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은 1947년 6월 19일 경기도에서 태어납니다(고향). 올해 나이가 67살이죠.
학력(학벌)
이화여자고등학교(이화 여고 졸업, 출신고교)
한양대학교 국문학 (중퇴)
프로필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1970년 MBC로 둥지를 옮겼으며 1971년 영화 《화녀》가 히트해서 얼굴을 알렸고, MBC 일일연속사극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을 맡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립니다. 또한 1972년에는 김수현 작가의 출세작 《새엄마》에서 여주인공을 맡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1970년대 초반은 윤여정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인기였고, 당시 어린 나이에 연기력도 굉장히 높게 평가받아서 신문에 천재 여배우가 나왔다고 대서특필될 정도였습니다.
확실히 윤여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연기력으로 욕먹은 적은 거의 없는 거 같습니다. 타고난 재능에 본인의 노력까지 가미된, 천재형 연기자라고 할 수 있죠.
윤여정의 여동생이 바로 윤여순입니다. 현재 LG그룹의 고위 임원이죠.
1955년생으로 윤여정의 8살 아래 동생입니다. 아이오와주립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박사 출신이고, LG인화원 전무이자, LG아트센터 대표를 역임하고 있습니다.
(자매가 둘다 뛰어나네요.)
윤여정은 인기 절정이었지만, 한 남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집니다. 바로 가수 조영남이었죠.
조영남은 1945년 4월 2일 황해도 평산 출신입니다(고향). 올해 나이가 69살이죠.
학력
용문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성악과 (중퇴)
서울대학교 성악과 (중퇴)
서울대학교 성악과 (명예졸업)
트리니티신학대학교 학사
1970년 노래 '딜라일라' 로 데뷔하는데, 원래 어릴 적부터 가수의 재능외에도 작곡가, 기타리스트, 화가, 작가 등의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술가의 피가 전신에 흐르고 있었던 자유분방한 사람이었죠.
그리고 윤여정은 그 점에 반하게 됩니다.
윤여정: "노래를 잘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첫 눈에 반하긴 힘든 상이라 같이 어울려 다니다보니 자연스레 연인이 됐다."
즉, 윤여정은 재주가 없어서 재주 있는 사람을 좋아했다고 스스로 고백할 정도로 조영남의 재주는 뛰어났습니다. 윤여정 역시 뛰어난 연기에 대한 재능이 있었지만, 여러가지를 잘 하는 조영남의 재능이 더 화려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인기 절정이었던 1972년 윤여정은 조영남과 결혼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갑니다. 가정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서죠.
절친한 친구였던 김수현 작가는 이렇게 반대합니다.
"여정씨는 맑은 눈을 가졌는데, 그 사람은 탁해서 싫다. 미국으로 가지말고 여기서 나랑 같이 있자."
하지만 아무리 주위에서 말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윤여정은 이미 조영남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1975년과 1982년에 아들들이 태어납니다. (큰아들의 나이는 올해 39살, 둘째 아들은 32살. 둘다 미혼입니다.)
하지만 재능이 풍분한 만큼 조영남은 절제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곧 평온한 가정 생활을 버리고, 젊은 여자를 찾아 외도를 하게 되죠.
게다가 윤여정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도 서슴치 않습니다.
"네가 못 생겨서 데리고 잘 수 없다."
"너보다 더 좋은 여자가 생겼다."
윤여정 젊었을때 사진
(젊은시절 사진, 과거사진, 리즈 시절)
결국 이런 스트레스로 윤여정은 술과 담배를 시작했고, 그녀의 예쁜 얼굴은 망가지고 맙니다. (현재도 골초로 유명하죠.)
그리고 1983년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윤여정과 조영남은 이혼하게 됩니다.
이혼 사유(이혼 이유, 원인)는 조영남의 외도였지만, 윤여정은 여기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영남이 거짓말을 하고 다니죠.
"결벽증이 너무 심해서 못 살겠다 싶었다. 한 마디로 내가 이혼당한거다."
"내 전 재산을 모두 줬다. 난 빈털털이다."
이것은 모두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조영남이 당시에 공연 등으로 괜찮은 수입을 벌었던 것에 비하여, 윤여정은 당장에 생계가 곤란할 정도로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게다가 아들 두명을 모두 윤여정이 키워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위자료라고 받았던 것은 신동아 아파트 전세값 5,500만원뿐이었습니다.
조영남은 바람난 여자와 살기 위하여, 처는 물론이고 자식들마저 버린 상황이었죠.
결국 윤여정은 생활형 연기자로 뛰어들었지만, 상황은 녹록치가 않습니다.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이혼녀들의 배우 생활이 쉽지 않았던 거죠. (반면에 이혼남인 조영남의 이미지는 좋았습니다. 본인이 언론 플레이를 한 것도 있고, 남자에게는 관대한 한국 사회의 특징이 작용한 면도 있죠.)
하지만 윤여정은 전 남편에 대한 비난은 물론이고, 자신에 대한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조영남이 파렴치한이라면, 윤여정은 정말 대인배같네요.
이런 윤여정을 돕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드라마 작가로서는 김수현 정도뿐이었죠. 하지만 그런 김수현의 도움이 오히려 해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드라마 작가에게 잘 보여서 배역을 딴다고, 배우들 사이에서 왕따 분위기도 형성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윤여정은 묵묵하게 자신의 연기력만으로 모든 난관을 돌파해 나갑니다. 연기에 혼신의 힘을 다 바친 거죠. 극심한 생활고, 전남편으로 부터 받은 스트레스, 사람에 대한 환멸 등등.
하지만 경제 사정이 차츰 나아지는 것도 잠시, 또 다른 시련이 윤여정을 찾아옵니다. 바로 둘째 아들의 틱 장애죠.
틱장애의 뜻: 틱은 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나 목, 어깨, 몸통 등의 신체 일부분을 아주 빠르게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한다. 전자를 운동 틱(근육 틱), 후자를 음성 틱이라고 하는데, 이 두 가지의 틱 증상이 모두 나타나면서 전체 유병기간이 1년을 넘는 것을 뚜렛병(Tourette’s Disorder)이라고 한다.
둘째 아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이 장애에 걸린 것이고, 그 원인은 애절결핍때문이었습니다.
윤여정: "초등학생 이였던 둘째아들에게 틱장애가 왔는데, 알고 보니 애정결핍 때문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정말 많이 울었다."
비록 돈을 벌어야 하는 배우 윤여정이었지만, 아들에게 제대로 사랑을 주지 못한 엄마 윤여정은 극심한 미안함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윤여정은 아들 두명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냅니다. 큰 아들은 콜롬비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ABC 방송국의 뉴스팀에서 근무하다가, 패션 브랜드 DKNY 창립자인 도나 캐런의 회사로 옮겼고, 작은 아들은 틱장애를 극복하고 뉴욕 대학교를 나와서 음반사 유니버설 산하의 힙합 레코드쪽 일을 하고 있습니다.
두명 다 일반인이어서 이름과 사진은 공개되지 않았죠.
윤여정이 이렇게 힘들게 자식들을 키우는 와중에도 조영남은 별로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나중에야 아들이 직접 아버지를 찾아가서 대학 등록금을 받게 되죠.
조영남은 처자식을 벌린 결과, 현재는 아들들로부터도 제대로 된 아버지 대우도 받지 못하고, 양딸인 은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쨌든 조영남은 그 후에도 여러차례 방송에 나와서 윤여정에게 용서를 구하는데 자신의 죄를 생각한다면, 그냥 윤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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