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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깨달음과 함께 하는

김혜옥 남편과 사별, 화병이 행복으로

 

세상을 살다보면 자신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일을 후회하게 되죠.

 

탤런트 김혜옥은 그런 후회가 너무 컸는지, 가슴속의 홧병이 될 정도로 상처가 깊었네요. 자신의 일과 남편에 대한 상처였습니다.

 


탤런트 겸 영화배우 김혜옥은 1958년 5월 9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김혜옥 고향).
(김혜옥 종교) 불교
(김혜옥 나이) 57살
(김혜옥 학력 학벌) 상명여자중학교(상명여중), 홍대부속여자고등학교(홍대부속여고), 서울예술대학 연극학(서울예대, 예전의 서울예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신문방송학 석사
(김혜옥 프로필 및 경력) 1980년 MBC 특채 탤런트로 데뷔

 

1980년 전원일기에서 서울댁으로 출연했고, 이후 올드미스 다이어리로 이름을 알립니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미안하다 사랑한다, 진짜진짜 좋아해, 솔약국집 아들들, 몽땅 내 사랑, 닥터 진, 사노타(사랑은 노래를 타고),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왔다 장보라, 닥터 이방인 등에 출연합니다.

 

영화 테레사의 연인과 동갑내기 과외하기, 어린 신부, 올드미스 다이어리 극장판, 육혈포 강도단 등에도 출연했고, 연극배우로도 활약합니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는 푼수기 가득한 할머니를, 진짜진짜 좋아해에서는 우아한 대통령 영부인을 부족함없이 소화해낼 정도로 연기 스펙트림이 넓은 여배우중의 한명입니다. 특히 '내 딸 서영이'에서는 믿었던 사람들의 거짓말에 충격을 받은 혼란스러운 모습을 강렬하게 표현해서 깊은 인상을 남긴바 있죠.

 

악녀 연기

 

고상한 역할

 

다소 촌스러운 역할

(이 세명이 다 동일인입니다. 너무나 달라서 서로 다른 사람으로 비이네요.)

 

이렇게 연기력이 뛰어난 김혜옥이지만, 의외로 어린 시절의 성격은 내성적이었습니다.
김혜옥: "부모님이 중학교 때 이혼을 하셨어요. 아버지가 하던 사업마저 잘 되지 않아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죠. 이때부터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는 내성적인 아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상명여중과 홍대부속여고를 졸업했는데, 동창생 중 저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령처럼 지냈어요. 내 안으로 침잠하는 시기였죠."

 

교실에서 대표로 국어책도 못읽을 정도로 김혜옥은 수줍음이 많았죠.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혜옥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 출판사 일러스트레이터로 취직해서 2년동안 교과서에 들어갈 컷을 그립니다.

김혜옥: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일러스트 솜씨가 서툰데도 취직이 된 것은 출판사가 워낙 영세해 제대로 된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할 수 없었고, 또 사장님이 워낙 좋은 분이셔서 그랬던 것 같아요."

 

2년동안 일을 하던 김혜옥은 미래를 위해 사표를 쓰고는 홍대 미술학과로 지원합니다.
김혜옥: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그때도 앞뒤 상황을 계산할 줄 몰랐어요. 내 실력이 홍대 미대에 갈 수 있는 수준인지 파악하지도 않고 그냥 잘 아는 학교라 덥석 지원한 거죠. 실기시험을 치를 때서야 내가 얼마나 무모한 도전을 했는지 깨달았어요. 다른 지원자들은 석고데생을 하고 있는데, 저만 만화를 그리고 있더라고요."

 

 

현실감각이 없다고 해야할까요, 아니면 순수하다고 해야할까요, 대학 입시에서 만화를 그렸던 김혜옥이 홍대에 붙을 수는 없었죠. 결국 김혜옥은 서울예대 미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김혜옥: "서울예대 미술과 면접을 보던 날 교수님이 느닷없이 저한테 그래요. ‘자네는 미술과보다는 연극과에 가는 게 좋겠어. 그림에는 소질이 없어’라고요. 생각지도 않은 권유에 놀랐지만 교수님이 시키는 대로 연극과로 갔어요. 그게 덜컥 붙었고, 시작이었죠."

 

당시 그 교수가 그냥 김혜옥의 그림 실력이 형편없어서 그랬던 걸까요? 아니면 정말로 김혜옥의 숨겨진 연기 재능을 간파한 것일까요?

그런데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한 김혜옥은 여기서도 문제가 됩니다.

김혜옥: "처음에 연극과에 입학했을 때 수줍음이 많아 ‘왕따’를 당했을 정도였어요. 연극과에는 난다 긴다 하는 재주꾼들이 다 모여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주인공으로 뽑힌 거예요. 사람들은 저와는 같은 팀을 안 하려고 했어요. 얼마나 서글펐겠어요."

 

신기하네요. 수줍음이 많았던 김혜옥이 주인공으로까지 뽑히게 되었다니... 그리고 거기서 김혜옥은 운명적인 상대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연극에 문외한이었던 김혜옥을 배우로 조련시킨 남편이었죠.

 

김혜옥: "그 사람은 4년제 일반학과 재학 중 <에쿠우스>라는 작품으로 대학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실력파였어요. 대학 졸업 후 연극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서울예전에 입학한 상황이라 나이도 많았고, 모든 면에서 리더 역할을 했죠. 어린 제가 보기에 그 사람은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어요. 선구자였고, 천재적 예술가였죠. 저는 지금껏 그 사람보다 뛰어난 연극인을 본 적이 없어요."

 

김혜옥: "남편은 어리버리하고 순진하기만 한 제 모습에서 뭔가 가능성을 읽은 것 같아요. 나에게는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그늘이 있었는데, 남편은 그것을 저만의 매력으로 본 게 아닌가 싶어요."

 

아마 남편까지도 김혜옥의 잠재된 연기 재능을 간파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둘은 연애를 하게 됩니다.

김혜옥: "나는 공부를 싫어하는데, 이 남자는 공부를 좋아하는 거에요. 글쎄 공부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대요. 나로서는 너무 신기한 거죠. 돈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도 좋아 보였고. 그 사람은 천상 예술가였어요."

 

결국 김혜옥은 대학 2학년때 22살의 젊은 나이로 남편과 결혼하게 됩니다.(김혜옥 남편 직업 연극 연출가)
그리고 17년을 부부로 같이 살았다가, 이혼하게 됩니다.
(이혼사유는 권태기때의 성격차이로 헤어짐, 이혼 후 재혼하지 안음)
(김혜옥은 남편과의 사이에 자녀(자식) 등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김혜옥은 곧 연극 무대를 벗어나서 TV 드라마에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주연을 맡았던 연극 무대와 달리 드라마에서는 항상 단역만 맡게 되었죠.

김혜옥: "‘전원일기’에서 10년 동안 빨래하는 아낙 역을 했어요. 오랫동안 같은 역할만 하니까 어떤 PD가 ‘그 역할 아니면 못 먹고 사냐?’고 농담처럼 물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정말 그 배역이 아니면 먹고살지 못했거든요."


연극계로부터도 욕을 먹습니다.
김혜옥: "연극 쪽에서 욕 많이 먹었어요. 키워놨더니 드라마에서 빨래나 하고 있다고."

김혜옥 본인으로서는 연극 무대가 훨씬 더 좋았지만 어렵게 사는 친정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결국 역할의 축소와 경제적인 어려움 등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게다가 자신에게 바른 연기관을 심어주었던 남편이 이혼 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김혜옥 남편 사별이유, 사별원인).

 

김혜옥: "그 사람을 영영 보지 못하게 됐을 때는 도저히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자리에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어지럽고 온몸이 아팠어요. 의사를 찾아갔더니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흔히 이야기하는 ‘마음의 병’이었나봐요.
'저 사람은 나를 돌봐줬는데, 이혼하지 않고 내가 저 사람을 돌봐주었더라면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가득했죠."

김혜옥이 전남편에게 더 잘해주지 못하고, 이혼을 했던 행동이 한으로 남았던 것 같네요.

 


김혜옥: "시름시름 앓으며 일도 못하고 집에 누워서 지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라디오를 듣게 됐죠. 제가 불자라 불교방송을 듣는데 한의사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거예요. 그 말씀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매일 그 시간만 기다리면서 라디오를 들었어요.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한의원에 갔더니 정말 병이 낫더군요. 병명은 화병이었어요."


사실 화병은 서양 의학으로는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죠.
김혜옥이 상처를 많이 받으면서, 자신의 마음이 많이 다쳤기에 그런 병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김혜옥: "저는 웬만한 일에는 상처를 받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가족 뿐만 아니라 선배, 남편, 사랑하는 사람을 많이 떠나보냈어요.
저한테는 사별의 슬픔이란 게 어떤 건지 번번이 느끼면서도 매번 느낌이 달라요. 겪을 때마다 슬픔은 덜해지지가 않아요."

 

김혜옥: "온종일 울고 다닌 적도 있어요. 서 있어도 눈물이 나고, 걸어 다녀도 눈물이 나기도 했죠. ‘나는 왜 이렇게 사건이 많은 거야’, 하늘을 원망했어요.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나는 팔자가 왜 이럴까.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서운한 것이 많았고 불만이 많았어요."

 

아마 이런 슬픔들이 김혜옥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였다가 남편과 남동생의 연이은 죽음 등으로 폭발한 것 같네요.
결국 김혜옥은 약 3년동안 세상과 소통을 끊고 절에서 몸을 치유하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김혜옥: "먼저 간 사람들이 저한테 참 많은 걸 베풀고 떠났고 지금도 제 곁에 남아 저를 도와주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예쁘지도, 잘나지도 않은 제가 이만큼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모두 먼저 간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슬픈 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가슴이 따뜻해지죠."

 

김혜옥: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난 재주가 없어요. 내 힘으로 여기 있는 게 아니죠. 남편이 ‘연기란 이런 것이다’ 알려주고 마법처럼 홀연히 사라진 것 같아요."


과거에 그녀를 떠남으로써 슬픔을 남겼던 기억들이, 이제는 가슴 깊이 따뜻함을 남기고 있네요. 김혜옥은 무엇을 깨달은 걸까요?

 

 

김혜옥: "전성기요? 역할을 많이 맡게 된다고 전성기는 아닌 것 같아요. 행복이 무언지 알게 된다면 그게 전성기가 아닌가요? 이제는 행복이 어떤 건지 알고, 그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을 알아요. 아직도 삶이 막연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건 알아요.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

 

김혜옥: "먼저 간 사람들이 항상 내 옆에서 에너지로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떠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이 제게 남겨주고 간 것, 헛되게 쓰지 말고 행복을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하죠."

김혜옥의 연기에 깊이가 있었던 것은 이런 슬픔들때문이고, 그녀의 연기에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이런 깨달음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어릴 나이에 부모의 이혼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가난때문에 어릴 적부터 일을 해야 했으며, 마침내 가까운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김혜옥은 죄책감으로 자신을 자책하게 됩니다.
하지만 김혜옥은 마침내 깨달음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꾼 것 같네요.

 

마지막 김혜옥의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행복이 무언지 알게 된다면 그게 전성기가 아닌가요?"

확실히 김혜옥의 배우가 아닌, 인생의 전성기는 지금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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