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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혁 인생 이야기

스케이트 선수 이규혁은 무관의 제왕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올림픽 노메달에 빗대어 붙은 별명인데, 이보다 그를 잘 나타내는 말이 없음과 동시에, 또한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부분을 드러낸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케이트와 일상사에 대한 이규혁의 여러가지 생각들이 흥미롭네요.


이규혁 사진


최근 해설가로 변신한 이규혁은 1978년 3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이규혁 고향). 올해 38살이죠(이규혁 나이).

(이규혁 키 몸무게) 174cm, 73kg(향간에 키가 178cm라고 알려졌는데, 잘못된 정보입니다.)

(이규혁 학력 학벌) 리라초등학교, 신사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이규혁 프로필 및 경력) 1993년 만 15세때 국가대표로 선발


이후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 게임에서 1000미터, 1500미터 금메달, 2007년 창춘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땁니다.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에서 금 1개, 은 2개, 동 1개를 땁니다.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멀었죠.


# 목차

* 이규혁 집안

* 회한

* 이규혁 군대

* 이규혁이 금메달을 따지 못한 이유

* 젊은 선수들의 우상

* 이규혁 여자친구 생각(이규혁 여친)

* 이규혁 연금점수

* 이규혁과 인생



* 이규혁 집안


잘 알려진 것처럼 이규혁 집안은 국가대표 출신으로 이루어진 일명 '국가대표' 가족입니다.

이규혁 아버지는 이익환(이름)은 1960년대 대표적인 중·장거리 스피드 스케이터였으며, 1968년 그르노블 동계올림픽에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합니다.


다만 최근에 몸이 불편하여, 이규혁의 은퇴식에도 참석하지 못합니다.


이규혁: "아버지가 편찮으시다. 제 은퇴식에 오고 싶어 하셨는데 못 오셨다. 강한 분이라 이겨내실 거라 생각한다."


이규혁 어머니 이인숙(이름) 역시 국가대표를 지낸 '여자 피겨 1세대'출신입니다. 어릴 적 김연아를 키운 류종현, 피겨 해설가 방상아, 국제 심판 고성희 등이 이인숙의 제자들이죠.

또한 이인숙은 최근까지 전국스케이팅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합니다.


이규혁 가족 사진


이규혁 어머니 사진


이규혁 남동생 이규현 역시 피겨 국가대표 선수 출신입니다.

원래 이규혁과 친동생이 함께 스피드 스케이팅을 했다가 나중에 동생이 피겨로 전향한 케이스죠.


이인숙: "규혁이가 6학년, 규현이가 4학년 때였다. 교내 대회에서 규혁이 1등, 규현이 2등을 했다. 규현이 형한테 치일까 마음이 쓰였다. 결국 규현한테는 피겨로 진로를 바꾸자고 권유했다."



이규혁의 등장은 무척 화려했습니다.

1993년 당시 한국의 스피드 스케이팅은 김윤만과 제갈성렬의 경쟁 체제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결 구도에 중학생이었던 이규혁이 뛰어들었고, 전국 스프린트 대회에서도 김윤만에 이어 2위를 차지하자 언론은 '대형 신인'의 등장이라고 호들갑을 떱니다.


그리고 이규혁은 그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무럭무럭 성장하여 1997년 11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월드컵 스피드스케이팅 대회 1000m에서 이틀 연속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합니다.

(당시 스피드 스케이팅 부문에서 한국 최초의 세계 신기록이었음. 후에 이규혁은 2001년에도 세계신기록을 수립함)


세계 신기록까지 수립했고, 세계 선수권 대회들을 석권하고 있었기에, 본인은 물론 일반 대중들 역시 그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리라고 기대를 합니다.

하지만 이규혁은 6번이나 올림픽에 출전하지만 끝내 동메달조차도 따지 못합니다.


이규혁 과거 사진


이규혁 어린 시절 사진


* 회한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때문인지, 예전에 어떤 언론에서 이규혁에 대하여 인터뷰를 했는데, 선수에게 직설적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게 됩니다.


이규혁: "나는 부족한 선수다. 그래서 올림픽 메달이 없다."


결국 선수의 입에서 '부족한 선수'라는 말이 나오도록 만들었죠.

올림픽 금메달을 최고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그리고 거기에 편승한 언론들이 선수의 입에서 이런 아픈 말이 나오도록 한 것이 아닐까 하네요.



이규혁은 2회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던 1997년 이듬해에 열렸던 나가노 올림픽에서 

500m에서 8위, 1000m에서 13위의 저조한 성적을 보입니다.


이규혁: "가장 후회스러우면서도 다행스런 올림픽이었다. 아마 어린 나이에 금메달을 땄으면 ‘시건방진’ 운동선수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규혁: "(돌이켜보면) 첫 올림픽인 1994년 릴레함메르에서 운이든 실력이든 메달을 따야 했다. 그러면 ‘올림픽 메달’을 따는 방법을 알았을 것이다. 그때 실패하면서 올림픽 징크스가 생겼고, 그 바람에 경기를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 이규혁 군대


사실 이규혁은 올림픽뿐만 아니라 이사안 게임에서도 금메달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1993년 5월 신사중 3학년때 처음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이 되었고, 이후 세계 신기록을 3번이나 수립했지만, 2003년까지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지 못했죠.


그러다가 2003년 일본 하치노에시 나가네빙상장에서의 스피드스케이팅 1,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처음으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합니다.


이규혁: "날씨가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금메달을 따게 돼 너무 기쁘다. 1,000m도 부담없이 시합을 벌여 대회 2관왕에 오르겠다."


그리고 부담감을 덜었는지 이규혁은 대회 2관왕에 등극합니다.

(1500미터, 1000미터)


이규혁은 이 덕분에 병역문제를 말끔히 해결합니다.



그런데 이후부터는 '아시안 게임에서 메달을 따는 법'을 알았는지, 2007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2관왕이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이규혁의 '첫 올림픽에서의 회한'이 더욱더 아쉽게 다가오네요.

아마 그때 메달을 따게 되었다면, 이규혁은 올림픽을 즐기게 되면서 더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니까요.




* 이규혁이 금메달을 따지 못한 이유


이규혁은 2008년과 2011년 네덜란드 헤이렌베인에서 열린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당시 말을 타고 트랙을 돌게 됩니다.(우승자에게 선사하는 네덜란드의 특별한 세레머니)


사실 이규혁은 2007년 릴레함메르·2008년 헤렌벤·2010년 오비히로·2011년 헤렌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프린트 선수권에서 4회의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세계 빙상계의 강자였습니다.


현재까지 ISU 스프린트 선수권에서 4회 이상 우승한 남자 선수는 미국의 에릭 하이든과 벨라루스의 이고리 젤레좁스키, 캐나다의 제러미 워더스푼과 더불어 한국의 이규혁까지 총 4명에 불과하죠.



하지만 이규혁은 그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때도 2006년이나 2010년 올림픽에서는 저조한 성적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사실 벤쿠버 올림픽때는 무척 아쉬운 경우도 당하게 됩니다.


이규혁: "(2010년 벤쿠버 올림픽때) 4년 동안 정말 잘 준비했다고 자신했다. 밴쿠버에 가기 직전까지 당연히 메달을 딸 것으로 믿었다. 실패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500m 경기 전날 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컨디션이 너무나 안 좋았다. ‘좋아지겠지’라고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이규혁: "그런데 정빙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경기가 한 시간 반이나 지연됐다. 안 좋은 일들이 겹치면서 ‘어렵겠구나’ 싶은 예감이 들었다. 그때부터 눈물이 났다."


이규혁: "(만약 정빙기 고장이 없었다면 결과는)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극도의 긴장과 집중 속에서 차례를 기다렸다가 다시 드러눕고 하기를 서너 차례나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나이가 많은 게 불리하다는 걸 처음 느꼈다. 긴장감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체력이 떨어졌다는 걸 절감했다."



젊은 선수들이야 피로 회복이 빨리 되겠지만, 스케이터로 이미 환갑을 훨씬 지난 이규혁의 육체적인 기능에서는 그런 것이 좀 힘들었지 않았던가 합니다.


이규혁은 벤쿠버 올림픽 마지막 인터뷰에서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도전하는 것이 슬펐다."며 눈물을 흘립니다.


이후 이규혁은 2011년 다시 세계스프린트 선수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고 2014년 소치 올림픽을 노리게 되지만, 이번에도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은퇴하게 됩니다.



이규혁 은퇴식에서 눈물


* 젊은 선수들의 우상


그런데 이 기간동안 이규혁은 선수로서만 활동한 것이 아니라, 국가대표팀내의 후배들의 성장에도 큰 이바지를 합니다.

2010년 금메달리스트들인 모태범, 이상화 등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태범: "규혁이 형은 나의 우상이다.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줬고, 내가 쓰는 주법도 형한테서 배운 것이다."


이상화: "이규혁이 어린시절 우상이었다. 운동하는 모습에 반해서 1등하면 결혼하자고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시야가 넓혀지니 (이상형이) 바뀌게 되더라."



이규혁: "(벤쿠버 올림픽때) 내 경기가 끝난 뒤 상화가 울면서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내일 네 경기에 지장 있으니 들어가서 자라’고 겨우 달래서 보냈다."


이규혁: "상화는 정말 특별한 선수다. 중학교 때 대표에 선발됐고, 월드컵 1,2위를 하는 선수였는데 대학 1학년 때 대표선발전에 떨어질 정도로 슬럼프에 빠졌다. 당시 ‘너는 세계적인 선수다. 다시 올라가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라며 격려했다."


이규혁이 후배 선수들에게 어느 정도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또한 2014년 소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미헐 뮐더르의 올림픽 공식 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Hero : South Korean speed skater Kyou-Hyuk Lee(영웅:한국의 스피드스케이터 이규혁)’


이규혁을 네덜란드 대표팀 코치 제라드 반 벨데와 영국의 스누커(당구 경기의 한 종류) 선수 로니 오설리반과 함께 자신의 우상으로 꼽은 것이죠.



* 이규혁 여자친구 생각(이규혁 여친)


이규혁: "여자친구가 없다. 올림픽에 전념하려고 일부러 안 사귀었다."


이규혁: "그 동안 여자친구가 없었다기보다 만나는 방식이 좀 달라진 거죠. 나이도 있으니까 진지하게 만나다가 그 친구랑 싸우면 한 주, 길게는 한 달 동안 스트레스 받는 거잖아요. 운동하는 시간 이외엔 여자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와 같이 시간을 보낼 텐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사실 (여자) 친구는 많아요. (여자친구와 관계에) 비중을 많이 둬 생활하지 않았다는 거죠."



올림픽에 대한 이규혁의 집념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은퇴를 하게 되었으니, 자연인으로 돌아가 결혼도 생각해야 할 것 같네요.

(이규혁 결혼)

* 이규혁 연금점수


우리나라에는 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낸 체육인에 대한 포상이 잘 되어 있습니다.


2014 소치 올림픽 기준 금메달리스트에게는 6000만 원의 포상금과 월 100만 원의 연금이, 은메달리스트는 3000만 원의 포상금과 월 75만 원의 연금이, 동메달리스트는 1800만 원의 포상금과 월 52만 5000원의 연금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이규혁은 올림픽에서 노메달이었기에, 위의 연금과는 무관합니다.

다행히 아시안 게임이나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의 포인트 역시 연금 점수에 넣기 때문에, 이규혁은 점수제로 운영되는 연금을 받을 수 있네요.



참고로 2007년에 이규혁의 연금점수는 벌써 60점이었고, 이후 동계 아시안 게임과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에, 연금 점수가 맥시멈에 다다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규혁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서 다행인 것 같네요.



* 이규혁과 인생



이규혁은 올림픽 노메달이었기에, 항상 스스로를 '부족한 선수'라고 언급하게 됩니다. 본인의 은퇴식에서도 이런 말을 했죠.


이규혁: "올림픽 메달 때문에 저는 항상 부족한 선수라 생각됐고, 결국 약간 부족한 선수로 이제 마감짓는 것 같다. 반면에 올림픽이라는 대회 때문에 좀더 많이 배웠고 선수로서 좀더 성숙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규혁: "앞으로 약간은 부족한 스케이트 선수로서 끝나고 살아가겠지만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좀더 노력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규혁: "가장 기쁜 건 아직까지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슬픈 건 이제는 선수로서 스케이트를 못탄다는 것이다. 올림픽 메달이 전부인 줄 알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 메달이 없어서 오히려 다행이다. 10년, 20년 전에 메달을 가졌다면 지금의 이 감사함을 몰랐을 것 같다."


이규혁 성격이 참 긍정적인 것 같네요.

평생 숙원이었던 올림픽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결국 거기에서도 '감사함'을 찾게 되었으니까요.



이규혁을 보면서 문득 우리네 인생살이가 떠오르네요.

사람들은 인생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를 소원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중간에 좌절하는 사람,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 추상적인 목표는 있지만 능력 부족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사람 등 매우 다양하죠.


이규혁은 최선을 다한 인생,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마지막에 '감사함'을 알게 된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 인생인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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