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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레나 러브스토리

가수 김세레나의 인생이야기를 들으면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나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두번의 불행했던 결혼 생활과 이혼, 그리고 가족 해체까지...

 

하지만 이런 문제들의 원인이 단순히 돈때문은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김세레나가 가수로 데뷔한 다음부터는 큰 돈을 벌었으니까요.

 

인생의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어느 한가지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김세레나에 대해서는 그녀의 성장배경성격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김세레나(본명 김희숙)1947107일 태어났습니다(김세레나 나이 68).

(김세레나 학력 학벌) 국립국악고등학교, 서라벌예술대학교 음악

(김세레나 프로필 및 경력) 1964년 동아방송 '가요백일장'에서 불과 18살의 어린 나이로 최우수상을 수상

당시 여고생의 신분이었는데, 당대 최고의 민요 가수의 자질을 일찍부터 보였다고 할 수 있죠.

 

그후 1969년 첫 음반을 발표하고 정식으로 데뷔하고, 이후 갑돌이와 갑순이’, ‘새타령’, ‘성주풀이’, ‘짚세기 신고 왔네등의 신민요 히트곡으로 큰 사랑을 받습니다.

 

김세레나 노래모음 10곡 듣기

김세레나-성주풀이.갑돌이와갑순이.꽃타령.새타령.0920 동영상 듣기

 

고향집물레방아,이대로 영영 김세레나 빅쇼

 

김세레나 - 민요메들리 (갑돌이와 갑순이 등)

 

김세레나 - 울고넘는 박달재(Serena Kim)

 

다만 김세레나가 추구했던 신민요는 기존의 국악계로부터 '국악계의 이단아'라고 커다란 비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대중에게 더 다가간 김세레나의 신민요가 살아남았네요.

(왠지 요즘 국악소녀 송소희에 대한 비판과 비슷한 점이 있죠.)

 

김세레나 젊었을때 과거 사진 리즈시절

 

 

그런데 김세레나에게 재능은 있었지만, 아버지가 문제였습니다.

김세레나: "아버지가 도박을 좋아해서 재산을 다 탕진했고 집안 식구들은 뿔뿔이 헤어졌다."

 

하지만 김세레나가 위에서 언급한 '가요백일장'에서 상금을 타고 가족들은 다시 단칸방을 얻어서 같이 살게 됩니다. 그리고 김세레나는 가수의 길로 들어섭니다(실제 음반은 5년 뒤에 발표하지만, 주로 공연을 다니면서 돈을 벌게 됨).

 

김세레나: "톱스타가 된 어느 날 아버지가 돈을 달라며 찾아왔더라. 내 무대 옷을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가져가기도 했다."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김세레나는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결국 남자를 통해서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재벌 2세가 다가옵니다.

 

김세레나: "미혼 시절에 재벌 2세로부터 프러포즈를 받았지만 돈 많은 남자는 관심 밖이었어요."

 

김세레나: "그 사람은 당시 재계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의 장남이었어요. 성격은 다정다감했고 재벌가 아들답지 않게 순수한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사업도 의욕적으로 잘 펼쳤고 인물도 그만하면 잘생긴 편에 속했는데 단지 그 남자가 돈 많은 재벌가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마음을 주지 않았어요."

 

김세레나: "돈 많은 남자를 싫어하는 이유를 콕 집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무조건적인 사랑을 높이 샀던 거죠."

 

 

많은 세월이 지난 후의 김세레나의 고백처럼 아마 자존심때문에 재벌 2세의 프러포즈를 거절한 거 같습니다. 거기에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과신도 있었겠죠.

당시 김세레나는 21살의 어린 나이였기에, 순수한 사랑을 목말라했을 겁니다. 그리고 어린 김세레나가 선택한 남자는 18살 연상의 볼품없는 남자였습니다.

 

김세레나: "제가 노래할 때 연주를 했던 밴드마스터였어요. 그때 그 사람 건강이 몹시 안 좋았어요. 당뇨를 앓았거든요. 당시에는 지방공연이다 뭐다 해서 저와 그 사람이 늘 붙어 다녔어요. 몸이 아파서 안쓰럽게 여겨졌고 그래서 동정을 했는데 그게 애정으로 변하더라고요. 전 어린 나이에 인기도 얻고 돈도 많이 벌고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상태였지만 그 남자를 보호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김세레나 남편 직업 밴드마스터 겸 섹소폰 연주자)

 

 

어쩌면 김세레나는 사랑과 모성애를 착각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으로,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을 일부러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고요.

 

결국 김세레나는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식을 올립니다.

하지만 김세레나의 첫번째 남편은 이혼남이었고, 거짓말을 잘했으며, 김세레나의 아버지처럼 도박 중독자였습니다.

 

김세레나: "혼인신고를 하면서 그의 호적을 보니까 이혼한 경력이 있었어요. 저와 결혼 직전에 전처와 이혼을 했더군요. 전 그런 사실도 모르고 결혼을 했죠. 하지만 그 문제 때문에 다투거나 남편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어요. 단지 살면서 성격이 맞지 않은데다 제가 벌어온 돈을 탕진하고 일할 생각을 하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죠."

 

김세레나: "내 돈으로 아이들과 전처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더라구요. 그 여자를 만났는데 나보고 장사를 하게 목돈을 달라고 요구했죠. 결국 다달이 생활비를 보내줬어요."

 

김세레나: "그 사람에게 건강을 되찾게 해주고 싶었어요.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까 유명해지도록 뒷바라지해야겠다는 욕심도 있었고요. 나름대로 뒷바라지를 한다고 했는데 결국은 헛수고더라고요. 제가 나중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술과 도박, 여자문제까지 끊이지 않았거든요."

 

김세레나 어렸을때 사진

 

김세레나는 첫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하나 둡니다(자녀, 자식).

하지만 결국은 이혼하게 됩니다(1974년에 이혼, 전남편은 1991년에 사망).

그리고 그때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게 됩니다.

김세레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했는데 살다보니 부모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른들이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아마 김세레나가 고집을 부린 것은 도박중독자였던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도 컸던 거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불행의 상당부분은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거 같네요.

 

 

이혼 후 독신주의자가 된 김세레나였지만, 다시 사랑에 빠집니다.

김세레나: "처음 이혼을 한 후 절대로 결혼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인연이란 게 참 우습더라고요. 생각지도 않은 자리에서 두 번째 남편을 만나 사랑을 한거죠. 1983년 재혼을 한 겁니다. 그 남자와 연애를 할 때 임신을 했는데 결혼식 다음 날 출산을 했죠."

 

이렇게 속도위반(혼전임신)으로 낳은 아들이 바로 둘째 아들 진의남입니다.

(1983726일 서울에서 출생, 고향)

첫번째 결혼보다 재혼이 더 힘들기에, 김세레나의 각오 역시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김세레나: "다시는 이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들에게 상처를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지만 두 번째 남편 역시 가진 게 없었다. 살다보니 첫 번째 결혼과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1년은 참고 살았는데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 그 다음 1년 동안 별거를 하다가 제가 이혼을 요구했다."

결국 두번째의 짧았던 결혼 생활도 빨리 끝나고 맙니다.

 

 

순수함이란 아름다운 겁니다. 재벌 2세의 청혼을 뿌리치고 사랑을 선택했던 김세레나에게 아무도 비난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김세레나의 고백처럼, 그것이 자신의 자존심이 아니었는지, 그리고 모성애를 사랑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지, 더 나아가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는 곱씹어 봐야 할 일이죠.

   

이런 경향은 김세레나의 아들 양육에서도 어느 정도 나타납니다.

두번째 이혼 후, 김세레나는 배우자에 대한 기대를 접고, 두 아들들만 양육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김세레나는 첫번째 남편 사이에서 얻은 첫째 아들에 대하여 큰 미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세레나: "첫째 아들을 생각하면 짠하다. 걔가 사랑을 가장 못 받았다. 외롭게 살았다.

누가 잘해주면 너무 푹 빠져 버린다. 나 때문에 저렇게 됐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김세레나가 전국 각지에 공연을 다니느라, 첫째 아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첫째 아들은 정에 굶주린 성격으로 자랐고, 누가 조금만 잘해줘도 푹 빠져버리게 된 거죠.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 첫째 아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살게 됩니다.

김세레나: "현재 첫째 아들이 미국에 있다. 예전에는 내가 자주 가서 돈도 주고 그랬지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들 모습에 몇 년 전부터 돈도 연락도 끊은 상태다.

 

성인이 된 후에 김세레나가 아들에 대한 미안함에 아들의 사업을 도와준 것이죠. 하지만 너무나 의존적인 아들에게 실망해서 인연을 끊어버리고 맙니다. 아들의 독립을 위해서죠.

 

어떻게 보면 잔인한 엄마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김세레나는 자신이 계속 도와주면 아들은 영원히 의존적인 성격을 버리지 못할 거 같다는 절박함 때문에 이런 방법을 사용한 거 같습니다.

 

김세레나와 둘째아들 진의남 사진

 

그리고 둘째 아들은 정반대로 키웁니다.

김세레나: "둘째 아들이 중학생 때 그룹 활동을 했었다.

아들이 끼가 있었지만 기획사와 일이 틀어져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학교를 졸업 후 군대도 다녀와 다시 연예계에 도전하려 했지만 생각과 달리 쉽지 않았다."

 

실제로 진의남은 아이돌 그룹 출신입니다. 그룹 마요네즈의 멤버였고, 199816살의 어린 나이에 '그녀의 반지'로 데뷔했었죠.

   

김세레나: "(둘째 아들이) 다시 연예계 도전하려고 했는데 아들이 생각했던대로 잘 안되자 어머니의 힘을 빌려 도전하려고 했다."

 

이에 김세레나는 아들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바로 첫째 아들처럼 의존적인 성격이 될까 걱정했던 것이죠.

김세레나: "처음부터 엄마에 의지하고 '엄마가 해주겠지'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헝그리 정신 없는 성공은 바로 무너진다. 밑바닥에서부터 열심히 하는 것을 본다면 밀어줄 수는 있지만 그런 정신이 아니면 안된다고 했고 실제로 도와주지 않았다."

 

김세레나: "나무가 뿌리를 밑바닥에 내려야 잘 자라지 뿌리 없이는 나무가 자랄 수 없다. 노력 없이 밑바닥에서 고생 안 하고 엄마 힘으로 스타가 되면 얼마 못 가서 사라진다."

 

 

진의남: "(어머니의 말씀에 원망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내 탓으로 생각을 많이 했다.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해 수용하고 다른 일을 열심히 하다가 기회가 되면 도전하려고 했다."

 

현재 진의남은 캄보디아에 머물면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머니의 도움없이 혼자 힘으로 말이죠.

 

수많은 실수를 거듭했던 김세레나가 그래도 둘째 아들은 잘 키운 거 같습니다. 그녀의 깨달음이 좀 더 빨랐다면 첫째 아들 역시 제대로 키울 수 있었고, 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아마 지금 다시 김세레나가 스무살로 돌아가면, 예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 같네요.

 

이렇게 인생은 어렵습니다. 험난한 인생을 살았던 김세레나를 통해서 인생의 한자락을 반추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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