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3년동안 판매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미제와 일제 밀수 라디오들과 미군 PX 유출 상품들이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고, 주요 소비층들 (대부분의 부자들)이 국산 제품에 눈길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게다가 1961년에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납니다.
구인회 역시 5.16 직후 부정축재자 명단에 끼여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약 3주 동안 사직동의 어느 집 행랑방에 몸을 숨기게 됩니다.
그런 구인회를 대신하여 아우 구평회가 교도소에 잡혀 들어간 상황이었죠.
하지만, 5.16 군사 쿠데타 세력은 하루빨리 민심을 잡기 위하여 '경제 건설'을 내걸었고, 사업가들을 풀어주면서 구인회도 예전처럼 다시 활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신규 진출한 라디오 사업의 어려움은 예전 그대로였고, 결국 구인회는 당시 금성사 임직원들을 모아놓고 이런 연설을 합니다.
"매화는 모진 추위를 겪어야 비로소 향기를 뿜는다는 교훈처럼 고생 안 하고 얻어지는 보물이 어데 있능교."
"우리 금성사가 지금 불황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지만, 망할 지경은 아니니 걱정들 마소."
"우리는 지금 전자 공업이라는 길 없는 밀림을 헤쳐 나가고 있는 개척자이기에, 가까운 시일내에 고생한 만큼 보람도 얻게 될 테니 그때까지 모두들 마음을 합치고 힘을 모아 일해 주소."
당시 구인회의 주변에서는 '잘 하고 있는 화학 사업이나 계속합시다.'라고 압박을 가했지만, 구인회는 여기에 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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