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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일준 임경애 러브스토리

 

사람에게 고난이 닥쳤을 때, 담담하게 극복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이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거나, 주변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그대로 있기가 괴롭기 때문에 어떤 행동이라도 하는데, 그것이 나와 가족에게 피해가 되기 십상이죠.

 

혼혈 가수 박일준 역시 감당할 수 없는 고난에,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을 괴롭히게 됩니다.

 

박일준 임경애 부부 사진

 

가수 박일준은 1954년 5월 31일 서울 태어납니다(박일준 고향). 올해 나이가 61살이죠.
(박일준 프로필 및 경력) 1977년 노래 '오! 진아'로 데뷔

이후 잘가요, 파란 마음, 꽃네야, 아내의 기도 등 여러 히트곡을 남깁니다.

 

사실 박일준은 흑인과의 혼혈이기에 기구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시기적으로 625 전쟁이 막 끝난 폐허에서 태어난 박일준은 태어나기도 전에 주한 미군이었던 친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귀국함)

 

박일준 노래모음 6곡(히트곡)

박일준 - 오! 진아

 

박일준 가족 - 오, 진아_채널A_스타패밀리송 3회

 

박일준 / パク・イルジュン : 트위스트박

 

박일준 - 울리는 경부선

 

박일준 - 아가씨

 

박일준 하숙생 가요무대 20131104

 

 

박일준: "친어머니와 길러주신 어머니는 친자매처럼 지내는 사이였어요. 오갈 데 없는 미혼모였던 친어머니를 설득해 저를 낳게 한 분도 바로 양어머니셨죠."

 

박일준: "친어머니는 혼혈아를 낳은 후 주변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저를 고아원에 버렸어요. 양어머니가 어떻게 수소문을 했는지 어느 날 저를 찾아오셨어요. 지금도 그때가 생각나요(박일준 3살 때). ‘개똥아’ 하고 달려오시는 어머니가 너무 반가워 ‘엄마’ 하고 달려들어 품에 안겼어요. 제 어릴 적 이름이 개똥이었거든요. 마침 자식이 없던 어머니는 저를 데려다가 친아들처럼 키워주셨죠."

 

이렇게 태어나기 전에 친부로부터 버림받고, 3살때 친모로부터 버림받았던 박일준은 친부모님에 대한 적개심이 매우 강합니다.

 


박일준: "친어머니는 한번도 안 만났다. 찾기도 싫다. 전쟁 때라 그랬겠지만 책임지지 못할 짓을 했고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박일준: "1986년도에 우연히 친아버지를 알게 됐다. 아버지를 만나러 미국에 갔는데 날 보고 파티를 했다. 미국에는 나 말고 배다른 동생이 4명 있었다. 우리랑 문화가 달랐겠지만 내 고생은 알아주지 않은 채 눈물도 없는 아버지한테 화가 났다."

 

박일준: "통역을 불러서 내 마음을 전한 뒤 돌아왔고 그 뒤로 만나지 않았다.
나는 혼혈인이라는 사실도 싫었고 나를 낳아줬던 어머니 아버지 이 나라가 다 싫었다.
내가 찾을 때는 없었으면서 내가 잘 사는데 왜 나타났냐고 생각했다."


그렇게 3살때 양부모에게 거두어진 박일준이지만, 그의 고난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피부가 검었기에, 또래 친구들로부터 매일 놀림을 받았던 것이죠.
박일준: "어렸을 적 양부모님이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서 키웠기 때문에 내가 혼혈인 줄 몰랐다.
혼혈아 티가 덜나게 하려고 항상 제 머리를 빡빡 깎아주셨던 것이다."

 

박일준: "제 모습이 이상하니까 남들이 예사로 ‘깜둥이, 깜둥이’ 하며 놀렸는데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양어머니가 저 대신 싸우셨어요."

 

 

양어머니가 박일준을 거두어 줄 정도로 자상한 반면에 이럴 때는 아주 매서웠네요.

여장부같습니다.
하지만 양어머니의 사랑에도, 박일준은 아직 어렸기에 사람들과 주먹으로 치고받고 싸웠고, 또 냉대받은 울분을 어머니에게 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박일준은 15살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박일준: "15살 때 친부모 사진을 우연히 보고난 후 충격을 받아 술을 먹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술로 풀었다. 성장한 뒤 음악을 하다 보니 또 술집을 전전하게 돼 알코올 중독에 걸렸다."

 

박일준에게는 이중의 충격이었을 것 같네요. 길러준 양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과 더불어 자신이 혼혈이었다는 사실까지 한꺼번에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렇게 박일준은 모든 것을 술로 풀면서 그래도 타고난 음악성 덕분에, 1977년 번안곡 '오! 진아'를 부르면서 가수로 데뷔합니다. 하지만 곧 양부모님이 사고사를 당하고 말았죠.

 

박일준: "제가 막 가수로 활동을 하며 얼굴을 알리기 직전에(1978년)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이 한날한시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돌아가셨어요. 효도 한번 제대로 못 받고 돌아가셨지요."

 

박일준: "그때는 정말 못 살 때였어요. 전기가 나가고 환풍기가 멈춰서 두 분이 함께 돌아가셨는데, 새벽에 돌아가셨는데 오후까지 몰랐죠."

 

양부모님에게는 따로 자식이 없었기에, 이때부터 박일준은 홀홀 단신이 됩니다.
우리 사회가 분명 혼혈에 대한 차별이 있는 사회이지만, 이렇게 박일준을 데려다가 친아들처럼 키운 분들도 있습니다. 아마 이 분들 덕분에 박일준이 가족에 대한 따뜻한 정을 알게 되지 않았나 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양부모를 잃은 박일준인데, 가수 활동 역시 녹록하지가 않습니다.
박일준: "라디오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TV 방송이었다. "얼굴을 바꿔 와라" "페인트 칠이라도 해라"하는 말도 들었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이유로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서러웠다."

 

 

이번에도 박일준은 술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런 박일준의 재능을 안타깝게 여긴 고 김상범이 충고를 합니다. 그 충고 덕분에 박일준은 정신을 차리게 되었죠.(김상범은 현숙을 키워낸 능력있는 음반 제작자임)

 

박일준: "좀더 열심히 하면 혼혈인을 향한 편견도 없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꾸준하게 노력했다."

 

결국 박일준은 혼혈가수이지만, 1970년대 후반, 그리고 1980년대에 우리 가요사에 없어서는 안될 가수로 성장하게 됩니다.
(또다른 흑인 혼혈 가수로 박일준외에 인순이도 있죠.)

 


그런데 이런 가수의 길 말고, 결혼 역시 박일준에게는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내 임경애와의 결혼에 처가 식구가 대부분 반대한 것이죠.

 

박일준: "막내 처제만 빼고 모든 식구들이 반대를 했어요. 한 처남은 손가락으로 커피를 찍어서 ‘누나, 누나가 저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된다’고 말을 하기도 했어요. 장모님 역시 고개를 저으셔서 결혼 허락을 받으려고 아내의 집을 많이 들락거렸어요."

 

부인 임경애: "사귄지 6~7개월 됐을때 집안에서 반대했다. 단지 (박일준이) 혼혈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니깐 오기가 생기더라. 남편의 진심이 느껴지기도 해서 둘이서 한 3년간 끈질기게 설득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박일준: "어떻게든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덜컥 임신부터 했어요. 그때도 장모님은 아이를 지우라고 하셨어요. 하는 수 없이 아내는 장모님을 따라 병원에 갔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마침 의사가 몇 시간 자리를 비워서 수술을 못하고 그냥 돌아왔어요. 그때 낳은 아이가 큰아들 형우예요."

 

박일준 가족 사진

 

박일준 임경애 부부는 그렇게 어렵게 결혼했고, 곧이어 딸 박혜나를 낳습니다(박일준 배우자 임경애 자녀(자식) 1남 1녀).
(아들 박형우는 이미 결혼해서 손자, 손녀까지 있음)


그런데 박일준에게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혼혈로 태어났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그것을 술로 푸는 버릇을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박일준: "난 술 먹어도 티가 안 난다. 가수 故최헌과 네 짝을 먹었다. 술이 80병이다."

정말 대단한 술고래네요.

다만 이것은 전적으로 박일준 개인의 잘못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회가 박일준의 뜻을 꺽으면서 핍박을 했으니까요.

 

그리고 박일준은 1991년 영화 사업을 시작했고,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또다시 폭음을 했고, 이번에는 간경화에 걸리고 맙니다.
임경애: "이혼을 생각할 무렵 남편이 간경화로 쓰러졌다. 그러다 보니 정말 못 버리겠더라.
아이들만큼은 버리지 않고 살려고 했던 것을 몰라주고... 오죽하면 버리려고 했겠냐.
술 끊고 치료하고 나니 남편이 새 사람이 됐다. 그러고 나니 과거일들이 죄의식으로 찾아왔다. 지금은 표 안나게 잘 하는 척 한다."

 


또한 박일준이 혼혈이었던 것은 가족에게도 큰 고난이 됩니다.
딸 박혜나: "어릴 때는 아빠가 유명 가수인 것이 너무 싫었다. 혼혈이라는 것만으로도 상처인데 아버지가 가수라는 직업까지 갖고 있다보니 더욱 관심을 받았다.
생활기록부 아버지 직업란에 가수 대신 서비스업이라고 쓰기까지 했다."

 

박혜나: "초등학생 때는 아빠를 학교에 못 오게 했다."


박일준: "딸은 모르겠지만 내가 몰래 딸 운동회 날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그때 학부모들이 날 보고 몰려들어서 결국 돌아선 적도 있다."

 

 

결국 이런 사정 등으로 박일준은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냅니다.
박일준은 여러 고난을 겪으며 힘겹게 성장했지만, 그런 아버지 덕분엔지 박일준의 아들과 딸은 잘 자랐네요.

 

먼저 아들 박형우는 간호사 출신의 아내를 맞습니다.
박일준: "나처럼 우리 아들도 결혼 전에 임신을 해버렸다. 아무런 조건없이 시집 와준 며느리에게 너무 고맙다."

 

딸은 과거에 승무원(스튜어디스)를 했고, 지금은 건국대학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박혜나 직업).
박일준: "내 딸이 제시카 고메즈를 닮았다. 과거 승무원을 했었다. 지금은 건국대학병원 비서실에서 근무한다. 대학 생활 4년 내내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박일준 아들과 며느리, 손녀딸 사진

 

박일준 딸 박혜나 사진


이렇게 박일준의 인생이야기는 차별과 선입견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 영향이 본인을 넘어서 가족에까지 미쳤네요.

분명 박일준에 대한 세상을 편견은 어린 박일준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겁니다만, 그것을 술과 다툼으로 푸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죠.

 

지금 박일준의 입장에서 젊었을 때의 자신을 돌아보면 많이 후회하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울분을 술로 풀었던 일양어머니에게 대들었던 일, 아내의 만류에도 자녀들은 나몰라라 하고 술만 마신 일 등은 자기 자신을 파멸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었죠.

 

현재 아무리 큰일이라도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자기 자신을 파멸하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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