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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구인회는 1960년대 초반에 이병철의 제안으로 방송 사업을 동업하게 됩니다.

1964년 두 사람의 지분 50대 50으로 ‘라디오서울’과 ‘동양TV’를 설립했죠.


하지만, 두 그룹 사이의 알력이 심해서 결국 라디오는 삼성이, TV는 럭키가 하기로 합의를 봅니다.

그런데 당시 전망이 밝은 쪽은 방송 사업이었고, 결국 이병철은 언론 사업 재편을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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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구인회는 이병철을 찾아가서 "자네가 다 (라디오와 TV) 하게. 자네 생각대로 다 하게."

라고 하면서, 방송 사업에서 손을 털고 나가게 됩니다.


아마 구인회는 이병철의 전자산업 진출이 단순히 사돈의 사업 영역을 침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이병철의 평소 여러 행동들이 못마땅했기 때문에 화를 낸 것이 아닌가 하네요.


(재미있는 것은, 이병철이 이렇게 욕을 먹어가면서 동양방송을 차지했지만, 결국 1980년 신군부에 의하여 방송 통폐합을 당하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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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전에 동양방송과 중앙일보 등이 삼성의 이병철에게 큰 도움이 되기도 함. 과거 사카린 밀수 사건이 일어났을 때, 모든 언론들이 삼성과 이병철을 비판했지만, 동양방송과 중앙일보만은 사주를 지키기 위하여 총력전을 펼침.)

(당시 동양방송을 틀면, 날마다 이병철을 옹호하는 방송이 쉴새없이 흘러나왔음)



참고로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이 LG보다 많이 늦어진 것은, 바로 박정희때문이기도 합니다.

원래 이병철과 박정희의 관계가 그리 부드럽지 않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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