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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 만화가 웹툰 작가 주호민의 어린 시절을 짚으면서, 파괴왕이라는 별명이 나온 이유와 주호민의 사주 팔자 등도 함께 언급했죠.


(이전 글)  주호민 파괴왕 사주 팔자와 본인의 반응


이번 글에서는 주호민이 웹툰 작가로 성공하게 된 이유와, 주호민의 아내 한수자를 삼각김밥으로 꼬셨던 일화를 짚어봅니다.


이전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까르푸까지 주호민의 생활은 대단히 고달팠고, 그 이후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웹툰 작가로 등단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원고료는 한푼도 받지 못하는 무료 봉사를 계속해야했디 때문이죠.


주호민: "백수로 지내고 있다가 2005년 9월쯤 네이버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당시 취미삼아 인터넷에 만화를 올렸는데, 네이버에서 그걸 보고 연락을 한 것 같았다."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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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유라준)

주호민: "당시 카툰 서비스 초창기였기에 원고료도 받지 못했다. 사실 그때야 인터넷 웹툰 개념이 세워지지 않은 시기니 딱히 억울할 것도 없었다."


주호민: "당시 막 전역했던 군대 이야기로 짬을 연재했는데, 바로 짬이란 작품이었다. 그런데 내 연재가 끝난 다음에 네이버 웹툰이 생기더라. 그래서 나와 함께 그림 그리던 사람들은 모두 등단했지만, 난 짬이 끝난 상태였기에 변방에 그냥 남게 됐다."


하지만 주호민은 짬 덕분에 2006년 독자만화대상 신인작가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스투닷컴에서도 연재를 하기 시작합니다.


주호민: "그때에도 원고료는 못 받았다. 당시 난 너무 어리고 아무 것도 몰라서, 원래 그런 건 줄로만 알았다."


이후 주호민이 그만둔 이후에 스포츠투데이 신문도 망하게 되었죠.

그리고 2007년 주호민은 최초로 원고료를 받게 됩니다.


주호민: "2007년 스투닷컴에서 한 편당 20만씩 원고료를 받았다. 그 외에도 스포츠토토에서 배트맨이라는 토토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거기서도 스포츠 꽁트를 그려주면서 편당 20만원씩 받을 수 있었다."


주호민: "결국 2007년에 처음으로 월급이 100만원 넘게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 주호민이 네이버가 대세가 되고 네이버의 웹툰 원고료가 엄청나게 되리란 것을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든 네이버에 남아 있으려고 했을 겁니다.

다만 당시에는 웹툰 분야의 초창기였기 때문에, 아무도 네이버의 웹툰이 그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을 때였죠.



결국 주호민은 2008년 야후 웹툰 서비스에서 무한동력을 시작하게 됩니다.


주호민: "피곤하기는 했지만, 당시 만화 3개를 동시에 연재하니, 처음으로 월급 300이 됐다. 만화로 먹고 사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그때 좀 들었다."


주호민: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이후 주호민은 야후의 무한동력과 네이버의 신과 함께 등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최고 웹툰 작가중의 한명이 됩니다.


실제로 '신과 함께'는 처음 무료였다가 온라인에서 유료화로 전환한 뒤 첫 두 달의 매출은 무려 3천500만원이었고,

2014년까지 네이버에게 무려 2억3천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려 주었죠.


게다가 신과 함께는 영화로도 제작되고, 일본 리메이크, 뮤지컬, 애니 등으로도 제작이 되었기에, 다각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웹툰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에 주호민은 최고 웹툰 작가 대우를 받고 있으며, 영화나 뮤지컬, 애니 판권이나 일본 등의 외국에서의 저작권 수입 역시 적지 않게 벌고 있죠.


주호민: "과거에는 주 4회를 연재해야 직장인 또래 직장인 정도를 벌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료도 많이 올랐고, 단행본 인세 등 부가 수입도 있다."


주호민: "사실 주 4회 연재하면 정신도 없고 에너지 소진되는 느낌이다. 리듬도 무너지더라. 지금은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고 휴식할 수도 있다. 나에게 이런 스타일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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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호민 부인은 한수자인데, 주호민이 이렇게 성공하기 전인,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웠던 2005년에 서로 만나서 사귀다가 결혼까지 하게 되었네요.

당시 주호민이 원고료를 한푼도 받지 못할 때였죠.


주호민: "2005년에 만화 짬을 시작할 무렵, 인사미술공간이라는 미술관에서 알바를 했다. 한달에 50만원씩 받으며 홈페이지 관리를 해주고 있었다."


주호민: "그런데 거기서 내가 만화 그리는 것을 알고는, 젊은 미술하는 친구들 모여서 공동벽화작업을 하는 ‘이미지 밴드’ 프로젝트를 추천하더라."


주호민: "당시 돈은 없고, 시간은 많은 시절이어서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 가니까 내가 청일점이었고, 그 중에 제일 나이 어린 친구가 있었다."


바로 이 여자가 주호민 아내 한수자입니다.

(당시 주호민 아내 한수자 직업은 학생) (나이는 남편 주호민보다 6살 연하인 1987년 1월생)


주호민: "당시 아내는 한예종 1학년이었는데, 편의점 알바를 한다고 했다.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나름 고민하다가 무슨 삼각김밥이 제일 맛있냐고 물었다."


주호민: "그러자 아내가 되게 진지하게 참치마요네즈 김밥이 맛있다고 하더라."


주호민: "아무튼 그렇게 함께 벽화 작업 하면서 많이 친해졌고, 그러다가 결국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11월 주호민은 아내 한수자와 결혼하게 되는데, 당시 한수자의 직업은 일러스트레이터였죠.

2010년이면 주호민이 네이버에 신과함께를 연재하기 시작할 때였기에, 경제적으로 어는 정도 편 상황이었죠.

(웹툰작가 주호민 배우자 와이프 한수자)


이후 주호민은 아들 2명을 낳게 됩니다.

(웹툰 주호민 자녀 자식) (주호민 가족 관계)


참고로 주호민 처가도 그리 풍족한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호민의 장모가 당구장을 운영하면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죠ㅕ.


아무튼 위에서 주호민이 아버지와의 대화가 거의 없었다고 고백을 했는데, 최근에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많이 는 것 같네요.


주호민: "최근에 아버지께서 술에 얼큰하게 취해 집에 들어오셨다. 그러면서 나와 함께 집에서 2차를 원하셨다."


주호민: "그러다가 갑자기 나에게, "만화 재미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네가 그리는 만화는 따뜻함이 있어. 시대가 변해 사람들이 인스턴트, 순간적인 재미를 찾지만 그런 건 변하는 거야. 따뜻함은 영원히 변치 않아. 너는 계속 이런 느낌으로 가야해."라고 하셨다."


주호민이 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앞으로도 따뜻한 작품을 계속 그렸으면 하네요.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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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또다른 대세 웹툰 작가인 조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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