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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하춘화는 정말 대단한 기록의 보유자입니다.

만 6세 데뷔수많은 공연(최다 개인 발표회)으로 기네스북(1991년)에 등재되어 있죠.
가요계에서 활동하면서 성인이 되었는데, 가치관이 바르고 항상 노력하는 모습이 타의 모범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하춘화에게도 실패는 있었습니다.

 


하춘화는 1955년 6월 28일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납니다(하춘화 고향, 어릴적에 부산으로 이사를 갔기에 간혹 고향이 부산으로 오인되기도 함). 60년대 초반부터 활동했기에 굉장히 나이든 가수처럼 느껴지지만, 올해 나이가 60살입니다.

 

(하춘화 학력 학벌) 수송초등학교, 정화여자중학교(정화여중),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일신여상), 경남대학교 가정학과(수료),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가정관리과,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 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예술철학 박사

 

(하춘화 프로필 및 경력) 1961년 레코드를 취입하면서 데뷔

1966년 아빠는 마도로스 히트, 그 이후에도 잘했군 잘했어, 영암 아리랑, 연인의 부르스, 아리랑 목동, 날 버린 남자, 연하의 남자 등 무수히 많은 곡들을 히트시킵니다.

 

하춘화 어린시절 사진

 

하춘화 노래모음, 하춘화 대표곡 6곡

하춘화 - 울고넘는 박달재

 

하춘화 - 알고 계세요 1973

 

하춘화 - 물새 한 마리

 

하춘화 - 영암 아리랑

 

날 버린 남자 - 하춘화 (1990,하춘화) Full HD, 2013-09-30

 

누가울어 - 하춘화 [배호,1967]

 

하춘화가 어린 시절부터 활동할 때는 상반된 시선이 공존했습니다. 아직 어리고 노래를 잘 부르는 하춘화가 귀엽다는 반응과 더불어, 너무 어린 나이에 가요계에서 활동한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공존했죠.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아직 어렸던 딸의 재능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 아버지 하종오(이름)의 선견지명이 탁월하네요.

 

무난하게 활동하던 하춘화는 1977년 큰 사고를 당합니다. 11월 11일 전라북도 이리시(현 익산시)의 삼남극장(이리역 근처)에서 공연 도중 다이너마이트를 실은 열차가 폭발하면서 약 59명이 사망하고 1158명이 부상을 당하는 큰 사고가 발생했죠.


이때 코미디언 이주일이 아수라장이 된 역사내에서 어린 하춘화를 업고 나옵니다.

하춘화: "가수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1977년 이리역(현 익산역) 폭발사고입니다. 콘서트 도중 지붕이 무너져서 타박상을 입고 주저앉았는데 고(故) 이주일 선배님이 저를 업고 나와서 살았습니다. 제 생명의 은인이셨죠."

 

 

당시 하춘화는 어깨에 타박상을 입었던 반면에, 이주일은 두개골이 함몰되는 큰 부상을 당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주일: "당시 밥줄 끊기겠다 싶었다."
사실 당시만해도 하춘화는 톱스타였고, 이주일은 하춘화쇼의 진행을 맡은 무명 코미디언이었죠. 그래도 극장에서만 1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실신한 어린 하춘화를 업고 나온 이주일의 용기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사람은 위기때 본성이 나온다고 하죠.
(사고 후 이주일은 대수술과 4개월간의 입원치료를 거쳐 건강을 회복함)


그렇게 활동하던 하춘화는 1981년 정운창과 결혼합니다(직업 사업가).
하지만 하춘화의 가수 활동 재개로 의견이 부딪쳤고, 불과 1년도 되지 않아서 이혼하고 맙니다(하춘화 전남편 이혼사유, 이혼이유).
오늘날에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당시만해도 여자들의 바깥 활동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죠.

 

하춘화 젊은시절 과거 사진

 

 

하춘화는 이런 상처를 안고 혼자 살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재혼하게 됩니다. 바로 1995년 현재의 남편 이인순이었죠(하춘화 배우자).
(이인순 직업, 당시 KBS 기획조정실 관리부차장)


그런데 하춘화와 이인순이 결혼하기까지의 스토리가 재미있습니다.
하춘화: "중학생 때부터 알았던 국장님이 자신의 오랜 친구를 소개시켜줘 중매로 만났다. 그런데 소개 이후 남편이 1년동안 연락이 없었다."

 

하춘화: "유명세를 타는 것이 부담됐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남편이 1년여간을 고민 끝에 그냥 부인의 직업이 가수일 뿐이다 라고 다시 만날 결심을 하게 됐었다."

남편인 이인순은 당시 43살의 노총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결혼을 아주 신중하게 생각했는데 그런 남편의 신중함도 대단했지만, 하춘화 역시 그 이상의 참을성을 보여줍니다. 아마 첫번째의 실패가 하춘화를 더욱 더 신중하게 만든 것 같네요.


결국 하춘화는 그런 남편의 신중한 마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둘은 6개월 간의 연애끝에 1995년에 결혼하게 됩니다.

하춘화: "연애결혼 같은 경우는 서로 조건을 안 따지지만 이건 경우가 달라 결혼 전 호적등본, 건강진단서를 교환했다."

 

남편도 하춘화의 이런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여기서도 하춘화의 신중함이 다시 돋보이네요. 이 덕분인지 둘은 올해로 20년째 잘 살고 있네요.
다만, 둘 사이에 자녀(자식)은 없습니다.

 

 

하춘화: "일하는 아내에게 가장 큰 외조는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밖에서 일할 때는 남편이 절대 전화를 안한다."

남편이 하춘화가 마음놓고 일할 수 있도록 배려를 많이 하네요.

 

하춘화: "내가 해줄 수 있는 내조는 아침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다. 평소에 잘해줄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나면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오순도순 잘 사는 것 같습니다.

 

박사모를 아버지에게 씌여주는 하춘화

 

하춘화에 대해서 유명한 점은 바로 그녀가 박사 학위를 가진 현역 가수라는 점입니다. 예전에 가수 생활을 하다가 은퇴하고 박사 학위를 딴 사람 혹은 박사 출신 가수는 몇 있지만, 활동을 하면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은 하춘화가 최초가 아닌가 합니다.
(근래에는 홍진경 등이 있음)

 

하춘화: "논문 자료 수집과 교열을 도와주며 용기를 준 남편이 가장 큰 힘이 됐어요. 부모님과 가족의 기대도 커서 꼭 결실을 맺고 싶었죠."

 

하춘화: "박사 형제ㆍ자매가 2명인 고학력 집안의 분위기도 한 몫 했어요. 각오는 했지만 박사 과정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2차 논문 심사 후 탈진해 입원까지 했어요."

(후에 하춘화의 4자매들은 모두 박사 학위를 따는 진기록을 수립하게 됩니다.)

 

하춘화의 박사 학위 수여식에 인순이 등의 동료 가수들이 찾아와서 축하를 하죠.

(사진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태진아, 설운도, 현숙 등도 참석함)

 

런데 이렇게 오래 공부할 경우에는 2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자신의 학력을 남들에게 과시하고 자기 만족을 위해서 불필요한 학위를 따는 것이고, 두번째는 학문 그 자체를 알고 나와 남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하여 학문을 연마하는 것이죠.

그런데 하춘화의 삶의 궤적을 보면, 하춘화는 후자의 경우같네요.

 

하춘화는 경남대 2년 과정을 수료한 다음인 1996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가정과에 편입을 하게 됩니다. 보통 남들에게 자신의 학력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은 방통대 같은 곳에는 가지 않죠. (방통대를 비하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남들 앞에서 자랑하는 경우가 아니라는 뜻임)

 

그 후에도 하춘화는 가수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저작권법을 공부하기 위하여 법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응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법대 출신이 아니기에 2년간 세번 낙방한 끝에 전공을 변경해서 예술철학을 전공하게 되죠.

 

늦은 나이에도 배움을 소홀히 하지 않고,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하춘화는 아직 무척 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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