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수 김한영 러브스토리
연기를 잘하고, 특히 악역 연기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내기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예능감도 좋아서 토크쇼 등에 단골 게스트로 출연을 자주하면서, 가족들로부터 짠돌이라는 폭로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김응수가 젊었을때 연출 공부를 오랫동안 했던 거라든지, 아내 김한영과의 가난했던 생활과 처갓집 집안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네요.
김응수 아내 김한영 사진
탤런트 겸 영화배우 김응수는 1961년 2월 12일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납니다(김응수 고향). 올해 54살이죠(김응수 나이).
(김응수 학력 학벌) 군산제일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 일본영화학교 영화연출학
(김응수 프로필 및 경력) 1996년 영화 '깡패 수업'으로 데뷔
원래 극단 목화 등의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영화와 드라마에는 늦게 데뷔를 했습니다.
영화 투캅스3, 주유소 습격 사건, 바람남 가족, 선생 김봉두, 타짜, 위험한 상견례, 커플즈, 외사경찰 등과 드라마 대왕 세종, 바람의 화원, 추노, 싸인, 해를 품은 달, 각시탈, 빠스껫볼, 앙큼한 돌싱녀 등에 출연했습니다.
김응수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작품은 바로 타짜의 곽철용 역할과 해품달의 영의정 역할이었죠.
그런데 아내와 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보통 짠돌이가 아닌 것 같습니다.
김응수 부인 김한영: "신혼여행 갔을 때 아침에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더라. (짠돌이인 줄)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우리 집에는 10년이 넘지 않은 게 없다. 또 20년 동안 경제권도 (남편이) 쥐고 있다."
첫째딸 김은아: "머리에 아직 비누가 남아 있는데 (아깝다고) 물을 끄라고 하는 아버지 정말 싫다."
둘째딸 김응서: "정말 짜증난다. 밤에 목욕할 때 무서워서 불을 세 개 켜두면 아빠가 면박을 준다. 불을 꺼버려서 무섭다. 귀신이 나오는 느낌이다."
김응수 가족 사진
김응수의 반박입니다.
"은아는 머리를 매일 감는다. 머리를 감는데 온수로 해놓고 물을 틀면 온수가 바로 안 나온다. 자고 있는데 물소리가 들리면 보일러를 확 꺼버린다. 나중에 물 낭비량이 많아서 물을 받아 쓰라고 용기를 사다 줬고, 한 일 년 넘게 잔소리를 했더니 지금은 딸의 낭비벽이 고쳐졌다."
정말 보통 짠돌이가 아니네요. 김응수가 어떻게 절약정신을 갖게 되었을까요?
김응수는 지역 명문고 군산제일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기대를 한몸에 받습니다. 당시 평준화되기 전에 시험을 쳐서 들어가는 학교였죠. 그런데 정작 김응수는 매일 소설책만 보면서 아버지를 실망시킵니다.
김응수: "아들이 명문고에 다녔으니 아버지의 기대가 크셨죠. 조국 근대화의 선봉장인 공업이 발전하던 시기였으니까 공대에 진학하길 원하셨던 거죠. 그런데 저는 만날 소설책만 봤거든요."
원래 김응수는 고등학교때 소설가를 희망해서 문예창작과 진학을 원했지만, 차츰 연극에 흥미를 느껴서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내게 됩니다.
김응수: "대학에 떨어지고 나서 재수를 하는데, 아버지 몰래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를 하고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원서를 사 들고 집으로 갔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원서를 찢으시며 ‘부자의 연을 끊자’라고 하시더라고요."
김응수: "울면서 집을 나와 친구 집에서 얹혀 지내다가 형의 도움으로 서울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냈죠."
결국 김응수는 서울예대에 합격을 하는데, 의외로 아버지는 등록금을 대줍니다. 아마 처음에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반대한 것도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랬던 것이겠죠.
이십대의 김응수는 오로지 연극 공부에 매달립니다. 대학다닐 때부터 극당 동랑레파토리와 목화에서 활동하면서 연극 '운상각', '오구'등의 주인공으로 활약을 합니다. 당시 목화에는 박영규, 김학철 등이 선배로 있었고, 임원희, 성지루, 유해진 등이 까마득한 후배였습니다. 전부 쟁쟁한 배우들이네요(김응수 과거 후배들).
김응수: "대학로의 카페에서 한가로이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젊은이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나가는 판에 어떻게 마음 편하게 연애나 하느냐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더 연극에 매진했습니다. 연극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렇게 사명감을 가지고 연극에 몰입하던 김응수가 현재의 아내 김한영을 만난 것은 28살때입니다. 아내는 원래 방송국 보조 작가(스크립터)였는데, 연극에 흥미를 느껴서 잠깐 극단에 가입을 했죠.
김응수: "제가 스물여덟에 아내를 처음 만났어요. 아내는 당시 방송작가로 활동했었죠. 사실 그때까지 제가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봤었어요. 연애한다는 게 사치스러웠거든요. 젊은이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나가는 판에 어떻게 마음 편하게 연애를 하느냐고 생각했었죠."
김한영: "연애할 때도 남편은 이벤트도 없고, 선물도 전혀 없었어요."
하지만 연극이 끝나고 잦았던 뒤풀이 술자리에서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2년뒤에 결혼하게 됩니다.
이때 두 사람의 동성동본이 문제가 됩니다.
김응수: "양가에서 결혼 승낙을 모두 받은 상태에서 뒤늦게 동성동본임을 알게 됐다. 아버지가 동성동본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시에는 동성동본이 법적으로 혼인신고조차 되지 않던 때다."
현재는 법이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동성동본은 법적으로 결혼할 수가 없었던 때였죠. 게다가 김응수는 아버지의 강경한 반대까지 겹치면서 애를 먹습니다.
또한 김한영의 집안은 그런대로 유복한 편이었습니다. 친정아버지가 약사였죠.
그런데 김한영은 당시 경제적인 능력이 꽝인 연봉 백만원의 김응수를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네요.
게다가 당시 김응수는 다른 꿈을 꾸게 됩니다. 연극배우의 활동을 중단하고 연출자가 되기 위해서 일본 유학을 준비중이었죠.
결국 김응수는 이런 반대와 문제점을 극복하고 김한영과 결혼식을 올리고, 축의금으로 받은 돈으로 일본 유학을 떠납니다(김응수 배우자)(김응수가 워낙 젊은시절부터 노안이어서 재혼이라는 루머도 있지만, 초혼이 맞습니다).
한국에서는 신혼 생활도 전혀 누려보지 못했죠.
요즘으로 치면 김응수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신랑이었죠.
당시 김한영의 심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그렇게 김응수는 유명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일본영화학교에 입학해 연출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자리를 잡은 다음에 한국의 김한영을 유학생 신분으로 부릅니다.
김응수: "내가 유학생인 상태에서 아내를 부르는 것은 혼인신고서만 있으면 간단한 일인데 혼인신고서가 없으니 아내가 따로 또 막대한 경비를 들여 유학생의 신분으로 일본에 와야 했다."
김응수: "당시 악법도 법이니 지켜주겠다는 마음이었다."
나중에야 김응수는 제대로 혼인신고를 하게 되지만, 초창기때는 둘다 유학생의 신분으로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같이 살게 됩니다.
김한영: "남편은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해 학비 벌고, 저는 저대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죠. 생활고 때문에 말도 못 하게 힘들었어요.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많은 부분에서 부딪쳤죠."
아마 부부싸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김응수는 연극이나 연출 공부를 반대했던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고, 사위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 처가로부터도 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죠.
그리고 곧 첫째딸 김은아가 태어나고, 생활고는 더 가중됩니다.
아마 김응수의 짠돌이 절약정신이 이런 악조건들 때문에 체질화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김응수는 총 7년간 일본 유학 생활을 합니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도 감독으로 입봉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당시 IMF 외환 위기의 한국에서는 사정이 녹록하지가 않습니다.
결국 김응수는 가족과 함께 처가집에 얹혀 살게 되죠.
김응수: "수입이 변변찮아 처가에서 3년간 살았어요. 그 후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전셋집을 얻었고 둘째 딸도 그런 다음에 낳았죠."
결국 김응수는 영화 감독이 되는데는 실패하고 맙니다. 당시의 영화계 사정이 열악했고, 또 그전부터 연극계에서 다져진 김응수의 능력덕분에 바로 영화나 드라마에 캐스팅되었기 때문이죠.
물론 김응수가 자신의 꿈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닙니다.
"연출에 대한 꿈은 늘 품고 지내왔죠. 지금도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있어요. 제목이 ‘미녀 농장’인데, 좀 특이하죠. 남성의 폭력성과 무자비함에 대한 비판이 담긴 작품이에요. 정작 영화에는 여자들만 등장시킬 거예요. 지난 번에 개그맨 김국진씨를 만났는데, ‘미녀 농장’에 꼭 출연하게 해 달라더군요. 그래서 우편배달부로 잠깐 출연시킬까 해요."
언젠가 나올 김응수의 영화는 어떤 내용일지 무척 기대가 되네요.
김응수의 짠돌이 정신에 아내와 딸들의 불만은 무척 많지만, 이들은 사이좋은 가족입니다.
김한영: "은서는 아빠와 성격이 비슷해서인지 부녀지간인데도 엄청 싸웠어요. <붕어빵>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속 이야기도 하면서 많이 친해진 거예요. 은아랑도 대화가 적었는데 방송 녹화 같이 하더니 칭찬을 많이 하더라고요. 조용한 아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표현할 줄 안다면서요."
막내딸 김은서: "아빠는요, 집에서 밥 먹을 때마다요, 엄마한테 ‘당신 음식이 제일 맛있어. 밖에서 어떤 음식을 먹어도 당신 음식만 못해’라고 하면서 늘 칭찬하시거든요. 그러면 엄마는 엄청 기뻐서 폴짝, 폴짝 뛰세요. 그리고요 아빠가 술마시고 들어오면 우리한테는요, 뽀뽀를 하시면서 애교도 부리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나도 뽀뽀~’라고 하면은 ‘아, 피곤해. 이제 잘 거야. 이거봐 이거. 다크서클 생긴 거 보이지?’라고 하세요. 그래도요 아빠는요, 나쁜점 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아요."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법이죠.
물론 실제로 이혼 위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김응수: "생활비를 봤는데 지출이 많아서 크게 부부싸움했다. 도장만 찍으면 이혼하는 정도까지 갔었다. (아내가) 생활비 내역을 썼는데 세세하지 않았다. 대충 서류처리를 한 거다."
남편이 가계부를 일일이 검사하는 것은 집안 경제를 책임진 아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김응수는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고, 마침내 김한영은 폭발하고 말았죠.
김응수: "아내가 자존심 상하고 대접 못 받을 바에야 이혼한다고 서류 가져왔더라. 화장대 서랍에 넣어놨는데 딸이 찢어버렸다."
가난한 유학생 생활도 같이 견딘 부부이지만, 간혹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일이 크게 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딸이 잘했네요.
물론 김한영이나 김응수 역시 본심은 이혼을 원하지 않았기에, 딸의 행동에 그냥 넘어간 것이겠죠.
김응수는 가난한 연극배우 생활을 하다가 7년동안의 연출 공부까지 하면서 스스로 가난뱅이 생활을 자초합니다. 비록 많은 시행착오끝에 다시 배우가 되었지만, 그가 힘들게 얻은 경험과 지식, 지혜는 그의 연기속에 오롯이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김응수의 굽히지 않는 도전 정신과 더불어, 그런 남자를 사랑하고 같이 사는 김한영 역시 정말 특별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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