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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남자 가수 이야기

이덕진 내가아는한가지 듣기 노래7곡, 이덕진 스틸하트 비호감으로 전락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많은 돈을 벌면서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가수 이덕진의 경우를 보면 답이 무엇인지, 약간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이덕진의 개인적인 생각,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 들이 흥미롭네요.


가수 이덕진 사진


가수 이덕진은 1967년 10월 22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이덕진 고향). 올해 49살이죠(가수 이덕진 나이).

(이덕진 종교) 개신교(기독교)

(이덕진 학력 학벌) 서울 경성고등학교 졸업, 총신대학교 기독교 교육학과 졸업

(이덕진 프로필 및 경력) 1992년 1집 《내가 아는 한가지》로 데뷔


# 목차

* 이덕진 데뷔 전후

* 이덕진의 방황

* 어려운 시절을 넘기고

* 이덕진과 스틸하트의 비하인드 스토리


이덕진 과거 사진


* 이덕진 데뷔 전후


사실 이덕진은 테리우스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꽃미남으로 유명했고, 1986년 CF 모델로 데뷔해서 활동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죠.

(모델로 활동하다가 1987년 군대에 입대했고, 1990년에 제대함)


참고로 이덕진 아버지가 중견 시인 이규호입니다(직업).

(이덕진 가족 관계 - 2남 2녀중 장남)


이후 이덕진은 1992년 2집 'Live Teh State'와 1993년 3집 '기다릴 줄 아는 지혜' 등을 연달아 발표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2010년 4집 No Fate를 발표했죠.


(이덕진 내가아는한가지 듣기)

Lee Deok-jin - The only thing that I know, 이덕진 내가 아는 한 가지 듣기, Saturday Night Mus


이덕진 Forever(이덕진 포에버)


이덕진과사자후- 이덕진 기다릴줄아는지혜1995 가요톱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 Lee Deok-jin - Tears in your eyes, 이덕진 너의 눈에 눈물이, Saturday Night Music Show 1


이덕진 아픈기억속에서1993 젊음의행진  


이덕진과 사자후 - 이덕진 늦은 후회 LIVE


[복면가왕] 이덕진(Lee Duk Jin) 케이윌(K.will) - 아침이 밝아올때까지(Until The Morning Brightens)(이덕진 복면가왕)(이덕진 케이윌)



최근에는 헤비메탈 밴드 제라(ZERA)를 결성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라 뜻 - Jesus Rock Again의 준말인데, 어감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J 대신에 Z를 사용함)

밴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덕진은 종교적인 신념이 강하고, 나중에 헤비메탈 그룹 활동을 하면서도 CCM 밴드 활동도 병행하려고 합니다.


1990년대 김종서, 이덕진, 신성우를 가리켜, 록 트로이카라고 불렀으며, 특히 1992년 같은 해에 데뷔했고 미남으로 유명했던 이덕진과 신성우를 테리우스 라이벌로 부르기도 합니다(이덕진을 원조 테리우스라고도 함).


(새창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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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덕진은 가수 데뷔하기 이전인 1985년 경성고 재학 시절에 그룹 '야생마'를 조직하기도 했고, 그뒤 유영석이 이끄는 '푸른하늘'을 만들기도 했으며, '사월', '사자후' 등의 메탈 그룹에서 보컬 리스트로 활동합니다.

원래부터 록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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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진의 방황


이덕진: "내 음악의 뿌리는 원래부터 록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때 같은 반 친구인 장영규(어어부프로젝트 멤버)가 들려준 들국화 1집의 충격을, 현재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덕진이 1992년 데뷔할 때의 곡인 '내가 아는 한가지'는 바로 록 발라드였습니다.


이덕진(이하 이): "(1집 발표 후에) 팬레터를 하루에 두세박스씩 받았을 정도였어요. 팬들이 팬레터 안에 자신의 누드 사진을 넣어 보내기도 하고, 결혼하자고 집에 찾아오기도 했고요."


이: "그런데 인기란 부질없더군요. 활동을 안 하니 바로 사라지는 거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전 '오빠' 소리를 들으려고 음악한 게 아니었으니, 그걸로 좌절하진 않았어요."


이: "그런 인기와 별개로 원래 저는 발라드를 원치 않았고,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소속사와 갈등이 컸죠."


이: "또, 당시 가수가 개그 프로그램에 나가서 웃기는게 유행이었는데, 기획사가 저에게 그걸 시키니, 마치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었어요. (프로그램 피디에게 잔소리를 듣고 잠수를 타기도 했고요."


이: "당시엔 제 고집이 세서, 음반제작자의 입장을 이해 못했어요. 나중에 제가 지금의 기획사(듀크엔터프라이즈)를 운영해보니, 이해가 되더군요. 과거 미성숙함에서 온 과오였죠."


결국 이덕진은 1994년을 마지막으로 방송에서 사라집니다.



* 이덕진과 스틸하트의 비하인드 스토리


이: "한동안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집안에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닥쳐서 내 몸하나 건사하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술 때문에 건강이 안 좋아져 죽기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이: "나중에 미국에서 록밴드 '미스터 빅'과의 음반 작업 제의가 왔고, 곡을 만들었는데 또 일이 꼬이더라. 결국 그때 작업한 음악들을 노 페이트 음반으로 발표했다."


이것이 2001년에 발표한 4집 'No Fate'입니다.

그 후에도 이덕진에게 시련은 그치지 않습니다.



이: "2000년대 초반 뮤지컬도 했고, 그 이후에 게임과 영화제작 사업에 손을 댔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했어요. 원래 저는 하드록과 헤비메탈을 하고 싶은데, 대부분의 기획사들은 이런 음악을 원하지 않아요. 결국 제가 돈을 벌어서 음악 활동을 하려고 사업에 손을 댔죠. 저에게 사업이란 외도가 아니라 제가 원하는 음악을 하기 위한 방법이었죠."


이후 이덕진과 제라는 2011년 미국 교포 출신 기타리스트인 '토미 기타'의 도움으로 스틸하트와 합동 공연을 펼칩니다.

(록밴드 스틸하트의 대표곡으로 그 유명한 쉬즈 곤(She's gone)이 있음)(이덕진 she's gone)


원래 이덕진이 스틸하트의 음악을 무척 좋아했었죠.


이: "제가 스틸하트 음악을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했어요. 20여년 전에 스틸하트의 앨범이 발표된 후에, 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방송에서 라이브로 불렀거든요."


이: "그런데 막상 공연을 하면서 (스틸하트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실망이 컸어요. 지금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게 되었고, 공연에서도 스틸하트 노래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이덕진과 스틸하트 간에 무언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모양이네요.


(이덕진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이덕진 결혼 안한 이유와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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