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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서청원 나이 고향

2편 서청원 고향과 광주 김대중의 고백

3편 서청원 차떼기 사건의 진실

4편 서청원 구속 비리와 노무현 1/10 발언

5편 서청원 박근혜 천막당사의 비밀

6편 서청원 지역구와 조폭 정치

7편 서청원 부인(아내)이선화 직업과 내조

8편 서청원 재산 신고액

9편 서청원 신천지 아들 직업


1980년 광주 사건 당시에, 서청원은 광주임시취재반 반장이었죠.

(참고로 국회의원 서청원 고향은 충남 천안임) (서청원 의원 고향 충청도)


# 목차

* 서청원의 광주 기사 보도

* 서청원과 김대중의 고백

* 언론인의 출세 방법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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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청원의 광주 기사 보도


당시 서청원이 보도한 5.18 항쟁은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 광주시는 일부 무장한 폭도에 의해 장악되어 

행정은 완전히 마비됐다.

(중략) 시민들은 이들 무장폭도를 외면했다.


이처럼 서청원은 당시 신군부의 입장이 잘 반영된 기사를 적었고, 조선일보는 이를 충실히 보도합니다.


당시 김대중 조선일보 사회부 부장이 계엄군의 비행기를 타고 직접 광주를 방문하기도 했죠.


서청원: "오후 3시쯤 우리 취재팀은 국군통합병원에서 서울로부터 내려온 김대중 사회부 부장을 만났다. 김대중 부장은 국방부 주선으로 다른 언론 사회부 부장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다. 우리는 겨우 20분 정도 만날 수 있었다."

국회의원 서청원 사진

* 서청원과 김대중의 고백


김대중: "이들(광주 취재 기자들)은 내게 ‘오늘의 광주사태는 폭동이 아니라는 것을 꼭 써달라’고 당부했다. (중략) 난 "현재 서울에서는 이 광주사태를 폭동이나 난동으로 몰아가려고 하고 있다. 자신들(계엄군)의 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매일 우리에게 순 거짓말만 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하는 데까지 해볼 수밖에 없다. 고생스럽지만 서로 노력하자’고 말했다."


이처럼 서청원이나 김대중은 광주 사건이 폭동이 아니라, '광주 민주화 운동'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당시 계엄군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하는 '기사(?)'를 적습니다.

결국 대다수 국민들은 당시의 진실을 모르고 넘어갔죠.


후에 서청원은 광주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회고하기도 합니다.

"치안마비상태에서 단 한건의 강도나 절도 사건이 없어서 광주시민의 위대함을 봤다."


"조선일보 기자시절 5.18항쟁을 열흘간 취재하면서 현장을 목격해, 광주에 오면 슬프고 괴롭다."


"1980년 조선일보 기자 시절 광주민주화운동 참상을 보고 정치입문을 결심했다."


서청원은 왜 이런 고백을 했던 걸까요?

그에게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냥 정치적인 립서비스에 불과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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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인의 출세 방법


아무튼 재미있는 것은, 당시 광주와 관련된 기자들은 이후 모두 출세가도를 달렸다는 것입니다.


서청원은 1981년부터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했고,

김대중은 조선일보 사회부장을 거쳐서 조선일보 주필, 부사장 대우 등의 최고위직까지 올랐으며,

최병렬(당시 조선일보 편집부국장)은 조선일보 이사, 노동부 장관, 한나라당 상임고문 등의 자리에 올라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릅니다.


결국 이들 3명은, 언론계 후배들에게 어떻게 하면 출세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었네요.



물론 당시 광주에 '진짜 기자'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독일 제1 공영 방송인 ARD-NDR 기자였던 유르겐 힌츠페터 같은 기자가 있었기에, 광주의 진실이 전세계로 퍼질 수가 있었죠.


한가지 아쉬운 점은, 유르겐 힌츠페터는 독일인 기자이고, 한국인 기자중에는 유르겐 힌츠페터같은 기자 정신을 보여준 사람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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