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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로티 김호중의 노래 모음 5곡입니다.

김호중의 네순도르마 찔레꽃, 나의 사람아 등의 노래를 들으면서 조폭이 될 뻔했던 테너 김호중의 이야기를 읽으면, 의미가 클 것 같네요.


김호중의 어린 시절부터 조폭으로 활동하던 시절, 그리고 나중에 후회하고 반성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김호중같은 성악가 출신의 이야기

성악가 김동규 부모- 아들을 위한 독자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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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어린 시절 불행했던

* 김호중 조폭 유망주에서

* 성악가 김호중의 시작은

* 김호중 선생님 서수용의 은혜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성악가 김호중은 1991년 10월 2일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납니다(김호중 고향, 혹은 경북 울산이라는 얘기도 있음). 올해 25살이죠(김호중 나이).

(김호중 종교) 개신교(기독교)

(김호중 키 몸무게) 175cm, 85kg

(김호중 학력 학벌) 대구 경북예술고등학교 전학, 경북 김천예술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성악과 중퇴(김호중 중퇴 경력)

(김호중 프로필 및 경력) 2008년 세종음악콩쿠르 1위


2009년 전국수리음악콩쿠르 1위

2009년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

2013년 3월 앨범 '나의 사랑아' 발매


2012년 영화 파파로티가 김호중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은 무척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참고로 파파로티가 실화로 제작된 것은 맞지만, 스토리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좀 더 극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죠.)


테너 김호중 사진


김호중 노래모음 5곡


고딩 파바로티 김호중  


 김호중네순도르마동영상

 [ROTC 음악회] 초청 테너 김호중 (스타킹 스타) : Nessun Dorma  


 김호중 찔레꽃 동영상 

고딩파바로티김호중 #4  


 김호중의 나의 사람아 동영상 

김호중 스타킹 리허설 영상과 나의 사람아  


 김호중 카루소 동영상 

Hojoong Kim Caruso

 


* 어린 시절 불행했던


파파로티 김호중의 어린 시절은 굉장히 다사다난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과거 조폭의 세계에 빠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악가가 되었는지가 무척 궁금하네요.



우선 김호중의 가정 환경은 무척 좋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되면서, 어른들의 제대로된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김호중 과거 사진

(어렸을 때 이렇게 귀여웠던 아이가, 점점 성장하면서 나쁜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 참 안타깝네요.)


김호중(이하 김): "어렸을 때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김호중에게는 노래에 대한 재능뿐만 아니라 싸움에 대한 재능도 있었습니다.

중학교때는 부산에서 열린 전국대회에서 이종격투기 선수로 우승까지 했었죠.


조직폭력배는 어리지만 싸움실력이 좋은 김호중을 눈여겨보기 시작했고,

김호중 역시 몸에 문신을 새기고 학교 폭력서클에 가입하게 됩니다.



* 김호중 조폭 유망주에서


그러다가 김호중이 큰 충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김: "좋아하는 대중가수로 김범수가 있었는데, 어느 날 ‘보고싶다’ CD를 사기위해 찾은 음반매장을 찾았다. 그런데 어떤 음반에 덩치가 크고 수염도 잔뜩 기른 사람의 사진이 있는 음반을 우연히 들었다가 뿅 갔다."


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루치아노 파바로티였고, 노래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였다. 당시에 정말 소름이 끼쳤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생각했고, 몇날 밤을 새면서 그 노래만 들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소리를 내고 싶어졌다."


하지만 김호중 집안은 무척 가난했기에, 성악을 공부할 수는 없었습니다.


김: "예전에 성악을 배우고 싶어 서울의 한 대학교에 무작정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당시 레슨비는 없지만 MP3에 녹음만 하면 안되냐고 부탁했지만, 매몯차게 거절당했다."


김: "당시 내려오는 KTX안에서 엄청 울었다. 나중에 성공하면 노래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못하는 가난한 학생들을 돕자는 꿈이 생겼다. 나처럼 그런 일로 우는 일이 학생은 없게 만들고 싶다."



* 성악가 김호중의 시작은


다행히 운 좋게 김호중은 중학교 3학년때 다니던 교회의 집사 소개로 성악의 기초에 대한 무료 레슨을 받게 됩니다(울산 임마누엘 교회에서 3개월간).


그리고 뛰어난 재능 덕분인지 불과 3개월간의 레슨으로 성악 콩쿨에 입상하면서 대구 경북예고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 시기 김호중의 조폭 생활 역시 본격화됩니다.


김: "고교생 조폭으로 지내면서 가게와 동생들 관리를 했다. 그외에 낚시터 공동 운영 같은 일도 했다. 월급도 많았고, 구두가 17켤레, ‘마이’가 열 벌쯤 됐다."

(김호중조폭)



* 김호중 선생님 서수용의 은혜


이 시기 김호중은 사건을 치고 경북예고에서 퇴학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서수용(경북 김천예고 교사, 김호중의 선생님)

"어느날 경북예고에서 근무하는 성악담당 후배 교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배. 우리 학교에 성악에 재능이 있는 2학년짜리가 있는데, 완전 문제아다. 이번에 사고를 쳐서 퇴학당하기 전에 전학을 가야 한다."라면서, 나보고 그 문제아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더라."


김호중과 선생님 서수용 사진


서수용: "일단 한번 만나 보자는 심정으로 김호중과 약속을 잡았다. 처음 봤을 때 김호중은 완전 조폭이었다. 나조차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서수용: "하지만 그의 노래만큼은 달랐다.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 나오는 ‘별은 빛나건만’을 불렀는데, 목도 풀지 않고 부르더라. 나도 고등학교때 10번 부르면 절반 정도는 실패하던 곡이었는데, 김호중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부르더라."


결국 서수용은 김호중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김호중은 김천예고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서수용: "다음날부터 대구에 있는 호중이의 자취방에 들러서 호중이를 데리고 김천의 학교로 향했다. 하루는 호중이가 몸이 아파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더라. 그래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더니, 그제야 순순히 학교로 간다고 하더라."


김호중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김호중 고등학교 중퇴 위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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