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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정석은 1967년 5월 26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 (가수 이정석 고향). 올해 51살이죠. (가수 이정석 나이).


나이가 들어도 얼굴이 변하지 않았던 동안 가수 중의 한명인데, 최근에는 세월의 힘을 이길 수는 없는 것 같네요.


(이정석 학력 학교)

대성고등학교 졸업

피어선 신학대학교 종교음악과 졸업

(86년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다음에, 인터뷰에서 공부를 못해서 여기에 입학했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죠.)


(가수 이정석 프로필 경력)

1986년 MBC 대학가요제 금상 수상


그리고 19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립니다.

당시 이정석의 대표곡으로 '사랑하기에', '사랑의 대화' 등이 있었는데, 연말에 실시한 가요대상을 휩쓸다시피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못았죠.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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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정석은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이 때문에 아버지와 갈등이 심했습니다.


이정석: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남사당이라는 그룹사운드를 조직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제가 의사나 법관이 되기를 바라셨죠."


이정석: "원래는 성악을 하려고 예고에 지원했지만 떨어졌어요. 그 이후에 대중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요."


이정석: "아버지 몰래 서울 서대문에서 4만원 짜리 세고비아 기타를 사서 기타를 독학했고, 고등학교 그룹사운드 (남사당)에서는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어요."



이정석: "그리고 대입 시험 이후에 가출을 했다가 돈을 벌려고 신촌 라이브 카페 쉘부르에서 노래부르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이게 인연이 되어서 나중에 대학가요제를 나가게 되었죠."


나중에 이정석의 노래들이 큰 인기를 모은 다음에는 이정석의 아버지도 아들을 지지하게 되는데, 아무튼 대학가요제에 출전해서 주목을 받기 전까지는 부자간의 갈등이 좀 심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대학가요제에서 유열이 대상을 받았고, 이정석은 금상을 받았는데, 사실 유열의 노래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보다 이정석의 노래 (첫눈이 온다구요)가 대중적으로 더 많이 알려졌죠.



이후 이정석은 1집에서 '사랑하기에'로, 2집에서 '사랑의 대화'로 3번 연달아 홈런을 치게 되면서, 80년 후반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됩니다.


특히, 2집의 '사랑의 대화'는 조갑경과의 듀엣 노래였는데, 우리나라의 사랑에 대한 듀엣곡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노래죠.


조갑경: "당시 (이정석과) 좀 다정하게 마주보거나 서로 달달한 모드로 부르면, 이정석씨 팬들로부터 욕을 엄청나게 들었어요. 그래서 무대에서는 앞만보고 노래했었죠."


참고로 조갑경은 당시 신인가수로 알려졌는데, 사실 이정석과 86년 대학가요제 동기입니다.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이정석과의 듀엣곡으로 비로서 인기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죠.


여담으로 이정석과의 듀엣곡으로 큰 재미를 봤는지 조갑경은 그 다음에도 홍서범과 듀엣곡을 불렀는데, 이 때의 결말은 '결혼'으로 이어지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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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80년대 후반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이정석은 90년대가 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어쩌면 이토록 빠르게 인기가 사라질까 싶을 정도로, 대중의 눈에서 빠르게 벗어났죠.


아마도 90년대 초반부터 벌어진 가요계의 변화 (댄스 위주)와 이정석의 스타일이 맞지 않았고,

또한, 좀 빨랐던 이정석의 결혼 역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1991년 12월 가수 이정석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당시 이정석 부인은 고선민이었는데, 당시 이정석의 나이가 불과 25살이었죠. (참고로 가수 이정석 아내 나이 역시 동갑이었음. 둘다 좀 빠른 결혼이었음)

(가수 이정석 배우자 와이프 고선민)



그리고 이정석은 1992년 5집을 발표하고 별다른 반응이 없자 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정석: "스타 생활이 감당이 안 됐어요. 절정의 인기에 매몰되기도 했고요. 나중에 인기가 떨어졌을 때, 사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미국에 건너갔어요."


이정석: "매니저와의 불화 등, 수년간의 가요계 생활에 회의를 느껴서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처음에는 랭귀지 스쿨을 다니며 공부하려 했는데, 당시 이미 결혼해서 아이가 있어서 일을 해야 했어요."


이후 이정석은 나이트클럽과 음식점 등을 직접 운영을 하기도 하고, 액세서리 사업을 하기도 합니다.


이정석: "아이들을 키우며 (평범한) 남들처럼 살았어요. 가끔 한국에 들어와서 사업도 해봤고요." 


이정석: "결국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군요."



그러다가 이정석은 1998년 한국으로 귀국하여 6집을 발표하지만, 이번에도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합니다.


당시에는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인 H.O.T와 젝스키스 등이 등장하던 시절이었기에, 이정석 같은 80년대 가수들이 설 자리는 없었기 때문이죠.


이정석: "6집을 내고 방송사를 다녀보니 옛날 생각으로 활동하면 안 되겠더군요. 그때는 god의 '어머님께'가 인기였고, 결국 의욕을 잃고 자진 철수했어요."


이후 이정석이 뉴스가 될 일이 없었는데,

2001년 충격적인 사건이 전해집니다.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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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정석 시리즈 3편의 글중에서 두번째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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