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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문숙 현재남편, 문숙 혼혈 미국남편 조슈아 자연치유

영화 배우 문숙 현재 남편(문숙 미국 남편)과 더불어 문숙 혼혈 아들 조슈아에 대하여 한번 짚어봅니다.

문숙이 과거 화가로 화려한 생활을 했던 당시에 어떤 생활을 했으며,

문숙의 자연치유가 무엇인지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네요.


문숙에 대한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문숙 이만희 아들 이혜영과 과거 이야기


(스폰서 링크)


# 목차

* 이만희 감독의 죽음과 문숙의 상처

* 이만희가 고문받고 난 뒤에

* 문숙 미국 남편과 결혼 후 이민 신청을

* 문숙 이혼사유

* 문숙 화가로서의 생활

* 문숙이 자연 치유로 눈을 돌린 이유

* 문숙의 깨달음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 이만희 감독의 죽음과 문숙의 상처


그러다가 이만희는 1975년 불과 45살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게 됩니다.

(이만희 사망 원인 간경화)

그런데 이만희는 자신의 죽음을 일찍부터 예견했던 것 같네요.


어느날 이만희가 문숙에게 이런 말을 했죠.


이만희: "(문숙에게) 내가, 어디 멀리 가야 할 것 같다."


문숙: "나는 당시 순진할 스물한살짜리였어요. 감독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죠. 그래서 "오랫동안 가요? 그럼, 나도 같이 가면 안돼요?"


이마희: "(그냥 웃음)"


문숙: "나도 같이 갈거에요! 아프리카보다 더 멀어도 같이 갈 수 있어요."


문숙 과거사진(문숙 젊었을때 사진)


결국 '삼포가는 길'을 찍던 중 이만희는 피를 토하고 쓰러졌고 병원에 실려가게 되는데, 왜 그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지 않았던 걸까요?


문숙: "감독님은 자신의 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분에게는 오직 예술과 영화만이 존재했죠. 죽는 순간까지도 오직 영화뿐이었어요. 아마 영화를 찍다가 죽는 건 그 사람의 바람이었을지도 몰라요."



* 이만희가 고문받고 난 뒤에


참고로 당시 이만희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만희가 비록 충무로에서 '천재 감독'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지만, 1964년 영화감독 최초로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됩니다(영화 7인의 여포로에서 한 장면이 북한군을 미화했다는 죄목임. 당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고문을 당함)


또한 '천국의 사랑'은 제작 정지를, '휴일'은 개봉 불허 조치를 받는 등, 이만희는 자신의 영화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이만희는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이런 상황속에서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병치료도 되외시하고 영화 작업에 매달렸던 것이 아닌가 하네요.



결국 피를 토하고 쓰러진 이만희는 그대로 사망하고 맙니다.


문숙: "혼수 상태에 빠진 그분 옆에서 울면서 기다렸어요.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그분이 깨어나셨죠. 잠시나마 의식이 되돌아왔어요."


문숙: "다음날 찾아오겠다고 병실을 나섰는데, 그것이 그분과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어요. (이만희 감독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어요."



* 문숙 미국 남편과 결혼 후 이민 신청을


결국 유작이 된 '삼포가는 길'로 문숙은 대종상 신인 여우상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문숙은 이만희 감독의 사망 이후에도 영화 2편(미스 영의 행방, 저 높은 곳을 향하여)에 출연하지만, 곧 미국인 남편과 재혼한 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됩니다(문숙 미국남편).


문숙 이민 이유: "감독님이 그렇게 되시고(사망한 이후에) 서둘러 한국을 도망가고 싶었어요. 감독의 어린 여자였다는 것은 당시 사회적으로 굉장히 쉬운 여자처럼 인식되던 때였거든요."


문숙 이민 이유: "감독님이 살아 있을 때는 그분 자체가 보호막이 됐지만, 돌아가신 뒤에는 제가 굉장히 쉬운 여자처럼 여겨졌어요. 사람들은 '저를 아무나 건드려도 되는 여자'로 여겼죠. 정말 별의별 사람들이 다 어떻게 해보겠다고 접근하는데, 정말 황당할 뿐이었죠."


당시 문숙은 미국인 남편과 결혼 한뒤에 미국으로 이민 신청을 합니다(1977년).

(영화 배우 문숙 국적 한국, 미국 영주권을 받음)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 아들과 딸을 한명씩 낳게 됩니다(1978년 문숙 아들, 1984년 문숙 딸).

(문숙 자녀(자식) 1남 1녀)(문숙 가족관계)



문숙 아들 조슈아 사진(문숙 조슈아)

(문숙 혼혈 아들 조슈아)


(그리고 1992년 문숙 미국인 남편과 이혼하게 됨)(문숙 이혼사유 성격차이)



* 문숙 이혼사유


문숙: "이만희 감독님과 있을 때는, 단 한번도 팔을 안 베고 자본 적이 없었어요. 항상 제게 팔을 내주셔서 팔베개를 했거든요."


문숙: "그런데 재혼한 뒤에 (미국인) 남편을 만났는데, 아침에 일을 해야 하니 팔을 좀 빼고 자겠다고 하더라구요. 무척 서운했죠. '어떻게 남편이 아내에게 팔을 못 베게 할 수가 있을까,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나보다. (웃음)'라고요."

(문숙 이혼이유)(문숙 현재남편은 없고 싱글로 살아가고 있음)


문숙: "알고보니 이만희 감독님의 사랑은, 죽어가는 예술가의 마지막 사랑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절실했던 거예요. 당시 어린 저는 그걸 몰랐던 거죠."



또한 문숙은 플로리다주의 린에린 예술대학((RING ET RING COLLEGE ART & DESIGN)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총장대상(순수미술과 최고의 영예)을 받으면서 졸업합니다.

그리고 싼타페 등에서 화가로 활동하게 돼죠.(미국에서 문숙 직업)



* 문숙 화가로서의 생활


문숙: "어차피 예술 방면에 소질이 있으니까 화가를 한번 해보자 싶었어요. 제가 옛날에 그림을 취미로 그리기도 했었고요."


문숙: "제 작품들은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20세기 말 '뉴욕 화파'로부터 시작된 미술적 경향의 일종. 일반적으로 동종의 양식으로 분류되지 않고, 예술가 개인의 태도에 의해 하나로 묶이는 경향)예요."


문숙; "태도 자체의 언어가 담겨 있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죠. 예를 들면 제가 여러가지 형태의 선을 그리는데, 이걸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선이지만, 잘 보면 선에는 각각의 리듬과 드라마가 있고, 또 시가 있어요."


문숙: "이런 방식의 그림은 이만희 감독님의 영화와도 비슷하죠."



문숙은 화가로 성공적인 삶을 살지만, 자신의 삶은 피폐해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문숙: "미국에서 (화가로 살면서) 오랫동안 물질적인 욕구와 정신적인 허전함을 채우는 것에만 전념했어요. 또한 세계 최고의 유행만을 찾아 최상의 화려함을 누리기 위해 바쁘게 보냈죠. 그러면서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어요."



* 문숙이 자연 치유로 눈을 돌린 이유


문숙: "아직도 감독님이 세상을 떠난 4월이면 호되게 마음의 병을 앓아요."


문숙: "(화가로서의) 제 삶이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폼 나는 이미지로 포장돼 있었고, 저 역시 그것을 행복이라 믿었어요. 하지만 작품 활동을 하면서 두통을 점점 더 심해졌고, 온갖 검사를 받아도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문숙: "결국 요가와 명상에 심취하게 되었어요. 요가를 가르치면서 음식의 중요성을 깨달아 뉴욕으로 가서 자연 치유식 요리 연구원에서 공부하기도 했고요."


결국 문숙은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명상과 치유 활동에 전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본인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문숙: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살았지만, 사실 제 마음속엔 큰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말 한마디 없이 내 곁을 훌쩍 떠난 그(이만희)에 대한 미움, 그리고 그가 그렇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저 자신에 대한 실망과 증오... 또한 그를 끝내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뒤엉켜 있었죠."



이후 2007년 문숙은 '마지막 한해'를 펴내며 이만희 감독을 추억합니다.


(책 내용 일부 발췌)

- "그는 양쪽 침대에 있던 이불과 시트를 모두 들어내어 두 침대 사이 바닥에 깔아 잠자리를 새로 만들고 있었다. (중략) 나는 몸에 두르고 있던 타월을 내리고 하얀 시트 아래 조용히 누웠다. 그리고 두 눈을 감았다.


- 어느 날 처음으로 그가 자신의 집으로 가자는 말을 했다. 시간이 꽤나 늦었고, 신성상가 아래쪽 골목이었다.



* 문숙의 깨달음


문숙은 이만희와 함께한 기억들이 30여년이나 지나도록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네요.

보통 일주일전의 일도 생생하게 기억하기가 힘든 것이 인간인데,

그만큼 이 순간들이 문숙에게 특별했다는 뜻이고,

또한, 어쩌면 문숙은 이만희 감독이 죽은 다음에, 그리고 본인이 재혼을 하고 이혼을 하는 동안에도,

문숙은 이만희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30년동안...



문숙은 오랫동안 자연치유를 하면서 본인의 마음의 병을 고칩니다(문숙 자연치유).


문숙: "마음을 비우고,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이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해요. 삶을 좀 더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죠."


문숙: "외로운 것이 두려우면 혼자 있기가 불안해지고, 또 혼자 있는 것이 불안하면 자기 자신을 만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자기 자신을 만나지 못하면 자신을 비울 수도 없고 세상을 바라볼 수도 없죠. 그러면 그냥 짙은 안개 속에서 어두운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돼요. 아무런 이유도 모르는 채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돼죠."


문숙: "제 머리가 백발이 성성해도 염색할 생각은 없어요. 자연스럽게 늙고 싶어요." 


결국 문숙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데 성공했고,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것 같네요.


(문숙 이만희 임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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