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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 배우 윤정희의 과거 이야기, 그리고 백건우 윤정희가 어떤 러브스토리를 가졌는지 궁금하네요.


# 목차

* 윤정희 어린 시절에

* 윤정희 프랑스 유학 이유

* 피아니스트 백건우 어린 시절에

* 백건우 젊은시절의 고민들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백건우 윤정희 김지미)
김지미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김지미 나훈아 최무룡 이혼사유와 김지미 남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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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윤정희(본명 손미자)는 1944년 7월 30일 부산에서 태어납니다(배우 윤정희 고향 부산, 후에 광주에서 성장하게 됨). 올해 73살이죠(배우 윤정희 나이).

(윤정희 종교) 천주교

(윤정희 국적) 한국

(윤정희 학력 학벌) 광주 전남여자고등학교 졸업, 조선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중퇴, 서울 우석대학교(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 석사, 프랑스 파리 제3대학교 대학원 예술학 석사


(윤정희 프로필 및 경력)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


이후 강명화, 싸리골의 신화, 순애보, 내시, 감자, 장군의 수염 등 약 3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문희, 남정임 등과 함께 원조 트로이카를 형성합니다.


60,70년대의 톱여배우였죠.

그런데 영화계 데뷔는 전혀 의외네요.

백건우 윤정희 리즈시절 과거 사진

* 윤정희 어린 시절에


윤정희: "원래 영화배우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교수나 외교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죠."


윤정희: "그러다가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오디션을 봤어요. 한강변에서 황정순 선생님을 붙잡고 우는 연기를 했는데, 그 상황에서 저절로 눈물이 나오더군요."


아무래도 윤정희에게 연기에 대한 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당시 오디션 경쟁률이 2000대 1이었는데, 윤정희는 이걸 뚫고 여자주인공에 캐스팅이 됩니다.


윤정희: "주연을 맡았던 첫 영화가 성공을 거두자, 그시절 유명한 감독님께서 저를 보자고 하셧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음 영화의 조연을 제안하셨죠. 그래서 전 "조연 맡으려고 영화배우를 시작한 거 아니에요. 주연배우를 하려고 모든 자존심을 걸고 나왔죠’라고 대답했어요."


윤정희: "남편이 지금도 저에게 자존심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요. 젊었을 때는 더 했고요."


확실히 윤정희 성격이 자존심이 무척 강한 것 같네요.

* 윤정희 프랑스 유학 이유


윤정희는 다른 트로이카와 함께 약 7년동안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가,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납니다(1974년).


윤정희: "원래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약 5년 정도만 연기를 하고, 그 다음에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제 예상보다 2년을 더한 거죠."


윤정희: "유학을 떠난 이유는 내 세계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당시 배우로 지내면서 제 생활을 가질 수가 없었거든요. 학생들이 매일 짚앞에 진을 치고 있었고, 어떤 남자는 혈서를 써서 저에게 보내기도 했고요."


윤정희: "그러다가 독일 일정때문에 유럽에 갔는데, 우연히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다가, 파리에서 공부하기로 결심을 했어요. 사실 영화가 처음 시작된 곳도 파리죠."


윤정희: "파리 제3대학에서 꽤 오랫동안 공부했어요. 학교 학비가 아주 싸서 오랫동안 공부할 수 있었죠. 물론 중간에 좋은 시나리오가 드러오면, 학교는 휴학하고 귀국해서 영화를 찍기도 했고요."


그런데 윤정희 남편 백건우 역시 당시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둘이 처음 만난 것은, 윤정희가 파리 유학을 떠나기 한참 전이었죠.

백건우 윤정희 사진

* 피아니스트 백건우 어린 시절에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1946년 5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백건우 고향 서울). 올해 71살이죠(백건우 나이). (백건우가 부인 윤정희보다 2살 연하임)

(백건우 국적) 한국

(백건우 종교) 천주교

(백건우 학력 학벌) 줄리어드 스쿨 음악학교 피아노 전공, 줄리어드 스쿨 음악대학원

(백건우 프로필 및 경력) 1967년 나움버그 콩쿠르(Naumberg Award)에서 우승

1969년 리벤트리 콩쿠르(Leventrill) 결선 진출

1969년 부조니 콩쿠르 우승


백건우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에 대한 천재성을 보여줍니다.

백건우 아버지는 주변의 주변의 권유로 아들을 1961년 미국의 줄리어드 음악원으로 유학을 보냅니다.


당시 백건우 집안의 경제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백건우는 사진 촬영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법니다.

그러다가 유럽으로 옮긴 백건우는 빌헬름 켐프를 사사하는데, 훗날 백건우가 '건반 위의 구도자'라고 불릴 정도로 경건한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스승 빌헬름 켐프의 영향이 컸죠.

빌헬름은 음악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때로는 종교적이라고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엄숙주의의 대가였죠.


백건우 피아노 연주회 동영상 모음

백건우 쇼팽야상곡9-1(Kun woo Paik,Chopin Nocturne9-1) 

 

 백건우-슈베르트 즉흥곡(Kun-woo Paik-Schubert Impromptu) 

 

 소리공감 백건우 섬마을 콘서트 130618

   

 백건우 베토벤 비창2악장(Beethoven Pathetique sonata-II-Kun woo Paik) 

 

 백건우-슈베르트 소곡(Kun-woo Paik-Schubert klavierstucke) 


* 백건우 젊은시절의 고민들


백건우: "데뷔는 1972년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 이전인 1967년 카네기홀에서 연주도 했고, 그리고 1969년 부조니 콩쿨 우승을 하기도 했지만, 제가 어느 정도 음악 세계를 알고 피아노연주를 한 것은 1972년때부터였어요."


백건우: "당시 스물여섯살이었는데, 그때 음악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죠. 그러자 뉴욕타임스에서 ‘감동의 순간을 꿈꾸지 못한 최초의 무대’라면서 신문에다가 대서특필을 하더군요."


백건우: "사실 20대때는 피아니스트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도 많았어요. 동양인이 서양 음악을 갖고 서양 사회에 뛰어들어 제대로 자리잡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내가 서양 음악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죠."


백건우: "그리고 30대때에는 악기를 다루는 어려움이 아주 컸습니다. 악보를 보면 '완벽한 소리'가 머릿속에서 연주되는데, 실제 내 연주 소리는 너무나 뒤떨어져 있었으니까요."


백건우: "지금 돌이켜보면, 나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서양음악을 극복하는 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 무렵 백건우 윤정희는 아주 우연히 첫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백건우 윤정희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2)

백건우 부인 윤정희 결혼, 부부가 행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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