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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가수 박현빈의 춘향아 대찬인생 노래와 더불어,

박현빈의 과거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롭네요.


평소에 보는 박현빈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과거들이죠.


박현빈과 더불어 유명한 트로트 가수 홍진영 포스팅 (새창보기)

홍진영이 천재인 이유/홍진영 뉴라이트인 아버지 홍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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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박현빈 어린 시절 이야기

* 박현빈 생활고때문에

* 박현빈 트로트 가수 데뷔 계기

* 성악에서 트로트 가수가 된 이후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트로트 가수 박현빈(본명 박지웅)은 1982년 10월 18일 경기도 광명에서 태어납니다(박현빈 고향 광명시). 올해 34살이죠(박현빈 나이).

(박현빈 키 몸무게 혈액형) 170cm, 62kg, B형

(박현빈 학력 학벌) 광일초등학교, 연수중학교, 송도고등학교 졸업, 추계예술대학교 성악과 전공

(박현빈 프로필 및 경력) 2006년 싱글 앨범 [빠라빠빠]로 데뷔


박현빈 대표곡으로 곤드레만드레, 오빠만 믿어, 샤방샤방, 대찬인생, 앗! 뜨거, 춘향아 등이 있습니다.



* 박현빈 어린 시절 이야기


어린 시절 박현빈은 내성적이었는데, 성장하면서 차츰 성격이 바뀌게 됩니다.


박현빈: "초등학교때는 특출한 아이는 아니었어요. 음악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해서 학교 행사가 있으면 항상 대표로 나가 노래를 불렀어요. 그리고 활달하고 운동을 무척 좋아하기는 했지만, 실제 성격은 그냥 평범한 아이였어요. 나서는 것 별로 안 좋아하는."

박현빈 사진


박현빈: "저희 집안 자체가 모두 음악인이에요. 할아버지는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셨고, 아버지는 색소폰 연주자, 어머니는 노래 강사로 활동하셨어요."


박현빈: "어머니가 어렸을 때만 해도 대중가수가 되면 가정을 지키기 힘든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가정을 위해서 음악의 꿈을 접으셨죠. 그 못다한 꿈을 아들에게 전해주셨던 것 같아요. "너희는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돈이 있어도 음악을 못 배운다."라고 하면서도. 그래서 형과 저에게 음악을 시키셨어요."


박현빈 노래모음 5곡

박현빈 춘향아


Park, Hyun-bin - Cool Life, 박현빈 대찬 인생, Music Core 20090516  


 박현빈 오빠만 믿어_EXPO POP Festival #002  


박현빈 샤방샤방  


 박현빈 곤드레 만드레_EXPO POP Festival #005



* 박현빈 생활고때문에


사실 박현빈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그리 풍족한 편이 못됩니다.


박현빈: "어려서부터 형은 플루트, 저는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어렸을 때 10여 년 하면서 제가 바이올린 신동이라는 소리도 들었는데, IMF 외환위기때 집안 형편때문에 성악으로 바꿨어요. 그렇게라도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한 거죠."


박현빈: "부모님이 두 분 다 음악을 하셔서, 낮과 밤이 바뀐 삶이셨어요. 그리고 제가 중학생 때 우리 형제를 돌봐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결국 부모님이 업종을 바꾸셔서 백반음식점을 했었는데, 부모님 두 분 다 마음씨가 정~말 좋아서 망했어요.(웃음)"


박현빈: "사실 우리 집안 형편만 보면 우리 형제가 음악을 공부하는 것은 맞지 않았어요. 오히려 중,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어와야 하는 형편이었거든요. 하지만 부모님은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들으면서도, 우리에게 '음악 공부'를 시키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우리나라에는 자식들의 미래를 위하여 희생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박현빈의 부모 역시 자식들을 위하여 본인들을 희생한 것 같습니다.



* 박현빈 트로트 가수 데뷔 계기


이렇게 박현빈은 집안에 빚이 있는 상황에서도 부모님의 자녀 교육 방침 덕분에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습니다.


박현빈: "군대에서 군악대로 근무했는데, 트로트를 많이 불렀어요. 사실 그 동안에는 클래식을 했다면, 군대에서 처음으로 대중 가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죠."


제대후에도 계속 성악을 하던 박현빈은 어느날 부모님의 말을 듣고 진로를 바꾸게 됩니다.


박현빈: "친형 역시 성악을 했는데, 나는 형에 비해서 활발하고 호기심 많고 까불거리는 성격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남자 장윤정'은 왜 없냐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트로트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박현빈: "결심을 하고 바로 ‘서울대전대구부산’, ‘빠이빠이야’를 만드신 정의성 작곡가를 만나서 오디션을 봤어요. 무작정 찾아가서 트로트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죠. 제 데뷔곡인 ‘빠라빠빠’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그리고 장윤정씨가 있던 회사를 찾아가서, 무작정 "남자 장윤정이 되겠다"고 인사를 드렸죠."


박현빈: "그런데 회사에서는 남자가수는 안 한다고 거절을 했어요. 하지만 오디션 과정을 거치고 계약하게 되었죠."


이때 박현빈이 20여년 이상 실력을 쌓은 성악(실제로 정식으로 성악을 배운 것은 고등학교 3학년때임) 덕분에 소속사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박현빈: "데뷔할 때 회사 대표님께서 가수 장윤정씨한테 요즘 가장 잘나가는 남자 배우가 누구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장윤정씨가 "현빈"이라고 대답했다. 그 한마디에 내 예명은 박현빈이 되었다. 사장님의 뜻은 내가 트로트 계의 현빈이 되라는 것이었다."(박현빈 예명이 된 이유)



* 성악에서 트로트 가수가 된 이후


참고로 성악이 트로트에 도움이 되는 면도 있는 반면에,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박현빈: "사실 클래식(성악)은 반주 자체가 없고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아요. 발성과 호흡을 아주 체계적으로 훈련해야 하는 성악에 익숙해 있다가, 트로트를 하려니까 어려움이 많았어요. 마이크로 소리내는 점이 어색했고, 또 트로트에서는 클래식에서 사용하지 않는 기교가 필요하기도 해서 많은 노력을 했죠."


이런 준비과정을 거친 박현빈은 2006년 '빠라빠빠'로 데뷔하게 되는데,

데뷔하자마자 월드컵 붐과 지방선거에 편승하여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박현빈: "지방선거 당시에 노래를 알릴 데가 없어서 부탁받은 로고송을 일일이 직접 녹음해 각 후보 진영에 넘겨드렸어요. 결국 총 700여 명의 후보들이 제 노래를 로고송으로 썼는데, 한국기록원에서 '최다 선거 로고송 가수'로 인정받게 되었어요."


월드컵의 신나는 응원송과 더불어 지방선거에서 수많은 후보들이 박현빈의 목소리로 녹음된 로고송을 틀었기에, 박현빈과 빠라빠빠는 곧 사람들의 귀에 익숙해졌고, 곧 박현빈은 '수많은 행사'에 불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뒤이은 1집 '곤드레만드레'로 인지도를 확고히 다지게 되었죠.


박현빈: "데뷔 첫해에 평생의 꿈을 이뤘어요. 30평짜리 아파트를 구했는데,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가져보는 집이었어요. 게다가 2억원이던 집안의 빚도 모두 갚았고요."


박현빈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박현빈 아내 김주희 직업, 박현빈 결혼 신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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