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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고교얄개 이승현 아내(부인)이혼사유-부모와 자식의 인생

이승현 인생이야기

고교얄개로 유명한 이승현의 인생을 보면,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습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사람도, 또 그 후에 또 그렇게 실패해서 밑바닥까지 떨어진 사람도 별로 없죠.


이승현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에게 타산지석이 될 것 같네요.


원조 하이틴 스타 고교얄개 이승현 사진


영화배우 겸 탤런트 이승현은 1961년에 태어납니다. 올해 54살이죠(이승현 나이).

(이승현 학력 학벌) 청운국민학교

(이승현 프로필 및 경력) 6살이었던 1966년 영화 육체의 길로 데뷔


꼬마 신랑 김정훈과 더불어 아역 연기자로 크게 주목을 받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영화 얄개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약 100여편의 영화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습니다(얄개 시리즈는 약 20편).


1973년 청룡영화제 장려상, 1974년 제13회 대종상 영화제 특별상, 1977년 제13회 백상예술대상 특별상을 수상합니다.


이승현 젊은 시절 과거 사진


이승현이 아역배우로 데뷔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이승현 어머니: "승현이가 6살때 처음 영화에 출연했어요. 당시 조긍하 감독(육체의 길 연출자)께서 저희집 이웃 여관에 묵고 계셨는데 우연히 승현이를 보시곤 출연을 권유하시더군요."


처음에 이승현의 부모님은 아들이 연기하는 것이 탐탁치 않았는데, 이승현은 연기에서 굉장한 재능을 보입니다. 특별히 연기를 배우지도 않았는데, 천연덕스럽게 하는 모습이 실로 타고난 재능이었죠.


아마 오늘날에도 아역 배우들이 많은데, 당시 이승현의 연기 실력에 비교할 수 있는 배우는 몇몇 없을 것 같네요.


그렇게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이승현은 1977년 '고교 얄개'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승현: "당시 고교 얄개 주인공을 뽑기 위해 오디션을 했는데 200명이 모두 탈락했다. 대신 감독님이 다른 드라마에 출연하는 내 모습을 보고 출연을 제의하셨다."


이승현: "출연료로 100만 원을 받았다. 당시 100만 원이면 서울에 집 한 채 살 수 있을 금액이었다(지금 가치로는 1억원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이네요). 얄개로만 20편을 찍었으니 집 20채를 사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이승현 젊었을때 사진


(얄개 뜻: 얄궂은 개구쟁이 혹은 야살스러운 짓을 하는 아이)


아마 지금 4,50대 이상은 당시 나두수(얄개 시리즈의 주인공 이름) 역할을 하던 이승현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겠죠.

그렇게 이승현은 연기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만, 곧 고난이 닥쳐옵니다.


이승현: "배우들이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갈 때 겪는 변신에 대한 고통은 이 일은 해보지 않은 분들은 모른다. 이 과정을 못 견디고 영화계를 은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 결국 나 또한 ‘이승현 하면 고교 얄개’라는 인식이 박혀 성인 역할은커녕 일반 영화에 출연하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그래서 캐나다로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이승현; "얄개(청소년 이미지의 이승현)가 베드신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실감이 나겠나? 그러니 영화판에서 누가 나를 불러 줄까?"


이승현 현재 모습


이렇게 이승현은 연기적인 면에서 큰 좌절을 겪었고, 또 어머니의 권유가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일찍 여윈 아버지는 교사였고, 어머니는 외자청장 비사와 경무대(예전의 청와대) 사무직원으로 일했기에, 아들이 외교관이 되기를 바랬죠.


결국 이승현은 홀어머니의 소원대로 1986년 캐나다로 유학을 떠납니다.


이승현: "말이 좋아 유학이지, 마음 편히 지낸 날은 하루도 없었다. 또 영화를 잊지 못해서 캐나다 영화학교에서 감독의 꿈도 키웠다."


그러던중 한국에 있던 이승현 어머니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이승현이 애써 모았던 재산이 모두 날아갑니다. 이때부터 이승현의 진정한 고생이 시작되었죠.


이승현: "햄버거를 굽고 화장실 바닥을 닦고 손이 부르트도록 낚시용 지렁이를 잡았어요. 막노동도 했고, 레스토랑에서 접시도 닦았고, 호텔에서 청소부로도 일했죠. 내가 남의 나라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나 싶었어요. 후회도 참 많이 했습니다. 한국에 있었으면 어려움 없이 연기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듭디다."



결국 이승현은 1993년 캐나다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당시 필리핀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하고 있던 어머니를 따라 필리핀으로 떠납니다. 거기서 이승현은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목사가 되고,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합니다.

이승현과 부인 사이에는 아들을 한명 두게 되었죠(이승현 자녀 자식)(이승현 아들)(이승현 배우자 와이프).


하지만 필리핀에서의 생활은 이승현에게 맞지 않았습니다(이승현 직업).


이승현: "필리핀에서의 선교 사역은 목숨 걸고 하는 일이나 마찬가지거든요. 뜻이야 좋지만 체질상 신학이 안 맞았어요. 어머니가 강제로 시키시니까 할 수 없이 끌려가긴 했는데…."


결국 이승현은 1997년 가족을 데리고 다시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처가가 있는 대전에서 '얄개 만두'라는 분식집을 냈지만, 이것으로 생활은 여의치가 않습니다(이승현 생활고).



게다가 이승현에게는 배우로의 꿈도 남아 있었습니다.

이승현: "배우는 그 미련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캐나다에서 밑바닥 생활을 할 때도, 필리핀에서 선교사 공부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연기하겠다는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갖고 있었죠."


이승현: "내가 다시 연기를 하겠다고 하자, 아내와의 다툼도 생겼어요. 아내는 제가 옛날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요."


이승현: "그 사람은 내가 옛날에 영화배우였다는 사실도 모르고 결혼했어요. 게다가 영화 바닥을 워낙 싫어하고 편견이 심했어요. 배우 하면 외박, 술, 스캔들 그런 것만 생각했죠."


이승현: "아내는 내가 배우가 아닌 목회자가 되길 바랐죠."


결국 이승현은 연기를 위해서 1년 정도 가족과 연락을 끊기도 하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이승현과 아내는 이혼을 하게 됩니다(이승현 전처 전부인)(이승현 이혼사유, 이혼이유)

(그후 이승현은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네요.

다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이승현이나,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이승현의 그런 과거를 모르고 결혼했던 부인이나, 누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지는 않네요.


다만 이승현이 결혼 전에 자신의 예전 직업을 제대로 얘기해주거나, 이승현 아내가 영화배우에 대하여 좀더 편견없는 생각을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거의 이십년만에 다시 연기를 시작한 이승현은 쉽게 현재에 적응하지 못합니다(영화 블루스, 아티스트 등).

결국 이승현은 후배와 함께 영화사를 차리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사기를 당해 크게 실패하고 말고, 끝내 이승현은 자살을 결심하게 됩니다.


이승현: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 후배와 함께 술을 퍼마시고 자살을 하기 위해 한강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죽는 것도 쉽지 않더군요. 어린 아들과 저만 보고 사시는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죽기를 포기했습니다."



그 이후 이승현은 뮤지컬 '돌아온 고교얄개' 등과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재기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주인공이 아니라 그저 연기할 수 있는 배역을 위해서죠.


이승현: "옛 명성 따위는 잊은 지 오랩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신인의 마음으로 시작할 거에요."


이승현: "연기는 마약과 같습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와도 갈 때는 마음대로 못 가는 이유지요. 연기를 못 했더니 병이 생겼어요. 뇌 속에서 그 생각이 안 없어집니다. 연기자였다는 이유로 많은 고통도 겪었지만,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못 버릴 것 같습니다."


또한 어머니가 병이 들고 맙니다.

이승현: "어머니가 갑자기 치매가 왔어요. 독자고 외아들이라, 형제가 많으면 간호할 수도 있고 모실 수 있는데 저는 어머니와 떨어져 산 지 20년이 넘었죠. 그러다보니 관리 해줄 사람도 없고 간호해줄 사람도 없고 저는 항상 불안하고 죄스러워요. 한의사였던 어머니가 봉사를 하던 요양원에서 지금 계세요."


이런 이승현의 딱한 처지가 알려지자, 예전 얄개 영화의 팬이었던 4,50대들이 주축이 되어서 '얄개 이승현 살리기 운동본부'까지 만들어집니다. 7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이승현의 이런 몰락이 큰 충격이었죠.



이승현의 인생을 보면, 정말 사람일은 한치앞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얄개 시리즈의 주인공이었을 때, 어느 누가 이승현의 처참한 몰락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게다가 이승현은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산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아역일때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연기를 시작했다가, 연기를 그만둘 때도 어머니의 권유를 따라 성인 연기자에 대한 성장통을 피하고 맙니다.


이후에 다시 어머니의 뜻에 따라 자신과 맞지 않는 선교사의 일을 하게 되었죠. 그나마 나중에라도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연기)로 다시 돌아와서 다행이네요.


자식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부모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자식을 대신하여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는 부모들이 많죠.

그리고 자식들 역시 본인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빨리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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