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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류승완 류승범 양아치 과거 일화들- 군고구마 팔다가

영화감독 류승완과 류승범의 과거 일화들이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죠.

그들 형제의 과거 일화들을 한번 살펴봅니다.


류승완과 친한 배우 하정우 포스팅 (새창보기)

하정우 인간성 드러난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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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류승범 류승완 과거 부모님을 잃고

* 류승완 영화에 푹 빠져

* 류승완 류승범과 군고구마를 팔다가

* 류승완 양아치 류승범 사건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영화배우 겸 영화감독 류승완은 1973년 12월 15일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납니다(류승완 고향). 올해 43살이죠(류승완 나이).

(류승완 종교) 기독교(개신교)

(류승완 키 몸무게) 172cm로 추정 64kg

(류승완 감독 학력 학벌) 온양중학교 졸업

고졸 출신 영화감독으로 유명함


(류승완 프로필 및 경력) 1996년 영화 변질헤드로 데뷔


이후 영화감독으로 패싸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다찌마와 리, 아라한 장풍 대작전, 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 등을 연출했고, 영화배우로 3인조, 복수는 나의 것, 오아시스, 친절한 금자씨, 평양성, 배우는 배우다, 경주 등에 단역 혹은 조연 등으로 출연합니다.


그외 특이 사항으로 류승완 동생 류승범이 현역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는데, 류승범은 1980년생으로 류승완보다 7살 연하입니다.


류승완 사진


* 류승범 류승완 과거 부모님을 잃고


어릴 때부터 류승범 류승완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할머니의 손에 자라게 됩니다.


류승완: "나는 너무 어려서 죽음을 봤다. 내가 중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병으로 연달아 돌아가셨다. 누군가에게는 우주보다 더 큰 존재가 사라졌는데, 그러고도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더라."


당시 류승완의 상실감이 어땠는지 알 것 같습니다.

참고로 류승완은 그나마 중학교 1, 2학년이었지만, 류승범은 7살 아래였기에, 어릴 때부터 류승완이 동생을 키우다시피 했을 것 같네요.

 

류승완: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당시 절대 빈곤의 시기를 살았다. 말 그대로 동사무소에서 정부미(쌀)를 받아 먹었다. 영세민 등록되어서."


류승완: "당시의 암울했던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은 오직 영화였다. 주말 동시상영 극장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봤다. 내 도피처였다."


이후 자연스럽게 류승완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 류승완 영화에 푹 빠져


류승완: "어느날 영화잡지에서 할리우드의 명감독 존 포드가 대배우 존 웨인에게 지시를 하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영화감독이 더 멋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고등학교때 돈을 모아서 8mm 비디오카메라도 구입했다."


류승완은 어려운 가정 형편속에서도 비디오카메라로 직접 영화(?)를 찍어봅니다. 당연히 배우가 없기 때문에 동생 류승범과 본인이 주요 출연배우가 되었죠.


류승완: "이후 생계를 위해서 호텔 지하 2층부터 33층까지 계단 청소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영화감독의 꿈을 놓지 않았다."



이후 류승완은 지하철 보수 공사 등의 노가다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영화에 대한 집념을 놓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서 카메라와 필름을 사고, 동생을 강제 출연(?)시켰죠.


또한, 류승완은 박찬욱 감독을 무작정 찾아가서 영화에 대하여 가르쳐 달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박찬욱 감독: "류승완은 내 영화 전체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짧은 액션 장면만 좋아했다. 그래서 액션 영화를 찍으려면 다른 사람을 찾아가라라고 말했다."


이렇게 박찬욱이 거절을 했지만 류승완의 고집을 꺽을 수가 없어서, 결국 류승완은 영화 '삼인조'의 연출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불과 1년 후인 1998년 단편 영화 '패싸움'을 연출할 정도로 기량이 향상하게 되었죠.

(참고로 류승완은 박찬욱 감독을 항상 스승님, 혹은 선생님으로 각별히 존경을 함)


당시 26, 27살의 젊은 류승완의 패기와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 류승완 류승범과 군고구마를 팔다가


그러다가 류승완은 1999년 제25회 서울독립 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후원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류승완: "류승범과 함께 그때 아파트 앞에서 군고구마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화가 왔는데, 처음에는 고구마 배달전화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영화제 본선 진출 소식 전화였다."


류승완: "서울독립영화제는 운명을 바꾼 시간이었다."


류승완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이때의 수상 전적을 바탕으로 이후 장편 영화제작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류승완 과거 사진


그리고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다찌마와 리 등으로 이름을 알렸는데, 사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류승완 아내 강혜정의 결정적인 도움이 존재했습니다.

(밑에서 추가 설명)


그리고 2004년 아라한 장품 대작전으로 관객수 130만명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이후 주먹이 운다, 부당거래 등으로 인지도를 올렸으며, 그리고 2013년 영화 베를린으로 700만 감독이 됩니다.


* 류승완 양아치 류승범 사건


참고로 류승완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찍을 당시에 돈이 굉장히 없었서, 여러모로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류승완: "영화 중간에 붐마이크가 보이는 등 허술한 부분이 있었지만, 돈이 없어서 그냥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영화를 볼 때 연기자의 감정을 봐야지 왜 쓸데없이 붐마이크를 보냐고 우리끼리 얘기를 하곤 했다."


류승완: "배우 섭외도 무척 어려웠는데, 당시 출연배우는 한국말을 할 줄 알고 사지가 멀쩡하면 OK였다(웃음)."


류승완: "배우 쓸 돈이 없어서 나도 출연했고, 친한 친구를 배우로 쓸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양아치 역할을 맡은 배우를 도무지 구할 길이 없었다. 당시 굉장히 힘들어 하면서 집에 귀가했는데, 웬 양아치 한놈이 방에 누워 있더라."


바로 류승완 동생 류승범이었습니다(류승완 양아치 류승범 에피소드).

결국 류승범이 형 류승완의 영화에 강제 출연(?) 당하게 되었고, 이후 배우로의 필모 그래피를 쌓게 됩니다.


류승완 동생 류승범 양아치 사진(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극중 장면)


류승완: "내 인생에서 잘한 일은 동생을 배우로 시킨 것과, 아내를 만나 결혼한 것이다."



이렇게 류승완의 영화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바로 친동생 류승범과 아내 강혜정입니다.

류승범은 어렸을 때부터 강제 출연(?)을 많이 당했고 결국 전업 배우로 성공하게 되었고, 강혜정은 처음부터 남편 류승완의 제작자 겸 투자자로 활약을 했기 때문이죠(제작자 강혜정).


류승완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류승완 강혜정, 류승완 아내가 재떨이를 맞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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