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인 이야기/김대중

김대중 집안과 친일 문제

# 목차

* 김대중의 창씨개명과 박정희의 차이점

* 김대중의 친일 문제

* 김대중의 6.25 당시 행적

* 김대중은 반공주의자가 되었지만...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스폰서 링크)
. .
* 김대중의 창씨개명과 박정희의 차이점


그리고 1938년 김대중은 도요타 다이추로 창씨개명을 하게 되는데, 당시 김대중 나이는 불과 15살이었습니다.


당시 김대중의 창씨개명이나 김영삼의 창씨개명은 미성년자였던 시절에 행해진 것이기에, 박정희의 창씨개명과는 분명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시절에 창씨개명을 했는데, 일부 박정희 지지자들이 이런 것으로 김대중과 박정희의 창씨개명을 동일화시키는 것은, 실로 통탄스러운 일이죠.

* 김대중의 친일 문제


사실 김대중의 문제는 '창씨개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된 다음에 자신의 과거 창씨개명 이름을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무쿠모토 이사부로(김대중의 목포상업학교 재학 시절 담임)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일본에 올 때마다 전화를 걸어 창씨개명했던 (과거) 일본 이름으로 ‘선생님, 도요다(豊田)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감복하면서도 참으로 어색했다."

(아사히 신문 보도)


김대중에게 역사 의식이 제대로 있었는지, 의문이네요.

* 김대중의 6.25 당시 행적


목포상고를 졸업한 김대중은 목포상선회사에서 경리 사원으로 일을 했고(1945년), 해방 후에는 종업원 대표로 추대되어 회사 경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절에 김대중은 건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목포지부에 참여하기도 했고, 조선신민당 (공산주의 정당)에 입당해서 활동하기도 합니다.


이런 활동때문에, 일부 김대중 비판자들은 '김대중이 공산주의자이다'라고 비판했고, 훗날 대통령 선거때마다 '김대중은 빨갱이다'라는 비판의 근거로 활용이 되었죠.


하지만, 6.25 전쟁 상황을 보면, '김대중은 빨갱이다'라는 말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원래 6.26 전쟁 발발 직전에 김대중은 회사 일로 서울로 상경했다가, 거기서 전쟁을 맞이하게 됩니다.

. .
* 김대중은 반공주의자가 되었지만...


이때 김대중은 인민군 치하의 참상을 낱낱이 지켜보았고,

걸어서 목포까지 피난을 가게 됩니다.

(이 부분은 김대중의 정치 철학이 형편없다는 결정적인 근거중의 하나임. 밑에서 추가 설명)


아무튼 목포까지 피난을 온 김대중은 인민군에게 체포가 되었고 (왜냐하면 김대중의 대한청년단 소속이 문제가 됨), 강당에 갇힌 김대중은 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들은 정신없이 퇴각을 했고, 김대중은 가까스로 탈옥에 성공할 수 있었죠.


(스폰서 링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