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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오드리헵번 영화들 파계 해석

(2/4) 총 4개의 글중 두번째 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 영화에 대한 해석입니다.

오드리헵번의 탁월했던 연기력들이 잘 나타난 작품들이죠.


# 목차

* 오드리헵번 영화 작품 해석

* 오드리 헵번 티파니의 탁월한 연기력

* 오드리헵번 파계 줄거리와 결말

* 오드리헵번 아버지 나치였기에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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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연예인] - 오드리헵번 사진- 어린 시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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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드리헵번 영화 작품 해석


바로 1953년의 로마의 휴일, 그리고 1954년의 사브리나입니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은 앤 공주 역할로 나옵니다.

고귀한 공주가 일반인(신문기자) 그레고리 펙을 만나서 환상적인 하루를 보낸다는 내용으로, 바로 남성들의 로맨스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이듬해의 사브리나에서는 가난한 집안의 딸인 오드리 헵번이 명문가 집안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바로 전형적인 여성들의 신데렐라 컴플렉스를 반영한 작품이었죠.

오드리 헵번의 연기력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드리 헵번의 대표작중의 하나가 바로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1961년 작품)입니다.

원래 오드리 헵번이 195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면, 이 작품을 통하여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실제 극중 홀리는 직업적인 콜걸(매춘부)로 묘사되어 집니다.

하지만 오드리 헵번의 청순한 매력덕분에 매춘부라는 직업적인 그늘이 가리워지고 오히려 청초하고 발랄한 캐릭터로 재탄생이 되었죠.

(원작 소설에서는 직업이 시골에서 상경한 유부녀이자 매춘부로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음)

오드리헵번 사진 -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의 한장면

이 장면이 현재까지도 명장면으로 남아 있는 이유가 뭘까요?


* 오드리 헵번 티파니의 탁월한 연기력


이 작품의 키 포인트는 바로 '다이아몬드에 대한 비상식적인 탐욕'입니다.

홀리(극중 오드리헵번)는 티파니의 다이아몬드를 가지게 된다면, 본인의 과거가 세탁이 되고, 본인 역시 상류층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비합리적인 생각이지만, 홀리 자신만은 그렇게 믿었고 다이아몬드에 대한 탐욕이 강해지는 것이죠.


사실 중세 유럽에서는 아시아로부터 전래된 향신료 가격이 굉장히 비쌌습니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 몇십배 더 비싸기도 했는데, 이런 놀라운 가격에는 당시 향신료 덕분에 새로운 맛의 세계를 알게 된 것 뿐만 아니라, 당시 유행했던 흑사병 등을 향신료가 예방해준다고 믿었던 유럽인들의 비과학적인 욕망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오드리헵번이 직접 부른 문 리버도 아름답지만, 이런 인간의 비합리적인 욕망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OST (오드리 햅번 - Moon River)


* 오드리헵번 파계 줄거리와 결말


그 외에 오드리 헵번의 영화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아야 할 만한 작품은 바로 1959년 작품인 '파계'(THE NUN'S STORY)입니다.

이 작품속에서 오드리 헵번은 좋은 수녀이자 간호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수녀로서 규율에 복종해야 하는 삶과 간호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소임은 충돌을 일으키고, 깊은 번민에 빠지게 돼죠.


그리고 오드리 헵번은 극중 아버지의 죽음을 통하여 '나는 (수녀로써) 과연 인간을 차별없이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종교의 근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결국 오드리 헵번은 수녀원을 떠나게 되는데, 마지막 장면에 대한 해석으로 오드리 헵번이 자신에게 더 중요한 가치를 쫓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 작품은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인데, 오드리 헵번의 지성과 연기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네요.

오드리헵번 파계의 한 장면

'세기의 연인'이라고 불렸던 오드리 헵번이지만, 정작 본인은 외모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오드리 헵번 친구: "오드리는 나에게 "이런 얼굴로 영화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해봤다. 난 피부도 좋지 않아서 화장을 하지 않으면 볼품이 없고, 얼굴이 각졌고 콧등도 매끄럽지 않고..."라고 말했다."



* 오드리헵번 아버지 나치였기에


또한, 오드리 헵번은 아버지때문에 위기를 맞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에 집을 나간 아버지이긴 하지만, 나치 부역자였고, 당시 미국이나 영국 등의 유럽에서는 나치 부역자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좋지 못했죠.


어느 날 오드리헵번은 쓰레기통에서 아버지로부터 온 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당시 오드리헵번의 아버지는 나치 당원의 전력 때문에 영국 전범 감옥에 투옥된 후 아일랜드의 한 요양소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딸에게 누가 될까봐, 본인이 오드리 헵번의 아버지라는 숨기고 살았는데,

오드리 헵번의 어머니 역시 이런 사실을 딸이 알까봐 그 편지를 버린 것이죠.


결국 오드리 헵번은 1960년 요양소로 가서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이후 오드리 헵번은 아버지의 죄를 대신 사죄하기 위하여 나머지 인생을 제3세계 구호 활동에 바치게 됩니다.


아무리 나치 부역자에 대한 비판이 강한 미국이나 유럽이지만, 이런 오드리 헵번에 대해서는 더 이상 비판을 할 수 없었죠.

.. ..

참고로 오드리 헵번이 스타가 된 다음에, '안네의 일기' 캐스팅 제안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오드리 헵번은 자기 아버지의 죄를 잘 알고 있었기에, 죄책감 등으로 악몽에 시달리다가 결국 영화 캐스팅 제안을 거절합니다.


비록 아버지가 6살때 집을 나갔고 이후 연락도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운 심성에서는 아버지의 죄가 너무 크다가 여겼기 때문이죠.


아무튼 나치 부역자의 딸이었던 오드리 헵번이 이런 죄책감에 시달렸고, 이후 죄를 씻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는데,

우리나라의 일제 부역자들의 자손들중에는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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