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겸 영화배우 김부선의 인생은 정말 파란만장한 거 같습니다. 결혼하지도 않고 딸을 낳았고, 친딸을 빼앗기기도 했으며, 끝내는 미혼모로 갖은 고생을 하면서 딸을 키우게 됩니다.
비록 김부선의 죄가 많기는 하지만, 그 모든 운명이 김부선때문만은 아니죠. 게다가 김부선 옆에 있는 두 사람이 그런 김부선 때문에 그녀 못지 않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첫번째는 탤런트 이정길이고 두번째는 김부선의 딸인 이미소(이름)입니다.
김부선과 그녀의 남편을 다루려면, 이 두 사람의 운명과 김부선의 남자 역시 같이 다뤄야 할 거 같습니다.
사실 김부선의 전남편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김부선의 본명은 김근희이고 1961년 7월 10일 제주도(남제주)에서 태어났습니다(고향). 올해 나이가 54살입니다.
(김부선 학력, 대정여자고등학교(대정여고))
1983년 영화 여자가 밤을 두려워햐랴로 데뷔하는데, 그 이후 1984년 애마 부인3로 일약 스타가 됩니다.
당시 약 30만명의 관객 동원을 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죠.
그 이후에도 영화와 드라마 토요일은 밤이 없다. 화대, 말죽거리 잔혹사, 불새, 신의 저울, 네 이웃의 아내 등에 출연하게 됩니다(김부선 프로필).
김부선 권상우 말죽거리 잔혹사 사진
그런데 이제까지 상습 마약 복용으로 총 4번에 걸쳐 적발됩니다. 1986년과 1989년, 1994년에 걸쳐서 대마초를 피운 혐의 로 구속 영장이 청구되고, 2004년에도 구속됩니다. (총 4번에 걸쳐 적발)
또한 김부선은 1988년 아이를 낳는데, 당시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였고, 여기에 또 큰 곡절이 있습니다.
김부선: "딸을 임신했을 당시 시어머니로부터 돈 뜯어 먹는 씨받이 취급을 당했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딸의 생부와 이별한 이후 홀로 딸을 낳아 키워왔다."
김부선 젊었을때 과거사진 리즈 시절
김부선: "선천성 심장병이 있어서 의사가 애를 낳다가 죽을 수 있다는 경고를 했음에도 딸을 낳았다. 그 사람을 사랑했고 딸을 낳아달라고 해서 프러포즈 인줄 알았다. 하지만 딸을 낳고 나니 그 남자는 영화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당시 큰 부자였던 남자가 김부선과 연애를 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고 버렸던 것이죠. 정말 남자가 나쁜 놈이네요. 그런 남자를 믿었던 김부선의 판단력에도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일차적인 원흉은 여자와 자기 자녀를 책임지지 않은 남자인 거 같습니다.
김부선과 이 남자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김부선: "어느 날 딸이 고 1때 친부가 나타났다. 당시 나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왔을 때처럼 혼자 초라하게 분식집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이미 재혼을 한 상태였고 아이(딸)도 있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왜 창피하게 이런 장사를 하느냐. 집안 망신 시키냐'고 말했다. 위자료로 한 10억원 줄 테니까 장사하지 말라고 했다."
"그 사람이 자식(여기서 딸 이미소를 뜻함)은 앞으로 내가 최고의 교육을 시켜줄 테니까 나보고 좋은 남자 만나서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했다. 시댁은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그 사람의 그럴 듯한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아이 또한 새로운 꿈에 부풀었다."
"그 사람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결국은 거짓말이었다. 신문에 크게 날 정도로 재벌이었던 그 사람이 딸을 유학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유산만 천억을 받을 정도로 부자였는데 15억이 없어서 부도가 났고, 그러면서 유학도 무산됐다."
아마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미소를 당장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말이 아니라, 대학생이 된 2007년 혹은 2008년 경에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말 같네요.
아니면 예전의 위자료 10억 발언처럼 거짓말을 했는 건지도 모르고요.
재산, 재력은 많은데 인품은 그만하지 못한 사람같습니다.
김부선 이미소 모녀 사진
아무튼 김부선의 마지막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밑의 내용과 연관이 되니까요.
어쨌든 김부선이 1988년에 낳은 딸인 이미소(후에 영화배우로 데뷔했죠. 생년월일이 1988년 10월 29일, 학력 건국대학교 영화과)가 고1일 때면 17살, 2004년 경이네요.
어린 나이에 큰 기대를 가졌다고 절망을 겪은 거 같습니다.
이미소의 마음에 대해서는 밑에서 좀 더 언급하겠습니다.
여기서는 먼저 이정길에 대해서 언급해야겠네요.
이정길이 김부선의 남편으로 오해받는 이유는 사실 터무니 없습니다. 그가 애마부인3에서 김부선의 상대역을 했고, 또한 성이 이미소와 똑같은 이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김부선의 상대는 탤런트가 아니라 재벌이었죠.
이정길이 참 대인배같네요. 이런 오해로 자신의 이미지가 많이 상했을 텐데도, 쓰다 달다 별다른 말이 없었으니까요.
아마 자신이 나서면 미혼모로 고생하는 김부선과 그 딸에게 더 큰 논란이 있을까봐 조용히 있는 거 같습니다.
사실 이정길이 아니기에 이미소가 강심장에서 이정길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김부선의 전남편은 누구였을까요? 김부선은 이제까지 한번도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말하는 도중에 힌트를 너무 많이 흘리더군요.
재계(더 정확하게는 좀 오래된 영화계 관련 기업들)에 있는 인사라면 누구나, '아, 그 사람'이라고 단번에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김부선 남편 누구).
저 역시 김부선의 의향을 존중하여 그 사람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좀 생뚱맞지만, 김부선이 두번째 마약 흡연을 하다가 구속되었을 때 이야기는 좀 해야겠네요.
당시 1989년이고 김부선(당시 예명 염해리)은 딸인 미소를 출산한 직후였죠. 이때 김부선은 내연의 남자였던 단성사 부사장 이주호와 함께 구속됩니다(당시 이주호의 친구였던 모 그룹 인사도 같이). 둘은 1986년부터 연인관계였죠.
그리고 불행하게도 단성사는 2008년 4월 15억원 당좌를 결제하지 못해서 부도 처리가 됩니다.
http://news.maxmovie.com/movie_info/sha_news_view.asp?mi_id=MI0080143474
참고로 단성사는 일제강점기 1907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관입니다. 설립자가 지명근, 주수영, 박태일이었고, 대표자가 이상용이었는데, 우리나라 영화사에서 작지 않은 족적을 남긴 영화관입니다. 한때 무성영화만 틀어놓고 돈을 끌어 담던 때도 있었고, 극장 재벌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죠.
(그리고 2008년 11월 아산엠그룹에 인수되어서 아산엠단성사로 재출범하게 됨)
김부선의 남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거 같고,
그러면 이미소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요?
김부선은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와 MBC 드라마 불새를 통해 막 재기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대마초로 구속되고 모든 드라마 캐스팅이 취소되어 버립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검찰이나 사법부 역시 대마초의 별로 강하지 않은 중독성을 알기에 대마초를 다른 마약류와 같은 수준의 형벌을 주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전과 4범인 김부선은 몇년은 교도소에 있어야겠죠. 또한 김부선의 죄질이 무척 경미한 사항도 있고...)
결국 교도소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드라마에 출연하지 못하는 막대한 타격을 입은 김부선은 2004년 대마초 흡연 및 수수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게 됩니다.
김부선의 주장은 대마초는 술, 담배 등의 약물보다 결코 위험하지 않고 중독성도 없는데, 강력한 마약류인 코카인 등과 동일한 법의 잣대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일견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지만,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연예인이 이런 위헌 소송을 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김부선은 많은 지탄을 받게 됩니다.
김부선: "외국처럼 대마초, 담배, 술을 놓고 면밀히 비교 분석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으나 들어주지 않았어요. 정부가 주장하듯이 대마초가 그렇게 무서운 마약이라면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고 죄도 달게 받겠다고 했지만 소용없더군요."
결국 문화연대를 비롯한 의료계, 문화예술계, 한계 인사들까지 김부선을 지지하게 되었고, 대마초 합법화 문제는 2004년 최고의 사회 이슈로 떠오르게 됩니다.
당시 한 설문조사에서 국민들의 64%가 이렇게 답합니다.
- 대마초의 합법화에 찬성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
사실 대마초가 히로인과 같은 강력한 마약보다는 중독성이 낮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한국인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여러 주나 캐나다, 유럽의 여러 나라 역시 차츰 대마초를 합법화하는 추세란 사실도 마찬가지죠.
다만 한국의 현실에서 대마초는 여전히 마약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대마초를 합법화하면 그 다음의 약물 역시 진입 장벽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때문에 아직은 시기 상조라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죠.
(2005년 11월,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재판관 전원 일치의 의견으로 현행 대마초 관련 법규는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림)
어쨌든 김부선처럼 개인이 자기 주장을 '평화적'으로 제시한 점은 박수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최소한 비난할 일은 아니었죠.
하지만 김부선의 딸인 이미소는 어땠을까요?
2004년 대마초 흡연으로 적발된 김부선은 이때서야 딸의 고통을 알게 됩니다.
김부선: "집에 돌아왔더니 우리 딸이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악에 받쳐 울더군요. 자기가 받는 고통은 헤아려본 적이 있느냐면서요. 중학교 때까지 아이들 앞에서 더러운 마약쟁이 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몰매를 맞았대요. 지금도 머리가 아파서 아스피린이라도 먹으면 친구들이 엑스터시 먹느냐고 놀린다고 하면서…."
의아해진 김부선이 딸에게 묻습니다.
"그동안 왜 한번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
이미소: "엄마 (실제) 성격에 그 소릴 듣고 가만 있었겠느냐? 아마 그랬으면 이 나라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2004년이면 이미소의 나이가 17살이었네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였겠습니다. 게다가 중학교 3학년때까지 이미소는 친구들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고 고백합니다.
아들도 아니고 딸이 이 정도였다니... 왕따와 학교 폭력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 거 같네요.
김부선의 잘못은 실제로 형무소를 들어갈 정도의 중죄는 아니었습니다. 비록 약간의 김부선의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딸인 이미소가 왜 이런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안타깝네요.
이미소의 마음속이 온통 멍들었을 거 같습니다.
예전에 김부선과 이미소 모녀가 강심장에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미소가 엄마에게 이런 부탁을 했죠.
이미소: "어머니에게 바라는 게 있다. 다시는 방송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성적 이야기와 내 성형 수술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시집을 안 가셨지만 나는 결혼도 해야 하니까."
김부선 역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내가 사고를 칠 때마다 김부선 딸이라는 이유로 딸이 같이 욕을 먹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위에서 언급했던대로 이미소는 중학교 3학년때까지 친구들한테서 마약쟁이 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무릎을 꿇어야 했죠.
하지만 김부선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는 거 같습니다.
김부선: "강심장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딸이 갑자기 차를 세우라고 하더라. 그때부터 과거 초등학교 중학교 이야기를 쏟아냈다. 딸이 ‘엄마가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킬 때마다 내가 얼마나 심한 왕따를 당했는지 아냐’고 했다."
결국 그날 이후로 이미소는 집을 나가서 김부선과 따로 살고 있습니다. 아마 어렸을 적에 참고 참았던 것이 그때 한꺼번에 터진 거 같습니다.
사실 사람에게 입을 다물고 살라고 강요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지만, 딸인 이미소라면 엄마인 김부선에게 좀 자제를 해달라고 할 권리는 있을 거 같네요. (위에서 딸이 집나갔다는 얘기도 김부선이 하지 말았어야 할 이야기죠. 괜히 영화배우인 딸의 이미지만 나빠지니...)
미혼모로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홀로 어렵게 딸을 키운 김부선의 모정과 책임감을 존경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다만 이제는 딸의 말대로 좀 자제하면서 사는 것도 좋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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