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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총 3개의 글중 첫번째 글


영화배우 진도희 사망 이유(진도희 별세),

그리고 진도희가 딸을 낳은 이유를 짚어봅니다(진도희 가족).


(진도희 문희)

문희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문희 젊은시절 스캔들과 경찰 고소 사건


(스폰서 링크)


# 목차

* 진도희 vs 진도희

* 한지일의 변명이 무책임한 이유

* 원조 진도희 화려했던 과거

* 원조 진도희 결혼 못한 이유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탤런트 겸 영화배우 진도희(본명 김은경)은 1971년 6월 16일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납니다(진도희 고향 전남 강진). 올해 46살이죠(진도희 나이)(진도희 김은경).

(진도희 키 몸무게) 162cm, 46kg

(진도희 학력 학벌) 광주여자고등학교 졸업

(진도희 프로필 및 경력) 1993년 엑스포 미인선발대회 선


그리고 동년 한지일을 만나서 영화계에 입문

영화 키스키스,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 젖소부인 바람났네(1~9편), 산부인과에 처녀가 많은 이유, 과부들의 저녁식사, 장마가 시작될때 등과 연극 엄마의 기도 나의 기도, 욕망의 섬, 드라마 단단한 놈 등에 출연합니다.



진도희 사진


* 진도희 vs 진도희


에로배우 진도희는 젖소부인 바람났네로 당시 90년대 에로 영화계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당시의 에로 영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제목에 코믹과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고, 영화 자체가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진도희란 예명은 사실 진도희(김은경)의 것이 아닙니다.

원래 1970년대 큰 인기를 모았던 원로배우 진도희(본명 김태야)의 예명이었기 때문이죠.


이 예명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한지일이 붙여준 것입니다.


한지일: "고인(진짜 진도희)에게 죄송하다. 생전에 미국에 있는 내게 전화해서 "딸보기가 많이 민망하다"라며 (가짜) 진도희의 이름을 바꿔달라고 했는데,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한지일: "사실 윤일봉 선배가 진도희 건으로 나와 진도희(젖소부인의 주인공 가짜 진도희)를 만났다. 당시에 진도희가 울면서 이름을 그대로 쓰겠다고 했다. 진짜 진도희가 윤 선배를 통해 내게 연락해서, 이름을 못 쓰게 해달라고 했으나 (나중의) 진도희는 말을 듣지 않았다."


진도희 한지일 사진


* 한지일의 변명이 무책임한 이유


한지일: "그리고 '진도희' 건이 일단락됐다고 느낀 순간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결국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많이 올랐고, 우울증에 공황장애까지 겹쳐서 나중에는 병원신세를 지게 됐다."


한지일의 말이 변명조로 들리네요.

가짜 진도희야 영화계의 한참 후배이고, 한지일은 진짜 진도희와 거의 동년배의 배우였습니다.

(진짜 지도희 1949년생, 1972년 데뷔

한지일 1947년생, 1973년 영화배우로 데뷔)


결국 묶은 사람이 매듭을 풀어야 하는데, 한지일은 가짜 진도희가 울면서 주장했다고 결국은 자신이 한 잘못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네요.

(참고로 한지일과 가짜 진도희는 서로 굉장히 안좋게 헤어짐.

서로 법적 소송까지 하다가 결별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밑에서 추가 설명)



또한 가짜 진도희 역시 비록 처음에 한지일이 잘못된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네, '울면서 그대로 쓰겠다'라고 한 것에서 본인의 이기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네요.


아무튼 딸까지 있었던 진짜 진도희로서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이름에 큰 상처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젖소부인 진도희 근황을 살펴보기 전에, 진짜 진도희의 발자취부터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네요.

이 원조 진도희의 인생 역시 무척 기구하죠.



* 원조 진도희 화려했던 과거


영화배우 진도희(본명 김태야, 첫 에명은 김경아)은 1949년 12월 18일 부산에서 태어납니다(진도희 고향 부산). 2015년 작고할 당시에 67살이었죠(진도희 나이).

(진도희 학력 학벌)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진도희 프로필 및 경력) MBC 4기 탤런트로 데뷔


이후 영화 자크를 채워라, 대추격, 서울의 연인, 바람타는 남자 등에서 주연 배우로 활약합니다.


원로배우 진도희 과거 사진


원래 이 진도희는 춘추전국시대(1세대 트로이카와 2세대 트로이카 사이에 여러 여배우들이 인기를 얻었던 1970년대 초반)에 주연 배우중의 한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에 문학에 시뮈해서 전국 문학 콩쿠르에서 상을 휩쓸기도 하는 등, 지성미도 갖추었습니다.



(참고로 훗날 한지일과 젓소 진도희가 원조 진도희의 이런 '지적이면서도 섹시한 이미지'를 도용하면서 큰 덕을 보게 됨)


진도희 리즈시절 사진(진도희 젊은시절 사진)


아무튼 원조 진도희는 1973년 남궁원과 함께 테헤란 국제영화제에 한국 여배우 대표로 참석하기도 하고, 1974년에는 백상예술대상 신인여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곧 갑작스럽게 은퇴를 하게 됩니다.


바로 조흥은행 3세인 정운익때문이었죠.

(조흥은행은 국내 상장 기업 1호임. 금융 대부 정재학이 만든 은행)


훗날 진도희 딸이 전도희와 재벌 자제 정운익의 연애와 사랑에 대해서 증언합니다(진도희 정운익)(진도희 배우자 신랑).




* 원조 진도희 결혼 못한 이유


진도희 딸: "아버지(정운익)는 어머니와 사귀는 단계에서 아어머니가 영화 활동을 못하게 한 것도 당연했고요.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어머니를 집안에 숨겨두고 꼼짝 못하게 했어요."


진도희 딸: "결국 그때문에 어머니가 잠적설, 와병설, 결혼설 등 숱한 추측성 기사들을 남긴 채 영화계를 은퇴하게 됐어요.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그 과정에서 제가 생긴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죠."

(진도희 자녀(자식))(진도희 가족 관계 딸 1명)

(실제로 진도희가 정운익과 결혼까지는 하지 못함)(진도희 남편 정운익)


진도희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3)

진도희 전남편 결혼,진도희 이혼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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