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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탤런트 권재희는 1962년 9월 21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 (권재희 고향 서울). 올해 56살이죠. (탤런트 권재희 나이)

(권재희 학력 학교)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

세종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 석사


(권재희 프로필 경력) 1981년 미스 롯데 4기

1981년 KBS 공채 8기


이후 권재희는 영화 연산일기, 독불장군, 철수와 만수 등과 드라마 꾀돌이 삼총사, 북으로 간 여배우, 전원일기, 아들과 딸, 꿈의 궁전, 어머님은 내 며느리, 혼술남녀, 달콤한 원수 등에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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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유라준) [Copyright ⓒ 유라준 yuraju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선 권재희 아버지는 권재혁이고, 직업은 육사 교수이었죠.


원래 권재희 집안은 3.1 항일 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는데, 권재혁의 경우는 일찍이 미국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습니다.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석사를, 오리건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귀국해서 육사 교수가 된 전형적인 경제학자였죠.


하지만 1960년대 남조선해방혁명단 사건의 우두머리로 지목이 되었고,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1969년 사형이 선고됩니다.


(참고로 당시 총 12명이 붙잡혔는데, 권재혁만이 주범으로 몰려서 사형을 당했고, 나머지는 최고 10년형에서 집행유예 5년까지 선고받음. 당시 독재 정권이 권재혁을 얼마나 싫어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임)


권재희: "우리 아버지는 인자하셨고 잘생기셨어요. 저랑 화단에서 꽃을 가꿨고, 통닭을 구워서 함께 먹기도 했고요."


권재희: "아버지께서 육사 교수셨기 때문에 저희 집으로 제자들도 많이 찾아왔어요."


이런 평범한 가정의 행복이 권재혁이 독재정권에 의하여 붙잡혀 가고, 사형 선고를 받게 되면서 박살나게 됩니다.



권재희: "아직도 기억이 나요. 가족끼리 사과를 먹고 있는데 전보가 왔어요. 아버지가 사형으로 돌아가셨다는 통지서였어요."


권재희: "어머니와 오빠, 언니는 오열했고 저는 손에 쥔 사과를 보면서 ‘지금 이걸 다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하긴 당시 권재희의 나이가 불과 8살이었으니, 아버지를 억울하게 잃은 애통함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을 것 같네요.


아무튼 나중에 당시 중앙정보부가 사건을 조작했고, 권재혁 등을 최장 53일 동안 불법 구금하면서 구타와 고문을 일삼았던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죠.


그리고 무려 45년만인 지난 2014년 권재혁은 재심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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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희: "대법원장이 아버지에 대하여‘무죄’를 선고하자 오빠는 벌떡 일어나서 ‘다시는 정치적 살인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형 제도를 폐지하라.’며 소리를 쳤어요."


권재희: "결국 청경들에게 두 팔이 잡힌 채로 퇴장당했지만, 결코 그 소리를 멈추지 않았어요."


권재희: "언니와 전 화장실로 달려가서 울었어요. 그건, 엉엉 소리가 아니라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었어요. '난 역적의 딸이 아니다', '난 자유시민이다'라고요."


지난 45년동안 권재희 가족들이 얼마나 억울했을요?


권재희: "오빠가 해외유학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연좌제 대상이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 우리는 선생님이나 공무원 등의 평범한 직업은 할 수 없었던 거에요."


권재희: "그래서 중학교 시절에는 '내가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은 별로 없다', 라고 많이 힘들었고요."


아버지를 억울하게 잃은 걸로도 모자라, 연좌제의 대상이 되어서 사회적인 멸시를 받게 되다니...


권재희: "결국 제가 선택한 것이 미스 롯데였어요. 미스롯데에는 그런 제한이 없었기 때문이죠."


권재희: "오전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연극 무대에 섰어요. 이후에는 공연 연습을 했고요."


권재희가 정말 절박하게 살았던 것 같네요.

그냥 과거의 화려했던 탤런트라고만 생각했는데, 삶에 아픔이 많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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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권재희는 탤런트 생활을 하다가 남편 이하원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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