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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남자 가수 이야기

윤건노래모음 듣기 10곡, 윤건 나이 결혼과 복잡한 종교

현재 윤건은 결혼하지 않은 미혼입니다. 윤건의 나이로 보면 좀 늦은 편이죠.

윤건의 노래모음과 더불어 윤건의 좀 복잡한 종교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사실 원리주의자들이 이단이라고 공격할 수도 있는 부분이네요.

그만큼 윤건이 자유로운 영혼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름도 비슷하고 윤건이 존경하는 선배 뮤지션

윤상 알콜의존증 고백- 윤상 저작권료 3위

윤상 아내 심혜진의 컴플렉스란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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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윤건노래모음 10곡

* 어린 시절부터 어려움을 무릎쓰고

* 윤건 종교가 복잡한 이유는

* 윤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 윤건 나얼과 더불어 브라운 아이즈로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가수 윤건(본명 양창익)은 1977년 1월 1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윤건 고향). 올해 39살이죠(윤건 나이).

(윤건 종교) 천주교

(윤건 키 몸무게 혈액형) 180cm, 68kg, B형

(윤건 학력 학벌) 연세대학교 작곡과 졸업

(윤건 프로필 및 경력) 1999년 팀 1집 앨범 [Teamplay]로 데뷔


2001년 나얼과 함께 브라운 아이즈로 활동하면서 크게 주목을 받습니다.

대표곡으로 벌써 일년, 점점, 가지마 가지마 등이 있습니다.



* 윤건노래모음 10곡


참고로 윤건이 직접 뽑은 애착이 가는 노래들입니다.


윤건: "노래들은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니까 모두 애착이 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벌써 일년’ ‘비오는 압구정’ ‘홍대 앞에 눈이 내리면’ ‘갈색머리’등이 좋아요."


윤건 사진



윤건 벌써 일년

   

 윤건 갈색머리

   

 윤건 홍대 앞에 눈이 내리면  

 윤건 비오는 압구정(브라운아이즈)  

 Brown Eyes (브라운아이즈 윤건 가지마, 가지마) Don't Go, Don't Go (  

 브라운 아이즈 점점

   

 윤건 별(Byul)

   

 윤건 어쩌다

   

 윤건 라떼처럼(Like a latte)

   

 Yoongun, 윤건 걷다(Walking To You)



* 어린 시절부터 어려움을 무릎쓰고


윤건이란 예명은 윤건이 직접 만든 것입니다.


윤건(이하 윤): "원래 '건'이라는 이름이 굉장히 멋있더라고요. 그래서 평소에 '건'이라는 이름이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또 제 주위에서도 괜찮다고 하고요. 그래서 '건'이라는 이름을 먼저 정하고 나중에 어울리는 성을 고민했어요. 그중에서 '윤'이 제일 낫더라고요."


음악가 윤건에게 종교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중의 하나입니다.

지금은 종교가 그냥 천주교라고 알려졌지만, 어릴 때는 개신교(기독교), 성공회 교회 등을 두루 거쳤죠.



* 윤건 종교가 복잡한 이유는


윤: "어릴 때는 개신교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했어요. 집에서 교회가 가까웠거든요.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서 우연히 정동에 갔다가 성공회 교회를 발견했어요. 교회가 무척 아름다워서 무심코 들어가봤는데, 마침 3시 미사 시간이었어요. 잠깐 앉아있다 가려고 했는데, 그 뒤로도 계속 그 교회의 미사를 찾아가게 됐습니다."


윤: "그러다가 기도드리러 가끔 명동성당에 들르기도 했어요.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하시고 명동에서 미사를 드리게 됐는데, 뭐랄까... 명동성당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것 같았어요. (그 향기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서 교리를 받아볼까, 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윤: "인간은 부족한 존재이기에 믿으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므로 개신교회든, 성공회 교회든, 가톨릭이든... 다 같은 하느님을 섬기는 거니까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아마 종교 원리주의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윤건이 종교에 대해서는 좀 자유로운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윤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렇게 종교는 어릴 때부터 윤건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나중에 윤건이 음악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때 가스펠 경연대회에 나가려고 곡을 만들어서 (기획사에) CD를 보낸 적 있어요. 결국 떨어졌지만, 그게 계기가 되어서 작곡을 시작했어요."


윤: "그러면서 음악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단 생각에 음대로 진학을 했어요. 대학에 다니면서 좀 아웃사이더였는데, 제가 다닌 음대는 클래식이기 때문에 대중음악하고는 좀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혼자 개척해야 했죠."


윤: "많은 시간을 혼자 데모 테이프 만들어서 돌리고 그랬어요. 학교는 정학 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했고요."



윤: "그 당시 상처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관계자분들이) 데모 테이프 받으면 '연락 줄게요' 하고는 연락을 안 해요. 기다리다가 '전화 주신다고 하셨잖아요'라고 다시 전화하기도 하고..."


윤: "그러다가 어떤 기획사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결국 거기 들어가서 어시스트처럼 일하고, 다들 퇴근한 다음에 곡 작업하고 그랬죠."


윤건은 1999년 힙합 그룹 TEAM으로 데뷔하였고, 2001년부터 브라운아이즈로 활동하게 되는데, 이 기간동안 크게 고생을 합니다.


윤: "브라운 아이즈로 데뷔 전에 고생을 참 많이 했어요. 그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여러가지로 어려웠죠. 그때 (종교적으로) 기도를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내 재능이 어디까지인지, 난 이게 하고 싶은데 내가 가려는 길이 맞는 길인지..."


사실 대부분 인생에 확신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완전한 미래에 대한 윤건의 불안감이 이해가 되네요.



* 윤건 나얼과 더불어 브라운 아이즈로


그러다가 윤건은 나얼과 더불어 브라운 아이즈로 2001년 벌써 일년과 2003년 점점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당시 윤건이 만든 세련된 음악과 더불어 나얼의 흑인 창법은 한국 가요계에 알앤비 열풍을 불러 일으켰죠.


윤: "‘벌써 1년’으로 예전에 음악방송 ‘인기가요’에서 1위를 할 때가 기억난다. 당시 우리 그룹(브라운아이즈)은 TV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속사 사장님과 함께 TV를 보고 있었는데, 사회자가 우리보고 "다음주에는 꼭 나와주시길 바란다"고 말하더라. 하지만 다음 주에도 우리가 1위를 했는데, 결국 못 나갔다."


당시 브라운아이즈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일화입니다.

사실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참석하지 않는 가수에게는 1위를 잘 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브라운아이즈는 그것을 뛰어넘었죠.


이런 큰 인기를 뒤로하고 브라운아이즈는 2003년 해체하게 됩니다.

다만 공식적인 해체를 하지는 않고, 윤건과 나얼이 따로 활동을 하게 되었죠.



후일 브라운아이즈가 2008년에 3집으로 컴백할 때 윤건의 인터뷰에서 이 일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윤: "우리는 해체 선언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냥 각자 솔로 활동을 했을 뿐이죠. 물론 저와 나얼 사이에 음악적인 갈등이나 사소한 마찰이 있긴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에 대한 오해가 많이 풀렸고, 저나 나얼이나 많은 것을 깨닫게 됐죠."


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여러가지 문제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윤건에 대한 이야기 2편

윤건 여자친구 고백 과거가 윤건 장서희의 관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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