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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프로야구선수 양준혁 결혼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궁금하네요.

또한 과거 양준혁 여친과 결혼에 실패했던 이유, 그리고 양준혁이 야구선수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일들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양준혁 이종범 선동렬)

이종범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이종범 양준혁 선동열 악연의 진실/이종범 아내 정정민


(스폰서 링크)


# 목차

* 양준혁 어린 시절에

* 양준혁 고등학교를 선택한 기준은

* 양준혁 체벌과 구타에 대하는 자세

* 양준혁의 유의미한 기록

* 양준혁의 성공 마인드

* 양준혁 결혼 실패

* 양준혁 여친의 거부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스포츠해설가 겸 전 야구선수 양준혁은 1969년 5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양준혁 고향 대구). (다만 양준혁 아버지 양철식 고향은 전라남도 해남임)

올해 47살이죠(양준혁 나이).

(양준혁 키 몸무게 혈액형) 188cm, 95kg, O형

(양준혁 학력 학벌) 대구 남도초등학교, 경운중학교, 대구 상업 고등학교 졸업, 영남대학교(양준혁 고등학교는 대구상고임)

(양준혁 프로필 및 경력) 1993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


이후 해태 타이거즈(1999년)을 거쳐, LG트윈스(2000년 ~ 2001년), 삼성 라이온즈(2002년 ~ 2010년)을 마지막으로 프로에서 은퇴합니다.


(양준혁 기록 홈런수) 

프로 야구 사상 통산 타격 8개 부문(최다 홈런, 최다 타점, 최다 안타, 최다 2루타, 최다 루타, 통산 득점, 통산 사사구, 통산 다수)에서 1위를 기록함

(양준혁 홈런수) 2009년 7월 14일 통산 350 홈런 기록

(양준혁 홈런수 개인 통산기록은 351개)

(양준혁 안타수) 2010년 4월 30일 통산 2300 안타 기록

(양준혁 안타수 개인 통산기록은 2318개)



전 프로선수 양준혁에 대하여 호불호가 갈립니다.

그의 성적은 대단했지만, 구설수에 많이 올랐고, 또한 과거의 행동에 대해서는 나쁜 평가를 받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죠.


하지만 여기서는 양준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제외하고, 그가 어떻게 대단한 선수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짚어봅니다.

꼭 프로야구 선수만이 아니라, 일반인들과 기업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많네요.


프로야구 선수 양준혁 사진


* 양준혁 어린 시절에


먼저 양준혁 집안은 무척 가난했습니다.


양준혁: "우리 집안이 야구 집안입니다. 삼촌도 야구를 하셨고, 사촌 형(양일환)도 야구 선수였죠. 어릴 때부터 그 모습을 보면서 야구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양준혁: "아버지는 밖에서는 제 매니저 역할을 참 잘하셨는데, 가장으로서는 빵점이였어요. 가정 경제에 대한 책임감이 없었죠. 그래서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파출부부터 단무지 장사에 공장에도 다니시면서 저희들을 키우셨죠."


양준혁: "제가 대구 남도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는데, 당시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 사글세를 전전하기도 했고, 또한 비가 새는 단칸방에 살면서도 야구를 향한 꿈을 놓지 않았어요. 사실 부모님이 저한테 손을 드셨죠. 제가 동냥을 해서라도 야구를 하겠다고 했거든요."


사실 좋은 선수라도 어린 나이에는 술이나 이성에 대한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양준혁은 그러지 않았죠.



* 양준혁 고등학교를 선택한 기준은


양준혁: "사실 사춘기 때 별다르게 겪은 건 없어요. 어릴 때부터 워낙 야구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컸기 때문이었죠."


양준혁은 어린 나이때부터 야구에 대한 집념이 대단했던 것 같네요.


또한 양준혁은 고등학교를 야구 명문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대구상고로 진학하게 됩니다.


양준혁: "저는 고등학교도 경북고가 아닌 대구상고를 갔어요. 경북고에는 잘하는 애들이 다 모여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대구상고에 가서 1학년 때부터 4번 타자를 하게 되었어요."


양준혁: "고등학교 때 감독님이 저보고 영남대에 가라고 푸시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영남대에 도장을 찍었는데, 며칠 뒤에 그 감독님이 영남대로 가더라고요. 제가 그 감독님밑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배웠어요."



* 양준혁 체벌과 구타에 대하는 자세


양준혁: "그 양반이 아주 대한민국에서 악독한 감독, 독종 감독으로 유명해요. 선수들을 두들겨 패는 것으로 악명이 높아서, 저 역시 많이 두들겨 맞았죠. 저는 그래도 맞고 난 뒤에 감독님께 웃으면서 "감사합니다" 했어요. 아마 감독님이 그런 제가 예뻐 보여서, 더 키워준 것 같아요."


양준혁: "감독님으로부터 매를 맞을 때도 생각을 했어요. '이 사람이 내가 미워서 때리는 걸까? 아니다. 이건(체벌은) 오히려 나를 위한 거다.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구나.'라고 생각을 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죠."


양준혁: "대학 가서도 머리를 빡빡 깎여가지고 숙소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랬기 때문에 기본기를 착실히 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 학내 체벌이 금지인데, 양준혁이 고등학교 대학교 선수 시절이었던 20~30년 전에만 해도 이런 일들이 빈번했죠(요즘은 이런 폭력 사건이 용납되지 않음).


그런데, 양준혁이 감독으로부터 맞은 다음에도 '고맙습니다.'라고 한 부분은 굉장히 특이하면서, 또한 양준혁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현재야 더 이상 체벌이 용납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듣기 싫은 충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이든 일반인이든, 자신을 진정 아껴주는 사람의 충고를 귀담아 듣는 것이 무척 중요하죠.



* 양준혁의 유의미한 기록


대학 졸업 후 양준혁은 쌍방울의 지명을 거부하고 상무에 자진입대하는데, 사실 이것은 '삼성 밀약'때문이었습니다.

KBO 규정이 제대로 적용되었다면, 영구제명감이었죠.


이후 양준혁은 프로야구 선수로 큰 활약을 하면서, '양신'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야구에 있어서는 '신'적인 존재라는 것이죠.


이런 양준혁에게 아주 '유의미한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통산 최다 홈런 351개입니다.(후에 이승엽이 409개를 때리면서, 양준혁은 2위로 내려감)


양준혁은 단 한번도 시즌중에 홈런왕이 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18년 프로선수 시절동안 연평균 20개의 홈런을 꾸준히 쳤기에, 결과적으로 은퇴할 때에 '홈런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죠.


양준혁: "저도 최다홈런 기록을 가질 거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그냥 18년 동안 꾸준하게 쳤어요. 그랬더니 마지막에 그 기록까지 가더라고요."


양준혁: "사실 제가 꾸준히 홈런을 칠 때 홈런왕은 이승엽이었어요.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다 갔기에, 어떤 때는 굉장히 서럽기도 했죠. 하지만 묵묵하게, 2인자로서 꾸준하게 제 길을 걸어가니까, 이 기록까지 치게 되었네요."


사실 양준혁은 홈런보다는 안타와 타점으로 유명한 선수였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자기 할일을 다하다 보니, 이런 성과까지 얻게 되었네요.



* 양준혁의 성공 마인드


또한, 양준혁에게 있는 특별한 점은 바로 '오랜 세월 동안의 꾸준함'이었습니다.

사실 프로리그에 양준혁보다 더한 활약을 한 선수들은 무수히 많지만, 양준혁처럼 18시즌동안 꾸준하게 활약을 한 선수는 찾기가 무척 힘들죠.


과연 양준혁은 어떤 마인드였기에, 이토록 오랜 성공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양준혁: "제가 오랫동안 꾸준할 수 있었던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명품이라는 게 단순히 역사만 오래되었다고 명품이 아니거든요. 항상 신상품, 소비자들이 필요한 좋은 신상품을 내놓기 때문이죠. 그처럼 저 역시 항상 타격 폼의 발전을 꾀했어요."


양준혁: "1990년대만 해도 투수들은 직구, 슬라이드, 커브 이 세 가지 구질이 전부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투수도 발전을 해서 열 몇가지씩을 던지고 있죠. 과거에 잘했다는 타성에 젖어들면, 그때부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도태가 시작되는 겁니다."


양준혁: "'과거에 내가 어땠는데...' 이런 거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진짜 필요 없는 거예요. 오로지 현재와 미래만 중요한 거죠."


사실 '성공의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그 '성공' 때문에 결국은 실패한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바로 개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준혁은 이 '성공의 패러독스'를 극복했네요.


* 양준혁 결혼 실패


또한, 양준혁에게 주목할 점은 그가 현재도 미혼이라는 점이죠.

(아직 양준혁 결혼하지 않았음.)



참고로 양준혁이 남남북녀에서 김은아와 가상 부부로 출연을 합니다(양준혁 김은아 결혼 생활)

그런데 둘의 관계가 너무 친해서 '양준혁 김은아 진짜결혼', '양준혁 김은아 결혼할까'라는 연관검색어까지 생겼죠.


그 만큼 두 사람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김은아가 양준혁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좀 있고, 또한 양준혁의 실제 성격이나 생활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양준혁 김은아 사진



양준혁 이상형: "같이 기부활동할 수 있는 사람 만나고 싶어요. 차인표 신애라나 션 정혜영 부부처럼 선행을 함께 하는 부부들이 보기 좋더라고요. 저도 (제 결혼 상대자가) 그런 기부와 봉사의 뜻이 통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또한, 일각에서는 양준혁이 프로선수 시절에 자기 관리를 하기 위하여 여자를 포기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하지만, 사실 양준혁이 결혼할 뻔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에 실패했기 때문이었죠.


양준혁: "내가 연애를 되게 오래했어요. 서른 살 때 연애를 했는데, 상대는 일반인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니고 좀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관계가 다 정리되었어요."


과거 양준혁 여자친구 직업이 좀 묘하네요(양준혁 여친).

아마 연예인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계통에 있었던 사람인 것 같네요.

그리고 이때(양준혁 나이 서른 살) 연애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이미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었을 것 같습니다.


* 양준혁 여친의 거부


양준혁: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어 프로포즈를 했다. 하지만 그 여자친구는 내가 부담스러운지 거절하더라. 결국 거절한 여자친구를 차에 태우고 구룡포 앞바다로 달려갔다."


양준혁: "그리고 당시 내 마음을 몰라줬던 여자친구 때문에 소주 2병을 먹고 바다에 뛰어 내리려고 했다. 당시 여자친구에게 "이 파도에 뛰어들까? 너 마음에 갈까?"라고 했다. 그러자 여자친구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를 선택했다."


양준혁: "하지만 다음날부터 그 여자친구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 때 너무 상처를 받았다. 그 여자친구를 잊기 위해 15kg이 쪘다."



그런데 최희 아나운서가 양준혁에 대하여 재미있는 폭로를 하네요.

참고로 최희가 같은 계통에서 일하기 때문에 야구 선수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죠.


양준혁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양준혁 재산 양준혁 빌딩과 성희롱 사건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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