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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당시 구인회는 신규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었습니다.


당시 럭키화학의 여러 제품들이 국내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후발 주자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플라스틱 사업의 마진이 점차 떨어지고 있을 때였죠.


그때 구인회 회장은 우연히 반도호텔의 사무실로 들어서다가 윤욱현 기획실장이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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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회장: "아, (음악 듣는 것이) 그리 좋습니까?"

윤욱현 실장: "하하, 이게 정말 좋습니다. 하이파이 전축이라는 건데, 마치 오케스트라가 제 눈앞에서 연주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순간 구인회 회장은 무릎을 탁 칩니다.



"그래요, 이걸(전축) 우리가 만들어 봅시다."

그러자 윤육현 실장은 "이건 전자산업 분야인데, (전축을) 하고 싶으시다면, 먼저 라디오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인회가 라디오 사업, 더 나아가 전자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하지만 당시만 해도 주변의 반대가 만만찮았습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전자공업에 진출한 기업이 없습니다. 워낙에 어려운 기술이라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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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회장: "그러면 더욱더 잘 되었지요. (그렇게 어려운 기술이면) 당연히 우리가 해야죠. 우리가 개척자가 되어야죠."


당시 주요 임원들은 이미 성공 방정식은 쓴 '화학 분야'에 주력할 것을 주장햇지만, 구인회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하면, 모든 가정집에서 라디오 한대씩은 다 살 것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전자산업 진출을 밀어붙입니다.


구인회 회장: "우리가 언제까지나 라디오 하나 못 만들어서 되겠나? 어느 누구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가 한번 해보자. 먼저 시작하면 고생도 하겠지만, 그래도 하다보면 내셔널이나 도시바 처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후 1959년 11월, 금성사는 최초의 국산 라디오 'A-501'을 만드는데에 성공하지만, 이후 3년동안 판매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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