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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 사건사고

감자골 사태 전말- 억울하다고 말할수도 없는 피해자

 

오늘 라디오스타에 일반인인 로봇박사 한재권이 나왔습니다. 두번째 일반인 출연에 로봇 공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의 연구자여서 방송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이봉원의 태도가 눈에 거슬리네요.

 

김구라가 감자골 사태때 주축이 된 김한국, 이봉원이어서 김국진이 불편하지 않냐는 추측성 질문을 던집니다(사실 김구라가 당시에 인기가 없어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뻔히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고 있죠.). 그런데 이봉원은 그때 자신은 SBS로 갔기 때문에 만남 자체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감자골 사태의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철면피 같은 행동이네요.

  

 

잠시 당시의 감자골 사건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감자골 4인방이라고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들 모두가 강원도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강원도의 유명한 감자를 빗대어서 별명을 붙인 거죠.

 

그리고 감자골 사태가 벌어진 원인은 개그맨 내부의 알력 싸움이 아니라, 개그맨들과 방송국간의 알력 싸움때문이었습니다.

요즘도 개그맨들이 공채로 데뷔하면 전부 방송사 소속이 됩니다. 따로 소속사가 없죠.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나면서 계약이 끝난 다음에 각자가 소속사를 정합니다. (예를 들어서 올해 데뷔한 맹승지의 경우에는 소속사가 따로 없고, 단지 MBC 소속입니다.)

 

 

 

그런데 이 소속사가 생기는 것도 겨우 십여년 전에 일입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방송국에 소속된 상태에서 PD들이 일을 시키면, 그냥 해야 했죠. (물론 출연료는 주면서요.)

그저 유명 개그맨들이나 몇명이 소속사를 두거나, 방송국을 이적할 수 있었죠.(이것도 당시에는 굉장히 드문 일)

 

 

그런데 1990년대 초반부터 김국진과 김용만의 인기가 좋았습니다. (특히 1991, 2년 무렵. 물론 그 후에도 좋았지만, 이 때가 사건이 일어날 때였죠.)

그 결과 김용만은 당시 프로그램을 11개나 하게 되었고, 끝내는 과로로 쓰러지고 맙니다. 당시 PD들의 권한이 하늘이었기에, 일개 코미디언은 그냥 부르면 달려가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일반적인 상식으로 보면, 아무리 방송사 소속 개그맨이라고 하더라도, 좀 쉬게 하면서 일을 시키지, 라고 할 수 있지만, 담당 PD의 입장이 되면 달라집니다. 보통 PD들은 방송 하나를 맡는데, 시청률이 제대로 안 나오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거든요. 그래서 무조건 인기 좋은 개그맨이나 MC들을 섭외해야 합니다. 김용만이 아무리 11개나 방송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김용만의 사정일 뿐이라는 거죠.

(상식 이하의 행동이지만 사람에게 밥벌이가 걸리면, 보통 이렇게 추악해집니다.)

 

결국 김용만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과로로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하고, 감자골의 맏형격인 김국진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게 됩니다.

(중간에 좀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다른 방송사로 이적을 하려는 행동도 보이고요.)

 

 

 

그러자 PD들이 발끈해서 나섭니다. 자신의 말 잘 듣던 개그맨들이 감히 '반항'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당시 스타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고, 솔직히 개인적인 움직임(무조건 돈에 영합하던 행위) 많아졌으니까요. 그 결과 시범케이스로 감자골이 걸리게 됩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PD의 월급이 웬만한 인기 개그맨들의 출연료보다 많았죠. 물론 지금은 비교 자체가 되지 않지만...)

 

그런 PD들의 부추김에 개그맨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이것은 어느 방송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KBS, MBC, SBS 삼사가 모두 들고 일어났죠.

(여기에도 좀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당시 신생 민영 방송국 SBS가 기존의 KBS, MBC 개그맨들과 탤런트들을 빼내가는 행위와 맞물리면서 사태는 커졌습니다.

또한 개그맨들은 하늘같은 PD의 말을 어길 수가 없었고, 인기를 얻으면서 몸값이 올라가던 감자골 4인방에 대한 시기와 질투 역시 있었습니다.)

결국 삼사 개그맨들이 모두 동반 출연 거부를 하고, 끝내는 감자골 4인방이 연예계 영구 제명이 되고 맙니다.

 

당시 개그맨 중에서 감자골 4인방을 옹호한 사람은 오직 임하룡 한명뿐이었습니다.

 

 

 

임하룡: "얘네들이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군대 갔다 온 성인인데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프로그램 측에 항변한 건데 왜 우리 동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주지 못할망정 싹도 안자란 아이들을 영구 제명 시키냐!"

 

임하룡의 말뜻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이유'라는 '과로에 의한 입원'을 말하는 것이고, '프로그램 측에 항변'은 당시 PD들에게 항의했다는 뜻입니다. 임하룡 역시 출연료로 먹고 사는 개그맨이어서, 이렇게 완곡하게 표현을 했지만, 그래도 그 같은 상황에서 홀로 감자골 4인방을 옹호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정말 대단하네요.

 

어쨌든 인간사에 깊은 회의를 느낀 김국진은 끝내 미국행을 택합니다. 그의 아우들인 김용만과 박수홍, 김수용 역시 모두 김국진을 따라서 미국행을 택하고요.

 

(1993년 1월에 동반휴업을 선언했고, 1993년 6월에 미국행을 떠납니다.)

 

 

 

그런데 사태가 여기서도 끝나지 않습니다.

김국진 등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미국행 전에 고별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방송 3사 코메디언들이 쳐들어가서는 녹화를 방해합니다.

"프로그램을 열 개씩 하던 감자골이 갑자기 그만 둔 것은 MBC로 이적하기 위함이다!"라는 루머 때문이죠.

(이것을 PD들이 고의로 퍼트린 것인지, 아니면 개그맨들이 자기 밥줄이 끊길 거 같다는 생각 때문에 생긴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결국 김국진은 스태프를 따라 개구멍으로 겨우 도망을 갑니다.

후에 고별 방송이라는 것을 겨우 이해시키고, 어렵게 방송을 마무리하죠.

 

그런데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박수홍에게는 입대 영장이 날아오고, 김수용은 미국 비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미국으로 간 사람은 김국진과 김용만 두 명뿐이게 되죠.

 

 

 

이렇게 방송 3사의 코미디언이 모두 관여했던 감자골 사태(임하룡 제외)에서 이봉원이 자신은 이적했기 때문에 만남 자체가 없었고, 불편한 것도 없다, 라는 말은 너무 뻔뻔스러운 거 같네요.

비록 PD들의 농간에 넘어가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사과는 제대로 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피해자들인 감자골은 억울해도 제대로 말 한번 못하는 할 수가 없는 상황이죠.

당시 뒤에서 부추긴 PD들은 대부분이 현재 방송국 실세로 자랐고, 개그맨들도 유력 개그맨들로 성장했으니까요.

이것이 개그맨들의 흑역사입니다.

 

 

 

당시 이 문제에 연관되지 않은 개그맨들은 없었습니다.

유재석의 경우에도 김국진과 데뷔 동기였습니다(1991KBS 공채 개그맨 7). 김국진은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까지 졸업한 다음에 개그맨이 된 반면에 유재석은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공채 개그맨 시험에 합격했으니까요. 다만 감자골 사태가 났을 때, 유재석은 무명이었죠.

그가 뜬 것은 한참 후의 2000년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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