기 - 에릭 실바전


일본과 미국의 선수 기량 격차는 컸고, 김동현은 KO승 대신에 점차 판정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때 붙은 별명이 바로 '매미킴'이죠. 타격보다 상대방에게 달라붙는 기술과 지지부진한 경기 방식을 빗대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김동현에게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위기'가 닥칩니다.

바로 2013년 10월 9일 에릭 실바와의 경기였습니다.



원래 김동현은 UFC에 데뷔할때 4경기만 계약합니다.

UFC는 선수들의 경기 스타일을 보고, 팬들이 열광하는 'KO승'이 자주 나오지 않는 선수들은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퇴출'을 시킵니다.


김동현 역시 대개 4경기씩 재계약을 하는 '임시직'이었죠.



2011년 1월 1일 김동현이 네이트 디아즈 상대로 판정승을 거둔 직후 재계약을 하게 됩니다.

IB스포츠(2011년 당시 김동현 매니지먼트사) 관계자: "김동현은 UFC와 1경기 대전 계약이 남아있으나 이번 경기 승리 직후에 UFC로부터 4경기 계약 연장 오퍼를 받았다. 만족할 만한 수준의 계약조건이었다. 이로써 남은 1경기는 자동 소멸되고, 다시 4경기를 확보하게 됐다."


김동현: "올해(2011년) 목표중의 하나가 UFC와의 재계약이었다. 이번에 재계약을 해서 정말 기쁘다. 앞으로도 UFC에서 좋은 경기를 펼쳐 팬들에게 더욱 더 인정받는 파이터로 거듭나겠다."


이후 김동현은 카를로스 콘딧과 데미아 마이아에게 각각 KO패를 당했고, 션 피어슨과 파울로 티아고에게 판정승을 거둡니다.

그의 상품성을 높이는 KO승은 없었지만, 어쨌든 UFC는 여전히 그에게 재계약의 기회를 주었고, 그 마지막 경기가 에릭 실바와의 경기였습니다.



* 김동현의 고백


사실 UFC가 김동현의 상대로 에릭 실바를, 그것도 브라질에서 맞붙도록 한 것은 의외의 결정이었습니다. 브라질의 신성이라는 에릭 실바의 제물로 김동현을 던져 준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죠.

어차피 재계약을 안하면 김동현은 자동 퇴출되는 폐기 상품 신세였으니까요.



김동현: "당시 저는 이기기 위해 지루한 시합을 펼치는 선수 중 하나였습니다. 팬들 조차 그렇게 평가했고요. 그러던 어느 날 UFC는 브라질의 강자인 에릭 실바를 상대로 정해줬습니다. 당시엔 지옥에 내던져진 기분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죽으라고 내던졌는데 지옥에서 기어올라온 거죠."


김동현: "일본의 톱파이터 오카미 유신이란 선수가 있습니다. 엄청난 경기력을 가진 선수인데 지루한 경기를 펼친 나머지 UFC에서 퇴출됐습니다. 그걸 지켜보며 묵직한 한 방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높은 파이트머니를 받고 우월한 레슬링실력으로 이기기 위한 경기를 펼쳐왔기 때문입니다."


김동현: "그냥 이기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카미가 퇴출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단 한 번 졌을 뿐인데 말입니다.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오카미 유신이나 존 피치 등은 김동현과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이었는데, 결국 UFC로부터 퇴출되고 말았죠.

김동현이 느꼈던 위기 의식 역시 이해가 가네요.



김동현: "시합에 대한 압박도 심해서 격투기를 그만둘까도 생각해봤습니다. 어차피 (계약 상) 마지막 경기니까 말이죠. 그러다가 마지막일지 모르는 이 경기, 즐겨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가서 내가 하고 싶었던 걸 (케이지 안에서) 모두 해보자는 속셈으로 경기를 펼쳤습니다."


김동현: "당시 브라질 현지 분위기를 보니 모든 것이 자국 선수인 에릭 실바를 위해 준비된 듯 했어요. 브라질 선수를 이기게 해주려고 잔치판을 벌려놓은 거죠. 저는 어설프게 "여기서 내 팬을 만들자"고 생각하기 보다 "어차피 내 팬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죠."


결국 김동현은 '마지막 시합'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경기에 임합니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패배나 지루한 판정승 대신에 에릭 실바를 상대로 통쾌한 KO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 덕분에 UFC 역시 김동현의 상품성을 인정하고, 다시 4경기 재계약을 하게 되었죠.



* 김동현 대전료 1억 6백만원


김동현은 에릭 실바 이후에 이런 스타일의 변화를 고수합니다.

그 다음 상대인 존 해서웨이를 상대로 KO승을 거두었고, 타일론 우들리를 상대로는 KO패를 당하게 되었죠.

UFC와 팬들이 바라는 '화끈한 경기'를 펼친 것이죠.



어떻게 보면 종합 격투기 선수들 역시 연예인들의 삶과 비슷하네요.

연예인들 역시 방송 관계자들의 픽업을 받아야 하고, 방송 관계자들은 팬과 대중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연예인들을 픽업하니까요.


사실 매 4경기씩 재계약을 해야 하는 김동현의 목숨이 연예인들보다 좀 더 '파리목숨'같네요.



물론 이에 대한 댓가는 무척 큽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데뷔전부터 무척 높은 파이트머니를 받았고, 그 이후에도 그 금액은 상승일로였으니까요.


김동현: "현재 내 대전료는 1억원이 넘는다(정확한 금액은 세금포함 1억 6백 7십 5만 2천원). 이길 때만 그렇게 받고 지면 반만 받는다. 이기고 대기실에 가면 바로 수표를 가져온다."(김동현 파이트머니)


김동현: "챔피언급들은 더 큰 돈을 받는다. 파이터머니만 봤을 때 챔피언 급은 3억-5억을 받는다. 게다가 챔피언 급은 PPV에 대한 배당으로 3~5%를 받는데, 그러면 30억 원~ 50억원 정도가 된다.)


(PPV 뜻 - 시청한 프로그램 수나 시간에 따라 요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시청자들이 본 UFC 경기에 대한 광고 수익에서, 챔피언급과 상위 랭커들은 김동현의 말처럼 3~5%가량의 배당을 따로 받음)



* 김동현 여자친구(여친)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 당시)

추성훈: "부산에서 만났던 그 여자는 어떻게 됐어?"


김동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여자친구 어머니가 만나지 말라고 강제로 정리했다."


현재 김동현이 34살이니, 아마 이십대 초반과 사귀었던 것 같습니다.



* 김동현의 새로운 스타일은 무에타이 장착?


김동현은 타이론 우들리로부터 패배를 당한 이후 절치부심하고 있습니다.

일부 한국팬들은 승리를 위하여 이전 스타일로 돌아가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할 것을 바라고 있지만, 김동현 스스로 그렇게 하면 자신의 상품성이 훼손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죠.


김동현: "(타이론 우들리에게) 비록 패하긴 했지만 아직 은퇴할 정도로 사람들 관심에서 벗어나진 않았다. 이에 뭔가 새로운 동기부여를 주기 위해 준비 중이다. 스타일도 바꾸고 새로운 김동현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김동현: "(에릭 실바 전 이후)매미에서 스턴건으로 바꾸면서 큰 동기부여가 됐다. 이번 변화에도 사람들이 많이 놀랄 것으로 예상된다. 나 역시 기대된다. 물론 여기에서 한두 번 더 진다면 은퇴하는 게 맞다.



김동현: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팬들이 관심이 멀어지면 떠나야 한다.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하는 만큼 나에겐 1패가 죽음과도 같다. 연패를 하면 그만 둘 생각이다."


김동현: "지금까지 복싱과 태클에만 전념했다면 이번에는 무에타이 스타일에 도전해보고 싶다."


아무래도 김동현은 새로운 스타일로 '무에타이'를 장착한 타격 기술 연마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전 그의 매미 스타일이었던 그래플링은 팬들에게 화끈한 경기를 선사해 줄 수 없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UFC와의 재계약을 막을 테니까요.


(김동현이 타이론 우들리 시합 이후에 눈이 크게 부은 모습이었는데, 예전에도 안와골절때문에 한동안 고생했었죠)(김동현 부상 안와골절)



* 김동현에게 아쉬운 전략적인 마인드


개인적으로 김동현이 좀 더 영리하게 경기를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아무리 UFC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하더라도, 에릭 실바 경기 포함해서 2연속 KO승을 달성했기에, 타이론 우들리와의 경기는 좀 지루하더라도 상관없지 않았나 합니다. 더욱이 이 경기가 챔피언전으로 가는 길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죠.


아마 김동현 본인도 2경기 연속 KO승을 하면서, 자만에 빠진 점도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UFC와의 계약 4경기중 첫번째 두번째는 안정적으로, 세번째, 네번째는 화끈하게 하는 방식을 했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김동현 본인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는 2경기의 전적을 기반으로 화끈한 경기를 도모할 수도 있으며, 또한 김동현과의 경기를 준비하는 상대방도 혼란에 빠뜨릴 수 있으니까요.


사실 우들리는 김동현의 이전 경기를 분석했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기다렸다가 백스핀을 거는 김동현의 머리를 때리면서 손쉽게 승리를 따낸 점도 분명 없지 않습니다.


물론 에릭 실바와의 경기처럼, 본인이 모든 것을 버린 상태에서 맞붙는다면, 그의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정신적인 수양은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죠.



아무튼 오늘은 남들에게 위협적으로 보이는 이종격투기 선수 김동현에 대한 이야기를 포스팅해봤습니다.

역시 세상에 쉬운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 나름대로의 애환을 가지고 있고, 이런저런 많은 실패와 약간의 성공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죠.


참고로 김동현이 그 커다란 덩치로 하수구를 뚫거나, PC방에서 서빙 아르바이트, 옷가게 사장님으로부터 꾸중을 들었다니, 상상이 잘 되지 않는데, 어쨌든 귀여웠을 것(?) 같긴 합니다.


나중에 예능에 나와서 PC방이나 노래방 카운터를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 ..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